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흑의 꽃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무서.
작품등록일 :
2012.11.17 23:15
최근연재일 :
2014.08.09 22:52
연재수 :
207 회
조회수 :
362,688
추천수 :
4,774
글자수 :
1,024,746

작성
13.02.02 20:01
조회
1,107
추천
15
글자
12쪽

제 11막. 폭풍전야.

DUMMY







그리고는 말을 잇는다.


“둘 째, 요즈음 내가 개인적인 시간을 갖는 이유는 아까도 말했듯이 공부를 하고 있기 때문이지. 자, 이 책을 봐. 이 책이 어느 나라 말로 되어 있는 지는 당신도 알겠지?”


샤를리즈가 아까 전 자신이 보려고 했던 책을 밀어 에단에게 보여줬다. 에단은 그 책을 잡은 뒤 몇 장을 팔랑이며 넘겼다. 그리고는 눈썹을 까딱인다. 그가 읽을 수 있는 언어가 아니다. 에단은 그 언어가 어디의 언어인지 깨닫는다. 최근 자주 등장하는 나라가 아닌가?


“이건... 루타의 언어로군요.”


“그래. 이제 더 이상 루타는 미지의 세계가 아니지. 그러니 그들에 대해 공부할 필요가 있어. 그들의 언어는 물론이고, 풍습이나... 그들에게도 뭔가를 팔아야 할 테니. 보석 같은 것을 수입만 해왔잖아, 우린! 이제 우리도 뭔가를 본격적으로 팔아야지. 사실 그런 생각도 해봤어. 루타는 신권이 강한 나라이고, 상대적으로 상인이 천대받는 나라여서 상단 같은 것들이 제대로 발달하지 않았다고 하더군. 심지어 성직자들이 우리가 하는 일들을 해서 수익을 얻는 경우도 있다고 하나봐. 그들이 뭘 알겠어? 하지만 우리는 다르지. 이미 크로이츠에서도 성공했는데, 루타인들 성공하지 못하겠어? 더욱 더 큰 부를 얻을 수 있는 기회인데 왜 마다하겠냔 말이지. 조만간 난 루타로 갈 거야.”


뜻밖의 말에 에단은 눈을 깜빡인다. 세상에서 가장 오지 모험과 어울리지 않는 여자가 지금 연고도 없는 세상으로 나아가겠다고 말한 것이다. 그는 스스로 들은 말이 믿기지 않아 되물었다.


“루타로... 직접 말입니까?”


“그래! 내가 어렸을 때, 처음 시작했던 것처럼. 아니지. 이건 그것보다 더 바닥이지. 내가 처음 시작했을 때 빈트뮐러는 이미 상단이었으니... 하지만 루타에서는 완전히 바닥부터 시작하는 거야. 물론, 자금은 엄청 많지만. 거기서 새로 시작하는 거야. 모든 걸!”


“무슨 말을 하는 지 잘 모르겠군요. 아니, 당신이 말하는 건 이해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이해가 안 되는 것은...”


에단이 입을 다문다. 뭔가 적절한 단어가 떠오르지 않았을 때 나오는 그의 버릇이었다. 이럴 땐 재촉하는 것보다 기다려주는 것이 더 나은 선택임을 아는 그녀였기에 그녀는 다시 차를 마셨다. 에단이 말을 다시 꺼낸 것은 샤를리즈가 차를 다 마시고, 다시 찻잔을 채울 때 쯤이었다.


“왜 갑자기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느냐는 거죠.”


“이해가 안 되는 것이?”


“예.”


“좀 더 자세히 말해줘.”


“바켄바우어를 삼켰을 때까지만 해도 당신은 이 상단이 꽤 안정적인 궤도에 올랐다고 생각했고, 스스로도 안정적인 삶을 살게 되었다고 만족하고 있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거의 알려진 바가 없는 루타라는 나라에서 바닥부터 처음 시작한다는 것은 일종의 모험 아닙니까? 안정적인 삶을 살고, 그걸 그토록 바랐던 당신이 왜 갑자기 모험을 하고 싶다고 생각했는지, 그게 이해가 안 된다는 거죠.”


“호오?”


샤를리즈가 진심으로 놀랐다는 듯 눈을 깜빡인다. 그리고는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방금 당신, 엄청 ‘란 같은’ 소리를 했어.”


마치 하나의 형용사처럼 란 같다고 말하자 에단은 눈썹을 까딱인다.


“그게 무슨 뜻입니까?”


“생각지도 못한 타이밍에서 허를 찌르는 거. 그 사람의 특기거든. 뭐, 당신은 우연히 맞춘 것 같지만.”


약을 올리듯, 샤를리즈가 말했다. 그러나 그녀의 의도 따위는 이미 눈치 챘다는 듯 에단이 턱을 치켜 올리며 제법 시건방지게 말했다.


“제가 울컥해서 뭐라 말하고... 그렇게 해서 말을 돌릴 작정이면 관두시죠.”


“흐음.”


샤를리즈는 눈썹을 까딱였다. 그리고는 빠르게 말했다.


“그에 대해서는 말하고 싶지 않아. 무덤 속까지 간직하고 가야 할 비밀에 관한 이야기니까. 내가 당신을 믿지 못해서가 아니라, 이 비밀은 알고 있는 것만으로도 위험해서 그런 거야. 그래서 실수로라도 이 비밀이 당신이나 에드리안의 귀에 들어가는 일이 없어야 하고... 그래서 이에 관해서는 더 이상 말하고 싶지 않아. 한 가지 말해주고 싶은 건, 내가 당분간은 이 나라를 떠나고 싶은 일이 있었다는 거지.”


“그렇군요.”


“별로 캐묻지는 않네?”


“캐물어도 말해줄 당신도 아니고. 말을 빙빙 돌려서 당신 스스로 말하게 할 만큼 머리가 좋지도 않죠, 나는. 란 크로프츠라면 모를까?”


“그였어도 불가능할걸?”


샤를리즈가 자신 있다는 듯 어깨를 으쓱인다. 그리고는 찻잔 바닥의 둥근 부분을 매만지며 말했다.


“그리고 마지막은... 그러니까 내가 왜 요즈음 에드리안에 대해 신경을 끄고 있느냐 하면...”


샤를리즈의 얼굴에 순간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아마도 그녀가 고개를 살짝 숙였기 때문이리라. 그럼에도 에단은 왠지 그 모습이 마치 샤를리즈의 심경을 반영한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생각해보면 요즈음 샤를리즈는 에드리안에 대한 이야기를 거의 하지 않고 있었다.


거기다가 정기적으로 왕궁의 이야기를 주시하고 있었는데 그도 이제는 덜해진 것 같았고. 최근 부쩍 루타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해서 그런가보다 했는데 그것이 아니었다. 언제부터 이렇게 에드리안의 이야기에 시큰둥해졌을까, 기억을 되짚어보니 다리를 다친 그 날쯤이었다.


그 날의 이야기를 꺼낼라 치면 무서울 정도로 화제를 돌려버리거나 입을 다물어버리는 그녀였고, 에단이 따로 둔 정보통도 별다른 점을 찾지 못했기 때문에 그 또한 신경을 꺼야겠다고 생각했었는데, 조금 더 신경을 써야 했던 건가 싶다.


하지만 그의 정보력으로는 더 이상 뭔갈 알아내기는 힘들고, 마담 페트리시아의 힘을 빌리자니 그녀가 공작의 저택에서 일어난 일을 알 리는 없다. 결론은 에드리안을 통해 알아보는 수밖에 없다는 건데...


“내가 언제까지 그 애의 옆에 있겠어?”


혼자 생각에 잠겨 있었던 탓에 샤를리즈의 말을 곧장 알아듣지 못했다. 그래서 그는 무슨 말을 하냐는 듯 인상을 찌푸렸고, 그에 샤를리즈는 씁쓸하게 웃으며 말했다.


“앞으로 나는 루타에도 가야 할 테고, 또 다른 나라로 가볼 생각도 있고. 어쩌면 마음에 드는 나라에 정착할 수도 있겠지. 반대로 에드리안은 공작이 될 거고, 아마 그라니우스에 머무는 시간이 가장 많아질 거야. 그 다음으로는 기껏해야 이곳, 수도겠지. 점점 가면 갈수록 그 애와 나는 만날 수 있는 시간이 적어질 거야. 그러니까 정을 떼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해. 언제까지 내가 그 애의 뒤를 봐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공작인 동생 덕 보고 싶은 마음은 죽어도 없으니.”


“그 말, 아주 이상하군요.”


“뭐가?”


“불과 몇 달 전만 하더라도 당신은 집착에 가까울 정도로 동생을 아꼈어요, 그런데 이제는 정을 뗄 때란 말입니까? 말이 안 맞지 않습니까? 작위를 이어받을 가능성이 높아졌기 때문이라고는 말하지 마시죠. 올 초에 그건 이미 확정된 것이었고, 사실상 그 전부터 이미 정해진 것이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갑자기 이렇게 태도를 바꾸는 이유가 뭐냐는 겁니다.”


그 말에 샤를리즈는 눈을 깜빡였다. 이번엔 제대로 허를 찌른 모양이었다. 에단은 그녀를 노려보다시피 바라보았다. 그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무언가로부터 피하는 건 좋습니다. 그런데 에드리안 군의 입장도 생각해주셔야죠.”


에드리안의 입장을 생각하라는 그 말에 샤를리즈의 눈빛이 매섭게 변했다.


“그게 무슨 말이야? 여기서 그 애의 입장이 왜 나오지?”


“갑자기 태도를 바꿨는데 어느 누가 이상하게 안 여기겠습니까? 특히나 당신을 그토록 따르는데. 갑자기...”


“언젠간 해야 할 일이었어! 조금 늦어졌을 뿐이야. 갑자기가 아니라고.”


“아뇨. 당신도 지금 알고 있지 않습니까? 당신 태도가 이상해졌다는 것을 말입니다. 그러니까 지금 이렇게 제게 신경질을 내고 있는 거죠.”


“당신이 한 가지 간과하고 있는 게 있어. 당신의 입장에서는 갑자기일 수도 있어. 당신 말이 맞아.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난 그 애에게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지. 그런데 이제 그 관심의 방향이 달라졌을 뿐이야. 에드리안에서 루타로!”


“루타가 그렇게 매력적인 시장은 아니지 않습니까? 게다가 상단을 단순히 수단으로밖에 생각하지 않았던 당신이 이제는 동생보다 상단을 더 우선시하고 있군요.”


“그런 건 언제든지 바뀔 수 있는 거야!”


샤를리즈가 짜증스럽게 소리쳤다. 에단은 그제야 입을 다물고 팔짱을 낀 채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그녀 스스로도 자신의 태도가 이상해졌음을 알고 있었고, 이유는 밝히려 하지 않는다. 제 3자 중에서는 샤를리즈와 가장 많은 비밀을 나눈 그이다.


그럼에도 이렇게, 이성보다 감정을 우선시하면서 까지 감추고 싶어 하는 비밀이 있다는 건 조금 섭섭했다. 마치 까마득하게 어린 동생의 사춘기를 겪는 기분이랄까? 문제는 이것이 그녀의 인생을 바꿀 정도로 큰 비밀이라는 것이다.


지금만 봐도 그렇지 않은가? 동생의 안위가 우선이었던 그녀의 삶이 서서히 바뀌고 있다. 물론, 그녀가 동생을 위한 삶에서 벗어나길 바랐던 그이다. 그러나 이런 식은 아니었다. 에단은 한숨을 내쉰다. 지금은 일단 물러서야 할 때이다.


“알겠습니다.”


“그래.”


“전 이만 가보죠.”


“그러든가.”


단단히 기분이 나빠진 모양이다. 하긴, 오늘은 유난히 샤를리즈가 감추고 싶어 하는 무언가에 대해 물고 늘어졌으니. 그는 샤를리즈의 방에서 나와 복도를 걸어갔다. 그리고는 그에게 반갑다는 듯 인사하는 간부를 붙잡았다.


“지금 어디 가는 길입니까?”


“아, 로버트 씨에게 승인 받아야 할 것이 있어서 그리로 가는 길입니다만. 에단 씨, 무슨 일 있습니까? 표정이 영...”


“잘됐군요. 안 그래도 로버트 씨에게 약속을 좀 취소해야 할 것 같다고 말하려던 차였는데. 일이 생겼는데, 그걸 지금 급하게 처리해야 해서 말입니다. 그런데 이게 총수께서 기밀사항이라 하신지라... 그런데 아시다시피 제가 말주변이 영 좋지 않아서 변명을 못 댈 것 같은데, 좀 전해주실 수 있습니까?”


“흠. 그냥 그렇게 말씀하셔도 될 것 같은데 왜...”


간부가 의아해 하며 묻자 에단은 제법 단호한 표정을 지었다. 안된다는 뜻을 간접적으로 표현한 것이었다. 당연히 그럴 수 없다. 로버트는 총수의 정체를 아는 사람이다.


그러니 저 소리를 들었다간 샤를리즈에게 직접 가서 무슨 일이냐고 물을 테고, 방금까지 언쟁을 벌였으니 샤를리즈는 에단이 이제 어딜 갈 것인지 충분히 예상할 테니 말이다. 그는 스스로 말주변이 없음을 한탄했다. 그리고는 제법 애절하게 말한다.


“부탁드립니다.”


“그렇게 말씀하신다면야... 알겠습니다. 이유는 그냥 모르겠다고 할 테니 변명은 생각해두시는 게 좋을 겁니다.”


“뭐, 변명을 준비할 시간이 생겼으니 그나마 다행이라고 해두죠. 그럼.”


그가 고맙다는 듯 고개를 꾸벅인다. 그리고는 빠르게 복도를 걸어 나와 상단을 빠져나온다. 스스로가 생각해도 어이없는 말들이었다. 오늘은 사실 로버트와 술 약속이 있는 날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우선 에드리안을 찾아가는 것이 일이다.


아무래도 위험을 무릅쓰고서라도 공작의 저택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아내야 할 것 같았다. 이것은 그라니언 가문의 일이었다. 그러니 로버트에게 사실대로 말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라니언 가문의 일을 아는 것은 에드리안과 샤를리즈, 그리고 자신이면 충분하다.


그는 마구간으로 갔다. 에드리안은 지금 궁에 있을 것이다. 스웨어 가문의 아가씨와는 저녁에 만나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니 곧 궁에서 나올 시간이다. 훈장을 받은 후로 궁에 있는 귀족에게 전갈을 직접 보낼 수 있는 입장은 된 그이다. 그러니 일단은 궁에 가야 할 것이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6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칠흑의 꽃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147 제 12막. 잊혀진 왕가의 이야기. +3 13.06.08 1,139 19 13쪽
146 제 12막. 잊혀진 왕가의 이야기. +5 13.06.01 1,166 18 12쪽
145 제 12막. 잊혀진 왕가의 이야기. +3 13.05.25 1,281 17 11쪽
144 제 12막. 잊혀진 왕가의 이야기. +4 13.05.18 1,232 18 16쪽
143 제 12막. 잊혀진 왕가의 이야기. +2 13.05.11 1,286 15 13쪽
142 제 12막. 잊혀진 왕가의 이야기. +4 13.05.04 1,364 19 12쪽
141 제 12막. 잊혀진 왕가의 이야기. +3 13.04.27 1,372 15 11쪽
140 제 12막. 잊혀진 왕가의 이야기. +5 13.04.21 1,213 16 13쪽
139 제 12막. 잊혀진 왕가의 이야기. +5 13.04.21 1,528 20 11쪽
138 제 11막. 폭풍전야. +5 13.04.13 1,631 19 9쪽
137 제 11막. 폭풍전야. +7 13.04.06 1,378 19 11쪽
136 제 11막. 폭풍전야. +7 13.03.30 1,362 16 11쪽
135 제 11막. 폭풍전야. +7 13.03.23 1,257 19 10쪽
134 제 11막. 폭풍전야. +5 13.03.16 1,141 18 10쪽
133 제 11막. 폭풍전야. +6 13.03.09 1,642 16 10쪽
132 제 11막. 폭풍전야. +6 13.03.03 1,303 15 11쪽
131 제 11막. 폭풍전야. +6 13.02.23 1,485 14 10쪽
130 제 11막. 폭풍전야. +5 13.02.16 1,466 12 11쪽
129 제 11막. 폭풍전야. +5 13.02.09 1,339 14 11쪽
» 제 11막. 폭풍전야. +6 13.02.02 1,108 15 12쪽
127 제 11막. 폭풍전야. +5 13.01.26 1,172 13 11쪽
126 제 11막. 폭풍전야. +9 13.01.19 1,177 16 10쪽
125 제 11막. 폭풍전야. +8 13.01.12 1,266 13 11쪽
124 [외전]평행선을 걷다. +7 13.01.05 1,490 12 9쪽
123 칠흑의 꽃. 제 10막. 진실을 알아챈 고양이. +5 12.12.28 1,328 14 10쪽
122 칠흑의 꽃. 제 10막. 진실을 알아챈 고양이. +7 12.12.23 1,265 15 9쪽
121 칠흑의 꽃. 제 10막. 진실을 알아챈 고양이. +9 12.12.19 1,044 16 9쪽
120 칠흑의 꽃. 제 10막. 진실을 알아챈 고양이. +7 12.11.25 1,188 12 11쪽
119 칠흑의 꽃. 제 10막. 진실을 알아챈 고양이. +6 12.11.22 1,082 15 11쪽
118 칠흑의 꽃. 제 10막. 진실을 알아챈 고양이. +8 12.11.17 1,239 18 11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