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타지에 핵이 떨어졌다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퓨전

완결

생각.
작품등록일 :
2020.05.16 10:33
최근연재일 :
2022.03.28 12:05
연재수 :
287 회
조회수 :
295,468
추천수 :
14,095
글자수 :
1,877,846

작성
20.12.31 20:05
조회
804
추천
46
글자
17쪽

유논(7)

DUMMY

「이제 세상은 안전했다.」


「관념과 실제의 경계를 흐리게 만들었던 과다한 차원 에너지는 이제 내 마법 없이도 안정적으로 순환해, 균열을 타고 들어와 균열을 타고 나가고 있었다.」


「실로 기적과도 같은 성과.」


「나는 그간 내가 보낸 시간을 떠올렸다.」


「유충이 번데기로 변해 고치 속에 잠기듯.」


「그렇게 느려진 의식의 세월만 수천 년이었다.」


「그러나 바깥세상은 달랐다.」


「내가 눈을 떴을 땐 고작 십여 년 정도밖에 지나지 않은 뒤였다.」


「그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 동안, 환상세계는 대격변이라도 거친 듯 바뀌어 있었다.」


「곳곳에서 지구인들이 보였다. 그것도 내 고향의 머리 검고 눈 색도 어두운 동방인들이.」


「어째서인지는 곧바로 깨달을 수 있었다. 내가 민둥산 위에 내버려두고 떠났던 첫 번째 게이트. 그게 점차 넓어지며 결계의 영역을 뚫고 튀어나와, 한국인들에게도 모습을 드러내고 말았던 것이리라.」


「그리하여 곳곳에 보이는 다른 차원의 사람들과, 다른 차원의 문물들.」


「산을 점거한 지구인들의 기지를 중점으로 환상세계의 주민들과 지구인들이 천천히 교류를 나누고 있었다.」


「지구 측에서는 발달한 과학기술을 이용한 문물, 발전한 탈것이나 일상생활의 유용한 물품들을 보여주고 환상세계 측에서는 그들 나름의 발전한 신비를 보여준다. 마법이나 정령술, 검술 같은 것들을.」


「일견 보이는 그 풍경은 내가 두려워한 미래와는 달리 평화로워 보여서, 다른 곳에서는 어떨까 싶어 퍼져나간 감각을 공간 단계로 움직이려던 때였다.」


「찌릿한 고통이 마력체계를 뒤흔들었다. 너무나도 익숙해 무의식적으로 발동한 주문과 달리, 그 주문에 힘을 불어넣을 마나와 마력이 없었기 때문이다.」


「나에겐 이제 흑색마나와 공간마력이 없었다.」


「아직 감각이 완벽하게 사라진 것은 아니니 몇 달간 노력하면 힘을 쥐꼬리만큼은 회복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그러면 뭐하겠는가.」


「그렇게 알뜰살뜰히 모은 마나와 마력을 전부 쏟아 부어도 과거의 내가 만든 서클 하나를 움직이지 못할 것만 같았다.」


「차라리 다른 중립 성향의 마나와 마력을 사용하는 게 훨씬 효율적일 지경.」


「다른 종류의 마나들에 대한 감응력에도 어느 정도 이상이 생기기는 했으나, 흑색마나보다는 덜해 그만하면 다른 부족한 대마법사들의 흉내는 낼 수 있을 정도로 다룰 수 있었다.」


「그런 면에서 확실히, 이제 나는 흑색의 마법사라 불릴 자격이 없었다. 무색의 마법사라면 또 모를까.」


「그 고통스럽지만 동시에 익숙한 상실감을 안고 움직였다. 내 연구실 터는 이제 지구인들이 통제하게 되었으니, 다른 거처를 찾아야 했다.」


「그곳에서 한동안은 세상의 동향을 지켜볼 예정이었다. 이리도 많은 차원 균열, 게이트들이 생겨났는데 분명 어떤 방식으로든 사고가 일어나지 않을 리 없었다.」


「그저 사고 수준에서만 끝나면 다행이겠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도 범주에 두어야 했다. 환상세계와 지구간에 전쟁이 일어나기라도 하는 불상사는 어떻게든 막아야 할 터였다.」


···

···

···


「그렇게 몇 년간 세상을 살폈다.」


「다행스러운 점은, 내가 만든 차원가도次元街道를 타고 균열을 오가는 시공간 에너지에 사람들이 딱히 영향을 받지 않는 것 같다는 점이었다.」


「다른 세계로 넘어 가거나 돌아올 때마다 큰 어지러움을 느껴 토악질을 하거나, 두통이나 배탈을 앓는 경우는 있어도 전부 목숨이 위험한 수준은 아닌 듯 보였다.」


「그것 외에 문제라 할 만한 것이 있다면, 차원 균열을 타고 어디서 넘어왔는지 모를 다른 차원의 괴물들이 이따금씩 나타나는 경우가 있다는 점인데.」


「그것까지 내가 해결할 수는 없었다.」


「어차피 이곳 환상세계에 널린 것이 괴물들이다. 환상세계 사람들은 게이트에서 가끔씩 넘어오는 괴물들을 상대로도 금방 익숙해질 것이요, 지구인들은 그 괴물들로 환상세계의 살벌함을 미리 경험하게 될 것이다.」


「내가 관심을 가지고, 주의 깊게 지켜보는 문제는 차원 균열 그 자체보다는 그것을 타고 넘어온 지구인들과, 이곳 환상세계 사람들에게 달려 있었다.」


「세상은 넓었고, 여러 국가와 지역, 사람들이 있었다. 지구인들과 평화로운 관계를 맺고 교류하는 이들도 있었지만, 지구인들을 적대시하는 이들도 있었다.」


「마찬가지로 지구인들 중에서도 환상세계 사람들과 선한 목적과 공정한 방식으로 교류하는 이들이 있는 반면, 부도덕한 목적과 부당한 방식으로 접근하는 이들도 있었다.」


「사람들은 누구나 자신들과 다른 존재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지구에서는 오랜 기간 동안 백인과 흑인, 황인 등의 인종들이 서로를 차별해왔고, 환상세계에서는 인간, 오크, 엘프, 드워프 등의 여러 종족들이 오랫동안 반목과 전쟁을 일삼아 왔다.」


「그런데 하다못해 다른 피부색이나 종족도 아닌, 다른 세계의 차이가 그들 사이에 존재했다. 문화도, 종교도, 언어도, 기술도 너무나도 달랐다.」


「서로를 증오하거나 미워하기에는 지나치게 간편한 조건이었다.」


「그렇기에 흑색마나와 공간마력은 잃었을지언정, 다른 중립 성향의 마나와 마력으로 세계 전체를 시야 아래에 두고 있는 나는 지대한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


「지구와 환상세계 간의 증오가 점차 부풀고 있음이 선명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지구인들은 지구인들 나름대로 자기네들을 이유 없이 푸대접하고, 차별하고, 미워하는 환상세계의 사람들을 고운 눈으로 보지 못한다.」


「더군다나 그들의 마법이나 검술 등 신비한 기술들에 놀랐던 것도 예전의 일. 이제는 지구의 과학기술이 그것들에 비해 전혀 뒤쳐지지 않으며, 오히려 많은 면에서 우월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지구인들 입장에서는 점차 환상세계의 인간들이 미개해 보이기 시작한 것 같다. 공공연히 자기들 언어로 ‘야만인’들이라 말하는 것들이 들린다.」


「민주주의와 계급제 타파, 기본교육과 삶의 질 등의 여러 현대적인 개념과 삶이 자리 잡은 지구의 인간들 눈에는 환상세계의 인간들이 아프리카의 빈민들처럼 못 살고 못 먹는 주제에 자존심만 가득 찬 것으로 보일 것이다.」


「그들이 환상세계에 세운 군사 기지의 소리를 듣고 있으면 가장 자주 튀어나오는 고함.」


「저 미개한 벌레들을 빨리 쓸어버리자는 것. 미사일과 총으로 무장한 강철의 군대로 건방진 것들을 짓밟고 취할 것을 취하자는 내부의 목소리.」


「지구인들은 명백히 강자였고, 그들은 건방진 환상의 약자들에게 그리 오랫동안 관용을 베풀어줄 만큼 선량한 이들이 아니었다.」


「환상세계의 여러 특출한 자원들과 새로이 발견된 에너지, 그리고 문물들을 얻어가는 데에 평화적 교류의 방식이 유용해 아직까지 그것을 고집하는 것일 뿐.」


「만일 환상세계의 사람들이 그들의 요구를 거절하거나, 교류의 폭을 좁히는 식으로 그들을 시험한다면, 전쟁을 가로막던 그들의 얇은 양심의 끈은 속절없이 끊어지고 말 것이다.」


「반면 환상세계의 사람들은 또 그들 나름대로 지구를 적대시하는, 지구인들과 감히 싸움을 일으키고자 하는 이유가 있었다.」


「인간들 중 대부분은 지구인들을 좋아한다. 지구인들은 보통 모습을 드러낼 때면 신기한 기술을 가지고, 환상세계의 빈민들을 구휼할 음식을 가지고 오기에.」


「그러나 환상세계는 다수결의 사회로 이루어져 있지 않다. 대부분이 좋아한다 해서, 인간들의 지지를 얻는 것은 아니다. 인간 세상의 주도권은 언제나 그렇듯 소수의 권력자들이 붙잡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소수의 귀족들, 성직자들, 상인들은 지구인들의 행태를 몹시 아니꼬워한다.」


「귀족들 입장에서는 안 그래도 땅이 부족한데, 자기네들 영지를 멋대로 침범해 기지를 만들고 영지의 사람들을 꾀는 새로운 경쟁세력이 마음에 들지 않을 수밖에 없다.」


「성직자들은 환상세계의 기존 것과 완전히 궤를 달리하는 신앙을 지닌 데다가, 괴이한 강철 괴물을 다루는 지구인들을 다른 세상에서 온 악마들이라며 멀리한다. 」


「상인들 또한 비슷한 맥락에서 자신들의 제품을 초라하게 만드는 지구의 과도한 기술을 혐오한다.」


「게다가 환상세계에서의 ‘사람’은 인간들만을 지칭하는 단어가 아니다.」


「환상세계의 이종족들은 인간들보다도 더, 지구인을 훨씬 더 싫어한다.」


「나무에 사는 요정, 엘프들은 애초에 인간종과 사이가 좋지 않았다. 그런데 지구인이라는, 인간이라는 종족이 지닌 혐오스러운 특성만을 극한까지 발전시킨 외계의 존재들이 나타난 것이다.」


「환상세계의 마나가 깃들어있는 나무를 대규모로 벌목해가고, 그것을 침대나 종이로 만들어 지구에 되판다. 미의 상징이라는 엘프들을 붙잡기 위해 지구의 용병들이, 혹은 군대들이 엘프들의 숲을 밥 먹듯이 침범한다.」


「환상세계의 인간들이 상대라면 마법과 정령술, 궁술로 무찌를 수도 있었을 테고, 기본적인 상식이라는 것이 존재하는 자들이니 협상을 할 수도 있을 텐데 지구인들은 그렇지 않았다.」


「그들의 사전에 협상이라는 단어는 존재하지 않았다. 오직 압도적인 무력으로 숲을 불사르고 엘프들을 잡아갈 뿐. 저항하려고 해도 총탄과 가스, 화염을 뿌리는 이들 앞에서는 속수무책이다.」


「엘프들과 교분을 맺으러 찾아온 국가 단위의 지구인 세력들의 사절에게 항의해도 ‘우리는 모르는 일이다.’ 라는 답변만 돌아올 뿐. 엘프들에게는 지구인들을 증오하고 또 경멸할 충분한 이유가 있었다.」


「오크의 경우에는 더 심했다. 그들에게 있어 지구를 향한 분노와 적의는 선택이 아닌 강제적 사항이었다.」


「지구인들은 ‘인간다운’ 모습을 하고 있는 환상세계의 인간, 드워프, 엘프, 수인들은 어느 정도 존중했으나, 오크는 같은 사람으로 취급하지도 않았다.」


「그들과 교류를 하거나 대화하려는 시도조차 없이, 오크들이 지배하고 있는 땅의 자원을 탐내 쳐들어가고 또 정복할 뿐이다.」


「대륙에서 가장 인구수 많은 종족이자, 가장 무서운 사람들이라 꼽히던 오크들은 지구인들에 의해 무섭게 수가 줄어들었다. 그들은 지구인들을 상대로 살아남기 위해 지구를 향한 증오를 키웠다.」


「드워프들의 경우에는 상황이 조금 복잡했다.」


「그들은 지구인들의 발달한 기계공학과 과학기술에 욕망을 느꼈다.」


「동시에 그 기술을 일부분만 공유하려 드는, 그리고 공장제 제품들을 찍어내 환상세계에 풀어냄으로서 드워프 제품들의 경쟁력을 잃게 만드는 지구인들에게 분노했다.」


「드워프들에게 있어 지구인들은 강탈하는 한이 있더라도 반드시 알아내야만 하는 선진 문명의 비밀을 지닌 이들이자 동시에 밥그릇을 빼앗는 침략자들이었다.」


「다른 이종족들에 비하면 부족하다 할 만한 동기지만, 이런 부족한 동기조차 전쟁을 일으키는 데에는 충분하다.」


「온 세상에 증오와 경멸, 분노와 살의가 들끓었다. 나는 그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것을 막을 수 없었다.」


「내가 아니라 그 누구라도 불가능했을 일이었다. 전성기 시절 나의 마력량과 흑색마나 감응력이 되돌아오고, 현재 나의 시공간 차원 영역에 대한 이해력까지 그대로 유지된다 하더라도 해낼 수 없다. 그것은 애초에 인간의 영역을 벗어난 일이다.」


「인간의 광기는 계산할 수 없다고 뉴턴이 그랬던가. 나는 요즈음 그것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아직까지 폭발하지 않은 것이 천만다행이라 느낄 지경으로 악의가 모든 곳에 끓어 넘치고 있다.」


「수억에 달하는 인간들의 감정을 일개 마법사가 어찌 통제하겠는가? 내가 세계 멸망을 막을 수도, 차원과 차원을 연결할 수는 있어도, 그들의 증오를 멈출 수는 없었다.」


「그럴 능력도, 자격도 없었다.」


「환상세계의 사람도, 지구의 사람도 아닌 내가 어느 자격으로 어느 쪽의 분노를 가라앉히겠는가.」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저 증오의 불씨와 잦은 충돌, 전투가 전쟁의 영역까지 불어나지 않도록 기를 쓰고 막는 것뿐이었다.」


「이토록 세계 전체에서 지구를 향한, 그리고 환상세계를 향한 양측의 분노가 넘쳐나는데도, 그것이 전쟁의 형태로 크게 발현되지 않은 것은 전부 내가 막은 탓이었다.」


「지구인들의 기지를 공격하려는 작전을 계획 중인 국가나 무력단체가 있다면 그들의 수장에게 흑색의 마법사로서의 전언을 보냈다.」


「극히 드문 일이지만, 전언을 보내도 듣지 않는다면 분신이나 사역마를 보냈다. 그런 뒤에는 그들도 말을 들었다.」


「반대로 지구인들이 환상세계의 세력을 대규모로 공격하려 들면, 다양한 수단을 통해 그들을 압박했다.」


「환상세계에서 쌓은 내 명성이 통하지 않는 이들이기에 더욱 처리하기에 골치 아팠지만, 어쩔 수 없었다. 해야만 하는 일이었다.」


「부패한 장군이 수장으로 있는 곳이라면 뇌물을 넘겨 전쟁을 막았고, 강직한 군인이 이끄는 곳이라면 보급에 차질을 빚게 만들거나, 기지의 환경에 이상이 생기도록 만들어 함부로 개전할 수 없게끔 했다.」


「지난 몇 년 간, 나는 홀로 세계의 평화를 지켜왔다. 지구와 환상세계 간에 전쟁이 일어나지 않게끔, 혹여나 일어나더라도 그것이 작은 국가나 세력 간의 전쟁에 그치게끔.」


「무슨 일이 있어도 세계와 세계가 충돌하는 대전쟁만은 일어나지 않게끔 했다.」


「그러나 지친다.」


「놀랍게도, 의식이 가속된 세계에서 수천 년의 세월을 버티며 두 세계의 멸망을 막아낸 내가, 억겁과 같은 인내 끝에 차원의 문을 여는 게이트를 만든 내가, 고작 이 몇 년의 세월 만에 처음으로 포기를 꿈꾸게 되었다.」


「목표가 불분명한 것도 아니다. 나에게는 전쟁을 막는다는 확실한 목표가 있다.」


「그저 힘이 들었을 뿐이다.」


「그저 끝없이 뿜어져 나오는 악의에 가득 찬 감정들을 받고, 또 그것을 분석하여 전쟁이 일어날 확률을 계산하는 일들이 너무나도 힘에 부쳤을 뿐이다.」


「증오, 적의, 살의, 악의, 분노, 혐오, 원한···그 모든 마이너스적 감정들이 나에게로 쏟아지고, 나는 그것들을 읽는다. 전쟁을 막는다. 감정을 읽는다. 그리고 또 전쟁을 막는다.」


「그 기계와 같은 패턴을 수억 번도 넘게, 몇 년간 잠도 자지 않고, 먹지도 않으며 오직 마력만으로 몸을 가동해 움직이다 보니, 어느 순간 나 자신조차도 원인 모를 혐오와 증오의 감정에 절여져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수억 년의 시간보다 견디기 힘든 것은 사람 수억이 발산하는 증오의 감정들이었다.」


「증오는 증오를 먹고 또다시 자라나는 무한대의 괴물이요, 나는 한정된 인간에 불과했다. 인간이 발산하는 감정에 비하면 너무나도 초라한 그저 인간.」


「차라리 과거의 힘을 그대로 지니고 있었더라면 제국을 대적했을 때와 같이, 압도적인 신위를 통해 지구인들과 환상세계 전부를 통제 아래에 두고 전쟁을 벌일 마음조차 먹지 못하게 할 수 있었을 텐데.」


「아니면 지금 당장에라도 저 짜증나게 구는 양쪽의 잡것들을 다 잡아 족치면, 내가 세상을 어떻게 구했는데 다시금 망치려 드는 버러지, 자기들이 사는 땅을 제 손으로 묻으려 하는 불나방 같은 것들을 다 한곳에 몰아두고 차원 바깥으로 내다 버린다면···.」


「···대충 그런 생각들이 수초에 한 번씩 뇌를 괴롭혔다. 실시간으로 스스로의 정신이 오염되는 것을 경험한다. 지금 이 순간에조차 여전하다.」


「수억 명의 감정을 제물 삼아 펼치는 정신 오염 마법이나 다름없는 것을 몇 년간 당하고도 이제야 서서히 무너지려 하는 내가 대단한 것일까.」


「아니면 다차원의 영역에 대한 깨달음을 얻고, 시공간조차 다룰 수 있게 된 나의 초월적인 의식을 이만큼이나 몰아세운 사람의 악의가 저만큼이나 무섭도록 대단한 것일까.」


「어느 쪽이건, 이제 나에게는 한계가 찾아왔다.」


「이제 더는 내가 전쟁을 막아야 할 이유도 모르겠다.」


「내가 게이트를 열었기에, 그래서 지구와 환상세계가 연결되었기에? 그게 전쟁의 단초가 되었기에?」


「그건 전쟁의 원인 중 일부에 불과할 뿐이다.」


「저들은 지적 생명체 아니던가. 저들은 얼마든지 이토록 광기에 찬 혐오의 감정들을 보내지 않고 지적으로 대화하고 또 교류를 나눌 수 있었다.」


「서로가 조금씩, 아주 조금씩만 양보하면 충분히 이룰 수 있었던 평화를 자기네들이 앞다투어 깨기 위해 나섰을 뿐이다.」


「저들이 저토록 전쟁을 원하는데, 내가 막아설 이유가 있을까?」


「지구인도, 환상세계 사람도 아닌 나에게 저들의 전쟁을 막을 자격이란 것이 존재하기는 할까?」


「지구인들을 막는 것도, 환상세계의 이들을 막는 것도, 그들의 일견 합당해 보이는, 그러나 전쟁을 일으킬지 몰라 막아내야만 하는 증오의 결과물들을 내가 뒤집어쓰는 것도 이제는 지쳤다.」


「나는 혼자서 세계를 짊어질 수는 있어도, 그 세계 위에 선 사람들이 벌일 전쟁은 짊어질 수 없는 무력한 존재였다.」


「내가 이대로 계속 꾸역꾸역 버틴다 한들 이 만들어진 평화가 얼마나 오래 갈 수 있을까.」


「나는 이만하면 할 만큼 한 것 아닐까.」


「난 모르겠다. 정말로. 이제는···모르겠다.」


작가의말

2020년의 마지막 날이군요.

내일은 여러분들을 새해 인사와 함께 찾아뵙게 되겠네요.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9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판타지에 핵이 떨어졌다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110 유논(5) +11 20.12.29 815 42 16쪽
109 유논(4) +4 20.12.28 812 40 18쪽
108 유논(3) +7 20.12.27 823 47 13쪽
107 유논(2) +10 20.12.26 853 49 25쪽
106 유논(1) +10 20.12.25 852 46 20쪽
105 샤를로트(3) +3 20.12.25 810 42 17쪽
104 샤를로트(2) +12 20.12.24 819 42 14쪽
103 샤를로트(1) +19 20.12.23 853 48 13쪽
102 흑색마나(5) +5 20.12.23 842 46 14쪽
101 흑색마나(4) +17 20.12.22 848 52 18쪽
100 흑색마나(3) +23 20.12.21 835 52 15쪽
99 흑색마나(2) +21 20.12.20 870 46 15쪽
98 흑색마나(1) +15 20.12.19 873 45 16쪽
97 불쾌한 골짜기(3) +15 20.12.18 835 45 17쪽
96 불쾌한 골짜기(2) +5 20.12.18 809 37 16쪽
95 불쾌한 골짜기(1) +22 20.12.13 846 47 16쪽
94 톱니바퀴가 돌아갔기에(5) +28 20.12.12 802 39 15쪽
93 톱니바퀴가 돌아갔기에(4) +11 20.12.11 808 41 15쪽
92 톱니바퀴가 돌아갔기에(3) +11 20.12.10 828 39 14쪽
91 톱니바퀴가 돌아갔기에(2) +18 20.12.09 873 45 13쪽
90 톱니바퀴가 돌아갔기에(1) +26 20.12.08 898 52 13쪽
89 외전-제국의 적(3) +23 20.12.05 848 51 16쪽
88 외전-제국의 적(2) +16 20.12.04 847 46 12쪽
87 외전-제국의 적(1) +19 20.12.03 849 48 13쪽
86 외전-Boy Meets Girl(7) +12 20.12.02 817 42 13쪽
85 외전-Boy Meets Girl(6) +8 20.11.28 812 46 13쪽
84 외전-Boy Meets Girl(5) +11 20.11.26 823 46 11쪽
83 외전-Boy Meets Girl(4) +9 20.11.25 803 44 13쪽
82 외전-Boy Meets Girl(3) +13 20.11.21 824 42 14쪽
81 외전-Boy Meets Girl(2) +8 20.11.18 840 40 12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