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중사 사중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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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등록일 :
2014.04.07 1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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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중사 사중정 -3(2).

DUMMY

판극이 연지완을 따라간 곳은 높은 담장으로 둘러싸인 전각이었다. 넓은 연무장을 지나자 본채 옆 작은 건물에서 시녀로 보이는 젊은 여자들이 바삐 움직이고 있었다.

음식이 놓인 식탁에 두 명의 사내아이가 담소를 나누다 연지완과 판극을 발견했다.

둘 중 더 어려 보이는 남자가 판극에게 손을 흔들어 인사했다.

“어서 와 사제.”

짙은 경계심을 내비쳤던 연지완과는 사뭇 다른 호의적인 태도에 판극은 살짝 놀랐다. 다른 사형들도 연지완과 마찬가지로 자신을 경계할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는 경계심보다 호기심을 더 내비치고 있었다.

‘많게 봐줘도 열두 살. 욕심이 없는 걸까? 어쩌면 나 같은 건 한참 아래로 보는 걸지도.’

어떤 것이든 자신에게 불리한 건 없다. 욕심이 없다면 결국 도태될 것이고 방심하는 것이라면 빈틈이 생길 테니까.

“판극이라고 합니다.”

“하하, 인사는 나중에 하고 일단 앉아.”

연지완과 판극이 자리에 앉자 시녀가 다기를 올려놓은 다반을 가져왔다. 은은한 차향이 실내에 퍼졌고 호의적인 아이는 차를 따라주기 시작했다.

판극의 시선은 저절로 나머지 한 명의 사형에게로 옮겨갔다.

다른 사형들보다 두세 살은 더 많아 보이는 외모에 선이 굵고 이목구비가 뚜렷하다. 묵묵히 자기 앞에 놓인 찻잔만 들이키는 모습 또한 왠지 보이지 않는 벽을 두른 것 같아 말을 붙이기 힘든 상대였다. 그는 판극이 처음 들어올 때 힐끔 쳐다봤을 뿐, 그 후로는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저자가 대사형인가?’

체격도 다부지고 손에 박힌 굳은살과 상처들이 얼마나 무공광일지 짐작케 했다. 그러고 보니 지난번에 봤던 무극천황과 닮은 것도 같고 나이와 분위기로 봐서는 그가 대사형일 가능성이 컸다.

판극이 차를 입에 대지 않고 가만히 눈치만 살피고 있자 좀전의 친절한 사형이 물었다.

“사제 왜 안 먹어? 입에 안 맞아?”

“아, 아닙니다. 사형.”

무뚝뚝한 사형이 힐긋 노려보며 명령조로 말했다.

“마셔라.”

그는 사람을 불편하게 만드는 묘한 재주가 있었다. 강한 눈빛과 짧은 한마디만으로 판극은 그가 더 크고 어려워 보였다. 적어도 유치한 장난으로 사람을 대하는 연지완 보다 훨씬 더.

판극이 표국에서 배웠던 예법대로 찻잔을 두 손으로 잡아 올리며 대답했다.

“예, 대사형.”

“뭐? 풉. 하하하하.”

갑자기 엉뚱한 곳에서 웃음이 터졌다. 판극이 소리가 난 곳으로 고개를 돌려보니 그 친절한 사형이 박장대소를 하며 웃고 있었다.

“하하하핫. 역시 쮸방 사제의 액면가는 알아줘야 한다니까. ”

“주방입니다.”

“그래, 쮸방. 어쨌든 내가 이겼으니 약속은 지켜야 한다?”

“후.... 알겠습니다.”

무극천황의 셋째 제자 진주방은 한숨을 푹 쉬며 대답했다. 대사형의 협박에 가까운 요구에 어쩔 수 없이 내기에 응했다가 또 진 것이다.

대사형과 진주방은 동갑내기로 같은 열두 살이었다. 그러나 진주방은 유독 성장이 빠른 탓에 처음 본 사람들에게 종종 오해를 받곤 한다. 그런 건 이제 이골이 나서 아무렇지 않은데 내기에서 진 대가로 요구할 부탁이 문제였다.

‘지난번엔 약비동의 천년설삼을 훔치다가 걸려서 파문당할 뻔했다. 이번엔 무슨 문제를 일으키려고....’

대사형 냉소악은 외부에서 ‘천고의 기재다, 미래의 천하제일인이다’라는 등 높은 평가를 했지만 련에서는 최고의 말썽꾸러기였다. 오죽했으면 그 괴팍한 소괴까지 혀를 내두르며 피해다닐 정도.

재능이 뛰어나니 망정이지 만약 그것도 없었다면 아무리 무극천황의 아들이라고 하여도 절대 제자가 되지 못했을 것이다. 바꿔말하면 모든 걸 뒤집을 만큼 무서운 재능의 소유자라고 할 수 있었다.

연신 싱글벙글인 냉소악과 달리 연지완의 표정은 불편하기 짝이 없어 보였다. 부를 땐 언제고 자신들끼리 히히낙락 대는 꼴이 보기 싫었기 때문이다.

탁.

참다못한 연지완은 찻잔을 소리 나게 내려놓고 불만을 터뜨렸다.

“사형! 지금 장난이나 하자고 여기까지 모두를 부른거요?”

“연 사제, 왜 그래? 화났어?”

“좀 그만하라고요, 이런 거. 언제까지 어린애처럼 굴 겁니까?”

“연 사형! 대사형께 무슨 말버릇이요?”

잠자코 있던 진주방이 흥분한 얼굴로 연지완에게 소리쳤다.

“이 자식이! 네놈은 끼어들 자리가 아냐! 넌 하던대로 대사형 뒤나 잘 닦아줘.”

“연 사형!”

진주방은 참지 못하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는 화를 못 이겨 떨리는 목소리로 연지완에게 경고했다.

“더 이상 대사형을 모욕한다면 아무리 사형이라도 참지 않을 거요.”

“어쭈, 네가 안 참으면 어쩔건데? 한 번 해볼 테냐?”

“못할 것도 없지. 난 지금도 괜찮소만.”

“이 새끼가 정말 죽고 싶어?”

연지완도 일어나 진주방을 노려봤다. 식탁을 사이에 두고 벌어진 그들의 기 싸움에 판극은 심한 압박감을 느꼈다.

‘기가 요동치고 있어.’

잔잔하던 기가 연지완과 진주방의 주위에서 강풍을 만난 듯 휩쓸렸다. 수십 줄기의 기는 영역을 조금이라도 더 차지하기 위해 치열하게 서로를 물어뜯었다.

판극은 처음 보는 신기한 광경이었다. 하지만 더 신기한 건 따로 있었다.

대사형 냉소악.

격랑이 불어닥친 실내에서 오직 그만이 잔잔한 호수 위에 떠 있는 것처럼 아무렇지 않았다. 그의 주변에만 투명한 벽이 있는 것처럼 기는 안정돼 있었고 치열하게 전투 중인 다른 기들이 그곳만은 비켜가고 있었다.

판극은 편안히 상황을 주시하던 그와 눈이 마주쳤다.

씨익.

‘웃어?’

냉소악은 판극을 보며 의미모를 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의 입이 달싹거렸다.

[잘 봐.]

입 모양이 그렇게 말했다. 그는 표정을 싹 바꾸고 소리쳤다.

“그만!”

냉소악의 일갈에 방안의 기가 갑자기 얼어붙은 듯 잠잠해졌다. 웅크린 채 반응없던 그의 기가 폭사하더니 삽시간에 실내의 모든 기를 장악했다.

당장 맞붙을 것처럼 으르렁대던 연지완과 진주방도 갑작스러운 변화에 당황해 한풀 기가 꺾인 모습이다.

냉소악은 만족스러운 듯 부드럽게 말했다.

“우리끼리 싸우면 쓰나. 새끼 사제도 와 있는 마당에, 안 그래?”

“죄송합니다. 대사형.”

진주방이 금세 태도를 바꾸고 고개를 숙였다.

연지완은 자신이 기에서 밀렸다는 사실 때문에 더 화가 나 씩씩댔다.

“사형이나 잘하시오. 난 이런 애들 장난에 낄 마음이 없으니.”

인사도 없이 제 할 말만 하고 밖으로 나간 연지완 때문에 다시 얼굴이 시뻘게진 진주방이 쫓아가려 했으나 냉소악이 그를 제지했다.

“됐어, 쮸방 사제. 연 사제가 오늘 기분이 좋지 않나 봐.”

“그래도```.”

“됐다니까. 새끼 사제와 인사도 하고 차린 거나 먹자고.”

대사형은 연지완의 행동이 정말 아무렇지 않은 듯 보였다. 식탁에 놓인 음식이 사라질 때까지 먹는 것에 열중하던 그가 판극에게 말했다.

“새끼 사제. 괴물이랑 붙어보니까 어때?”

“강했습니다.”

무극천황을 처음 본 날, 소괴가 하는 말을 들었기 때문에 괴물이 누굴 지칭하는 말인지 판극도 알고 있었다. 물론 그의 아들인 냉소악까지 그리 말 한 것은 조금 의외였지만.

판극의 대답이 마음에 안 드는지 냉소악은 다시 물었다.

“아니, 그런 거 말고 현실적인 거 말야. 이길 수 있겠어?”

“예?”

“그를 이길 수 있겠냐고. 물론 나중에. 네가 강해지고 난 후에.”

냉소악은 꽤나 진지한 태도로 묻고 있었다. 그것은 오랫동안 냉소악을 봐온 진주방으로서도 오랜만에 보는 모습이었다.

‘무슨 대답을 해야 하지?’

면밀히 따지면 자신은 그의 아버지를 죽이려 한 적이다. 그런데도 냉소악은 어떤 적의도 없이 자신을 대한다. 아마도 아버지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이 깔려있기에 가능한 일이리라.

판극이 답했다.

“잘``` 모르겠습니다.”

냉소악의 표정이 급격히 어두워졌다. 판극의 대답이 몹시 실망스러웠기 때문이다.

자신과 같은 천무지체라길래 다른 사제들과는 그릇이 다를 줄 알았는데 그것도 아닌 모양이었다.

그는 애써 실망감을 억눌렀지만 새어나오는 한숨은 어쩔 수 없었다.

“흐음. 아직 새끼 사제는 무공을 배운 적이 없으니까 판단하기 어렵겠지.”

“예, 대사형.”

“알았어, 이만 가봐. 다른 손님이 오기로 돼 있거든.”

진주방과 판극이 동시에 대답했다.

“예.”

혼자 남겨진 냉소악의 모습이 쓸쓸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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