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흑의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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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서.
작품등록일 :
2012.11.17 2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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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
13.01.05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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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쪽

[외전]평행선을 걷다.

DUMMY







갑자기 왕이 바뀌고, 선왕의 비와 아들은 행방불명되었다. 선왕을 따르던 귀족들은 하나 둘씩 축출되기 시작했고, 이제 남은 것은 그라니언 공작 뿐. 선왕의 총애를 받은 자이자, 현왕의 둘도 없는 벗. 그 애매한 위치가 바로 클라우스 드 그라니언의 위치였다.


현왕은 하녀의 자식이었다. 즉, 왕위와는 아무런 관련도 없는 사람. 그랬기 때문에 정치적으로는 거의 백치나 다름없었고 어쩔 수 없이 또 그는 수도로 불려갔다. 그의 딸이 태어났고, 이제 떠날 수 있다 생각했는데 또 발목이 잡힌다.


설상가상으로 뮤리에는 또 다시 아이를 가졌다. 그 아이가 어느 정도 자라고, 그녀의 몸을 추스를 때까지는 또 공작의 성에 있어야 하리라.


슬슬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분명 열심히 달리고 있는데 제자리인 느낌. 물레방아 안에서 뛰면 딱 이런 느낌일 것이다. 차라리 왕이 바뀐 시점에서 바로 몸을 뺐어야 했다. 괜한 정에 휘둘려서 일이 이 지경까지 되지 않았는가?


거기다가 선왕의 아들은 본의 아니게 정을 준 터라 괜히 신경이 쓰인다. 죽었을까? 그래도 제 어미와 함께 '도망'쳤으니 어떻게든 살아남았을 것이다. 선왕과의 의리를 생각하자면 뒤라도 봐주는 것인데. 그런데 그 여자가 생활력이 강했던가? 고위 귀족의 딸로 평생 살다가 왕자의 약혼녀로, 그리고 왕비가 된 여자이다. 생활력이 있을 리가 없다.


그런데도 ‘그녀’를 쫓아냈다, 현왕은. 그 소식을 들었을 때 얼마나 놀랐던지.


노크 소리에 클라우스는 고개를 좌우로 흔든 뒤 들어오라 말한다. 앨런이다. 앨런이 들어오는데, 그의 표정이 묘하게 거슬린다. 그는 고개를 들어 앨런을 바라보며 물었다.


“무슨 일이지?”


“그라니우스에서 전갈이 왔습니다, 각하.”


“그라니우스에서? 이 시점에서 무슨?”


“뮤리에가 아들을 낳았답니다.”


그에 클라우스는 눈을 깜빡이다가 벌떡 일어난다. 일이 너무 바빠 아이가 나올 때가 된 것도 잊고 있었다. 그는 어린아이같이 활짝 웃으며 소리쳤다.


“에드리안! 세상에. 안 그래도 딸이면 어떤 이름을 지어야 하나 고민하고 있었는데. 샤를리즈 이상으로 좋은 이름은 없으니까. 다행이군. 에드리안이라서 다행이야!”


클라우스는 두리번거리다가 외투를 입었다. 기다릴 수 없다. 보아하니 그 애가 태어났다는 소식만 가져온 모양이다. 어떻게 생겼을까? 샤를리즈는 그의 머리칼과 녹색 눈을 이어받았다. 그렇다면 에드리안은?


그 애는 갈색 머리칼을 받았을까? 혹은 자신의 얼굴을 이어 받았을까? 성격은 자신 같은 괴짜가 아닌 제 어미의 성격을 닮았으면 좋겠는데. 그는 기쁨이 가득한 얼굴로 앨런을 바라보며 말했다.


“지금 당장 그라니우스로 가야겠어. 폐하께는 그라니우스 령에 무슨 일이 생겼다고 적당히 둘러대게. 안 그래도 폐하께선 워낙 날 혹사시켰으니 이해해주시겠지. 지금 당장... 아니지. 선물을 사가야지. 너무 오래 떨어져 있었으니... 뭘 사가면 좋을까? 꽃은 가는 도중에 시들 테고.... 보석 같은 건 부담스러워서 받지도 않을 텐데.”


“각하.”


“음?”


“저...”


“뭔가? 아직도 할 말이 남은 건가? 뜸들이지 말고 말하게. 오늘은 어떤 소식이 있어도 괜찮으니.”


“뮤리에가 죽었습니다.”


그 말에 클라우스는 그대로 얼어붙었다. 그리고는 앨런을 바라본다. 믿기지 않은 소식에 거짓말이라고 몰아붙이려고 했으나, 앨런의 침통한 표정에 그마저도 하지 못한다. 저건 사실이다.






* * *






“각하.”


앨런의 부름에 클라우스는 무표정한 얼굴로 고개를 돌린다. 앨런은 침통한 표정으로 말을 잇는다.


“그라니우스를 너무 오래 비우셨습니다. 이젠 돌아가셔야 할 때 아닙니까? 수도도 안정해졌고...”


그 말에 클라우스는 고개를 돌려 창문을 바라보았다. 그러고 보면 태어났다는 그의 아들조차 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그 소식을 듣고 나서는 그라니우스로 간 적이 없었으니까. 그 애는 올해 몇 살이었더라? 클라우스는 앨런에게 물었다.


“내가 그라니우스를 비운 지 얼마나 되었지?”


“5년 되었습니다.”


그럼 그의 아들은 4살 정도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의 딸은 8살인가? 그리고... 4년이나 지난 것이다. 그의 꿈이 박살나버린 것은. 그는 어떤 감정도 담기지 않은 표정으로 앨런을 바라보며 물었다.


“내가 그곳에 가면, 그 여자를 그대로 둘 수 있을까? 난 아직도 그 여자를 죽일 것 같은데.”


“각하.”


“자네가 말했지. 그 여자는 스니케드의 공주이기 때문에 함부로 죽였다간 외교적으로... 아니지. 이런 말은 다 집어 치워두고. 아무튼 그 여자를 죽이면 안 된다고 말하지 않았나? 그런데 지금 그라니우스로 가라고?”


“각하!”


앨런이 소리치자 클라우스는 눈을 깜빡이다가 흥미가 있다는 듯 의자에 기대 그를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묻는다.


“내가 그라니우스를 왜 가야하는지, 날 설득해보게.”


클라우스의 말에 앨런은 난색을 표하다가 이내 결심했다는 듯 말했다.


“각하의 말씀대로, 그라니언 가문을 위해 그리고 이 나라를 위해 저는 각하께서 그라니우스를 오래 비운 것에 대해 비난하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이제는 돌아가셔야 합니다. 가문을 위해서도, 나라를 위해서도 아닌 각하 스스로를 위해서 말입니다.”


“나를 위해서라.”


“예. 각하께서는 뮤리에를 잃을 슬픔으로 아주 큰 것을 간과하고 계시지요. 부인께서는 질투심에 뮤리에마저 죽음에 이르게 했습니다. 그리고 각하께서 그라니우스를 비운 지금, 그 화살이 어디로 갔을 것이라 생각하십니까?”


무슨 말이냐는 듯 멍하게 앨런을 바라보던 클라우스의 눈에 점차 빛이 돌기 시작했다. 이것은 일종의 극약처방이었다. 앨런은 그라니언 가문의 안전을 최우선시로 여겼다. 그 때문에 클라우스가 뮤리에의 죽음으로 방황하는 것을 묵인하고 있었다.


그를 그라니우스로 데리고 갔다간 정말로 공작부인이 그의 손에 죽을 것이고, 이는 큰 파장을 몰고 올 것이었기 때문에.


그래서 사실은... 사실은 관심이 없었다. 어미가 죽고 남은 사생아 따위는. 에드리안이야 그라니언 가문을 이어받을 아들이었기 때문에 그의 충복에게 일러 어느 정도 선에서는 지키라고는 했지만 샤를리즈... 그 애는 딸이었다. 클라우스가 그라니우스로 돌아가지 않는 동안 공작부인에게는 화풀이를 할 대상이 필요했다.


그 어린 것에게는 미안하지만... 대의를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어쩔 수 없는 일...


“그라니우스로 가지. 지금 당장.”


클라우스가 자리에서 일어나 외투를 입었다. 그에 앨런은 눈을 감았다. 모든 일이 대의를 위해서였다고는 하나, 클라우스에게도 샤를리즈에게도 큰 죄를 지은 그였다. 그리고 이 죄는 죽는 순간까지 갚아야 할 죄이리라.





* * *





클라우스는 저를 졸래졸래 쫓아오는 프리실라를 바라보았다. 깨끗한 피부. 잘 정돈된, 곱슬거리는 머리칼과 좋은 소재의 옷. 저도 모르게 인상을 찌푸리고는 차가운 눈빛으로 프리실라를 노려봤다. 그리고는 말한다.


“귀찮게 하지 말고 네 어미에게나 가라.”


무미건조한 말투에 마치 자신을 경멸하는 듯 한 눈빛에 프리실라는 울먹거리다가 이내 달아나버린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클라우스는 이내 한숨을 내쉰다. 저 애에게는 잘못이 없다. 그럼에도 저 애를 곱게 봐줄 수 없는 것은 그 애의 어미 때문도, 그 애의 아비 때문도 아니다.


자신이 잊고 있었던 샤를리즈와 에드리안의 모습이 저 애와 겹쳤기 때문이다. 성한 구석이 없는 피부. 잔뜩 헝클어진 머리칼과 제 구실이나 제대로 할까 싶은 옷들. 그리고 저를 어머니로 알고 떨어지려 하지 않는 동생. 클라우스는 이를 으득 갈고는 그의 사저로 들어간다. 무슨 낯으로 그들을 보러갔던 것일까? 자신은.


“각하?”


앨런의 부름에 클라우스는 고개를 돌린다. 그리고는 신경질적으로 물었다.


“빈트뮐러 상단 쪽에서는 연락이 왔나?”


“예. 제안을 받아들이겠다고 합니다. 언제든지 수양딸로 맞이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하더군요.”


“그럼 얼른 보내버리게. 여기 있어봐야 좋을 건 하나도 없을 테니.”


클라우스의 말에 앨런은 머뭇거리다가 말했다.


“각하. 샤를리즈 아가씨는 굉장히 영리하십니다.”


“헌데?"


“수양딸로 보낸다고 들으면 분명 각하께서 스스로를 버리셨다고 생각하실 겁니다. 좋은 곳으로 보낸다고는 생각하지 않을 거란 말입니다. 그 정도로... 순수한 분이 아니시니.”


“그리고 그렇게 만든 건 나지.”


클라우스가 원망스러운 눈초리로 앨런을 노려보았다. 그에 앨런은 고개를 숙인다. 앨런이 어떤 의도에서 4년 동안 침묵을 지켰는지 모를 리 없는 클라우스이다. 그럼에도 그를 질책하지 않는 것은, 결국 일을 이렇게 만든 것은 그 스스로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스스로를 설득하듯 말했다.


“그리고 설령 그렇게 생각한다 해도 내가 그 애를 원망할 자격이 있나?”



작가의말

외전 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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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7

  • 작성자
    Lv.51 MAXIM
    작성일
    13.01.05 20:16
    No. 1

    하..ㅠㅠ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21 향란(香蘭)
    작성일
    13.01.05 21:06
    No. 2

    공작은 그렇게 샤를리즈를 수양딸로 보냈습니다. 사랑했기 때문에......
    샤를리즈의 멘붕은 언제 회복될까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8 sa*****
    작성일
    13.01.05 22:36
    No. 3

    너무 슬프네요. 공작도 가엽고. 앨런 .. 악역이었어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82 수훈
    작성일
    13.01.06 01:08
    No. 4

    오랜만에 뵙네요^^
    새해는 잘 맞이 하셨나요?? 우리 리즈.....아마도 머리로는 아버지를 이해하겠지만 가슴으로는 안되겠죠.....ㅠ
    잘 보고 갑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16 유니셀프
    작성일
    13.01.06 10:29
    No. 5

    적어도 이야기가 끝날때까지 평행선이 마주할리는 없을 것 같네요. 만약 마주하게 된다면 그 계기는 에드리안이 될듯...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99 연두초록
    작성일
    13.01.06 15:53
    No. 6

    이런 진실이 있었군요... 엘런은 이를 왜 숨긴건가요? 공작주인을 죽이면 안되어서 그럴까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8 라울리
    작성일
    13.04.15 21:45
    No. 7

    그렇군요 리즈가 생각해왔었던대로 앨런이란 인물이 극악한 인물이군요 어쩐지 앨런이 저도 별로였었다죠...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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