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흑의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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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서.
작품등록일 :
2012.11.17 2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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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8.09 2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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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3.03 0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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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1쪽

제 11막. 폭풍전야.

DUMMY








“안 그래도 엘루이즈나 클랜디스 휘하의 기사들이 제게 말을 자주 걸더라고요. 에단 씨에 대해 물어보겠다고. 게다가 글렌 경도 제게 에단 씨의 안부를 여쭈곤 하시죠. 관심 없을 테지만, 한동안 사교계 시시덕거림의 주인공은 에단 씨였어요.”


“흥미롭군요. 사교계에서 제 이름이 오르내릴 줄은 몰랐는데.”


“들어봤자 기분 별로 안 좋으실 걸요? 어느 가문의 사생아일지도 모른다느니. 루타나 스니케드의 용병이었다느니. 아무튼 비교적 세가 약한 가문의 아가씨들이 특히나 관심을 보이셨죠. 뭐, 우리 저택의 작은 마녀께서는 불쾌함을 감추지 않으셨지만. 에단 씨에 대해서 거의 모르지만, 누님이 그라니우스를 방문했을 때 항상 에단 씨가 함께 온 걸 봤을 테니. 대충 짐작은 하고 있을 거예요. 누님의 사람이라는 것쯤은.”


“작은 마녀... 프리실라, 그 여자를 말하는 겁니까?”


에단의 물음에 에드리안은 싱긋 웃는다. 그리고는 부럽다는 듯 말한다.


“좋겠다. 전 사실 되게 애매하거든요. 그러니까, 작은 마녀님을 부르는 일이요. 예전에야 프리실라 아가씨라고 부르면 됐는데, 이제는 다른 사람들 앞에서... 공식적으로는 누님이라고 불러야 하잖아요. 그런데 도무지 입에 붙지를 않아요. 이런 말 하면 에단 씨가 또 뭐라 할 지도 모르겠지만. 그래서 귀족들 앞에서는 보통 이름을 최대한 안 부르려고 노력하고, 한다 하더라도 프리실라 양이라고 하거든요. 그런데 그렇게 말하면 사람들이 또 이상하게들 생각하죠. 혹시나 제가 아직까지도 작위 계승자로써 결정되지 않은 건 아닌가, 하고요. 엘루이즈나 클랜디스는 이해해주지만, 다른 사람들은 그게 아니니까.”


“확실히 입장이 애매하긴 하군요. 그렇게 힘드시면 당장 시집보내시던가요. 그러면 적당한 호칭이 생기지 않습니까?”


“그게 제 마음대로 될 것 같으면. 안 그래도 그것 때문에 요즈음 아버지께서 고민이 많으신 것 같더라고요.”


그 말에 에단은 이해가 안 된다는 듯 어깨를 으쓱인다.


“그 그라니언 가문인 데다가 스니케드 왕가의 유일한 후손이고, 외모도 썩 나쁘지 않은데 뭐가 문제입니까? 아무리 상대가 왕가라고는 하나, 왕비 자리를 못 사지는 않을 텐데요.”


그랬다. 그라니언 가문이 어떤 가문인가? 비록 아주 오래 전의 일이고, 작은 나라이긴 했지만, 그래도 왕국의 남부를 모두 다스리던 그라니우스 왕가의 후손이 아닌가?


게다가 엄청난 땅을 소유했고, 최근에는 빈트뮐러 상단과 아주 밀접한 관계를 맺으면서 엄청난 수입을 거둬들이고 있는 가문이다. 북부의 아스피트 가문이 중앙 정계로 돌아온다 하더라도 이제는 그라니언 가문의 세에는 미치지 못할 것이라는 게 정설이나 다름없었다.


그러니 그런 가문에서 왕비 자리 하나 사들이지 못할 리 없었다. 그는 에드리안 또한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그럼에도 그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작은 마녀의 성격이 워낙 드세서 말이죠. 비록 전 한 번도 뵌 적이 없지만, 그 왕자님이 그렇게 싫어하신다고 하더라고요. 지난번에도 그 분께서 약속을 너무 자주 어겨서 화를 풀어준답시고 보석을 선물하셨는데, 알고 보니 그 분의 오른 팔이신 블라레트 경이 고르고 전달하셨다고 하더군요. 이래서야 누가 작은 마녀의 남편이 될 자인지 헷갈리는 지경이죠.”


“뭐, 저는 한 번 만나봤습니다만 그렇게 매몰찬 성격은 아닌 것 같던데요. 그렇게 싫어하는 데는 이유가 있을 겁니다. 단순히 그 여자가 성격이 드세다는 이유만은 아닐 거예요. 그도 그럴 것이 한 성격하는 샤를리즈 님과도 잘 지내는 사람이니까.”


“그 외에도 뭐, 집착이 심하다고 하던가. 사실 저도 잘 모르겠어요. 저는 그 분에 대해서도 거의 모르고, 작은 마녀에 대해서도 거의 모르니까. 아무튼 아무리 이쪽에서 돈을 얹어준다 해도 그 분께서 그렇게 기를 쓰고 싫어하신다면 얘기가 달라지죠. 왕비의 자리에 올리려는 이유가 무엇이겠어요. 다음 대 왕이 될 자가 우리 가문의 피를 이어받길 바라기 때문이잖아요. 그런데 그렇게 싫어한다면, 아이를 얻을 수 없을 테니. 거기다 다른 여자에게서 왕이 될 아이를 얻게 된다면 그건 최악의 상황이 될 테니까. 그래서 아버지께서는 지금 조율중이시더라고요. 안 그래도 스니케드 왕가가 그렇게 되고 나서 부쩍 스니케드 측에서 작은 마녀에 대해 떠보고 있다고 들었거든요.”


“그게 무슨 말입니까? 혹시나 그 여자가 스니케드의 왕이 될 수도 있단 말입니까?”


어이가 없다는 듯 에단이 눈을 깜빡이며 묻자 에드리안은 고개를 끄덕인다.


“형식상 왕일 테고 실질적인 왕은 스니케드의 고위 귀족이 되겠죠. 그것 때문에 스니케드의 고위 귀족들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작은 마녀와의 결혼을 성사시키려 달려들고 있어요. 우습게도 그 쪽에서 지참금을 들여서라도 데려오고 싶다고 한다더군요. 그들에겐 상징적인 의미의 스니케드 왕가 후손이 필요하니까요. 그런데 이쪽도 사실 밑지는 장사는 아닌 거죠. 스니케드가 비록 세는 약하다고는 하나, 많은 금광을 가진 부유한 나라이고. 결국에는 똑같은 왕비 조건인 데다가 돈은 안 들고, 오히려 벌 수 있으니 말이에요.”


“그렇군요. 그러고 보면 스니케드 쪽이 훨씬 괜찮은 장사 아닙니까? 물론 그 여자는 란이라는 사람을 그토록 좋아한다고 하지만, 사실 뭐 귀족들의 결혼이라는 것이 둘이 좋다고 되는 일도 아니고. 그렇지 않습니까?”


“네. 하지만 스니케드 왕가 쪽으로 가게 되면 중앙에 부담을 주게 되는 거라. 그게 걱정이라고 하더군요. 안 그래도 우리 가문의 세력이 강해질 대로 강해져 있는데, 그라니우스와 접해 있는 스니케드 왕가의 주인이 그라니언 가문의 딸이라고 한다면, 크로이츠 입장에서는 꽤 부담이 되겠죠. 혹시나 그라니언 가문이 예전의 그라니우스로 돌아가려고 하는 게 아닌가, 하는... 그런 거 말이에요. 아버지께서는 그것 때문에 고민 중인 거예요.”


에드리안이 고개를 까딱인 뒤 입을 다물자 에단은 끄응, 소리를 내며 팔짱을 낀다. 그리고는 인상을 찌푸리곤 말한다.


“도무지 윗사람들의 일은 이해할 수가 없군요. 당신과 샤를리즈 님은 꽤 잘 이해하고 있는 것 같지만 말입니다.”


“누님이야 워낙 이런 일에 관심이 많으시고. 저는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으니까 그렇죠. 사실 염증나기는 해요, 이런 생각들. 아버지께서 저만큼이나 어렸던 시절에는 정말 이런 것들이 싫어서 가문을 떠나려고 했다고 들었어요. 아버지는 저보다 훨씬 성격이 격정적이었으니까. 더 힘들었을 수도 있었겠죠. 실제로 시도하려고도 했다고 했어요. 그런데 전 그렇게까지 하지는 못할 것 같아요. 그런 점에 있어서는 아버지가 대단하다고 느껴지긴 해요.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할 수 있었는지. 전 도무지 못하겠는데.”


에드리안이 씁쓸하게 웃었다.


“그거야 당연한 거 아닙니까?”


“뭐가 당연한데요?”


“저도 들은 게 있어서 말해보자면, 에드리안 군의 아버지 그러니까 각하께서는 가족들과의 관계가 그리 좋지 않았습니다. 그 분의 어머니는 각하께서 어렸을 적 돌아가셨고, 아버지는 살갑지 않았고, 심지어 아들을 원하는 방향으로 휘두르려고 했던 사람이라 들었고요. 말년에 가서는 미치기까지... 죄송합니다.”


“아뇨. 뭐, 얼굴도 모르는 할아버진데요. 아무튼요.”


“아무튼 그렇다는 겁니다. 가문에 대한 정은 거의 없는 사람이었고, 심지어 괴짜였죠. 다혈질인 데다가. 하지만 당신은 다르죠. 각하는 당신을 아끼고, 당신의 누이는 당신을 위해서라면 죽는 시늉도 하는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들의 기대를 쉽게 저버린다는 건 누구에게나 힘든 일이죠.”


뜻밖의 위로였다. 적어도 에드리안에게 있어선 그랬다. 에드리안은 괜히 낯이 간지러워져 제 붉은 머리칼을 긁적이고는 피식 웃는다. 에단 또한 기분이 간지러웠는지 팔짱을 낀 채 창밖을 바라본다. 어색한 침묵은 마차가 속도를 늦추고, 이내 멈추었을 때 끝났다. 에드리안은 어색하게 말했다.


“다 왔나보네요.”


“그렇군요. 아무튼 뭐, 여기까지 태워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렇게 말해야 합니까? 사교계의 유명인사면.”


에드리안은 웃음을 터뜨리고는 말했다.


“굉장히 예의 바르시네요. 조만간 좋은 소식 들리겠는데요? 결혼식 땐 꼭 초대해주세요.”


“결혼은 에드리안 군이 먼저 할 것 같은데.”


“네?”


“오늘 밤에 데이트 하신다고 들었습니다만. 이 댁 아가씨와요.”


에단이 은근슬쩍 말을 던지자 에드리안은 괜히 얼굴이 달아오르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는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그런 거 아니... 아니, 왜 그렇게 다들 오해를 하는 건지 모르겠어요. 그냥 제인은 좋은 애에요. 그런데 특이한 행동을 한다고 해서... 다른 사람들이 하는 걸 못하고 그러니까. 그게 안 되어서 그러는 것뿐이라고요. 여동생 같은 거요."


에드리안이 지쳤다는 듯 이야기하자 에단은 뭐라 말을 하려다 이내 입을 다문다. 여기서 더 말해봤자 반감만 일으킬 뿐이다. 에드리안은 스스로의 행동을 단순히 '돌봐주고 싶어서.'라고 합리화하고 있었다.


에단은 에드리안을 오랫동안 봐왔다. 에드리안은 꽤 영리한 소년이었지만 그의 사람을 대하는 방식은 웃음이 나올 정도로 단순했다. 그의 세계는 망망대해에 덩그러니 놓여있는 작은 섬과 같았다. 그 섬의 주인은 에드리안이고, 에드리안은 섬 안의 모든 것에는 지대한 관심을 가지나, 섬 밖의 것에는 관심이 없었다.


물론, 인간관계에 한해서. 그리고 그 섬 안에는 샤를리즈와 에단, 그리고 그의 친구라는 엘루이즈와 클랜디스가 있을 것이다. 어쩌면 그를 어린 시절부터 가르쳐왔던 몇몇 학자들도 포함되리라. 반면, 그 섬 밖의 것들에 대해서는 관심을 아예 끈다. 형식상 예의를 갖춰 대할 뿐. 뭐, 그런 점이 상대방에게 착각을 일으키기도 한다.


에드리안은 천성이 다정한 성격이니 관심이 없음을 겉으로 결코 드러내지 않을 테니까. 아무튼 친구 동생이라는 이유로, 혹은 연민을 가지고 있다는 이유로 자신의 하루 일과를 바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관심이 없는 사람에게는. 즉, 그 제인이라는 아가씨는 에드리안의 섬에 들어왔다.


거의 처음이 아닌가 싶다. 또래인 아가씨가 섬에 들어온 것은. 그것만으로도 엄청난 것인데 본인은 그걸 자각하지 못하고 있다. 하긴, 그럴 수도 있다. 에드리안과 제인은 3살차이. 이제 곧 19살이 되는 에드리안과 16살이 되는 제인. 19살에게 있어서 16살은 귀여운 동생일 뿐이다.


하지만 23살에게 있어서 20살 아가씨는? 그럼 적어도 에드리안이 제 감정을 눈치 채는 데는 4년이 걸린다는 건가? 거기까지 생각하자 에단은 저도 모르게 한숨을 쉬었다. 어쩌면 제 감정을 눈치채지도 못한 채 정략결혼으로 다른 여자와 결혼할 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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