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중사 사중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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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등록일 :
2014.04.07 1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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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7.24 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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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5.14 1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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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중사 사중정 -4(2).

DUMMY

챙. 챙.

작은 남녀가 던진 두 자루 검이 연무장에 뒹굴었다. 판극은 검이 바닥에 부딪히는 청아한 소리를 신호로 지체 없이 달려들었다.

첫 공격은 역시 회축권. 판극이 아는 초식이라곤 그것밖에 없기 때문이었다. 연지완을 상대로 펼쳤던 기억을 되살려 먼저 주먹을 뻗어 시선을 분산시켰다.

슉.

역시 정식으로 무공을 배워서인지 냉수아는 쉽게 피했고 판극은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발을 걸었다.

“흥!”

눈에 훤히 보이는 뻔한 공격에 냉수아는 코웃음을 쳤지만, 이 또한 판극이 의도한바. 일전에 연지완과 대결했을 때와 비슷하게 흘러가고 있었다.

스슥.

‘됐어.’

뻗었던 발이 바닥을 비비며 회전했다. 일보 크게 내디딘 후 곧 이어질 권법에 판극은 성공을 직감했다. 그러나.

탁.

판극의 팔꿈치가 채 펴지기도 전에 무언가에 의해 가로막혔다. 판극이 급히 고개를 돌려 보니 냉수아가 한 손으로 가볍게 자신의 팔꿈치를 잡고 있는 게 아닌가.

냉수아는 판극을 초짜로 보고 무시했었는데, 사도련 무공을 알고 제법 능숙하게 사용하는 게 조금 놀라웠다.

“회축권? 이런 건 어디서 배웠대? 하지만.”

냉수아가 잡고 있던 팔을 밀쳤고 그 힘으로 판극이 휘청이며 밀려나고 이어지는 냉수아의 장법이 판극의 등 한복판에 적중했다.

파박.

판극은 등에서 느껴지는 화끈한 고통에 눈앞이 아득해졌다. 여자아이의 힘이라고는 믿기 힘든 아픔이 등 전체로 퍼졌다.

다행이라면 움직임에 문제는 없다는 점. 판극은 다시 자세를 다잡고 냉수아를 노려봤다.

‘어떻게 하지?’

판극의 마구잡이식 자세와는 다르게 냉수아는 상당히 안정적인 자세로 판극을 상대하고 있었다. 중심을 뒤로 둔 채, 한 손을 앞으로 내밀어 방어와 공격을 동시에 할 수 있었고 여차하면 각법까지 가능한 기본자세였다.

반면에 무공을 배운 적이 없는 판극에게 냉수아의 기본자세는 큰 벽처럼 다가왔다. 어떤 공격이든 막힐 것 같은 불안감, 그리고 실제 거리보다 훨씬 가깝게 느껴지는 압박감이 그를 주저케 했다.

“뭐야, 겁먹은 거야? 그렇담 내가 갈게.”

판극이 좀처럼 달려들 기미가 없자, 냉수아가 바닥을 박차고 빠르게 접근했다. 그녀는 내공을 싣지 않은 권과 각법으로 판극을 몰아붙였고, 판극은 막거나 피하는 데 급급하다가 간혹 들어오는 날카로운 공격엔 얻어맞기도 하였다.

공격을 위태롭게 방어하던 판극에게 위기가 찾아왔다. 직선으로 뻗는 공격은 어찌어찌 막았으나 변화를 보이며 곡선을 그린 공격에는 판극도 어찌할 재간이 없었기 때문이다.

더 싸우는 건 무의미하다고 판단한 냉수아가 변(變)의 묘리를 담은 권을 내질렀고 판극은 가슴 춤에 팔을 교차해 방어를 시도했다.

퍽.

“큭.”

냉수아의 권이 좀 더 빠르고 날카로웠다. 작은 틈을 비집고 들어온 주먹이 정확히 명치를 때린 것이다.

“괜찮아?”

냉수아는 숨을 제대로 못 쉬는 판극에게 다가가 물었다. 그녀가 손을 내밀어 부축하려 했지만 판극이 뿌리쳤다.

“저리 비켜.”

“....”

무안해진 냉수아가 한걸음 물러났다. 기껏 먼저 손을 내밀었더니 매몰차게 뿌리치다니. 사과하려던 마음이 싹 가시고 뱃속에서 부아가 치민다.

“흥. 센 척은.”

녀석은 배를 붙잡으며 일어났다. 더 싸워봤자 소용없다는 걸 모르는 걸까? 아니면 정말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걸까? 꼴을 보아하니 아직 무공도 제대로 못 배운 듯한데 대체 어떻게 이기려고 저리 애쓰는지.

“계속 하려고? 그냥 누워있지? 다치기 전에. 호홋.”

마음은 그렇지 않은데, 녀석이 자꾸 이기려 드니까 말이 자꾸 엇나갔다.

판극도 지지 않고 맞받아쳤다.

“절대 안 져.”

“흥! 고집좀 그만 세워!”

이번엔 냉수아가 먼저 달려들었다. 녀석의 센 자존심을 힘으로 눌러놓고 이 싸움을 끝내기 위해서였다.

보법을 밟아 빠르게 접근한 냉수아는 판극의 목을 향해 손날을 내리쳤다. 특별한 초식은 아니지만, 달리는 속도에 검술의 오의까지 더해져 보통 사람은 절대 막지 못할 공격이다. 게다가 녀석은 지금 눈까지 감고 딴생각에 빠져있어 냉수아는 성공을 확신했다.

슈욱.

손날이 허공을 갈랐다. 판극이 있던 자리는 빈 공기만 있었고 어느새 멀찍이 뒤로 물러난 판극이 바닥을 박차고 무섭게 달려들었다.

“뭐야? 무공을 익혔었어?”

냉수아가 보기에 판극의 움직임은 내공을 사용하지 않고는 불가능한 속도였다. 당연히 그가 무공을 모를 줄 알고 내공없이 싸우던 냉수아로서는 크게 당황할 수밖에 없는 상황. 급히 내공을 끌어올린 냉수아가 뒤로 뛰어오르며 손날을 휘둘렀다.

툭.

판극의 목 앞을 스친 손에 차갑고 단단한 물체가 걸렸다. 잠시 버티던 물건은 이내 힘없이 바닥에 떨어졌다.

‘목걸이?’

떨어진 물건은 은으로 만들어진 평범한 목걸이었다. 특별한 장식도 보이지 않은 시장에 가면 누구나 쉽게 구할 수 있을 법한 저가의 물품으로 보였다.

“아...”

그런데 판극의 반응은 그렇지 않다. 무언가 다른 사연이 있는 물건인지, 동작도 멈추고 넋을 놓은 채 끊어진 목걸이만 바라보고 있었다.

냉수아는 괜히 더 골려주고 싶은 마음에 판극보다 먼저 목걸이로 다가가 발로 걷어찼다.

텅. 텅. 텅.

목걸이가 힘없이 굴러 연무장 바깥으로 나가자 판극이 새하얗게 질려 소리쳤다.

“이게 무슨 짓이야!”

판극의 성난 목소리가 고막을 때렸다. 핏기가 가실 정도로 굳게 쥔 주먹에서 그가 얼마나 분한지 고스란히 전해졌다.

명백한 살기. 피부가 따끔거릴 정도로 전해오는 기운에 냉수아는 저도 모르게 뒤로 물러났다.

‘왜지? 나보다 훨씬 약한 아인데...’

그런데 이게 뭐람? 눈만 마주쳤을 뿐인데 머리칼이 쭈뼛 서고 손아귀는 땀으로 흥건했다.

떨어진 목걸이를 조심스럽게 주워든 판극이 마치 보물을 다루듯 조심히 주머니에 넣고 시선을 돌렸다.

그의 깊은 눈동자가 더욱 깊게 가라앉았다. 좀전의 화난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평온한 모습으로 돌아왔다.

그 모습이 냉수아를 더 오싹하게 만들었다.

“저, 저기....”

“다시 시작할까?”

“그게 아니고 미...”

냉수아가 무슨 말을 하려고 꾸물댔지만, 판극이 틈을 주지 않았다. 신속하게 달려든 판극은 있는 힘껏 주먹을 내질렀다.

딱.

냉수아는 팔을 들어 막았지만, 계속 이어지는 판극의 공세에 속절없이 물러나야 했다.

분명 막무가내로 뻗는 주먹인데 아까와는 달랐다. 보다 날카로웠고 훨씬 무거웠다. 냉수아가 아무리 애써봐도 반격할 방법은 찾지 못했다.

위태위태하게 막던 냉수아가 한계를 느끼고 보법을 이용해 뒤로 훌쩍 물러났다. 판극과 멀찍이 간격을 벌린 그녀는 얼른 손을 내밀어 싸움을 관두려 했다.

“야, 잠깐만.”

툭.

그러나 판극은 그 모습을 보지 못했고 바닥에 떨어져 있던 검을 발로 찼다. 팽그르 회전하며 날아간 검이 냉수아의 얼굴 쪽으로 날아갔다.

“꺄악!”

당황한 냉수아가 급히 얼굴을 손으로 보호했지만, 연약하기만 한 손으로는 잘 벼려진 검을 온전히 막을 수 없으리라.

스윽.

그 때, 검은 그림자가 아이들의 근처로 빠르게 접근했다. 그림자의 주인공은 망설임 없이 날아가는 검을 향해 손을 뻗어 정확히 손잡이를 낚아챘다.

“이런 쒸벌. 이 망나니 같은 자식이 누구 앞길을 조질려고 련주의 딸래미한테 칼을 던져?”

검을 잡은 조숭이 판극을 향해 눈을 부라리고 소리쳤다.

그제야 이성을 되찾은 판극은 자신의 실수를 깨달았다. 그러자 뭉퉁하게 보이던 주변의 환경이 점점 또렷이 보이고 벌 떼가 윙윙대는 것 같던 귀도 서서히 원래 소리를 찾아갔다.

가장 먼저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오른 사가 보이고 그 뒤로 조그마한 여자아이가 겁에 질려 넘어지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다리가 풀린 것인지 털썩 주저않은 냉수아는 다시 일어나지 못하고 멍하니 정면만 바라봤다. 그리고 판극과 눈이 마주친 순간, 참고 있던 눈물을 한꺼번에 터뜨렸다.

“이, 이이, 으아아앙.”

경공을 사용해 빠르게 달려오던 미화가 더욱 속도를 높였다.

“아, 아가씨. 괜찮으세요?”

“끄윽, 한 개도 안 괜찮아. 끄앙.”

곁에서 안절부절못하던 조숭이 판극에게 속삭였다.

“어서 사과해라.”

“....”

“이 망할 자식아. 련주의 귀에 들어가면 귀찮아지니 어서 달래보라고!”

조숭의 목소리가 살짝 커졌다. 자기 일 이외에는 만사가 귀찮은 조숭에게 이런 일은 딱 질색이었다. 제자를 가르친다는 핑계로 적당히 시간이나 때우며 내상을 치료하는 일에 전념하려했던 애초의 계획이 어쩌면 오늘 일로 물거품이 될지도 모르기 때문에 조바심이 났다.

야차처럼 무서워진 얼굴의 사부와 아직도 펑펑 우는 냉수아 때문에 난처해진 판극이 마지못해 사과했다.

“죄송합니다.”

조숭은 짐짓 근엄한 목소리로 판극을 꾸짖었다.

“이놈! 누가 나한테 사과하라더냐! 아가씨한테 당장 사과하지 못 할까!”

“예.”

쭈뼛거리며 냉수아에게 다가간 판극이 조심히 손을 내밀었다.

“괜찮아?”

“...”

“내가 심...”

“됐어."

판극의 손을 뿌리친 냉수아가 빨갛게 변한 눈을 크게 뜨고 일어났다. 옷에 묻은 먼지를 털어낸 그녀는 울음을 달래려 크게 심호흡을 하고 말했다.

“후우. 내가 졌어. 그리고 누가 시킨 것도 아니고 그냥 친구하고 싶었어. 이젠 필요없지만.”

“뭐? 친구?”

“가자, 미화.”

냉수아는 판극의 말을 듣지 않고 연무장을 빠져나갔다. 냉수아보다 더 분한 표정으로 자리를 지키던 미화가 조숭에게 경고했다.

“아무리 사공자 님이라 해도 이번 일은 결코 그냥 넘어가지 않을 겁니다.”

미화가 살벌한 말을 남기고 떠나자 조숭이 뒤쫓아가며 그녀를 말린다.

“이, 이봐. 미화라고 했나? 그러지 말고 우리 대화 좀 합세. 그래도 아이들 싸움인데 일을 크게 만들어서 뭣 하겠나? 그리고 나는 오늘 처음 저놈을 가르친 거고, 아니지 사실 가르친 적도 없어요. 이, 이봐. 어이! 내 말이 아직 안 끝났잖아, 치사하게 경공쓰지 말라고!”

똥씹은 표정이 된 조숭은 터덜터덜 걸어 원래 있던 그늘로 가 궁둥이를 깔고 앉았다.

목걸이를 매만지며 상념에 빠진 판극에게 조숭이 괜히 심술을 부렸다.

“야 이놈의 자식아, 빨리 검 안 휘둘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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