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중사 사중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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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등록일 :
2014.04.07 1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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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7.24 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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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4.14 2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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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중사 사중정 -2(2).

DUMMY

“끄억.”

“크으악.”

창호문 바깥에서 낯익은 비명이 터졌다. 삼년 전, 표국에 들어온 젊은 경비무사의 목소리다. 작년에는 아이를 낳았다고 들어 상여금도 두둑이 챙겨준 젊은 인재였다. 그가 환하게 웃으며 돈을 받던 모습이 떠올라 가슴을 후벼 팠다.

‘미안하네.’

털컥.

피 묻은 칼을 들고 들이닥친 무사가 표국주를 발견하고 소리쳤다.

“여기 있습니다!”

“웬 놈들... 정파무림맹?”

표국주는 괴한들의 왼쪽 가슴에 새겨진 청룡문양을 보고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정의를 수호하고 무로서 협(俠)을 추구한다는 그들이 대체 왜 판가표국을 급습한단 말인가.

그의 궁금증은 잠시 후 들어온 호협대주 성찬백이 해결해줬다.

“미안하게 됐소. 반드시 찾아야 할 물건이 있어서 실례를 무릅쓰고 왔소.”

“그, 그게 뭐길래. 맹에서 요청하면 얼마든지 협조할 수 있는 일이거늘!”

“그건 나도 모르오. 확실한 것은 아무에게도 알려져선 안 되는 물건이란 것만 안다오.”

“이, 익.”

표국주는 이를 악물고 신음을 삼켰다.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곤란한 사건에 표국이 얽혀 처참한 일이 발생했다. 저들이 정파무림맹의 표식을 당당히 드러내고 왔으니 살인멸구는 당연할 터.

이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당당히 죽는 것과 어떻게든 아이들이 빠져나간 비밀통로의 존재를 숨기는 것뿐.

먼저 그들의 시선을 돌리기 위해 표국주는 태연하게 문 쪽으로 걸었다.

그는 터질 것처럼 쿵쾅대는 가슴을 애써 진정시키고 당당한 태도로 말했다.

“이대로는 억울해서 죽어도 눈을 못 감겠다. 어떤 물건인지만 확인할 테니 그 후엔 알아서 하라.”

그의 당당한 태도에 일순 성찬백과 호협대원들이 당황해 어쩔 줄 몰랐다. 죽음을 초월한 듯이 걷는 표국주의 기세에 눌려 호협대가 내뿜던 예기는 살짝 누그러졌다.

“그럴 필요 없소이다!”

밖에서 들려온 중후한 음성에 표국주의 걸음이 우뚝 멈춰 섰다.

‘엄청난 고수다.’

목소리에 실린 내공이 엄청나 속이 엉망진창으로 흔들렸다. 그가 속을 진정시키는 사이 목소리의 주인공은 뒷짐을 쥔 자세 그대로 걸어와 어느새 계단을 오르고 있었다.

건물 안으로 들어온 미중년은 포권을 취해 보였다.

“처음 뵙겠소. 비성각을 맡고 있는 허윤이라 하오.”

“당신이 이들의 우두머리인가? 대체 무엇 때문에 이, 이런 악행을 저지른단 말인가! 진정 세인들의 존경을 받는 정파무림맹이 맞긴 하냔 말이다!”

표국주가 분통을 터뜨렸으나 허윤은 여전히 미소 띤 표정 그대로였다.

“왜 그렇게 생각하시오. 대의를 위한 작은 희생 정도로 생각하면 마음도 편하잖소.”

“허! 대의? 언제부터 살육이 대의로 포장됐단 말인가!”

“하지만 어쩌겠소. 세인들에게 정파무림맹은 정백해야 하고 결함이나 흠이 있어선 안 되니 이런 방법을 택할 수밖에.”

“뭔가 더러운 물건이 들어온 모양이군.”

허윤의 미소가 한층 짙어졌다.

“죽은 사람 소원도 들어준다는데 말해주겠소. 바로 이것이오.”

그는 품에서 평범해 보이는 한권의 책자를 꺼냈다.

고서의 느낌을 풍기는 낡은 책자도 아니고 만든 지 얼마 안 돼 보이는 새책이었다. 무림인들이 환장을 한다는 비급은 더더욱 아닐 테고 보고가 숨겨진 책자로 보이지도 않았다. 평범한, 종이와 북만 있다면 언제라도 만들 수 있는 그런 책이었다.

고작 저 책 한권 때문에 식솔들이 몰살당했다고?

허무하고 후회됐다. 조금만 표물에 대한 관리와 검열을 철저히 했다면 막을 수 있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이 책이 청해성으로 가는 표물에서 나왔소. 고려의 청자로 위장한 물품 속에 교묘하게 숨겨져 있더군.”

“그, 그게 뭐지?”

표국주를 비롯해 실내에 있는 모든 이의 시선이 집중됐다. 물건의 정체를 모르는 호협대의 무사들도 궁금하긴 마찬가지였다.

허윤은 다른 이들의 반응을 즐기기라도 하는 것처럼 여유롭게 실내를 걷더니 짤막하게 답했다.

“살명부.”

“살명부라면? 흡.”

대답은 호협대 쪽에서 나왔다. 성찬백은 자신도 모르게 반사적으로 되묻다가 실수를 깨닫고 급히 입을 막았다.

허윤은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친절하게 설명을 시작했다.

“간단히 말하자면 사도련에 심어놓은 본 맹의 인물 백 명의 명단이오. 오래전부터 맹에서 비밀리에 실행했던 작전이지. 덕분에 맹은 몇 번의 위기를 넘겼고 미리 입수한 적의 정보 덕분에 불리한 전투를 승리로 가져갔소. 천 년의 역사를 가진 명문정파의 모임인 정파무림맹이 왜 그런 짓까지 해야 하는 줄 아시오?”

“.....”

아무도 답을 하지 않자 그는 말을 이었다.

“정파무림맹의 힘이 약하기 때문이오.”

성 대주가 큰소리로 따지고 들었다.

“각주님! 어찌 그런 말을 하십니까! 맹은 강합니다. 숱한 사파와 세외 세력의 침공에서 단 한 번도 중원을 내준 적이 없는 게 바로 정파무림맹이란 말입니다.”

“진정 그리 생각하는가?”

“예?”

“진정 그리 생각하느냐고 물었네.”

“....”

허윤이 다시 물었으나 성 대주는 같은 대답을 하지 못했다. 각주가 어떤 대답을 원하는지 잘 안다. 하지만 맹에 대한 자부심과 충성심이 그를 우물쭈물하게 했다.

허윤은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직접 말했다.

“현실적으로 보게. 우리가 속해있는 무림은 결국 무를 가진 자가 가장 위에 군림하는 걸세. 당대 무림의 천하제일인이 누군가?”

“... 무극천황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하지만 정파에도 무당의 태청자 어른을 비롯하여 무수한 고수들이 있습니다. 창룡각의 은하신검은 얼마 전 냉한역사 진도림을 꺾었습니다. 조금만 있으면 무극천황을 능가할 고수가 될 것입니다.”

“하하, 성 대주가 재밌는 이야기를 하는군. 표국주는 어찌 생각하시오.”

갑자기 자신에게 향하는 질문에도 표국주는 당당히 답했다.

“아랫물이 이 모양인데 윗물이라고 다를까. 반면에 무극천황은 명분 없는 싸움은 하지 않고 당대를 넘어 역대 무림인 중에 가장 높은 경지에 오른 인물이니 날이 갈수록 사도련 쪽으로 기울겠지.”

“바로 보았소. 그는 절대자이며 이미 가늠하기 어려운 경지에 올랐소. 시간이 그에게만 멈추지 않는다면 격차는 점점 벌어지겠지. 앞으로도 천운이 따르지 않는 한, 그를 이길 영웅은 나타나지 않을 것이오.”

성찬백의 얼굴이 시뻘게져 소리쳤다.

“허나 싸움은 절대고수 한 명만으로 결정되는 게 아닙니다. 여전히 고수의 숫자는 정파무림맹이 더 많으며 차지한 영역도 훨씬 큽니다. 또한, 역사와 정신은 그들보다 훨씬 우월합니다. 결코 눈에 보이는 것만으로 위아래를 논할 수는 없습니다.”

허윤이 고개를 저었다.

“성 대주는 뭔가 착각하고 있군. 자네가 말한 힘은 정파의 힘이지 정파무림맹의 힘이 아니야.”

“그,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중원 전역에 퍼져있는 정파의 힘이 아무리 강대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나. 그들은 서로 견제하기 바빠서 정작 맹에 파견하는 인원은 소수에 불과한데. 반면에 사도련은 어떤가. 사파인들에게 사도련은 전부이고 사파 그 자체나 마찬가지. 아직은 정파가 결집하는 게 두려워 전면전을 피한다고 해도 이대로라면 전체 힘에서도 사파에 밀리는 건 시간문제일세.”

“....”

허윤의 평가는 지극히 냉정했다.

‘우리가 약하다는데 아무렇지 않아?’

하지만 성 대주는 여전히 인정하기 싫었다. 게다가 시국을 냉정하게 살피는 것 또한 지략가의 덕목이라지만, 눈앞의 잘생긴 중년인은 발을 뒤로 뺀 사람처럼 자신들과는 다른 이질감이 느껴졌다.

허윤은 불만이 가득한 호협대의 표정을 깨끗이 무시하고 표국주 쪽으로 몸을 돌렸다.

“그래서 이 물건이 필요하다오. 사도련에 잠입한 100인의 간자들은 그들의 정보를 빼내고 간계와 암습을 통해 내부를 붕괴시켜야 하오. 본 맹이 살아남을 유일한 방법이지만, 동시에 당신이 죽어야 할 이유이기도 하지.”

표국주는 모든 걸 체념한 듯한 어두운 표정으로 말했다.

“죽여라. 그러나 너희가 하려는 짓은 내 죽어서도 방해할 것이다.”

“잘 생각하셨소. 호의를 베풀어 고통은 최대한 줄여드리지. 참, 내가 한 가지 잊은 게 있소.”

말을 마침과 동시에 허윤의 몸이 빙글 돌았다.

서걱.

밀폐된 실내에 한차례 삭풍이 몰아쳤고 잠시 후, 뜨끈한 핏물이 호협대 무사들에게 쏟아졌다.

먼저 상황을 인지한 표국주가 눈을 부릅뜨고 외쳤다.

“이, 이게 무슨 짓이오!”

조금 전까지 자신의 맞은 편에 서 있던 성 대주라는 남자의 머리가 감쪽같이 사라졌다. 깨끗하게 잘린 목의 단면에서 솟구치는 피를 호협대 무사들이 고스란히 뒤집어썼다. 믿기지 않는 현실에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멍하니 정면만 바라보고 있었다.

허윤이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

“왜겠소? 비밀이라는 놈은 다른 사람이 알면 가치가 없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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