포식자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광음여류
작품등록일 :
2012.11.16 14:10
최근연재일 :
2018.03.26 19:27
연재수 :
360 회
조회수 :
190,773
추천수 :
4,145
글자수 :
2,037,868

작성
17.01.24 20:26
조회
405
추천
8
글자
12쪽

엽인들 [사명..변화 12]남명진

DUMMY

새하얀 입김을 뿜어내며 길 위를 질주해가던 젊음은 오늘도 식당 앞에 서 있는 노인을 발견하곤 급격히 속도를 줄였다. 푹 둘러쓴 후드를 벗고 흐트러진 호흡을 바로 잡으려 크게 심호흡을 하면서 말없이 고개를 숙였다. 그를 본 송영감이 헛기침을 하며 말한다.


“거, 날씨도 추운데 고생이 많네. 연말인데 좀 쉬엄쉬엄 하게나.”


말없이 싱긋 웃으며 다시 끄덕인 청년이 바람처럼 내달리자 송영감은 양손을 꽉 움켜쥐었다. 반대쪽 길모퉁이로 사라져가는 그의 역동적인 움직임에서 눈을 떼지 못한 채 빙그레 웃었다.


‘무슨 운동을 하기에 저리도 열심일까? 벌써 여러 달은 된 것 같은데.’ 한창 더워서 볕 피하는 게 일이었을 때였다. 있는 힘껏 내달리는 청춘을 처음 봤을 때가..


그를 보는 순간 왠지 모를 설렘에 진정하지 못했다. 어느덧 고희를 넘어 삶의 낙이라고는 일주일에 한 통 오는 손녀의 전화뿐이었는데, 투박한 길 위를 질주해가는 청춘을 보며 잊었던 열기를 만끽하였으니.. 어찌 흡족하지 않으랴?


‘종마가 따로 없네 그려, 종마가..’


처음 한 달간은 바라만 보다가 열기에 이끌려 자신도 모르게 길가로 나섰는데, 눈매가 날카롭고 매서워 조금 껄끄러웠던 젊음이 꾸벅 고개를 숙이고 지나가는 게 아닌가?


“어험!”


괜히 힘이 나고 기분도 좋아져서 그날 이후로 항상 길가에서 청년의 인사를 받았다. 언제나 무표정한 젊은이가 자신을 보며 싱긋 웃는 것도 보기 좋았고, 그로서는 알 수 없는 목표를 향해 정진해가는 모습도 마음에 들었다.


‘그래, 나도 저랬었지.’


언젠가부터 그를 보지 못하면 이상하게 맥이 빠져서 하루를 보냈다. 이것도 중독이라면 중독이었지만, 이런 중독이라면 천 번 만 번 반기리라.


‘젊다면 저래야지. 암, 저렇게 힘이 넘치고 살아 있어야지.’


송영감은 손녀와 통화하지 못해 씁쓸했던 기분이 저만치 달아나는 것을 느꼈다. 온몸에 힘이 나고 매서웠던 찬바람이 상큼하게 느껴지자 그는 크게 기지개를 켠 뒤, 식당 문을 힘차게 열고 들어섰다. 언제나 듣던 목소리가 우렁차게 들려온다.



“놈! 오늘도 같은 꼴이구나.”



탈의 정문을 박차고 들어오는 순간 쓰러지다시피 주저앉은 명진은 관장이 서 있는 홀을 향해서 기어가기 시작했다. 땀으로 범벅이 된 몸에서 뜨거운 김이 하얗게 피어올랐고, 거칠어진 호흡은 쉽사리 진정될 기미가 보이지 않건만, 그는 억지로 호흡을 삼킨 채 물었다.


“이번에도 실패입니까?”


대답할 가치도 없다는 듯 돌아서는 관장을 보며 어금니를 악문 명진은 후들거리는 다리를 붙잡고 일어서서 샤워실의 문고리를 잡았다.


‘빌어먹을.’ 하지만 문은 열리지 않고 손만 덜덜 떨렸다. ‘이런 좆 같은 거.’


한계까지 혹사당한 근육과 신경이 조그만 움직임에도 반응하며 비명을 질러대니 평범한 여닫이문 미는 것조차 여간 힘들고 고통스러운 일이 아니었다.


‘할 수 있어. 좆도, 별거 아니야, 별거 아니야!’


가까스로 문을 여는 데 성공한 명진은 샤워실로 들어서서 문을 닫곤 그대로 주저앉았다. 어렵사리 트렁크를 벗은 뒤에 샤워대로 기어가는 모습이 참 애처로워 보였지만, 그의 눈빛에 서린 건 고통이 아닌 희열이었다.


‘어쨌든 시작은 좋아, 오늘도 해냈어.’


한계점까지 부딪쳐본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성취의 달콤함을 향유하며 그는 수도꼭지를 힘차게 돌렸다.


‘거리를 한 블록 늘인 걸 스승님이 알면 놀라시겠지?’


회심의 미소를 흘리며 쏟아지는 냉수에 몸을 식히던 그는 무심결에 오른쪽 어깨를 보고 작게 욕설을 뱉어냈다.


“좆도, 이건 아무리 봐도 적응이 안 되네."


팔과 어깨의 연결부위를 시뻘겋게 달군 인두로 지져버린 것만 같은 흉터가 보였다. 핏빛 혈문이 흉터를 중심으로 대칭을 이루며 새겨져 있고, 그 위로는 쇠사슬 같이 생긴 검푸른 문양이 뱀처럼 연결 부위를 휘감은 상태였다.


‘어찌 보면 제법 멋진 것 같기도 하고.’


그렇게 자위도 해봤지만, 문신과 문양으로 몸과 어깨를 꿰매 붙인 것 같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그런 문양이 왼쪽 다리에도 있어 절로 눈길이 갈 때, 새겨진 문신처럼 잊을 수 없는 목소리가 귓가를 맴돌았다.


‘정녕 네 것으로 보이느냐?’


알 수 없는 의문이었건만, 명진의 입에서 욕설이 흘러나온다.


‘좆 같은 거.’


쓴웃음을 흘리며 일어선 명진은 오른쪽 어깨를 들어서 크게 원을 그리며 몇 바퀴 돌리다가 앞으로 힘껏 내질렀다. 아직도 미약하게나마 떨리는 왼팔과 달리 샤워기의 물줄기를 가르며 호쾌하게 뻗어 나간 오른팔은 놀랍게도 이미 회복된 상태였다.


“역시.”


작게 중얼대며 탄성을 뱉자 목소리가 다시 귓가를 맴돈다.


‘나약함과 강인함, 어떤 부위에 적응하고 동조하느냐 또한 너의 선택이다.’


“선..택.”


이제는 많은 의미를 가지게 된 단어를 뇌까리며 왼손을 뻗어 혈문을 쓰다듬었다. 이제 자신의 의지대로 움직이기는 했지만, 미묘한 이질감을 다 떨쳐내지는 못했다.


“좆도 선택은..”


괜히 투덜대며 몸의 상태를 체크하던 중 러닝 때 봤던 어르신이 문득 떠오르자 그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그분의 담백한 눈빛과 너털웃음이 때때로 큰 힘이 되곤 했다. 그러고 보니..


‘벌써 연말이네, 부모님은 잘 계시려나..’


그 일이 있고서 단 한 번도 보지 못한 가족이 떠올라 괜스레 울적해질 때, “쓸데없는 생각하지 말고 움직여!” 마치 옆에서 지켜본 듯한 고함이 들려오자 그는 쓴웃음을 머금었다.


“분명히 어딘가에 카메라가 있어.”


장난 반 진담 반으로 천장을 살피던 중 몸의 떨림이 완연히 잡히는 게 느껴지자, 그는 크게 심호흡하며 주저앉았다. 먼저 발바닥을 겹치고 무릎을 모아 세워서 양손으로 감싸 안았다. 몸 전체를 최대한 밀착시키며 오그린 뒤에, 천천히 호흡을 늘이면서 유일하게 행할 수 있는 술식, 동조의 술을 발현하기 시작했다.


‘절대적인 믿음 아래 모든 것이 가능하다.’


더 강하고 튼튼하며 안정된 것을 추구하려는 육체가 주인의 강렬한 의지를 따라 움직이는 순간, 가혹한 훈련으로 상처 입은 근육과 신경이 신비에 다다랐다 칭송받던 무인의 팔과 다리에 동조하며 빠르게 회복되기 시작했다.


‘좋았어, 조금만 더 빨리.’ 이 경이로운 공능의 대가가 수명의 단축이 아니었더라면, 기적이라 불러도 무방하리라.


순식간에 육체가 회복되는 것을 느끼며 언제나처럼 탄복하던 그는 천천히 술식을 풀고 일어나서 거울에 비친 자신을 바라봤다. 아무런 계획도 없이 무식하게 몸을 혹사해 만든 크고 둔한 몸뚱이는 이제 없었다. 항상 쫓기며 불안에 떨던 겁쟁이의 눈빛도 사라졌고.


‘나도 많이 변하기는 변했구나.’


부위별로 잘게 갈라진 근육으로 이루어진 몸은 더없이 탄탄해 보였고, 매 순간 한계를 넘나들며 끔찍한 고통을 감내해서 그런지 찢어진 눈매는 이제 섬뜩할 정도로 날카로웠다. 그런 상태에서 동공은 무감정하게 정지되어 있어 흡사 관장의 눈을 보는 것 같기도 했다.


‘에이, 아직 멀었지.’


어느새 이상향으로 삼은 스승과 거울 속 제법 그럴듯한 몸뚱이를 비교해보던 그는 문득, 저기 서 있는 사람은 내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곤 쓴웃음을 흘렸다.


“간[間]을 버린 인[人]이라고 했지?”


알 수 없는 말을 하는 그의 머릿속에 술을 받아들였던 날이 스쳐간다.


“그러니까, 당신.. 아니, 관장님의 육체를 내게 이식하려고 눈을 뽑고 팔다리도 부셨다는..뭐, 그런 말입니까? 아니, 좆도.. 지금 그딴 걸 나한테 믿으라고 개..”


당연히 흘러나오는 욕설을 여과 없이 뱉어내려던 젊음은 관장의 눈빛이 서늘해지자 슬그머니 눈치를 보며 입을 다물었다.


‘개소리, 개소리!’


사실 주술과 마법, 무공에 사람을 잡아먹는 괴물이 존재하는 세상을 인정한 마당에 무슨 소리인들 믿지 못하겠냐 만은, 그래도 정도란 게 있었다. 아주 감격스러울 정도로 벅차오르는 황당함에 표정관리가 되질 않아 고개 숙일 때, 냉소를 머금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리석은 놈, 몸소 겪고도 믿지 못하는구나.”


관장은 명진의 팔을 가리켰다.


“정녕 네 것으로 보이느냐?”

“예? 아니,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명진은 왼손을 슬그머니 뻗어서 여전히 움직이지 않는 오른팔을 더듬었다. 돌처럼 단단하면서도 이상하리만큼 부드러운 근육이 잘 발달된..


‘잠깐만, 내 팔이 그랬다고?’


그는 왼손으로 오른손목을 붙잡아 눈앞으로 들어올렸다. 관장에게 고정되어 있던 초점이 서서히 오른팔로 모이자 그의 입에서 듣기 거북한 신음이 흘러나온다.


“말도 안..돼. 아니, 그럴 리가 없는데? 아니, 이게 왜.. 내 손이 아니..야?”


팔다리가 부서질 때의 고통은 생생히 기억하고 있었지만, 눈을 떠보니 멀쩡해서 그냥 그러려니 했다. 일면 우습게 들리겠지만, 세상 누군들 그러지 않겠는가? 하루아침에 팔다리가 없는 병신이 되었다가 깨고 보니 꿈이었는데..


‘그게 다 진짜였어?’


물론,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고 감각도 희미한 게 이상하긴 했다. 그래도 내 몸에 붙어 있으니까 당연히 괜찮다고 믿었는데, 자신의 몸에 붙어 있는 오른 손은 자신의 것이 아니었다.


“이게 말이 돼? 아니지, 아니야. 씨 팔, 좆 같은 거.. 아니야.”


넋이 나간 얼굴로 오른팔을 더듬고 살피던 그는 손에 억지로 힘을 줬다. 자신의 것이 아닌 손가락이 움찔거리는 게 보인다.


‘아니야!’ 그는 토악질을 해댔다. 내 몸에 타인의 신체가 붙어있다니?


팔다리를 통해서 끊임없이 전해지던 감각이 통증이 아니라 이질감이었다는 게 너무 끔찍해서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그와 동시에 뇌리를 스치는 생각이 있어 관장을 다그쳤다.


“이런 씨 팔, 그..때 다 부숴진 걸 떼내고 이걸 붙였다면.. 지금 당신 몸에 있는 건 뭔데? 그 사이에 의수라도 했어?”


진실을 눈으로 보고도 거부하려는 자를 경멸로 내려다보던 관장은 자신의 오른팔을 가린 소매를 걷어 올렸다.


“원한다면 보거라.”


평온을 넘어 무감정해보이는 얼굴과 달리 그의 오른손은 미세하게 경련하고 있었다. 손가락을 시작으로 팔 전체가 뒤틀리고 부서졌는데 어찌 고통스럽지 않으랴? 한데 신음은 그가 아니라 명진이 흘렸으니..


“아..니야.” 찢어질 듯 부릅뜬 눈을 타고 한줄기 절망이 흘러내린다. “당신이 왜.. 아니, 당신이 왜 내 손을..”


그는 자신도 모르게 시선을 내리다가 관장의 바지 한쪽이 피로 물들어 있음을 발견하곤 몸서리를 쳤다. 그런 명진의 행태가 영 마음에 안 드는지 관장은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마저 보길 원하느냐?”


미친놈 마냥 고개 젓던 명진은 관장의 몸이 식은땀으로 흠뻑 젖어 있다는 것을 그제야 깨달았다. 눈 앞에 선 자는 자신을 죽음으로 몰아갔던 통증을 참아내고 있었던 것이다. 이제는 받아들여야만 하는 자의 입에서 자연스럽게 의문이 뱉어진다.


“왜, 저한테 왜..?”


관장은 그의 말을 무시한 채 되물었다.


“너는 받아들일 게냐?”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포식자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123 엽인들 [사명..사제 15]현 vs 송광극, 결착 +3 17.02.14 488 16 13쪽
122 엽인들 [사명..사제 14]현 vs 송광극, 격돌 +7 17.02.13 628 16 16쪽
121 엽인들 [사명..사제 13]현 vs 송광극, 폭풍전야 +2 17.02.11 480 9 15쪽
120 혹여 기다리실 분들을 위해 올립니다. +2 17.02.10 641 11 1쪽
119 엽인들 [사명..사제 12]현 vs 송광극 , 비애 +4 17.02.09 563 13 13쪽
118 엽인들 [사명..사제 11]현 vs 송광극 +2 17.02.08 628 12 14쪽
117 엽인들 [사명..사제 10]숙명 +3 17.02.07 518 12 14쪽
116 엽인들 [사명..사제 9]얽힘 +2 17.02.06 486 8 12쪽
115 엽인들 [사명..사제 8]송광극 - 천운 +4 17.02.02 566 10 15쪽
114 엽인들 [사명..사제 7]송광극 - 고뇌 +1 17.01.30 535 9 15쪽
113 엽인들 [사명..사제 6]송광극 - 계승자 17.01.29 456 10 13쪽
112 엽인들 [사명..사제 5]혼돈 17.01.28 506 9 13쪽
111 엽인들 [사명..사제 4]이어짐 17.01.26 470 11 16쪽
110 엽인들 [사명..사제 3]송영감 17.01.26 550 9 7쪽
109 엽인들 [사명..사제 2]마안 +1 17.01.25 515 8 15쪽
108 엽인들 [사명..사제 1]두 가지 말. 17.01.25 402 9 14쪽
107 엽인들 [사명..변화 13]남명진 17.01.24 430 9 13쪽
» 엽인들 [사명..변화 12]남명진 17.01.24 406 8 12쪽
105 엽인들 [사명..변화 11]이어짐 +1 17.01.23 471 12 13쪽
104 엽인들 [사명..변화 10]다프네 17.01.23 534 8 12쪽
103 엽인들 [사명..변화 9]다프네 +1 17.01.20 515 8 12쪽
102 엽인들 [사명..변화 8]다프네 17.01.20 449 10 13쪽
101 엽인들 [사명..변화 7]현 17.01.20 479 8 8쪽
100 엽인들 [사명..변화 6]그날 17.01.19 477 10 16쪽
99 엽인들 [사명..변화 5]최동민 17.01.19 499 12 16쪽
98 엽인들 [사명..변화 4] 17.01.17 415 10 12쪽
97 엽인들 [사명..변화 3] 17.01.17 441 9 13쪽
96 엽인들 [사명..변화 2] 17.01.16 526 9 14쪽
95 엽인들 [사명..변화 1] 17.01.16 458 12 12쪽
94 엽인들 [사명..무적자] +5 17.01.13 612 12 11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