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흑의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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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서.
작품등록일 :
2012.11.17 2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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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1.19 1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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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제 11막. 폭풍전야.

DUMMY





크로이츠 왕국의 남부는 그라니언 가문의 영지인 그라니우스가 거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그라니우스 너머로는 바다와 스니케드 왕가가 맞닿아 있었다. 스니케드 국경과 가장 맞닿은 즉, 그라니우스의 가장 변방에 위치한 작을 마을에 딱 봐도 고위 귀족 나리들이나 탈법한 마차가 섰다.


마을 사람 모두 이런 마차는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감히 가까이 다가가지는 못했지만 멀리서 구경을 하느라 바빴다. 마차에는 누가 타고 있을까? 혹시 그 유명한, 이 영지의 주인인 그라니언 공작이 타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도 그럴 것이 호위병들의 때깔도 다른 것이...


이 지역 지방 귀족의 병사들에 비하면 훨씬 좋아보였다. 무엇보다 저렇게 빛이 반드르르하게 나는 갑옷자체가 생소했으니. 그 때 마차 문이 열렸다. 마을의 아이들은 작게 탄성을 질렀고 노인들도 고개를 뻗어 마차의 주인을 보려 했다. 그리고 거기서 나온 건 환한 금발을 가진 아가씨였다!


“이런 변방이라니...!”


아가씨가 마차에서 내리자마자 주변을 둘러보고 한 탄식이었다. 그에 괜히 주눅이 들었다. 잔뜩 힘을 준 머리칼에 새하얀 피부. 이런 마을에서는 절대 볼 수 없을 아름다운 드레스.


누가 봐도 대단한 세력가문의 아가씨였다, 그녀는. 외모에서부터 하는 행동까지 모두 옛날이야기에서나 나오는 아가씨와 꼭 닮아있었으니까. 아가씨는 주변을 둘러보다가 이내 인상을 찌푸리며, 그녀의 옆에 있던 하녀에게 물었다.


“저들은 왜 저렇게 날 구경하고 있는 거지? 불쾌하군.”


“보시다시피 이런 변방에서 아가씨 같은 분을 본 적이나 있겠습니까? 아량을 베푸시지요.”


“구경거리가 된 것 같아서 불쾌하단 말이야. 마치 날 신기한 동물 쳐다보듯이 보고 있어. 여기 있는 사람들은 교양도 없군. 그라니우스에 속해있는 마을 사람들인데도 말이야!”


신경질 섞인 목소리에 마을사람들은 저마다 뭐라 중얼거리고는 조금씩 모습을 감췄다. 저런 아가씨의 눈 밖에 난다는 것이, 이런 마을에 어떤 불행을 가져올 것인지 본능적으로 알아차린 것이다. 사람들이 점차 사라지자 아가씨는 턱을 살짝 치켜들고는 말했다.


“그래도 눈치는 있나보군. 그래서 그 분은 어디계시다고?”


“저기, 언덕에 보이는 저 집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저기까지는 마차로 갈 수 없어서 여기서부터는 걸어가시던가 말을 타셔야 한다고...”


“그게 무슨 소리야! 난 말을 탈 줄 몰라!”


“그러시다면...”


“저기까지 걸어가라고? 난 못해! 저렇게 높은 곳까지 어떻게 가?”


“아이고, 아가씨. 이렇게 짜증내신 걸 각하께서 아시기라도 하면 분명 불호령이 떨어질 것입니다. 얼른 가시지요. 안 그래도 그 분께서는 오늘 내일 하시는데... 제 때 도착하지 못한 것이 알려지면 큰일 납니다.”


“아버지도 아버지야! 어머니도 그렇게 반대했는데 왜 날 이런 곳까지 보낸 거냔 말이야! 애초에 저 집에 사는 사람, 보잘 것 없는 사람이라고 들었는데! 그런 사람의 병문안이라면 앨런 정도가 딱 적당하지 왜 내가 와야 하냐고!”


“프리실라 아가씨! 누가 들을까봐 무섭습니다. 안 그래도 각하께서 따로 사람을 심어두었을 텐데요!”


그 말에 프리실라는 움찔하더니 주변을 둘러본다. 아버지에 대한 좋은 기억은 없는 그녀였지만, 두려웠던 기억은 수도 없이 많았으므로. 프리실라는 어쩔 수 없다는 듯 한숨을 푹 내쉬고는 언덕을 향해 걸어갔다. 그제야 하녀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라니우스의 작은 마녀-큰 마녀는 공작부인이었다.-나 다름없는 이 아가씨를 억누를 수 있는 것은 그의 아버지인 그라니언 공작뿐이었다. 덕분에 이런 하녀들도 그나마 그의 이름을 언급하면서 프리실라를 다룰 수 있는 것이었다.


실제로 공작은 프리실라의 망아지 같은 성격을 염려하여 주변에 사람을 심어두었고, 프리실라가 큰 실수라도 저지르는 날이면 당장 그 날에 불호령이 떨어지곤 했었으니까. 본래는 프리실라의 교육에는 안중에도 없었던 공작이었는데 몇 년 전부터는 유독 이렇게 신경을 쓰는 것이다.


아무래도 이제는 시집을 갈 나이기 되었으니 이런 망아지 같은 성격을 고쳐두어야겠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그래도 공작은 멀리 떨어져서 살았던 도련님, 에드리안의 훈육에는 각별히 신경 썼는지 그 소년의 평판은 하인들 사이에서도 굉장히 좋았다. 그래서일까? 분명 프리실라의 성격은 많이 누그러졌으나 에드리안과의 비교 때문에 여전히 고삐 풀린 망아지 같다는 평이 대부분인 것은.


“이봐!”


“예? 예!”


“여기쯤에서 의원을 만난다고 하지 않았어? 이 자는 왜 이렇게 늦는 거지?”


언덕 중턱쯤에 서서 프리실라가 짜증 섞인 목소리로 묻자 하녀는 몸을 움츠린 뒤 말했다.


“그것이, 오늘은 중요한 분께서 함께 가실 터이니 채비를 단단히 하라 미리 일러둬서 그런 것 같습니다. 이런 작은 마을에 사는 사람들이 무슨 예의를 알겠습니까? 조금만 더 기다려보시지요, 아가씨.”


“좋아. 어차피 나도 다리가 아프니. 그보다 지금 만나러 가는 분의 이름이 알렉시스 드 그라니언이라고?”


“예, 아가씨. 각하께서 젊은 시절에는 알렉시스님과 꽤 친하셨답니다. 어찌된 일인지 아가씨께서 태어나신지 얼마 되지 않아서 쫓겨났다고 들었습니다.”


“그건 나도 알아. 아버지나 어머니에게 물어봤지만 그에 관해서는 대답을 피하시더군. 아버지야 항상 그랬으니까 상관없지만, 어머니도 그렇게 대답을 피했다는 건... 뭔가 안 좋은 일이 있었다는 거겠지. 그런데 그런 사람이 왜 내 이름을 지어줬지?”


“예? 아가씨의 이름을요?”


“그래. 내가 왜 병문안을 가야하냐고 물었더니 아버지께서 그렇게 말씀하셨어. 그래서 어머니에게 물어봤더니 어머니는 또 대답을 회피하시고. 아무튼 내 이름을 지어준 사람이니 죽기 전에는 한 번 보는 게 좋다더군. 뭐, 틀린 말은 아니니까. 하지만 왜 그 사람이 내 이름을 지어줬느냔 말이야.”


프리실라의 물음에 하녀는 눈을 깜빡인다. 확실히 조금 이상하다. 그도 그럴 것이...


“샤를리즈, 그 애의 이름은 아버지께서 지으셨잖아.”


제 생각이 프리실라의 입에서 나오자 하녀는 움찔 놀라고는 주변을 살폈다. 그리고는 떨면서 말한다.


“그거야 아무도 모르지요. 에드리안 도련님이야 각하께서 지으셨다는 말이 있지만 그... 그...”


평소에는 샤를리즈도 아무런 생각 없이 아가씨라고 불렀던 탓에, 프리실라의 앞에서는 어떻게 불러야 할지 망설이던 차에 프리실라가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아버지께서 지은 거지. 할머니의 이름이 샤를리즈이니까. 아버지 외에 누가 감히 그런 이름을 지었겠어? 그 애의 엄마가? 마구간지기였다고 했는데 그런 대담한 짓을 했겠어? 어머니께서 어린 시절에 그 애를 그렇게 괴롭혔던 것도 다 그 이름 때문이라는 거 내가 모를 줄 알아? 뭐, 나는 그 애가 어떻게 되든 관심이 없었지만. 하지만 요즘은 아니란 말이지.”


“예?”


“그 애. 요즘 자주 저택에 드나든다고 하더군. 넬리아에게 들었어. 제 동생을 빌미로. 하긴, 그 애의 입장에서는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저와 같은 핏줄인데 에드리안은 귀족이니. 거기다가 고급 교육도 받았지. 그 애와는 다르게 말이야. 뭐, 글 쓰는 게 굉장히 대단한 일이라고는 하지만 써봐야 얼마나 쓰겠어. 안 그래?”


그 말에 하녀는 고개를 끄덕인다. 그리고는 아까 전부터 묘하게 거슬리던 것이 무엇인지 깨닫는다. 프리실라는 관심 없는 척하지만 샤를리즈에 대해 굉장히 관심이 많았다. 그리고 그것은 질투. 모든 것을 가진 이 아가씨가 왜 가진 것이라고는 공작의 붉은 머리와 녹색 눈밖에 없는 그런 보잘 것 없는 아가씨를 질투하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프리실라는 확실히 그녀를 질투하고 있었다.


“아이고!”


다 죽어가는 목소리에 프리실라도, 하녀도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뒤따르던 병사들이 경계태세를 취한다. 그 목소리의 주인공은 멀리서 달려오는 중년의 사내였다. 촌스럽게 뒤로 넘긴, 숱 없는 머리칼과 유행이 지난 지 몇 년은 되어 보이는 코트를 입은 그 사내의 손에는 꽤 묵직해 보이는 가방이 들려 있었다.


직감적으로 알렉시스 드 그라니언을 돌본다는 의원임을 알 수 있었다. 프리실라는 인상을 팍 찌푸리고는 부채로 제 얼굴을 가렸다. 그리고는 막 달려와 숨을 헐떡이는 사내를 보고 소리쳤다.


“감히 날 기다리게 하다니! 내가 누군지는 분명히 알고 있을 텐데?”


“아이고, 송구합니다. 아가씨. 이렇게 귀한 분을 모시는 것은 처음인지라 잔뜩 멋을 낸다고 이리 늦었습니다요. 이런 변방에 이렇게 높으신 분이 오는 것은 극히 드문 일인지라... 용서하여 주십시오, 아가씨.”


“됐네. 이만 가지.”


“감사합니다, 아가씨.”


의원은 과도하게 고개를 꾸벅였고, 프리실라는 그런 태도가 싫지만은 않은지 흐응, 소리를 냈다. 의원은 앞서 걸어가며 프리실라를 흘끔흘끔 쳐다봤다. 그에 프리실라의 기분은 다시 안 좋아졌는지 인상을 찌푸리며 묻는다.


“뭐지? 사람을 그렇게 쳐다보고. 예의라고는 눈곱만큼도 찾아볼 수 없군.”


“아이고, 아가씨. 그것이 아니라... 역시 피는 못 속인다 싶어서...”


“그게 무슨 말이지?”


“제가 돌보고 있는 분이 아가씨의 친척이라고 들었는데... 아주 꼭 닮으셨습니다요. 친척끼리도 그렇게 닮나 싶어서 놀라서 그렇게 봤습죠. 특히 눈매가 아주 기가 막히게 닮았습니다.”


작가의말

이젠 프리실라의 분량도 서서히 생길 때네요.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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