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 짖는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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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연어진
작품등록일 :
2020.05.11 11:29
최근연재일 :
2020.06.16 1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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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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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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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1,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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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6 0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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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9쪽

굴러온 복덩이를 걷어차는 방법

이 글은 실제 일어난 사건들을 토대로 재구성한 것입니다.




DUMMY

그는 밤 사이사이 인나에게서 그녀의 삶과 가족에 대해 들었다.


“엄마도 교포에요.”

“아... 안 그래 보이시던데.”

“노력하셨어요.”


많은 것이 이해되는 말이었다.


한국어를 전혀 못하는 상태에서 인나의 부친이 유학을 와 두 사람은 만났다. 두 사람은 그곳에서 삼남매를 낳았고, 이후 아이들을 한국에 유학 보냈다. 위의 두 아이와 달리 막내 인나의 유학 때는 참지 못하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살기 시작했다고 그녀는 말했다.


“저도 태어난 곳이 그곳이라 여기는 낯설었어요. 그래도 주변에 한국인 친구들이 많았고 아빠는 집에서는 한국어만 쓰게 했어요. 그때 엄마는 지금보다 더 개방적이어서... 그래서 성교육도 일찍 받았어요. 한국에 와서 만난 친구들이 그런 점들을 너무 몰라서 놀랐었어요.”


그가 어색하게 느끼는 부분을 인나는 느끼지 못한다. 그는 그 차이를 오늘도 여실히 느끼는 중이다.


“너무 일찍 성교육을 받았던 언니는 남성혐오 조금 있었지만, 금방 괜찮아졌어요. 부모님은 잘 모르지만 언니가 사귄 남자는 많아요. 비혼주의자라 결혼을 안 하는 것뿐인데.... 오빠는 사실 바람둥이인데 엄마나 아빠는 잘 몰라요. 오빠는 자신의 본모습을 봐주는 사람을 찾고 있데요. 그래서 일부러 이상하게 입고 다니고 그래요. 그래봐야 차가 비싸니 다들 눈치 채고 달라붙는데. 차는 자존심이라고 또 아무거나 끌고 다니지 않아요.”


나이차 많은 오빠를 동경했기에 카레이서를 꿈꾸던 시절이 있었다고 인나는 말했다. 가족 모두 차를 좋아한다는 말도 조심스럽게 했다. 그는 인나가 살아온 환경, 주변인들, 생각 그 모든 것이 낯설기만 했다. 자꾸 그녀의 몸을 터치하는 이유는 꿈이 아닌가 싶어서다. 자신과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 이렇게 가까이 있어도 되는지 그는 걱정까지 들었다. 인나는 그 행동을 오해해 적극 호응했다. 아니라는 말을 그는 하지 못했다. 거부할 생각은 몇 초 안가 사라져버렸다.


“후아! 아...아까 어디까지 말했죠?”


더 들어야 하나. 이미 너무 많은 정보가 머리를 채우고 있었다. 그는 인나의 말 대신 자신의 생각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하다 느꼈다. 허나 인나는 몸을 감싸오며 몸의 감각까지 모두 자신의 의지대로 이어가려 했다.


“맞아, 오빠에 대해 말했죠. 오빠가 꿈꾸던 사람. 제게 그런 사람이 날씨가 아닐까 생각했어요. 제가 화장도 지우고 추레하게 입어도... 아, 그 옷 날씨껀데. 흐으. 어제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두근거리고... 옆에 있어서 그런 것 같고.... 자요?”


“아뇨.”


그는 몸을 돌려 누워 인나를 보았다. 팔 한쪽을 인나에게 점령당해 그는 다른 쪽으로 돌아누울 수도 없었다.


“그것 때문이었어요?”

“뭐가요...?”

“화장 지운 얼굴 보고, 아무렇지 않게 행동해서.”

“그것도 있지만. 술 취한 절 최대한 안 만지려고 들고... 그런 점도... 제가 입을 빤쮸까지 사주는 남자는 본 적 없고요.”

‘빤쮸라니... 귀엽기는 한데.’


가끔 위화감이 드는 단어사용은 귀국자녀라 그런 것일까, 그는 생각했다.


“인나씨.”

“...네, 날씨.”

“뭐, 하나만 물어볼게요.”


진지해진 그의 눈빛과 말투에 인나는 설렘과 두려움을 동시에 느꼈다.


“네... 아, 떨려요. 말하세요.”

“....직업이 뭐에요?”


인나의 눈이 빠르게 깜빡거렸다. 끌어 올려 덮었던 이불이 그녀가 몸을 일으키며 천천히 미끄러져 내려갔다.


“....결국 물으시는군요.”


그는 침을 삼켰다. 드러난 그녀의 나신 때문이 아니었다. 그가 걱정하고 직면해야할 문제가 눈앞에 나타났기 때문이다. 그보다 중요한 것들이 많았지만....


“사실은...”

“그 전에. 저는 직업에 귀천이 없다는 식상한 말을 하려고 합니다.”

“풋... 알았어요. 제가 조금... 전문적인 일을 하고 있어요.”

“아...”


이제 말하는구나. 그는 주먹을 쥐었다.


“배연전자 CS(Customer Satisfaction)부 고객센터 경기팀장이 제 정확한 직함이에요. TM이라고 함축해서 말해서 죄송했어요. 불만접수만 받는 것이 아니라 고객의 의견을 수집해 각 부서에 전달하고, 의견조율을 하는 일도 하고, 때론 소송에 관련된 일처리도 하는 곳이라 설명하기 어려웠어요. 비밀스러운 점도 있고... 그래서...죄송해요. 지금은 말할 수 있어요. 제가 하는 일은......”


낯선 단어들이 많이 등장해 그는 정신을 집중해 인나의 말을 들었다. 집중한 모습에 그녀는 어려웠나 싶어 쉽게 풀어 말했다.


“예를 들어서.....”


그녀의 기준에서만 쉬운 설명이었다. 전문용어가 섞여 나오자 그는 더욱 혼란스러워졌다. 혼란 속에서 그는 자신이 단단히 오해하고 있음을 실감했다. 꾸며낼 수 있는 말들이지만, 그 배경과 가족과 여러 것들을 종합해보면 절대 인나가 유흥업소에 다니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그는 이미 오래전부터 그를 알고 있었다. 알지만, 자신을 위해 애써 그렇게 믿으려 했었다. 자신의 비겁함을 깨닫고 씁쓸해졌지만, 그는 내색하지 않았다. 그럴 수도 없으니까.


“그럼 왜 여기까지 오신 거였어요? 배연이면 본사가 서울에 있지 않나요? 집도 서울이시고.”

“말했잖아요. 일탈이라고.”

“일탈...”

“낯선 도시에 가서 평소 하지 않던 모습으로 놀자고, 그렇게 동료들이 제안했어요. 서른살을 맞이하는 처녀...파티였죠. 제 친구들은 대부분 결혼하고, 바쁘고 서른에 대해 크게 생각하지도 않아요. 저와 비슷한 생각하는 사람들은 역시 저처럼 일하는 여성들이죠. 그래서 함께 왔어요. 덕분에 날씨를 만났고.... 헤에.”

“...그건 이해했습니다.”


조금도 이해하지 못했다. 일탈을 하려고 나왔다가 자신을 만난 사람이 왜 일탈을 일상으로 이어갈까. 그것이 제일 큰 의문이었다.


“그런데 이곳에서 출퇴근하려는 것은...?”

“가까워요. 차로 20분. 여기선 10분 거리잖아요. 저에게 더 유리해요. 그리고 저희 집 가봐서 아시겠지만 주차난이 심해요.”


지하주차장에 차가 많긴 했지만 주차할 공간도 많아 보였었다.


‘오늘만 적었던 것인가.’


“차 빼면 못 넣을 때도 있어서 일부러 안 빼고 아빠차 타고 출근할 때도 있고요. 도심지면 차 없어도 되겠지만, 기술부 쪽이나 서비스부서들은 연수원 옆쪽에 자리해 있어서요. 통근버스가 다니지만 그것도 이용하기 불편하고....”


인나의 말을 들으며 새삼 그는 자신이 얼마나 비겁했는지 느끼고 있었다. 자꾸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란 생각도 했다. 그런 자격지심이 싫어 그는 물었다.


“연봉이 얼마인데요? 오빠분도 말했고... 궁금하네요. 참고로 전 년 수입은... 잘 모르겠지만 보통 사람들의 연봉은 버는 것 같아요.”


아주 바쁘게 움직이면 그 정도의 돈을 벌 수 있었다. 몸과 마음이 다 치쳐버리지만 불가능한 금액은 아니었다.


“저도 그래요. 그 정도에요.”


인나는 말하지 않으려는 듯 그를 끌어안았다.


“우리 자요. 이제... 자려면 수면 시간이 부족하잖아요.”


‘자려면? 아... 또...’


경험이 많지 않았기에 그는 인나의 성욕이 정상적인지 판단할 수 없었다.


“지금 말해주세요. 나중에 충격 받아서 쓰러지기 싫어요.”

“....그럼 할 일 끝나고 나서 마지막에 알려줄게요.”


지금까지 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말하지 않아도 그는 무슨 일을 해야 하는지는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쉽지 않은 일이었다. 자꾸 귓가에 피임하라는 인나 어머니의 목소리가 맴돌고 있었다. 사체가 내는 듯한 괴기한 환청도 들려온다.


-------자체검열 삭제-------


그는 추측해본다. 무엇하나 내세울 것 없는 그였다.


‘소유한 집도 그리 대단하지 않은 것이다. 동결자산이라 부를 수 있을 만큼 거래가 되지 않는 지역의 소유물이다. 금전적 가치는 한없이 낮다 평가할 수 있다. 직업도 뚜렷하지 않고, 미래에 대한 목적이나 준비도 없다. 나와 상반된 환경 속에서 살아온 인나씨와 너무 많은 것이 다르다. 다른 점에 혹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일시적인 것이 된다. 하지만 그녀의 가족은... 이렇게 동거를 하게 되면 정이 생겨버리지 않을까. 아니... 그런 걱정은 뒤에 하자. 우선은 왜 그녀가 내게... 역시, 속궁합인가. 일탈하기 위해 만난 상대와 우연히 궁합이 좋다는 것을 깨닫고...?’


잠시 비참함을 느꼈지만 다르게 생각하자 그는 기분이 좋아졌다.


‘음? 나... 잘한다는 뜻이잖아?’


자신감이 다시 샘솟는다.


“후후....”


웃는 그를 보고 인나는 결심했다.


“이제 말해줄게요......정도 에요.”


인나는 조심스레, 그는 속으로 크게 억을 외쳤다.


‘그 정도였구나.... 그... 그랬구나... 비싼 차 몰만 하구나...’


그의 자존감이 급속히 낮아졌다. 인나는 그를 너무나 빨리 파악해냈다.


“피곤하신가보다. 오늘은 그만 잘까요?”

“예? 예....”


충분히 한 것이 아니었나? 그는 잠들려는 인나를 깨워 자존감을 회복해야하나 고민했다. 허나 그의 눈앞에 돌연 나타난 끝없이 이어진 ‘0’ 에 그는 눈을 감았다.


‘남들이 들으면 행복한 고민이라 하겠지. 내 속도 모르고...’


그가 생각해봐도 인나는 덩굴 채 굴러온 호박이다. 자신이 매달린 것도 아니고, 달라붙었다. 엄청난 추진력으로 만난 지 삼일 만에 동거까지 성립시켰다. 가족에게 소개를 하며 설득해버렸다. 사는 환경이 다르다며 자책할 시간도, 자괴감을 느낄 틈도 없었다. 그런 점에서는 분명 감사하지만....


‘시체가 있잖아! 다락에!’


쉽게 잠이 오지 않아야 하는데 사람의 온기가, 자신을 믿어주는 이의 숨소리가 그를 빠르게 잠으로 이끌었다.


‘행복한데, 미치겠다....’


*


“수리가 필요하겠군.”


예고는 분명 주말이었다. 허나 과감한 추진력은 집안 내력인지, 인나가 출근한 후 그녀는 말없이 들이닥쳤다. 집안을 둘러보던 그녀는 마당에서 집돌이를 잡으러 뛰어다니는 남편을 불렀다.


“여보.”

“...어. 왜?”

“들어와요.”


급히 뛰어온 남편에게 몇 마디 속삭인 후 그녀는 그를 보았다.


“인나 방은 어디면 좋겠나.”

“어디든... 제가 쓰는 방은 이쪽이고...”

“저 방이 좋겠군.”


아버지의 방을 손짓하고 그녀는 서슴없이 움직였다. 문을 열고 안을 살핀 그녀가 물었다.


“부모님 방이었나.”

“아버지가 쓰던 방이라 들었습니다.”

“...그냥 유지하고 싶은가.”

“아닙니다. 혹시 새어머니 쪽에서 가져갈 것이 있나 싶어서 둔 것입니다.”

“...보존하고 싶다면 그렇게 하게.”

“아닙니다. 슬슬 치울 생각이었습니다.”

“이 방이 좋겠어. 외풍도 덜하고. 이방 보일러는 따로 설치되어 있나.”

“예.”

“수선할 곳이 보이는데, 괜찮겠지?”

“...물론입니다.”


일이 커지겠다 싶으며 그는 전전긍긍했지만, 인나 모친의 말에 한마디로 싫다 말하지 못했다. 그녀는 유명 건축사무소의 소장과의 친분을 과시하며 그의 집이 변하는 모습을 설명하게 했다. 새로 짓지만 않을 뿐, 전부 뜯어 고친다는 설명이었다.


“사용할 자재로 이 집 고유의 특징이 있는 기둥과 천장의 보등은 최대한 살려서...”


알아듣기 어려운 설명을 더 꼬아서 하던 소장이 다락을 보고 싶다고 말했다.


“거긴 너무 지저분해서... 나중에 치우면 그때 보시죠. 그리고... 집을 수리하는 문제는 인나씨가 오면 상의하겠습니다.”


다락을 거론하지 않았다면 그는 바로 허락했을 것이다. 자다 깨서 맞이한 인나부모님을 보고 정신이 없어 그는 다락에 뭐가 있는지 잊고 있었다.


“상의할 게 있나? 그냥...”


인나엄마의 말은 벨소리에 끊어졌다. 핸드폰을 꺼내 보는 그녀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으응? 응, 그래 인나니? 얘는... 내가 언제... 아니야. 엄마에게 그렇게 말할래? 누구에게 들었어?”


자신을 보는 눈초리에 그는 급히 고개를 저으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아빠구나... 그래... 아니라니까? 아... 알았어. 알았다니까. 너 그렇게 소리 지르면 엄마 슬퍼. 알았다고. 응... 그럼 엄마 기다릴까? 아... 집에서 기다리라고. 응, 돌아갈게. 간다고.”


통화를 마친 여인의 표정에 그는 괜히 미안해졌다.


“딸 키워봐야 소용없다니까... 소장님, 계획은 조금 미뤄야겠어요.”


안도의 한숨을 속으로 내쉬던 그에게 여인의 시선이 닿았다. 급히 표정을 정돈한 그에게 그녀가 말했다.


“불고기 좋아하는지 묻던데?”

“예?”

“오늘 저녁. 뭐가 좋을지 묻더라고. 화를 내면서도 식사 걱정을 하고 있어. 내 딸이...”


고개를 가볍게 흔들고 옅은 미소를 지으며 그녀가 볼 때, 그는 미소를 보고 인나를 떠올렸다.


“이상한 기분이야.... 나쁘지는 않아. 다 컸다 싶은데, 서운하고... 기다리지 말고 가라는데, 이건 서운해. 나도 내 딸이 만든 음식 먹어보고 싶은데... 먹어봤나?”

“예...”

“맛은 어때?”

“잘... 잘하시던데요. 무척.”

“혼자 살아서 입맛이 무뎌진 것은 아니고?”

“....그런 점도 있겠지만, 객관적으로 봐서도 나쁘지 않다 생각합니다.”

“...좋아. 아직은 괜찮아. 마음에 쏙 들지는 않아. 피임은 하고 있지?”

“허...그...예....”


주변 눈치를 보며 답하고 그는 고개를 들지 못했다. 그런 모습에 인나 엄마는 슬쩍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곁에 있다 민망함을 느낀 또 다른 남자에게 시선을 돌렸다.


“화단을 만들려면 저 벽부터 어떻게 해야 한다고 말했죠, 소장님?”

“예?! 예. 지지기반이 약해서... 방법은 있습니다. 콘드, 콘크리트! 콘크리트입니다. 콘크리트 경사면에 구멍, 험! 구멍을 내서 그곳에 나, 나무나 꽃을 심는 방법도 있습니다.”


‘민망하셨구나. 나도 그런데 오죽하실까.’


그는 소장에게 동질감을 느꼈다. 말을 자꾸 더듬으며 땀을 흘리는 소장을 위해 그는 호응해주었다.


“흙이 쓸려 내려오지 않아 좋겠네요. 그 방식.”

“아, 비가 내리면 자주 쓸려 내려왔습니까?”

“네. 나무나 꽃이 죽으며 뿌리가 잡아주던 곳이 약해졌다고... 누가 그러시더라고요.”

“예, 그렇겠지요. 담장은 직접 높이셨습니까?”

“네, 제가 재료 사다가 쌓았어요.”

“벽돌 쌓을 때, 철근 넣으셨습니까.”

“철근... 아뇨.”

“역시... 그럼 구멍에는 시멘트를 채우셨습니까.”

“아, 채워야 하는 것이군요. 몰랐어요.”

“일렬로 쌓지 않은 것이 그나마 다행이군요. 두 줄이고. 밖에 차들이 주차되어 있던데, 주차하다 조금 강하게 받으면 무너졌을 겁니다.”


차가 담장밖에 서 있는 경우는 흔하지 않다. 그가 살기 시작한 이후 담 옆에 차를 대던 이들은 사라졌다. 소장이 본 차들은 모두 인나의 부모님이 몰고 온 이들의 것이다. 그는 그런 이야기를 굳이 할 필요는 없다고 느꼈다.


“그럼 보강부터 하는 것이 좋겠죠?”

“예, 벽돌로 높여서 무게를 늘리는 것보다 다른 재료를 쓰는 것이 좋습니다. 처마가 달린 옛 돌담길처럼 꾸미는 것도 좋고. 어떻습니까?”

“뭔가... 좋을 것 같네요. 얼마나 들까요?”


현실에 대한 감각이 떨어지지 않는 그의 질문에 건축소장은 매우 공정한 가격을 제시해 주었다.


“칠백만원 정도 예상이 되는군요.”

“....그렇군요.”


그가 담을 높이면 들인 비용은 17만원이다. 재료 중 상당부분은 완전히 철거되지 않은 곳에서 수거한 재활용재료로 충당했다.


“담이 무너져서 내 딸이 다치게 할 수는 없지.... 담장 수리비는 우리가 지불하겠네. 그리 알게.”


통보부터 하는 모습에 그는 기분나빠하지 않았다. 미소처럼 이런 부분도 인나가 닮았다 생각하며 옅은 미소를 지었다. 허나, 그의 말투는 강경했다.


“부당합니다.”

“...자존심 생각해서 하는 말이었네. 괜한 자존심 때문이라면 다른 말로 해주고 싶지만... 정말 내 딸이 걱정되어서 하는 말이야. 들어주게. 부탁하지.”

“...오면 상의해보겠습니다.”


이런 의견충돌도 그는 부담스러웠다. 사람들이 집안 여기저기를 살피는 모습에도 그는 미칠 지경이었다. 사체의 양복과 증거물 1호는 다락으로 올려둔 상태지만, 다락에 시체가 있으니 안심이 될 수 없었다.


‘돌아오면... 모질게 굴자. 더 정들기 전에.’


그는 인나와 헤어지기로 결심했다.


*


“자 아~.”

“혼자 먹을 수 있다니까요.”

“....아아~!”

“어휴...”


그는 말할 기회를 잡지 못했다.


-이거 봐요. 귀엽죠? 국자가 이렇게 귀여운지 몰랐어요.


잔뜩 장을 보고 와 하나씩 풀어내며 기뻐하는 얼굴에 나가달라는 말은 나오지 못했다. 꼬투리를 잡아 화를 내려고 했지만 그 어떤 것도 좋기만 했다. 입가에는 연신 미소가 지어졌다. 마주앉아 밥을 먹는데 그저 행복하기만 했다.


띠링!


그때 콜 사인이 울렸다. 그는 꺼놓지 않은 어플을 보고 좋은 생각을 떠올렸다.


“인나씨. 저 일하러 나가야 해요.”

“그만두세요.”

“네?”

“낮일 하세요. 저랑 퇴근 시간 비슷하게 맞춰요.”

“그...”


일하는 시간이 달라 밤에 늘 외롭게 지내야 한다는 것을 빌미로 헤어지려 했다. 인나는 그가 계획의 출발선에 서는 것조차 허락하지 않았다.


“뭐든 좋아요. 그냥 집에서 저만 기다리는 것은 옳지 않겠죠. 그래서 일하는 것은 허락할게요.”

“인나씨. 절 구속하려고...”

“안 되...요...?”


간절하게 보는 눈빛에 그는 경악했다. 도저히 빠져나갈 수 없는 덧에 빠진 자신을 인식하는 순간이었다.


“....됩니다. 일구하겠습니다.”

“자주 쉬어야 하고요. 돈도 적당히 주고... 흔하지 않을 텐데... 저도 알아볼까요?”

“그건....”

“합리적 판단을 해주세요. 저랑 같이 있는 것이 싫다면 어쩔 수 없지만...”

“찾아보겠습니다.... 안되면 협조 부탁드립니다.”

“좋아요. 자, 이것도 먹어봐요. 아~!”

“인나씨도 드셔야지요. 자... 아...”


서로 먹여주는 것보다 각자 자신의 음식을 직접 먹는 것이 합리적이라는 것을 둘은 모르는 듯했다.


‘이게 아닌데...’


굴러들어온 호박임을 알면서도 걷어차야 하는 상황이다. 알면서도 마주보면 의지는 흐물거리며 녹아내린다. 이불을 걷어차고 자는 여인을 깨워 돌려보내고 싶은 충동이 일지만, 고개만 돌리면 보이는 여인의 얼굴에 그는 어느새 미소를 짓곤 했다.


‘안 돼... 이건 아니야.’


그는 서둘러 사체를 떠올렸다. 날이 따뜻해져 콘크리트 틈을 뚫고 자라는 잡초를 떠올렸다. 봄이 온다. 더는 숨길 수 없는 시기가 도래할 것이다.


-당신 미치광이였어? 꺼져!


인나에게 미움 받기 싫다. 자수하면 알게 되겠지만, 그래도 여인에게 사체를 들켜 그 상황을 직접 마주하는 것은 싫었다.


‘내일은 꼭...’


결심하며 보지만, 잠든 인나의 얼굴을 보는 그의 입에는 흐뭇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이 글은 픽션입니다. 등장인물의 이름과 단체등은 사실과 같지 않습니다.


작가의말

부득이하게 공모전이 건전지향이라며 전혀 그렇지 않은 글들이 보이지만 저는 지키려 합니다. 나중에 19금으로 전환하며 삭제한 부분을 복구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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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참치 2 +2 20.05.24 20 5 26쪽
30 참치 1 +2 20.05.24 20 5 19쪽
29 변태라서 나쁘지 않아 2 20.05.23 23 4 21쪽
28 변태라서 나쁘지 않아 1 20.05.23 23 4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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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만세형 20.05.21 22 5 23쪽
24 관2 20.05.21 22 5 29쪽
23 관1 +2 20.05.20 26 6 21쪽
22 또 다른 단서 +3 20.05.20 31 9 23쪽
21 국밥집 2 20.05.19 29 6 25쪽
20 국밥집 1 20.05.19 32 5 21쪽
19 행복은 아프지 않다 3 20.05.18 29 7 16쪽
18 행복은 아프지 않다 2 20.05.18 24 5 14쪽
17 행복은 아프지 않다 20.05.17 26 3 17쪽
16 외출에는 신발이 필요하다 20.05.17 35 4 14쪽
15 호박이 찾아준 다서 20.05.16 34 5 19쪽
» 굴러온 복덩이를 걷어차는 방법 20.05.16 40 8 19쪽
13 급발진 2 20.05.15 40 9 26쪽
12 급발진 1 20.05.15 46 6 19쪽
11 오래된 집 20.05.14 53 6 20쪽
10 그들의 일탈 20.05.14 48 4 15쪽
9 수상한 여인 +2 20.05.13 57 7 15쪽
8 유품 20.05.13 51 5 21쪽
7 증거물 20.05.12 57 4 18쪽
6 유서는 반송처가 필요하다 20.05.12 72 7 20쪽
5 떠나기 위한 준비 20.05.11 95 7 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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