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흑의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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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서.
작품등록일 :
2012.11.17 2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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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2.16 2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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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제 11막. 폭풍전야.

DUMMY





“그렇게 심하게 말할 생각은 아니었는데.”


“뭐, 결론은 그런 거니까. 하지만 그건 당연한 거야. 그녀는 내 부인이 될 거야. 그 때문에 그녀는 많이 노력하고 있어. 내가 검술에만 빠져 있는 기사라는 걸 알고, 연락을 독촉하지도 않고. 내 건강을 염려한다고 몸에 좋은 음식들을 보내오기도 하고. 뭐, 아무튼 좋은 여자야. 어쩌면 나 같은 녀석에게 과분한 여자지. 그러니까 그 정도는 당연히 해줘야지. 예의라고. 게다가 나도 그녀가... 그렇게 싫은 것도 아니고.”


마지막 말을 하는 엘루이즈의 얼굴이 약간 상기되어 있었다. 그를 놓칠 리 없는 에드리안이 신기하다는 듯 빤히 바라보자 엘루이즈는 괜히 찔려 말했다.


“그렇잖아! 누가 날 위해서 그렇게 노력해주겠냐? 아버지는 나만큼이나 검술에 미쳐있고, 어머니는 영지를 운영하느라 바쁘시고. 제인, 그 계집애는 너한테 푹 빠져있느라 내가 제 오빠인지 하인인지도 모르고. 수도에 있는 계집애들은 약아 빠졌고. 적당히 순수하고, 나 잘 챙겨주는데, 싫을 수가 없지.”


“난 아무 말도 안했어.”


“알아!”


“그리고 제인이 내게 빠져있다는 말은, 정정할 필요가 있다고 봐. 아무도 제인에게 상냥하게 대해주지 않으니까 그런 거잖아. 제인은 그저 정이 그리웠을 뿐이고, 그래서 날 많이 따르는 것뿐이야. 그리고 그렇게 말하고 다니면, 나중에 제인의 혼삿길이 막힐 테니 그런 말은 함부로 하지 마.”


“허어?”


에드리안의 말에 엘루이즈는 황당하다는 듯 에드리안을 내려다봤다. 그러자 에드리안은 뭐가 문제냐는 듯 뚱하게 그를 올려다본다. 그에 엘루이즈는 답답하다는 듯 가슴을 쿵쿵 치고는 말했다.


“제인, 그 계집애도 고생이 많겠군.”


“무슨 소리야?”


그에 엘루이즈는 어깨를 으쓱인다. 그리고는 은근슬쩍 에드리안을 떠본다.


“아무것도 아냐. 그리고 제인의 혼삿길은... 네가 걱정할 필요 없어, 아마도. 우리 집이 가난한 것도 아니고. 지참금만 두둑하게 얹어주면 남자들이 줄을 설걸? 게다가 우리 가문은 꽤 명문가라고. 기사들 가운데, 좀 더 출세하고 싶다 하는 녀석들은 나한테 제인에 대해 한 번 이상은 물어봤었어. 무인 쪽에서는 아스피트 가 다음으로 우리 가문인데, 아스피트 가문은 이렇다 할 움직임이 없으니. 그러니까 내 말은, 제인이 기벽을 가지고 있다 해도 신랑감은 많다는 뜻이야.”


“꼭 망아지 팔듯이 얘기하네.”


“사실이니까. 우리는 귀족이잖아?”


“하지만 에녹 경은 그런 식으로 아내를 맞이하려 하지 않았어.”


“그리고 그 끝은 좋지 않았지.”


엘루이즈가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자 에드리안은 인상을 살짝 찌푸리곤 말했다.


“난 네가 제인을 굉장히 아낀다고 생각했어.”


“아껴. 그러니까 수녀원에 보내지 않고, 꽤 괜찮은 녀석을 찾으려 노력하고 있잖아. 아, 혹시나 해서 말하는데, 나는 걔가 별 거지같은 놈과 결혼하게 두진 않을 거야. 적당하게 뒷조사는 할 거라고. 게다가 거지같은 놈과 결혼시키면 우리 가문의 체면도 말이 아닌지라. 여자에게 폭력을 휘두르거나, 이상한 성벽이 없는 녀석을 중점적으로 찾다보면 한 녀석은 안 걸리겠어? 물론, 기벽을 가진 여동생과 결혼해주는 대가로 꽤 많은 대가를 지불해야겠지만 말이야.”


에드리안의 표정이 더욱 심각해졌다. 그에 엘루이즈는 에드리안의 반대쪽으로 고개를 돌린다. 그리고는 웃음을 꾹 참는다.


“난 내 누이의 남편 될 사람을 그런 식으로 고르진 않을 거야.”


“그렇겠지. 프리실라 양은 선택의 폭이 아주 넓으니까.”


그 말에 에드리안은 입을 꾹 다문다. 프리실라를 말하는 것이 아니었지만,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지금 엘루이즈의 말에 에드리안은 굉장히 불쾌해졌다. 그래서 저도 모르게 언성을 높였다.


“내 말은...!”


“농담이었어.”


“뭐?”


에드리안이 눈을 깜빡인다. 그러자 엘루이즈는 한숨을 내쉬며 마치 겁이라도 먹었다는 듯 말했다.


“방금 말, 농담이었다고. 그러니까 그렇게 험상궂게 노려보지 마라. 조금만 있으면 날 아주 한 대 치겠다.”


“그런 말로 농담하지 마.”


“알았어.”


“그건 아주 안 좋은 거라고. 마치 제인을 어떻게 치워야 할지 모르는 골칫덩어리로 생각하는 것 같잖아. 그건 아주 나쁜 거야. 제인이 상처받을 거라고.”


“그 계집애가 그런 걸로 상처받을 것 같진...”


“엘루이즈!”


에드리안이 마치 으르렁거리듯 소리치자 엘루이즈는 괜히 입을 뻥긋거리다 무안해져 머리를 긁적거린다. 떠본다고 한 것이 진짜로 에드리안을 화나게 만들었다. 뭐라 말할까 하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인다. 이럴 땐 꼼수를 쓰는 것보다는 정공법이 낫다.


“미안.”


“....”


“하지만 정말로 내가 제인을 그렇게 생각하는 건 아냐. 그냥 멋쩍어서 그러는 거지.”


“그렇다고 믿을게.”


“진짜야.”


“알았어.”


“진짜라고.”


“알았다니까.”


에드리안이 짜증 섞인 목소리로 말하자 엘루이즈는 뭐라 하려다가 이내 입을 다문다. 단단히 화가 난 것 같아 괜히 했나 싶어 머리를 긁적이는데 멀리서 낯익은 목소리가 들린다. 제 아버지의 목소리다. 순간 싸한 기분이 들었다. 그러고 보니 에드리안을 찾던 시동이 에단이 왔다는 얘기를 했을 때 제 아버지도 함께 있었었다. 엘루이즈는 몸이 급속도로 차가워짐을 느꼈다. 그리고는 인상을 팍 찌푸리고는 소리쳤다.


“이런 젠장!”


“뭐?”


“아버지. 아버지! 야, 빨리 와!”


엘루이즈가 갑작스럽게 달리자 에드리안 또한 멋도 모르고 달려간다. 불길한 예감은 맞았다. 엘루이즈의 아버지, 알베리크 드 스웨어가 에단의 앞에 서서 그를 노려보고 있었던 것이다. 엘루이즈의 얼굴은 순식간에 경악으로 물들었고, 뒤따라 달려온 에드리안의 표정도 하얗게 질렸다. 그들의 등장에 알베리크 드 스웨어는 그들을 바라보다가 이내 에드리안을 보고는 입을 열었다.


“반갑군, 작은 그라니언. 자네가 내 딸의 말벗이 되어 주고 난 후부터 그 애가 조금씩 마음을 열고 있다고 들었어. 그 점에 대해서는 고맙게 생각하네. 언젠가 내 부인이 수도로 오거든 함께 식사나 하지.”


처음 만났을 때, 무시무시한 기개로 에드리안의 멱살을 잡았던 것과는 달리 지금은 꽤 따스한 목소리로 식사를 하자고 청하자 에드리안은 눈을 깜빡이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인다.


“예? 예. 여, 영광입니다. 그런데 스웨어 경께서 어찌 에단 씨 앞에...”


“아아, 그러고 보니 작은 그라니언의 기사로 참석했었지, 이 자는. 나는 그저 위티시 훈장의 주인이 어떻게 생겨 먹었는지 궁금해서 그러네. 내 그 때 멀리 있어서 가까이 보지 못했었거든. 하지만 이 자의 검술은 멀리서도 봤지.”


그렇게 말하는 알베리크의 눈빛이 무시무시하게 빛나고 있었다.


“아, 그러셨군요. 아차, 에단! 이쪽은...”


“작은 스웨어 경의 아버님 되시겠죠. 그 정도 눈썰미는 있습니다, 도련님.”


도련님이라는 말에 에드리안은 괜히 소름이 돋는다. 뭔가 그 목소리는 분명 차분했음에도 에드리안은 그 속의 짜증을 읽을 수 있었다. 하긴, 그 엘루이즈의 아버지이다. 절대 친절하게 그를 대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래도 아주 옛날에 비하자면 많이 나아졌다.


옛날의 에단이었다면 분명히 기사고 뭐고 간에 주먹부터 날렸을 테니. 그런 것을 알 리 없는 엘루이즈는 에단이 꽤 신사적으로 대처하고 있음을 감사하게 여기며 자신의 아버지에게 소리쳤다.


“아버지! 여기까지 납셔서 지금 뭐하고... 아니지. 안 봐도 뻔하지! 기사단에 왜 안 들어오냐며 닦달하고 있었겠죠!”


“네 녀석도 눈치가 좀 있구나.”


알베리크가 놀랐다는 듯 눈을 동그랗게 뜨고 엘루이즈를 쳐다보자 엘루이즈는 인상을 구기고는 마치 3살짜리 어린아이를 어르듯 말했다.


“저하께서 그에 대해서 충분히 설명을 들었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왜 직접 나서서 일을 만드시냐고요!”


“흥. 내 귀로 직접 이유를 듣길 원했으니까. 아무튼 주인이 있다는 건 잘 알았네. 하지만 마음이 바뀌거든 언제든 내게 오게나. 자네 같은 인물은 항상 필요하니까. 글렌 또한 마찬가지일 테고.”


그 말에 엘루이즈는 눈을 깜빡였다.


알베리크 드 스웨어의 고집을 꺾을 수 있는 상대는 오직 스웨어 가문의 안주인뿐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런 것도 아니었나보다 싶다. 알베리크는 엘루이즈의 멍한 눈빛을 보더니 그의 머리를 한 대 쥐어박으며 말했다.


“멍청한 눈빛으로 쳐다보지 마라. 따라와. 저 자는 작은 그라니언을 보러 온 것이니.”


그리고는 그의 아들의 어깨를 감싼다. 갑작스럽게 제 아버지에게 끌려갈 위기에 처하자 엘루이즈는 뒤를 돌아 에드리안에게 황급히 손을 흔들었고, 에드리안 또한 어색하게 손을 흔든다. 시끄러운 두 부자가 사라지자 그제야 에드리안은 한숨을 폭 내쉰다. 먼저 말을 건 것은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을 지은 채 에드리안을 빤히 바라보던 에단이었다.


“그렇게 긴장하셨습니까?”


“네? 아. 당연하죠. 보셨다시피 엘루이즈의 아버지는...”


“한 성격 하시더군요.”


“그렇죠.”


에드리안이 어색하게 웃은 뒤 그를 올려다본다. 그리고는 어깨를 으쓱인 뒤 묻는다.


“갑자기 어쩐 일로 찾아오셨어요?”


“성 안에서는 존대를 하지 않는 게 좋다고 말씀드렸는데. 아무튼 자리를 좀 옮길까요? 보아하니 ‘도련님’이 제게 존대를 하는 게 퍽 어색한 모양이니.”


“으... 도련님 소리 그만하세요.”


경기라도 일으킬 것마냥 에드리안이 몸을 떨며 말하자 에단은 피식 웃은 뒤 앞서 걸어가며 말했다.


“그렇게 이상합니까?”


“당연하죠. 항상 에드리안 군, 아니면 리안 군. 이거였잖아요. 그런데 갑자기 도련님이라니. 안 그래도 저택의 사람들이 저보고 도련님, 도련님 거리는 거 겨우 적응했는데.”


그건 사실이었다. 에드리안이 정식으로 가문의 일원으로 인정받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에드리안의 지위는 사실 매우 애매했던지라 저택에 있던 하인들이나 하녀들은 모두 그를 부르는 것을 피했었다. 항상 그들이 부르는 에드리안은 ‘저...’ 혹은 ‘저기...’였다.


그들에게 있어서는 차라리 샤를리즈가 편했을 것이다. 영원히 가문의 일원이 될 수 없는 아이였으니 하대해도 상관없었다. 하지만 에드리안의 존재는 다르다. 피가 귀한 가문의 유일한 사내아이. 공작부인조차 감히 건드리지 못하는 소년. 그리고 이제는 정말로 그들의 주인이 될 소년.


지금은 깍듯이 그를 도련님이라 칭하는 그들이었으나 여전히 그 호칭이 어색한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는 마치 고위 가문의 자제들이 에드리안을 두고 텃새를 부리는 것과 비슷해 영 기분이 묘했던 에드리안이었다. 그 사실을 알 리 없는 에단은 에드리안을 슬쩍 엿보고는 그에게 가시가 될 수도 있는 말을 던졌다. 그것은 일종의 미끼였다.


“샤를리즈 님도 저택에서 당신과 마주치면 도련님이라고 부르게 될 텐데요. 저 정도로 소름끼쳐하면 안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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