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중사 사중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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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4.07 1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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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7.24 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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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7.10 1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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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중사 사중정 -9(1).

DUMMY

어두운 실내.

한 사내가 의자에 앉아 가만히 정면을 주시했다. 거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검은 무복을 입고 있지만, 얼굴을 복면으로 가린 탓에 심상치 않아 보였다. 음산한 기운을 온몸으로 내뿜는 그의 앞에 당당히 서 있는 한 남자가 그와 비슷한 기운을 발산했다.

그는 현재 심기가 불편하다는 표시를 표정으로 드러내며 복면 사내에게 물었다.

“정말 이번 일만 끝나면 내 가족의 안전은 보장하나?”

“약속하지.”

“좀 더 확실한 대답을 원한다.”

“좋다.”

복면 사내가 품에서 은 한 덩이를 꺼냈다. 그 모습에 남자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쳐다보자 복면의 입 부분이 살짝 비틀렸다.

복면 사내가 나직이 말했다.

“열흘 후, 거사가 끝날 때 이 은을 대장간에 맡길 것이다. 네가 성공하면 이 은은 당신 가족을 가둔 자물쇠의 열쇠가 될 것이고 실패한다면 날카로운 비수가 되겠지.”

“믿겠다. 아니지, 믿을 수밖에 없지. 흐흣.”

그의 대답이 작아지며 자조적인 웃음이 터졌다. 성공하든 실패하든 자신이 죽는 것은 기정사실. 죽은 이후의 일을 걱정하는 모습이 문득 우습게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턱.

그의 앞으로 복면 사내가 흰색 천 쪼가리를 던졌다. 여러 번 접힌 쪽지를 남자가 풀어 확인하더니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

“이게 뭐지?”

“당신을 도와줄 조력자.”

“확실한가? 이자가 날 왜?”

“오늘따라 질문이 너무 많군.”

복면 사내가 남자의 질문을 단칼에 잘랐다. 기분 나쁠 법도 하건만, 이런 일이 익숙한 듯 남자는 묵묵히 수긍하며 물러났다. 어쨌든 성공할 가능성이 조금은 높아진 셈이니까 그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남자는 무거운 발길과 함께 떠났다. 텅 빈 실내에 혼자 남은 복면 사내가 좀전의 은덩이를 빤히 바라봤다. 복면 속에서 음침한 웃음이 새어나왔다.

“크크큿. 귀한 은을 열쇠 따위나 만들 수 있나.”


***


“선물이란 건 말이다. 실용성이 높으면서 받는 사람이 가장 기뻐할 만한 물건을 골라야 한단다. 뭐니 뭐니 해도 현금이 최고 아니겠냐?”

판극이 조숭에게 생일선물에 관한 조언을 구하자 돌아온 대답이었다. 그는 자기가 말하고도 뿌듯한 모양인지 팔짱을 끼고 고개를 끄덕이는데, 판극은 말없이 처소로 들어갔다. 물어본 자신을 탓하면서.

다음은 사호였다.

판극의 조용한 부름에 귀신처럼 등장한 그는 질문을 받고 깊은 고민에 빠졌다. 당연하다. 기억이 존재하는 어린 시절부터 잠입과 호위 훈련만 받아온 그가 생일 선물을 고르는 고상한 취미는 당연히 없었다.

두 시진 후에야 다시 모습을 드러낸 그는 제법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답을 내놓았다.

“선물이라는 게 꼭 실체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지 않습니다. 마음이 전달된다면 그게 곧 선물이 아니겠습니까?”

“계속하세요.”

판극이 관심을 보이자 더욱 자신감을 얻은 사호는 오랜만에 이를 드러내며 당당하게 말했다.

“그분을 괴롭히거나 마음에 안 드는 자가 있다면 제가 쥐도 새도 모르게```.”

“들어가세요. 하아```.”

“존명.”

한숨이 절로 나왔다. 자신도 이런 일엔 젬병이라 도움이 될까 싶어 물었건만, 주위에 이 정도로 피폐한 사람들뿐이라니.

“령아에겐 어떤 선물을 줬더라```.”

호북에서 살던 그 시절엔 장터에만 나가도 여자애들이 좋아할 물건이 지천으로 널려 있었다. 판극은 머리끈 종류를 주로 사다 줬고 그럴 때마다 판령은 항상 기뻐하며 소중히 간직하곤 했다. 그러나 냉수아는 당시의 판령보다 나이도 많고 사도련주의 딸이라는 귀한 신분이기 때문에 아무거나 줄 수는 없어 더 고민이 된다.

‘여자는 피곤하군.’

한 식경을 혼자 고민해봤지만, 딱히 떠오르지 않아 판극은 근처 민가에 둘러보려 나갈 채비를 했다.

민가의 시장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어제 내린 눈 때문에 장을 보지 못한 사람들이 대거 몰려들었고 물건을 꺼내놓기 무섭게 동났다. 좋은 물건을 사려면 경쟁은 필수였다.

“비켜 이 자식아, 어린 노므 새끼가.”

판극을 알아보지 못한 사람들은 혼자 온 어린아이에게 친절하지 않았고 몸으로 밀거나 욕설을 내뱉는 등 무시하기 일쑤였다. 힘으로 제압할 수도 없고 신분을 밝히기도 싫어 판극은 조금 한적한 길가의 행상으로 움직였다.

쭈그려 앉아 손님을 기다리던 중년의 상인이 판극을 보고 손짓했다. 콧수염을 길게 길러 입 아래를 가린 남자는 사람좋은 인상으로 손짓을 하고 있었다.

“꼬마야, 뭘 사러 온 게냐?”

마침 늘어놓은 물건이 여자들 노리개와 작은 조각품이라 판극은 관심을 두고 그쪽으로 갔다.

“선물을 하려고 합니다.”

“선물? 그거 좋지. 누구에게 하려고 하느냐?”

“```친구예요. 여자 아인데 부잣집이라 조금 고급스러워 보이는 물건을 하고 싶은데.”

“그래? 잠깐 기다려 보거라. 마침 좋은 물건이 하나 있으니.”

남자는 물건을 이리저리 뒤적이느라 허리를 숙였고 그의 정수리가 판극과 가까워졌다.

‘기름 냄새?’

다른 이라면 특이할 게 없는 냄새지만, 장신구를 파는 행상인에게서 주방에서나 맡을 법한 기름 냄새가 밴 건 조금 의외였다.

“원래 식당을 하셨나 보군요.”

“응? 그, 그게 뭔 소리냐?”

“아저씨한테서 기름 냄새가 나길래 한 말이에요. 아니라면 죄송합니다.”

“큼, 아니란다.”

상인의 손놀림이 더 빨라졌다. 지병이라도 있는지 이마에 식은땀을 삐질 흘리며 안색도 안 좋아 보인다. 바쁘게 움직이던 손이 멈추고 얼굴도 다시 환해졌다.

주위를 한번 둘러본 상인이 이곳을 지켜보는 이가 없는 걸 확인하고 물건을 꺼내 보여줬다.

“천추국에서 건너온 팔찌란다. 옥처럼 보이지만, 이게 사실 조약돌과 코끼리 상아를 깎아 만든 아주 귀한 물건이야.”

그가 보여준 물건은 척 보기에도 귀했다. 손톱보다 작은 동그란 돌을 엮어 만든 팔찌로 돌마다 색깔이 모두 비슷하면서도 조금씩 차이가 있어 신비로운 느낌을 물씬 풍겼다.

팔찌가 마음에 쏙 든 판극이 조심스레 물었다.

“그런데 얼마나 합니까?”

“이 물건도 잘생긴 공자에게 팔리면 좋아할 테니 특별히 싸게 해주겠네. 주머니에 얼마나 있느냐?”

“죄송하지만, 이것뿐이네요.”

판극이 주머니에서 은자 한 냥을 꺼내 보여줬다. 여태까지 모은 돈으로 그 액수의 가치를 잘 모르고 보여줬지만, 실제 가치는 상인이 꺼내놓은 물건을 모두 사고도 남을만한 큰돈이었다.

상인은 시치미를 떼며 판극이 보여준 은자를 가져갔다.

“큼, 이러면 내가 너무 손핸데 이것밖에 없다니 어쩔 수 없구나. 대신에 내 부탁 한 가지만 들어준다면 이건 이제 네 거다.”

“어려운 부탁은 안 됩니다.”

“물론이지. 기다려 보거라.”

그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띠며 소매 속으로 손을 넣었다. 그는 남들이 볼 수 없게 소매 안에서 쪽지를 주먹 안으로 감춘 후에 손을 꺼냈다.

“이걸 보```.”

“여어, 판극! 거기서 뭐하냐?”

은밀하게 뭔가를 말하려던 상인은 멀리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급히 손을 뺐다. 그리고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어질러진 물건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목소리의 주인공, 조숭은 판극이 있는 곳까지 다가와 재차 물었다.

“뭐하냐니까?”

“보면 모르십니까? 선물을 고르고 있었습니다. 여기는 어쩐 일이십니까?”

“이게 뭔 줄 아느냐?”

조숭은 한 손에 든 바구니를 들어 올리며 헬쭉 웃었다.

“운남 지역에서 서식하는 독개구리다. 이번 장터에 이게 나왔다는 소식을 듣고 부리나케 달려왔지 뭐냐. 껄껄.”

황색 몸통에 검은 점이 군데군데 박힌 독개구리들이 바구니 속에서 껑충 뛰고 있었다. 이름처럼 만지기만 해도 위험하므로 조숭은 두꺼운 장갑을 끼고 바구니를 애지중지하는 게 눈에 보일 지경이었다.

판극이 못마땅한 음성으로 물었다.

“그런 걸 왜 들고 계십니까?”

“이놈아, 이게 얼마나 귀한 개구린 줄 아느냐? 독성을 제거하고 사흘간 푹 삶은 다음 먹으면 한겨울에도 불알이 성난 두꺼비처럼 팽팽하게 부푸는 영약이란다. 어디 그 뿐이냐, 특히 무림인한테 효과가 직빵이라 단전을 튼튼하게 하는 데는 이만한 음식도 없다더라.”

조숭은 물어보지 않은 내용까지 굳이 설명했다. 그렇지 않아도 어디에 자랑삼아 떠들고 싶은 찰나에 마침 판극이 걸려든 것이었다.

그의 말이 길어지자 듣기 지겨워진 판극이 손사래를 쳤다.

“알겠어요. 많이 드시고 건강해지세요. 전 바쁘니 이제 가시던 길 가시지요.”

“쯔쯧, 너한텐 무공보다 싸가지를 먼저 가르쳐야 하는데. 어디 네놈이 산 물건이 무엇이냐?”

조숭이 아예 자리를 깔고 앉았다. 판극이 보여준 팔찌를 보더니 그도 눈을 반짝이며 관심을 보였다.

“오호라, 천추국에서 들여온 물건이로구나. 그래, 얼마를 주고 샀느냐?”

“저분께서 싸게 은자 한 냥에 주신다고 했습니다.”

“컥, 뭐? 으, 은자 한 냥?”

손에 든 바구니를 떨어뜨릴 만큼 깜짝 놀란 조숭이 난데없이 상인의 멱살을 잡았다. 은자 한 냥이 뉘 집 개 이름도 아니고 고작 장신구 하나를 그 돈에 팔았다니. 성인 한 명이 반년은 너끈히 먹고살 돈을 팔찌 하나와 바꿨다는데, 그게 사기가 아니고 뭐란 말인가. 판극이 순진하고 어려 보여서 이자가 사기 친 게 분명하다.

“네놈 간덩이는 고래 간이라도 떼다 붙였단 말이냐! 감히 신성한 련에서 사기를 쳐? 은자 한 냥? 저 어린애 장난감 같은 물건이 한 냥이라고?”

“이거 놓으시오! 마음에 안 들면 안 사면 그만이지, 당신이 뭔데 난리요? 제삼자는 빠지란 말이오.”

“이거 간덩이만 고래 간인 줄 알았더니 심보도 고래 심보가 따로 없는 놈일세. 어딜 사기꾼 놈이 이리도 당당하단 말이냐!”

“내 이래서 칼만 잡는 놈들이랑은 거래를 안 하는 것인데. 당신이 예술을 알아?”

“허, 내가 예술은 몰라도 박투술은 안다 이놈아. 어디 오늘 너 죽고```.”

조숭은 상인의 멱살을 격하게 흔들었다. 당장 한 대 칠 기세로 주먹을 올린 그를 판극이 제지했다.

“그만두세요.”

“엥? 뭘 그만둬? 이런 놈은 호되게 혼내줘야 다시는 못된 짓거리를 안 하는 법이다.”

“그만! 저는 원하는 물건을 얻었고, 저분은 돈을 얻었으니 됐습니다. 어차피 저한텐 쓸모도 없는 물건이니.”

“그, 그래? 생각해보니 네 말이 맞구나.”

불같이 화내던 조숭이 갑자기 태도를 돌변했다. 당사자가 필요 없다는데 자신이 나선다? 그보단 실리를 챙기는 게 낫다는 계산이 들었기 때문이다.

‘흐흐, 이놈을 잘 구슬려서 반만 내가 챙겨도 독개구리 다섯 마리는 더 살 수 있겠어.’

조숭은 근엄한 태도로 판극에게 말했다.

“여기는 내가 잘 정리할 테니 넌 어서 돌아가 수련에 매진하거라.”

판극이 상인을 보며 물었다.

“그래도 될까요?”

“그, 그래. 또 필요한 게 있으면 나중에 들리거라.”

“알겠습니다. 그럼.”

판극은 자리에서 일어나 미련없이 자리를 떠났다. 그의 모습이 멀어지자 조숭이 본색을 드러냈다.

그는 입에 손을 붙이고 속삭였다.

“이보시오, 우리 얼굴 붉히는 일 없이 반땅합시다. 내 그쯤에서 넘어가리다.”

“에잇, 진짜 도둑놈은 네놈이군. 난 필요 없으니 네놈이나 다 가지거라!”

텅. 텅.

노한 상인이 은자를 패대기쳤고 조숭은 그것을 냉큼 집어 품속에 넣었다.

“두말하기 없소! 으하하하핫, 이게 웬 횡재냐!”

조숭은 얄미울 정도로 대놓고 좋아했지만, 상인에겐 관심 밖의 일이었다. 그는 멀어져가는 판극의 뒷모습을 서늘한 눈으로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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