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 상흔의 잔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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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의대화
작품등록일 :
2020.05.11 10:15
최근연재일 :
2023.02.28 1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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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1.22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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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쪽

[2권] 9장_자유, 도시 그리고 재회_ 2화_얽힘(3)

DUMMY

그렇게 외면하기 싫었던 심연과 다시 마주하게 된 벨리안느는 애써 무시하기보단 굳은 마음으로 그 심연에 어둠 한조각을 덫붙이기로 했다.


“저.. 미드갈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거에요?”


그나마 말길을 턴 바트만에게 그렇게 질문을 던졌고, 벨리안느의 말에 놀란 것도 잠시 바트만은 이내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대답을 해주었다.


“나도 자세한 이야기는 들은 적이 없어 모르오. 하지만 이곳에 오기 전에 아내와 딸 둘이서 유스틴리츠에서 살았다고 하더만.”


“......”


유스틴리츠.

인형들의 무혼 반란에 의해 최초로 멸망해한 인간의 도시.


그 현장에 직접 있었던 벨리안느였기에 미드갈이 어떤 일을 겪었을지 눈에 선했고, 때문에 울컥하는 심정으로 룩스를 부축하는 미드갈의 뒷모습을 바라보게 되었다.


‘옛날 일이라 치부 한다하셨지요? 하지만.. 당신의 모든 것을 앗아간 원흉이 바로 눈앞에 있다면 그래도 용서할 수 있겠어요?’


룩스를 카니엘에게 넘긴뒤, 음식값을 셈하려는 그를 붙잡고 그렇게 물어보고 싶었으나 이 모든 것을 파멸로 이끌게 뻔한 질문이었기에 침묵을 선택한 벨리안느였다.


그 갑갑함에 그녀는 술기운에 절은 숨을 내쉬며 고개를 떨궜고, 때마침 탁자 위에 있던 염수어의 하얗게 익은 눈동자와 시선이 맞자 헛 구역질을 올라오는 것이었다.

그러자 동시에 속에 있던 럼주향이 입과 코안을 가득 메우며 세상이 핑 돌았고, 결국 벨리안느는 즐거움 속에 취했던 염수어의 살코기를 다시 뱉아줘야만 했다.


“어이 카니엘! 우린 다른 방법으로 인형들에게 복수하러 갈 건···! 컥! 왜 그래?”


“이사람아. 임자 있는 사람에게 뭔 개소리를.. 자, 자. 신경쓰지말고 둘이서 좋은 밤 보내시게!”


몇일 간 함께 있어본 결과, 그들의 다음 목적지가 어디인지 짐작한 카니엘은 이자벨이 부디 방금 말을 듣지 못했으면 했다.

그 생각에 여관 문앞에서 서둘러 미드갈 일행을 배웅을 한 뒤, 이자벨을 향해 고개를 돌렸으나, 그런 걱정을 할 상황이 아님을 깨달았다.


“괜찮아?”


단숨에 술자리로 뛰쳐온 카니엘은 제대로 몸을 가누지 못한 채 힘겹게 일어나려는 이자벨을 부축했다.


“뒷정리는 걱정말고 어서 가서 눕히게.”


뒤늦게 상황을 인지한 바트만이 엉망이 된 술자리를 보고 그렇게 말했고, 그에 카니엘은 고개를 숙여 감사의 표한 뒤 이자벨을 부축해 계단을 올라 방으로 돌아갔다.


///////


제대로 몸조차 가누지 못해 카니엘에 안기다시피 방안에 들어온 이자벨은 그러나 곧바로 잠에 들지 않고 침대에 멍하니 앉아 있었다.

이후, 바트만이 들고 온 따뜻한 차까지 마시는 등 겉보기에는 정상같아서 마법으로 술을 빨리 깨는 방법이 있는지 생각될 정도였다.


“괜찮아? 괜히 미안하네.. 식사에 참여하자고 해서..”


그녀의 상태를 확인할 겸 그렇게 말은 건네었으나 돌아오는 것은 침묵이었다.


그 뿐만 아니라, 그녀는 마치 다른 세상에 있는 사람처럼 시선조차 주지 않은 채 그저 창밖의 밤하늘만 바라보는 것이었다.


“..이자벨?..”


다시금 조심스레 말을 붙이자 그제서야 이자벨은 서서히 고개를 돌렸고, 그런 그녀의 시선을 마주한 카니엘은 순간 흠칫하고 말았다.


열린 커튼 사이로 들어오는 푸르스름한 달빛.

그 달빛으로 물에 잠긴듯한 방안.

그리고 미동도 없이 서글픈 눈동자만 천천히 움직이는 소녀.


“카니엘.”


“...왜 그래? 무슨일 있어?”


그 깊은 눈동자보다 더욱 가라앉은 말투에 당황한 카니엘은 살짝 뒤늦게 반응을 해야했다.


“너 또한 어느 정도 세월이 지나면... 인형에게 복수하는 지금의 길과 다른 길을 걸을 수 있을까?”


내리깐 시선.

꽉 부여잡은 이불.

술자리에서 미드갈이 했던 이야기와 관계 있는 것 같았지만, 도대체 무엇 때문이 저렇게 긴장하는 것일까?


“글쎄... 무혼 반란 후 미드갈은 어떻게 살았는지 몰라도 나는 최근까지 인형들과 싸워 왔으니까.. 다른 길을 걷는다는 것이 쉽게 상상이 안되네.”


“여전히.. 미워할 수밖에 없다?”


“그야.. 월영군의 주적은 인형들이니까. 지금 당장이라도 눈앞에 선하게 떠올릴 수 있는 동료들의 죽음 앞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거지.”


“그렇다면..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났다고 할 수 있는... 네 형에 대한 죽음은?.. 그리고.. 그 인형에 대해서는..?”


그 물음에 카니엘 머리속에 떠오른 두 가지 상반된 기억들.


평소라면 처참하게 죽어간 형의 모습과 그 죽음을 아무렇지 않게 집행하는 인형의 얼굴만 떠올랐을 것이었지만 술기운 때문인지 그 이전의 노란빛의 기억들도 떠오르는 것이었다.


무혼 반란이전까지 너무나 착실히 어머니의 역할을 했던 리시엘의 온화한 웃음.


“..확실히.. 처음 검을 잡았을 때보단 분노가 덜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용서할 수는 없지.”


그말에 더욱더 떨궈지는 이자벨의 고개.


“대신 예전엔 당장 죽이고 싶은 마음 밖에 없었다면, 지금은.. 한가지 묻고 싶은 것이 생기긴 했어.”


“..무엇을?”


“도대체.. 왜 그랬냐고. 어머니를 대신했던 행동들은 무엇이냐고. 그리고... 형을 죽인 것을 혹시 후회를 하냐고.”


“······”


“아무래도 그렇게 과거의 일들을 정리해야지만 그 뒤의 것도 생각할 수 있을 것 같아.”


카니엘의 그 말에 벨리안느는 숙였던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

노빌리스크로 오기 전에 인형을 처분할 때 보았던 분노로 이글거리던 눈빛과 사뭇다른 씁쓸한 눈빛.


그리고 밀려오는 복잡한 감정들.


그에게 용서받을 일말의 가능성을 확인했다는 안도감과 동시에 그 용서를 구할 최소한의 자격이 자신에게 있는지에 대한 의구심.


‘아르센에게 마법을 부여한 일을 후회하는가? 아니.. 무혼 반란의 주역인 그를 만든 것을 후회하는가?”


그 질문에 쉽사리 대답할 수 없음을 깨닫고는 심장이 덜컥한 벨리안느였다.

때문에 정말로 이것이 자신의 진심인지 다시 생각해보려 했지만 물리적인 이유 때문에 쉽지 않았다. 겉으론 멀쩡한척했지만 사실 숙취 때문에 당장이라도 쓰러질것만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왜 이런 이야기를 하는거야?”


이 상태에서 이야기를 더 나눴다간 되돌릴 수 없는 실수를 할 것만 같았고, 여태껏 깨어있던 원인인 답답함도 어느 정도 풀렸기에 벨리안느는 붙잡고 있던 끈을 놓기로 했다.


“나 또한.. 다른 길을 걷고 싶어서...”


그렇게 눈이 스르르 감기는 순간, 벨리안느는 한줌의 빛이 흩뿌려지는 것 처럼 마음속 진심을 희미하게 남긴 뒤 기절하듯 침대에 쓰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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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5 [3권] 10장. 미지(未知)에서_ 3화_ 변화의 틀(1) 21.05.17 38 0 8쪽
124 [3권] 10장. 미지(未知)에서_ 2화_ 카릿치오스 (3) 21.05.06 36 0 11쪽
123 [3권] 10장. 미지(未知)에서_ 2화_ 카릿치오스 (2) 21.04.30 43 0 7쪽
122 [3권] 10장. 미지(未知)에서_ 2화_ 카릿치오스 (1) 21.04.28 41 0 9쪽
121 [3권] 10장. 미지(未知)에서_ 1화_ 필멸지 (2) 21.04.22 42 0 12쪽
120 [3권] 10장. 미지(未知)에서_ 1화_ 필멸지 (1) 21.04.19 58 0 9쪽
119 [2권. 끝] 9장_자유, 도시 그리고 재회_ 3화_재회(끝) 21.04.13 53 1 10쪽
118 [2권] 9장_자유, 도시 그리고 재회_ 3화_재회(7) 21.04.01 60 1 7쪽
117 [2권] 9장_자유, 도시 그리고 재회_ 3화_재회(6) 21.03.26 55 1 12쪽
116 [2권] 9장_자유, 도시 그리고 재회_ 3화_재회(5) 21.03.16 51 1 9쪽
115 [2권] 9장_자유, 도시 그리고 재회_ 3화_재회(4) 21.03.09 52 1 10쪽
114 [2권] 9장_자유, 도시 그리고 재회_ 3화_재회(3) 21.02.24 113 1 8쪽
113 [2권] 9장_자유, 도시 그리고 재회_ 3화_재회(2) 21.02.09 55 1 7쪽
112 [2권] 9장_자유, 도시 그리고 재회_ 3화_재회(1) +1 21.01.26 56 2 8쪽
111 [2권] 9장_자유, 도시 그리고 재회_ 2화_얽힘(5) +1 21.01.22 94 2 9쪽
110 [2권] 9장_자유, 도시 그리고 재회_ 2화_얽힘(4) +1 21.01.22 53 2 10쪽
» [2권] 9장_자유, 도시 그리고 재회_ 2화_얽힘(3) +1 21.01.22 65 2 7쪽
108 [2권] 9장_자유, 도시 그리고 재회_ 2화_얽힘(2) +1 21.01.22 64 2 8쪽
107 [2권] 9장_자유, 도시 그리고 재회_ 2화_얽힘(1) +1 20.12.28 52 2 7쪽
106 [2권] 9장-자유, 도시 그리고 재회_ 1화_클레이 루트(5) +1 20.12.17 61 2 7쪽
105 [2권] 9장-자유, 도시 그리고 재회_ 1화_클레이 루트(4) +1 20.12.16 53 2 9쪽
104 [2권] 9장-자유, 도시 그리고 재회_ 1화_클레이 루트(3) +1 20.12.14 56 2 10쪽
103 [2권] 9장 -자유, 도시 그리고 재회_ 1화_클레이 루트 (2) +1 20.12.08 59 2 7쪽
102 [2권] 9장 -자유, 도시 그리고 재회_ 1화_클레이 루트 (1) +1 20.12.08 48 2 8쪽
101 [2권] 8장 -여정_ 4화_죄인의 바램 (5) +1 20.12.02 52 2 11쪽
100 [2권] 8장 -여정_ 4화_죄인의 바램 (4) +2 20.11.20 57 3 7쪽
99 [2권] 8장 -여정_ 4화_죄인의 바램 (3) +2 20.11.11 62 3 10쪽
98 [2권] 8장 -여정_ 4화_죄인의 바램 (2) +2 20.10.28 58 3 8쪽
97 [2권] 8장 -여정_ 4화_죄인의 바램 (1) +1 20.10.26 54 1 9쪽
96 [2권] 8장 -여정_ 3화_ 달무리 작전 (3) +1 20.10.21 57 2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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