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흑의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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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서.
작품등록일 :
2012.11.17 2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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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3.23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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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제 11막. 폭풍전야.

DUMMY







그들이 도착한 것은 수도 외곽의 한 주점이었다. 건물과 건물 사이의 골목을 변형해서 만들어 놓은 것처럼, 주점은 다른 건물에 비해 움푹 들어가 있었고, 그래서인지 쉽게 시야에 들어오지 않았다. 거기다 주점 앞에는 한 노인이 낡아빠진 의자에 앉아 있었는데 고개를 숙이고 있었던지라 그가 술에 취해 잠이 든 것인지, 아닌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샤를리즈가 걸어가 입구까지 도달하자 노인은 슬쩍 고개를 들고는 이내 다시 고개를 숙였다. 그를 보고 란은 뭔가 ‘허락을 받았다.’는 느낌을 받았다. 문이 열렸다. 낡아 보이는 겉모양과는 다르게 꽤 고풍스럽게 꾸며져 있는 내부에 란은 놀란다. 그리고 손님은 거의 없었다.


바에는 매우 아름다운, 30대 초반으로 보이는 여인이 있었는데 샤를리즈를 보자 환하게 미소 지으며 입을 열었다. 그녀의 목소리는 꽤 중성적이었는데, 그마저도 매력적이었다.


“어머? 샤를리즈 아가씨.”


“오랜만이네요, 마담.”


“아시다시피 요즈음 장사가 잘 되니까요. 그런데 뒤에 계신 분은 누구시죠?”


“‘친구’에요.”


‘친구’라는 말에 마담이라고 불린 여자가 흥미롭다는 듯 란을 바라본다. 그리고는 빙긋 웃은 뒤 걸어 나왔다.


“아가씨의 친구 분이시라. 그런데 친구 분이 꽤 깨끗한 생활을 하셨나보군요. 저를 모르는 눈치인 것을 보니까요.”


“‘그런 쪽’에는 관심이 없는 사람이에요.”


‘그런 쪽’이 어떤 쪽인 지 알 리 없는 란이었으나 어쩐지 느낌은 왔다. 그도 그럴 것이 저 ‘마담’이 풍기는 분위기는 그가 여태껏 봐왔던 여자들이 풍기는 그것과는 판이하게 달랐기 때문이다.


적어도 사람을 꾀어내는 데는 일가견 있는 여자이다. 란은 그렇게 생각했다. 문제는 이런 여자와 샤를리즈가 어떻게 아는 사이냐는 것이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그런 쪽’과는 거리가 매우 멀어 보이는 그녀가 아닌가? 하지만 그런 란의 생각을 비웃기라도 하듯 샤를리즈는 꽤 상냥한 미소를 지으며 마담에게 물었다.


“그보다 이렇게 손님을 계속 세워둘 건가요?”


“설마요. 따라오세요. 귀한 손님이 오셨으니 가장 좋은 자리로 안내해드리죠.

그런데 아가씨?”


“음?”


“오시는 길에 ‘밤 꾀꼬리’가 우는 소리 들으셨어요?”


뜬금없는 말이었으나, 그 말에 샤를리즈가 잠깐 멈칫했다. 그건 굉장히 짧은 순간이었기 때문에 란이 샤를리즈를 보고 있지 않았더라면 알아차리지 못했을 것이다. 그녀는 언제 그랬냐는 듯 여전히 미소를 지은 채 대답했다.


“아아. 그럼요.”


그에 마담은 고개를 까딱거린 뒤 앞서 걸어간다. 마담이 안내한 곳은 2층의 창가 쪽이었다. 그제야 란은 이 자리가 왜 명당인 지 눈치 챘다. 창가 쪽인 데다가 반대 쪽에는 난간이 있어 1층이 훤히 보였다. 특히 입구 쪽이 말이다.


누가 들어오건 빨리 눈치 채고 자리를 피할 수 있는 자리. 그제야 란은 이곳이 모종의 뒷거래가 오가는 장소일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고개를 돌리는데 샤를리즈가 그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는 웃으며 말했다.


“감이 좋으시네요.”


란이 그녀를 빤히 바라본다. 그에 샤를리즈는 어깨를 으쓱인 뒤 말했다.


“왜 이 자리가 명당인지 알아 차렸잖아요, 방금. 보통 사람들은 이런 곳에 오면, 주변을 슥 둘러보고는 메뉴를 보거나, 혹은 마담이 나가는 걸 보거든요.”


“마담...”


“음? 아아, 아름다우시죠?”


“당신이 ‘그런 사람’들과 친할 줄은 몰랐는데요.”


샤를리즈는 무슨 말인지 이해를 못했다는 듯 눈을 깜빡이다가 이내 웃음을 터뜨렸다. 란이 왜 웃느냐는 듯 바라보자 샤를리즈가 겨우 웃음을 멈췄다. 샤를리즈가 웃었던 이유는 간단했다. ‘그런 사람’이라는 표현 때문이었다.


그 말에서만 봐도 그가 얼마나 홍등가의 여인들을 경멸하는 지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동시에 요즈음 수도에 사는 아가씨들을 얼마나 싫어할 지도. 평민들이야 귀족들의 생활이 화려하고, 아름다울 것이라 생각하지만, 실상은 다르다. 조금 더 높은 지위를 얻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진흙탕 같은 곳이 바로 귀족들의 세계. 어쩌면 홍등가와 가장 가까운 세계일 수도 있는, 그런 곳이다.


아주 일부를 제외하곤 말이다. 적어도 수도 밖에서, 제 영지에서 살고 있는 아가씨들은 그렇지 않지만 말이다. 그래서 꽤 약은 귀족 청년들은 연애는 수도의 아가씨들과 혼인은 시골의 아가씨들과 한다는 말이 나오는 것이다.


“미안해요. 난 마담을 아주 오래전부터 알았거든요. 그래서 그녀를, 그러니까... 당신이 생각하는 ‘그런 사람들’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있었어요. 저도 그 쪽 사람들과는 친하지 않아요. 마담과 친한 이유는 마담이 빈트뮐러 상단의 간부이기도 하기 때문이죠.”


“그녀가요?”


“의외죠? 저래 봬도 마담이 ‘그 쪽 세계’에서는 아주 유명한 분이에요. 당신도 이름은 알 거예요. 마담 페트리시아. 홍등가의 여왕이죠. 그 쪽 세계의 소문들 중 그녀를 통하지 않는 소문은 없다고들 하죠.”


샤를리즈의 것보다는 조금 어두운, 적갈색 머리칼을 가진 그 여자는 빈트뮐러 상단의 상당한 지분을 차지하고 있는 여자였다. 겉으로는 로버트 케일리가 빈트뮐러 상단의 2인자라 할 정도로 수완이 좋았지만, 간부들 모두 로버트 케일리만큼이나 혹은 이상으로 뛰어난 능력을 가졌다고 꼽는 것이 바로 마담 페트리시아였다.


그녀가 조금이라도 상단에 더 깊게 개입하고 싶어 했더라면 아마 부총수 자리는 그녀의 차지가 되었을 것이다. 그 점을 누구보다도 잘 아는 로버트 케일리였기 때문에 그는 상당히 그녀를 경계하고 동시에 동경하고 있었다. 그리고 몰래 짝사랑하고도 있지만.


“마담 페트리시아... 아아, 그런 이름을 들어본 적은 있는 것 같군요.”


“그렇겠죠. 좀 논다 하는 청년들 중에 그녀를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테니. 란 씨의 친구들 가운데도 그런 사람이 한 명쯤은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아마도 그건 프랜시스 드 블라레트일 것이라고 샤를리즈는 생각했다. 홍등가에서 전해지는 소문 가운데 그에 대한 소문도 몇 가지 있었으니 말이다. 가문에 대한 자긍심이 강한, 전형적인 귀족 청년. 능력은 꽤 좋은 편이지만 고지식한 면이 항상 발목을 잡는 편이라고 들었다. 그리고 그는 란의 벗이기도 했다.


“뭐, 그렇죠. 그런데 그렇게 대단한 사람이 왜 이런 곳에 있는 겁니까?”


“마담의 취미에요. 그리고 그녀가 이 주점의 주인이기 때문에 보통 사람들은 근처에 얼씬도 못하죠. 자격이 있는 사람들만 들어올 수 있는 곳이라 이런 날에도 조용하죠.”


“그리고 당신은 그 자격이 있고요?”


“그녀가 빈트뮐러의 간부라니까요. 빈트뮐러 상단이 관할하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갈 수 있어요, 나는. 당신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내 능력이 뛰어나거든요.”


실제로는 상단의 주인이지만. 샤를리즈가 뭐라 말을 하려다가 술과 음식을 가져온 이들 때문에 입을 닫았다. 그들이 빠져 나가자 샤를리즈가 말했다.


“그러고 보니 당신과 이런 곳에 온 건 처음이네요.”


“그렇군요. 그러고 보면 우린 항상 고상한 곳만 다녔었죠. 솔직히 말하면, 이런 곳 자체가 처음이에요, 나는.”


“어머?”


샤를리즈가 놀랐다는 듯 입을 가렸다.


“그건 좀 그렇군요. 나도 이런 곳은 와봤다고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당신은 훨씬 더 재미없는 삶을 살았나보군요.”


그 말이 마치 정곡이라도 찌른 것처럼 란이 눈을 크게 떴고, 이내 힘없이 고개를 떨어뜨리며 웃었다.


“그럴 지도 모르죠.”


“그리고 오늘은 그 재미없던 삶에 뭔가 큰 일이 있었고요.”


란의 시선에 샤를리즈는 그를 모른 채 하며 술을 한 모금 들이켰다. 샤를리즈가 상단에서가 아닌, 밖에서 술을 마실 때에는 항상 마담 페트리시아가 운영하는 주점을 들렀고, 그렇기 때문에 마담 페트리시아는 그녀의 취향을 누구보다도 잘 아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잘 안다. 지금 그녀가 마시고 있는 술은 꽤 독한 편이고, 그래서 조심해야 한다는 것을 말이다. 그 사실을 란이 알 리 없었다. 그래서일까? 란은 갑자기 술을 벌컥벌컥 들이마셨다. 샤를리즈가 말리려던 찰나 란이 인상을 팍 찌푸리고는 말했다.


“이거... 엄청...”


“독하죠. 엄청까지는 아니지만. 괜찮아요?”


“뭐, 솔직히 말하자면 술도 거의 마신 적이 없어서. 속이 타는 것 같네요.”


“그러게 술도 못 마시는 사람이 왜 그렇게 벌컥벌컥 마셔대요?”


“술이라도 먹어야 얘기가 될 것 같아서.”


그 말에 샤를리즈가 입을 다문다. 다 이야기해줄 것이라고는 기대도 않는다. 분명 그들은 처음 만났을 때보다 친해졌지만, 그렇다고 해서 깊은 비밀을 나눌 사이까지는 아니니까. 둘은 만난 지 1년도 되지 않은 사이였고, 심지어 첫인상은 좋지 않았다. 이 정도까지 친해진 것도 어쩌면 기적이다.


그러니 자세한 내막은 이야기해주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힌트정도는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주어진 몇 조각의 단서만을 가지고 전체의 그림을 그려내는 것은 그녀의 특기이다. 그러니 조금만, 조금만 말해줘도 상관없다. 샤를리즈의 녹색 눈동자가 빛을 발했다. 그러나 그것을 주점의 어두운 조명이 가려주었고, 그 때문에 란은 그를 눈치 채지 못한 채 천천히 입을 열었다.


“당신은 당신이 믿었던 모든 것이 완전히 무너지는, 그런 걸 경험해본 적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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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4 [외전]평행선을 걷다. +7 13.01.05 1,489 12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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