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흑의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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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서.
작품등록일 :
2012.11.17 2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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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5.19 0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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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흑의 꽃-[프롤로그]99와 1의 대면

DUMMY

소녀는 자신의 생일선물이랍시고 배달된 검은 브로치를 바라보았다. 고작 해봐야 9살은 되었을 소녀에게는 지나치게 어른스러운 장식품이었으나, 소녀는 그런 것에 개의치 않는 듯 했다. 금방이라도 타오를 것만 같은 붉은 머리칼을 가진 그 소녀는 순수하게 놀라고 있었다. 난생 처음 받아본 생일선물. 왕국 내에서는 귀하디귀한 흑요석으로 세공된 검은 꽃이었으나, 그 브로치의 가치를 알아채기에는 소녀는 너무 어렸다.


소녀가 사는 곳은 아주 컸다. 얼마나 크냐고 묻는다면 이 왕국에서 2번째로 큰 성에 살고 있다고 답할 수 있을 정도로. 그 큰 성에서 소녀에게 주어진 공간이라고는 마구간과 그 옆의 작은 오두막, 그리고 ‘진짜 성’ 안에 있는 서재. 그 뿐이었다. 서재는 소녀에게 있어서 유일하게 허락된 ‘진짜 성 내의 건물’이었는데 이것은 ‘진짜 아가씨’가 서재에는 통 출입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가능했다.


소녀의 어머니는 소녀가 가장 사랑하는 동생을 낳자마자 ‘진짜 여주인’에게 죽임을 당했다. 소녀의 어머니는 ‘가짜’였고, ‘진짜 여주인’이 낳지 못했던 아들을 낳았기 때문에 죽은 것이었다. 그것은 아주 큰 죄에 해당한다고 했다. ‘가짜’는 결코 ‘진짜’의 대를 이을 아들을 낳아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남자아이는 ‘가짜’가 낳았다 하더라도 ‘진짜’가 될 수 있다. 특히 지금의 ‘진짜 여주인’에게는 아들이 없었으니까 소녀의 동생은 ‘진짜’라고 했다. 그렇기 때문에 소녀의 동생은 ‘진짜 성의 주인’이 될 자격이 있는 것이다.


그 사실을 안 순간, 소녀는 맹세했다. 자신은 비록 ‘가짜’이지만 자신의 동생만큼은 반드시 그 누구에게도 부끄럽지 않을 ‘진짜’로 만들겠다고. ‘진짜 여주인’이 호시탐탐 동생을 해하기 위해 발톱을 들이민다 한다면, 소녀 자신이 동생의 방패가 될 것이다. 그리고 방패가 된 자신이 부서지지 않도록 강해지기로 결심했다. 그것이 소녀가 존재하는 이유라고 소녀는 생각했다. 동생마저 ‘가짜’로 남아버린다면 자신은 영영 자신이 살고 있는 마구간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라고. 그리고 소녀의 자식들은 ‘가짜’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라고.


보통의 ‘가짜 아이’들은 설령 그러한 자신의 운명을 알더라도 그 운명에 수긍하고 산다고 했다. 하지만 소녀는 그럴 수 없었다. 소녀는 지나치게 영리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소녀는 그 날, 최초로 자신의 아버지에게서 받은 생일선물을 들고 ‘진짜 성’의 서재의 문 앞에서 얼쩡거렸다. 그 좋아하는 책들을 읽을 수 있도록 허락받은 소중한 2시간을 문 앞에서 허비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만났다.


“넌 누구니?”


햇살을 녹였다 해도 믿을 수 있을 만큼 환한 금발에 호사스러운 꽃분홍색 드레스. 소녀와 같은 것이라고는 소녀의 아버지에게서 물려받은 그 녹색 눈밖에 없는 ‘진짜 아가씨’. 그 ‘진짜 아가씨’가 한 말에 소녀는 온몸에 힘이 빠져나가는 것을 느꼈다. 저 아가씨는 자신의 존재조차도 몰랐단 말인가? 그 정도로 자신은 하찮은 존재였단 말인가? 그러나 소녀는 결코 겉으로 드러내지 않고 그 질문에 환하게 미소 지었다.


그것은 소녀의 오랜 버릇이었다. 자신의 약함을 감추기 위한 환한 미소.


“샤를리즈라고 합니다, 프리실라 아가씨.”

“샤를리즈? 분명 어디선가 본 얼굴 같은데, 넌 내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온 하객 중 한사람이니?”


공교롭게도 ‘진짜 아가씨’와 소녀는 태어난 날이 같았다. 오히려 소녀가 5시간 정도 빨리 태어났다. 그럼에도 이렇게 다르다. 소녀는 9번째 생일이 되어서야 난생 처음으로 생일선물을 받았다. 생일을 축하해줄 사람이라곤 한 손가락에 꼽을 정도이다. 그러나 ‘진짜 아가씨’는 다르다. ‘진짜 아가씨’의 생일에는 항상 많은 이들이 축하하러 와주었다. 그 많은 이들의 축하를 받는 ‘진짜 아가씨’. 그리고 그 많은 이들이 끌고 온 말들을 목욕시키고 밥을 주고, 배설물을 다 치우고서야 자신의 생일을 만끽할 수 있는 소녀.


그러나 소녀와 ‘진짜 아가씨’는 분명, 자. 매. 였다.


“죄송하게도 그럴 수가 없습니다, 아가씨. 저는 너무나도 미천한 자이기 때문에 아가씨께 생일 축하 선물을 드릴만한 여유가 없으니까요.”


그리고 축하를 해줄 마음도 없었다.

‘진짜 아가씨’는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고는 소녀의 가슴팍에 있는 브로치를 가리켰다.


“생일 축하 선물을 줄 수 없다면, 그 브로치를 줘도 괜찮아.”


그 말에 소녀는 진심으로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아아, ‘진짜 아가씨’는 정말로 소녀가 자신에게 선물을 줄 수 없다는 것을 죄스럽게 느끼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럴 것이다. ‘진짜 아가씨’에게 선물을 주는 사람들은 항상 그녀에게 선물을 준다는 것에 무한한 기쁨을 가지고 있는 듯했으니까. 하지만 그 기쁨이 가짜일 것이라고 생각해본 적은 없는가보다.


‘멍청한 계집애.’


소녀는 그렇게 생각했다. 어떻게 저런 게 ‘진짜’일 수 있을까? 자신보다 고작 5시간정도 늦게 태어난 저 ‘진짜 아가씨’는 ‘가짜’인 소녀 자신조차도 너무나도 쉽게 알 수 있는 것들을 모르고 있었다. 그리고 ‘진짜 아가씨’의 그 순진함을 가장한 멍청함만큼은 소녀는 진심으로 사랑할 수 있었다. 저 멍청함이 없었더라면 자신의 동생은 ‘진짜’가 될 수 없을 테니까. 자신의 동생이 ‘진짜’가 되기 위해서라면, ‘진짜 아가씨’는 너무나도 멍청해서 이 성의 주인이 될 자격이 없는 편이 낫지 않겠는가?


“그럴 수는 없습니다, 아가씨. 이 물건은 저도 오늘 고귀한 분께 선물 받은 것이니까요.”


그 사람을 단 한 번도 고귀하다고 생각해본 적은 없지만,

저 ‘진짜 아가씨’에게 절망을 선물할 수 있다면,

몇 번이고 그 사람을 고귀하다고 칭할 수 있다.


“이 브로치는, 그라니언 공작 각하께서 제 생일을 축하한다 하시어 선물하신 거랍니다.”


순간, ‘진짜 아가씨’의 눈이 파르르 떨렸다는 것을 소녀는 놓치지 않았다. 소녀는 알고 있었다. ‘진짜 아가씨’는 단 한 번도 자신의 부친인 그라니언 공작에게서 선물을 받아본 적이 없다는 것을.


어째서 그라니언 공작이 ‘사생아 따위’인 자신에게 이런 선물을 보내왔는지는 알 수 없었으나, 애당초 그의 의도는 소녀의 관심 밖이었다. 일 년에 한 번 볼까 말까한 자신의 ‘아버지’에게 정이란 것이 있을 리가 없지 않는가? 그저 선물 그 자체가 소녀에게는 중요한 무기가 되어주는 것이다. 바로 저 ‘진짜 아가씨’에게서 자신의 존재를 그 무엇보다도 선명하게 각인시킬 수 있는 무기 말이다.


“너는... 누구야?”


‘진짜 아가씨’의 그 말에서 희미한 분노를 느낌으로써 소녀는 순간, 환하게 미소 지었다. 그 미소는 지독히도 아름다워서 ‘진짜 아가씨’는 자신도 모르게 눈앞의, 브로치를 제외하고는 추레한 차림의 소녀가 정말 예쁘다고 생각했다.


“샤를리즈.”


그 이름을 듣는 순간, ‘진짜 아가씨’는 저 소녀가 어째서 낯이 익은 지 깨닫게 되었다. 소녀는... 자신의 부친을 꼭 닮아 있다는 것을 그제야 깨달았다.


“안녕히 계세요, 프리실라 아가씨. 조만간 가까운 미래에 다시 만나길.”


그것이 그라니언 공작가문의 단 하나밖에 없는 영애, 프리실라와 그라니언 공작의 사생아, 샤를리즈의 첫 대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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