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 짖는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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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연어진
작품등록일 :
2020.05.11 11:29
최근연재일 :
2020.06.16 14:07
연재수 :
9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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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37
추천수 :
502
글자수 :
841,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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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22 0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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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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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8쪽

주차장 2

이 글은 실제 일어난 사건들을 토대로 재구성한 것입니다.




DUMMY

취객을 상대하는 일이라 험한 일도 자주 생긴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보다 더 긴장된 적은 없다고 태영은 생각했다. 무엇보다 상대의 눈빛이 이상했다. 살인청부업자였다는 소문이 도는 지배인처럼 알 수 없는 공포감을 주는 눈빛이었다. 그렇기에 태영은 전처럼 그를 자극하지 않았다. 남자가 웃으며 내민 바나나우유도 거부하지 않았다.


“궁금한 게 있는데.”

“가시죠. 그냥.”


태영은 쉬러 들어간 동료가 어서 나와 주길 바랐다. 키도 자신보다 작고 힘도 자신이 밀릴 것 같지 않지만 상대가 보통이 아니라 그는 여겼다. 그도 그럴게 앞서 뒤를 쫓다가 상대가 멈춘 순간 품에 손을 넣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태영은 남자에게서 거리를 유지했다.


“이거... 취소할게.”


남자는 핸드폰을 꺼냈다. 시력이 좋지 않은 태영은 안경을 고쳐 쓰며 보고서야 시청 민원게시판이라는 것을 알아냈다.


“삭제. 됐지?”

“정말 신고... 한 겁니까.”

“했는데, 생각해보니 고생하는 그쪽이 괜히 욕 먹을까봐.”


고맙긴 하지만 크게 감사하지는 않을 일이었다. 신고해도 뒷배가 든든하기에 단속은 시늉에 그칠 것을 태영은 잘 안다. 하지만 남자가 빨리 떠나주길 바라고 있기에 그는 어색한 미소를 지어주었다.


“여긴 왜 이 꼴이야?”


남자는 자연스럽게 바나나우유를 뜯으며 물었다. 태영은 남자의 질문이 가진 의도를 생각해보았다.


“뭐가... 말입니까.”

“주차장 없나? 보니 건물 전체가 클럽소유 같던데.”

“지하주차장 싫어하는 놈... 손님들이 이용하는 곳입니다.”

“그랬군... 이야... 그런데 차 좋은 거 많다? 음, 진짜 비싼 차는 안 보이네?”


차는 태영의 관심사였다. 싸구려 외제차라도 살 생각에 돈을 모으는 중이었다.


“진짜 비싼 차들은 발렛해 드립니다.”

“그래? 그럼 여긴 하급이 세우나?”

“다 그런 것은 아니....”


왜 꼬박꼬박 대답하나 심경이 불편해진 순간 태영은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씨발... 눈빛 졸라 살벌하네.’


진짜 미친놈을 만났다 싶은 순간 태영은 놀랐다.


‘이 새끼... 형산가?’


자세히 보니 그럴 수도 있는 차림새였다. 태영은 남자에게 두려움을 느꼈기에 그가 멀리 골목 입구에서 서성이며 불빛을 여기저기 비춰보던 것을 지켜보았다. 사라졌을 땐 안심했지만, 그가 갑자기 돌아와 편의점에서 산 바나나우유를 내밀었기에 더 큰 두려움을 느꼈었다. 그런 상대의 신분이 형사라면 무엇보다 안심이 된다. 그럴 수 있다 여기며 태영은 조금 더 적극적으로 답변해주기로 마음먹었다.


“뭘 알고 싶으십니까.”

“아? 그냥... 지나가다 보여서... 음, 여긴 넓어서 차 세워도 빠져나가겠네. 그렇지?”


태영은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절로 가는 차는 없나봐?”


그가 손짓한 곳은 큰길로 나가는 좁은 골목이다. 단속이 잦은 길이라 고객들이 이용하는 경우는 드물다. 태영은 골목 입구를 살피던 모습을 보았기에 그가 형사가 확실하다 여겼다. 무슨 범죄에 대한 질문일까. 혹시 클럽에 누가되진 않을까 고민할 때 그가 다시 물었다.


“요즘 비싼 차 한 대 돌아다니더라고. 부가틴가? 한 이삼억되는 차 있잖아. 여긴 없네...”


‘부가티가 이삼억이면 나라도... 못 사겠지만. 차는 좆도 모르는 놈이군.’


태영은 혹시 자신의 말에 클럽에 문제가 생길까 입을 다물었다.


“내가 차에 관심이 조금 있어. 요샌 별의별 모습으로 꾸미고 다니더라고. 난 깔끔한 게 좋은데.”

“저도... 흠.”


동조한 자신에게 꾸짖으며 굳게 입을 다물 때, 남자가 말했다.


“전조등에 눈 모양 헤드라이트 달고 다니는 차도 보이더라고.”

“어, 나도 봤는데?”

“봤어? 어디서?”


순간 다가온 남자를 피해 태영은 뒤로 물러났다.


“....왜 그래? 바나나우유 안 좋아해?”


멀리 선 가로등 불빛에 비친 남자의 눈은 도저히 정상인의 것으로 보이지 않았다. 피가 떨어질 것처럼 붉게 충혈 되어 있었다. 태영은 한발 더 물러나며 급히 바나나 우유 뚜껑에 손가락을 찔러 넣었다. 벌컥벌컥 마시는 태영을 보고 남자는 옅은 비소를 지었다.


‘씨바! 독?!’


그 순간 태영은 자신의 목을 움켜쥐었다. 독이라도 탔을까. 갑자기 목을 찌르진 않을까 별 생각을 다하던 그에게 반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태영아.


동료의 목소리에 절로 미소를 짓던 그는 고개를 돌리는 순간 남자의 표정이 보였다. 굳은 표정. 그건 지배인이 화를 내기 전 짓던 표정이기도 했다.


“야! 오지 마! 씨발!”

“뭐? 왜? 뭐, 뭐냐!”


태영이 물러나고, 다가오던 동료도 주춤 물러났다. 남자는 그들의 행동에 놀란 표정을 지었다.


“이 새끼 미친놈이야! 가서 형들 불러 씨발!”

“뭐? 넌 어쩌려고, 씨발놈아!”

“몰라 씨발! 아, 씨발... 이 새끼 연장 숨겼어. 씨발. 너라도 살아라.”

“야, 태영아. 너 누구야! 야!”


소리치던 남자에게 그가 고개를 돌렸다.


“나?”

“헉! 씨발, 이 새끼 뭐야! 눈 왜 저래?”

“도망가라고 병신아! 씨발.”


태영은 울고 있었다. 그의 동료도 울먹이며 뒤로 물러났다 앞으로 나오길 반복했다.


“왜들 이러는지... 나 갈게. 가기 전에 그 차 어디서 봤는지 알려주면 좋겠는데?”


“나도 몰라! 모른다고! 씨발, 언제 왔는지 내가 어떻게 알아! 나 공부도 좆도 못했는데! 저리가! 왜 오는데, 씨발! 나 엄마 있어, 씨발놈아. 엄마 있다고!”


“무슨...”


“알았어, 봤어! 봤다고. 언젠지 몰라! 이제 가! 됐잖아! 꼭 날 죽여야 되냐고!”


“야! 태영아! 형 불러올게!”


“가지마! 이 새끼 너 가면 나 찌른다고!”


“어?! 어어! 씨발. 이 새끼야! 찌르지 마! 태영이 내 친구라고!”


그는 그저 황당했다. 왜 태영이 그러는지, 그의 동료는 왜 또 난리인지 그는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그는 오늘 차 뒷문의 헐거운 곳을 조이기 위해 스패너를 사용했다. 움직이지 않을 때면 추위를 느끼기에 허름한 점퍼를 입는다. 수리를 하고 점퍼에 스패너를 넣고 차에 올라탄 후 그 사실을 잊었다. 운전 중에는 점퍼를 입지 않기에 차에서 내린 후에야 입고 있는 점퍼 안주머니에 스패너를 넣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단서를 쫓아 움직이던 도중에는 또 그 사실을 잊었다.


자신의 품에 스패너를 가지고 있음을 깨달았다면, 몸을 움직일 때마다 반사된 빛에 태영이 겁을 먹었다는 것을 이해했을지도 모른다.


“오긴 왔었다는 것이군.”


그가 예상한 차량이 존재한다는 것도 큰 수확이었다. 그는 주춤거리며 울먹이는 두 사람을 유의하며 뒷걸음질 쳐 물러났다. 그 행동도 두 사람에겐 매우 위협적인 것이었다. 그가 멀어지자 두 사람은 급히 다가섰다. 서로의 손을 꼭 잡고 그들은 눈물을 급히 훔쳤다.


“씨발...”

“우리 산거냐.”

“...몰라. 저 새끼 또 올지도 몰라. 아니, 올 거야.”

“....일 그만둘까.”

“바꿔달라고 하자.”

“바꿨는데 그 새끼 죽으면.”

“....씨발.”

“저... 저 새끼 안 갔어.”


그가 골목 입구에 멈춰 선 모습을 보고 두 사람은 급히 달릴 준비를 했다. 잠시 뒤 그가 사라졌지만 두 사람은 골목 입구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


“이상한 애들이네.”


찍어 둔 현장 사진들을 보며 걷던 그는 어느새 편의점 앞에 도착했음을 깨달았다. 시장했던 그는 집에서 먹을 간편한 음식들을 산 후 계산대 앞으로 다가섰다. 그곳에는 그가 꺼려하는 아르바이트생이 있었다.


“오늘은 정크 푸드네요.”

“...저에게 관심 있어요?”

“아저씨... 그런 착각은 고이 접어서 지갑에나 넣으세요.”


무안한 그가 볼을 긁적일 때, 아르바이트생은 굳은 표정으로 계산을 끝냈다. 그가 서둘러 나가려 할 때 아르바이트생이 말했다.


“삼촌... 사장님이 그런 거 함부로 말해주면 안된다고 했어요.”

“예?”

“차요. 차 궁금하다면서요.”

“아...! 봤어요?”

“보긴 봤는데... 너무 가깝거든요?”


그는 급히 물러났다.


“봤는데 난 모르겠던데... 삼촌은 비싼 차라고 했어요. 이삼억 한다고. 그래서 자세히 봤어요.”

“어떤...”

“삼촌이 말해주지 말라고 했다니까요? 이런 것도 개인정보 누출 될 수 있어요.”

“아...예...”


실망하며 돌아설 때 여인이 말했다.


“나 보고 싶은 영화 있는데...”

“네?”


멍해졌던 그는 이내 알아들었다.


“영화 보여드리겠습니다.”


용기 내 꺼낸 말에 금세 답이 오자 아르바이트생이 살짝 미소를 지었다.


“내일 쉬는데...”

“내일 저도 쉽니다.”

“그럼... 다섯시에. 나인몰에서... 보던가요.”


왜 시간과 장소를 정할까. 그는 귀찮게 오갈 필요 없이 해결할 생각이었다.


“보고 싶은 영화 제목이 뭔가요.”

“아무거나 잘 봐요.”


그는 그녀에게 전화번호를 묻고 톡으로 그 자리에서 영화관람권을 선물했다. 안가고 뭘 하나 싶었던 그녀는 기막혀 그를 보았지만, 그는 전혀 모르는 눈치였다.


“누가 영화보고 싶데요?”

“예? 왜 화를 내시는지... 보고 싶다고 하셨잖아요.”

“어브... 와. 이런 사람도 있구나... 됐어요. 혼자 보면 되지. 자, 이거 가져갔다가 돌려줘요.”


내민 USB를 잡는 순간 그는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깨달았다. 허나, 이미 늦은 감이 있었고 인나와의 관계가 완전히 정리되지 않았기에 그는 변명처럼 말했다.


“전에 본 제 애...애인이랑 지금 잠시 떨어진 상황이라서. 누굴 만날 생각은...”

“애인이었어요? 엄청 이쁘던데.”

“예쁘죠... 네.”

“근데 왜 그런 말해요? 내가 뭐래요? 웃겨.”


그는 무안해하며 급히 나왔다. 집으로 오르려던 그는 골목 앞 삼거리에서 기막힌 한숨을 내쉬었다.


“누굴 놀리나.”


문제의 차량이 어디론가 사라져 있었다. 다른 차들도 위기감을 느껴선지 골목 앞은 차 한 대 없이 비워져 있었다. 그는 한숨을 내쉬며 집으로 들어가 집돌이를 끌고 나왔다. 차를 가져올 생각이던 그에게 난관이 기다리고 있었다.


“올라가라니까?”


집돌이가 조수석에 앉길 거부했다.


“너 그럼 어떻게 집에 오려고?”


고집을 부리는 집돌이는 결국 그가 강제로 조수석에 앉혀야 했다.


“너까지 내 속을... 에휴.”


화를 냈지만 집으로 돌아오는 동안 그는 잠시 동안의 행복감을 느낄 수 있었다. 불안해하던 집돌이가 그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왔기 때문이다. 그 온기가 그에겐 사치스런 행복이었다. 행복감은 매우 짧았다.


‘오늘 무슨 날인가.’


그의 집 담벼락에 차가 서 있었다.


‘뚜껑 고쳤나보네.’


잊을 수 없는 차였기에 기억하지만, 그는 조금도 반갑지 않았다. 그는 차에서 내리지 않고 주차된 차를 지나가며 차창을 내렸다.


“마나씨! 마나씨!”


잠시 뒤 마나가 차 밖으로 얼굴을 내밀었다. 위치상 그의 모습이 보이지 않을 때, 차창 밖으로 집돌이가 얼굴을 내밀었다.


“집돌아? 어, 날씨?”

-차 뒤로 빼요. 주차하게!

“아, 네네!”


마나가 차를 뒤로 빼고, 그가 담벼락 가까이 차를 붙여댄 후에야 두 사람은 대문 앞에서 만날 수 있었다.


“무슨 일이에요?”

“인나가 불안하다고 해서요.”

“예?”

“저더러 날씨 감시를 하래요.”

“...네에?”

“풋! 놀라긴. 난 괜찮잖아요. 같이 손잡고 자도 아무 일없는 사람이니.”

“그건... 예?”

“풋! 저도 들어와도 된다고 했잖아요. 빈말이었어요?”

“아...아뇨. 아닌데...”


인나가 온 후의 이야기다. 인나 없이 마나가 오는 상황은 바라지도 않았고, 있어서도 안 되는 일이었다.


‘미치겠네.’


그는 오늘 만세형을 옮길 생각이었다.


“우와! 이젠 완전 큰 차 몰고 다니네요? 샀어요?”

“네? 아... 대출받아서.”

“정말 물류일 하려고 하나 봐요?”

“이미 출근했습니다.”

“아... 그럼 내일도?”


토요일인 오늘과 내일은 쉬는 날이다.


“내일은... 네. 내일도 나가봐야죠.”


마나와 종일 집에 있게 될까 싶어 그는 거짓말을 했다. 힐끔 본 마나의 차에는 짐이 가득 실려 있었다. 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마나가 차로 움직였다.


“도와줘요.”

“허....예.”


마나의 짐을 옮긴 그는 그녀의 요청에 차 구경까지 시켜주어야 했다.


“어, 추워. 비린내도 나고. 정말 일하고 왔나 봐요.”

“예.”

“저 큰 상자는 뭐에요?”


마나가 가리킨 것은 공구함이었다.


“특별한 화물 담거나... 집에 못 돌아올 때 자려고 만든 겁니다.”

“자요?”


다가선 마나는 열쇠가 걸려 있어 열어보지는 못했다. 그를 보았지만 그도 열어줄 생각이 없었다.


“방수처리해서 냄새나요.”

“아.”

“포장되어 있지만 냄새 빠지기 전까지는 계속 닫아 둬야 상품에 손상이 없어요.”

“으...네. 나가요. 여기 너무 추워요.”


냉각기를 켜지 않았지만, 오가는 동안 켜두고 다녔기에 냉기가 모두 빠지지 않은 공간에 마나는 못 견뎌했다. 집돌이는 매우 좋아했지만.


“가자고. 이놈아.”

“집돌아. 집에 가자.”


그의 말에는 엉덩이를 붙이고 버티던 집돌이가 마나의 한마디에 차에서 뛰어 내렸다.


“저...”


마나는 자신과 그가 먹을 조리된 음식들을 사왔다. 그는 그녀가 꺼낸 초밥과 함께 먹으려 컵라면을 만들었다.


-이건 껌이야. 씹어 먹는 거야. 앙앙.


마나는 집돌이게 준 선물을 꺼내놓고 집돌이를 기쁘게 해주고 있었다.


“...인나씨는 잘 지낸데요?”


슬쩍 묻자 마나는 돌아보지 않고 답했다.


“궁금하면 전화하면 되죠. 그치, 집돌아. 우구구.”

“으음...”

“잘 지내요.”


손을 털고 일어난 마나가 다가오며 말했다. 그녀는 그 옆 의자를 당겨 앉아 두 개의 컵라면 중 그가 먹으려고 예정한 것을 자기 앞으로 당겼다.


‘미역맛은 별론데.’


미용을 위해 좋을 것 같다며 나름 생각해 꺼낸 미역 맛 나는 라면은 그의 몫이 되었다.


“날씨 보고 싶다고 애기처럼 울면서 전화했어요, 어제. 술 마셨나 싶었는데, 술은 안 마셨더라고요. 그러게 왜 갔냐고 물으니까, 그걸 알면 내가 여기에 왜 있냐고 화를 내더라고요.”

“...큭.”

“웃지 마요. 난 화가 났는데...”

“미안합니다.”

“됐어요. 물. 물.”

“아, 예.”


물을 붓고 뚜껑에 손을 얹은 마나는 토끼신발을 흔들다 말했다.


“집에 가만히 있으니까 왜 그렇게 집이 크게 느껴지는지. 전에 모르던 빈자리가 크게 오더라고요. 이미 오래전부터 마음을 비웠는데... 사실 그날 이전까지 저희 수십년 같이 산 노부부처럼 지냈어요. 오붓한 부부 말고, 오래전 틀어진 부부요. 서로 얼굴도 보지 않고, 챙기지도 않고. 인나가 집에 오는 날도 점점 줄어들고.... 어느 날 문득, 어떤 것이 인나 칫솔인지 잊어버리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우리 헤어졌구나 싶었죠.”


그는 슬쩍 뚜껑을 열어 면의 상태를 확인했다. 그 순간 올라간 수증기를 따라 그가 고개를 들었을 때, 다시 마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인나가 말하기 전부터 날씨 생각했어요.”

“저...저요?”


급히 고개를 숙여 본 그를 마나는 즐겁게 바라보았다.


“오빠 같다고 할까. 편해요. 말도 잘 통하고. 조금 멋있기도 하고.”

“아아... 제가 좀 그렇죠.”

“좋아요.”

“예...?”

“그런 실없는 농담도... 여기 오면 집 같아요. 진짜 집에 가면 숨 막혀서 빨리 나오고 싶어지는데...”


그도 마나가 어떤 가정환경에서 살았는지 조금은 알고 있다. 그게 그리 큰일인가 싶은 부분이 많았지만, 울먹이며 고통스러웠다 말하는 마나의 말에 사람은 자신의 고통이 가장 크게 느껴진다고 새삼 느꼈다. 부잣집에서 태어나 잘 먹고 잘살던 군대 후임도 고충이라며 너무 많은 간섭을 하는 부모님에 대해 이야기 했었다. 그땐 이해할 수 없었던 타인의 고통이다. 지금도 공감은 못하지만 이해는 한다.


“제가 벌어서 산 그 집보다 더. 분명 불편한데.... 참 이상하죠? 여기오니 더 확실해지네요. 그 집 팔아야겠어요. 저 들어와 살아도 되죠?”

“어....그건.”

“인나와 관계없이요.”


그는 마나의 눈을 피했다.


“그게 어려울 것 같지 않나요?”

“인나가 마음 변해서 날씨 버리면, 제가 곁에 있어 줄게요.”


대수롭지 않은 말투였기에 그는 말뜻을 뒤늦게 깨달았다. 놀라 보자 마나가 미소 지었다. 이어진 말에도 그는 마나가 진심인지 구분할 수 없었다.


“성적 만족도는 채울 수 없지만 정신적 만족? 그건 할 수 있어요. 이 큰 집 유지하는데 돈도 많이 들잖아요. 제가 반 부담 할게요. 월세도 드리고.... 그래도 안돼요? 집돌이 산책도 시킬게요. 네? 네?”

“그렇게 귀엽게 물으셔도... 어색하지 않을까요. 인나씨와 저...”

“그때 가서 봐요, 그럼. 어색해지면 그때 제가 나가면 되죠?”

“으음... 저 집 자주 비울 텐데. 혼자 있으면 무섭지 않겠어요? 이 주변 전부 폐가이고, 여기 우범지대로 지정되어서... 거기에 비싼 차를 몰고 다니는 젊고 매력적인 여인이라면...”

“그건 주의할게요. 차도 바꿀 생각이었어요. 여행 다닐 생각인데, 짐을 많이 못 싣고, 길 안 좋은 곳도 못 들어가고.”

“음...아, 우선 먹죠.”


이미 답할 말을 준비했지만 그는 밥은 먹고 보낼 생각이었다. 식사가 끝나갈 무렵 그는 참았던 말을 꺼냈다.


“오늘은 돌아가세요. 저도 마음의 준비가 필요하고, 방도 치워야 하니까요. 오늘은 가시고 다음에 짐... 옮겨드리죠. 제 차로.”

“그건 좋은 생각이네요!”


손뼉을 치며 좋아하는 마나를 보며 그는 가볍게 웃었다. 가주는구나 싶어서다.


“다음 쉬는 날에 같이 가요.”


‘허...?’


“오늘은 늦었잖아요. 짐도 일부지만 가져왔고. 방은 그냥 저 방 쓸게요.”


그의 방 옆 작은 방을 가리키자 그가 급히 고개를 저었다.


“저, 저 방은 외풍이 엄청납니다.”

“그래요? 안방은 너무 큰데... 전 작은방이 좋더라고요. 음. 그럼 하는 수 없네요. 날씨 방을 제가 쓸게요. 날씨가 안방 쓰세요.”


‘....안 가겠지.’


마나가 갈 생각이 없음은 하나씩 벗겨지는 그녀의 양말에서 드러났다. 그는 안방과 자신의 방 어느 곳을 마나에게 내어줘야 하는지 고민했다. 곧 잠기지 않은 자신의 방을 내주는 것은 위험하다 판단했다. 그 스스로 이성적 제어를 하지 못할 경우를 고려한 것이 아니다. 어떻게든 오늘 밤 만세형을 옮길 생각이기 때문이다.


‘어떻게 할까...’




이 글은 픽션입니다. 등장인물의 이름과 단체등은 사실과 같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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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4

  • 작성자
    Lv.14 척추요정
    작성일
    20.05.22 00:30
    No. 1

    재미있게 보고 있습니다.선호작, 추천 박고 갑니다.
    시간 남으시면 제 소설도 한번만 놀러와 주세요.
    건필하시길 기원합니다.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26 연어진
    작성일
    20.05.22 16:12
    No. 2

    좀비물 저도 써본적 있는데 완결내시길 바랄게요. 답선하고 왔어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18 테드창
    작성일
    20.05.22 00:33
    No. 3

    안녕하세요. 재미있게 잘 보고 있습니다.
    오늘도 재미있어요! 누르고 갑니다.

    시간 나시면 제 서재에도 놀러와서 제 소설도 읽어주셔요 ^^*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26 연어진
    작성일
    20.05.22 16:12
    No. 4

    답선하고 왔어요. 다른 사이트도 연재중이라 글은 한편밖에 읽지 못했네요.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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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유서는 반송처가 필요하다 20.05.12 72 7 20쪽
5 떠나기 위한 준비 20.05.11 95 7 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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