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경도의 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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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휘준
작품등록일 :
2020.05.27 22:55
최근연재일 :
2024.08.12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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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2.26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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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묘향산 6

DUMMY

멍한 가운데 공포와 살기가 뒤섞여 있다. 그리고 무의식적으로 옆에 있는 사람들이 필요하다. 몇이라도 계속 옆에 있어줬으면 싶다. 혼자서는 무너진다는 걸 직감한다. 화재가 이곳의 모든 생명체를 다 죽일 수 있다면, 이 작계지역 일대를 확 태워버리고 떠나고 싶다.


“마지막이란 표현이 이상안가? 우리가 ‘지역’이란 제대명칭을 쓰듯이, 이 지역에 대한 비정규전, 보급. 통신 차단과 거부작전을 못하게 된다. 낙오한 병력과 합류해서 공격하고 싶지만, 물론 TOT도 지났기에 목표에서 합규할 확률은 낮다.”


“잠깐만요. 중대장님, 아니 지역대장님. 문제가 있습니다.”

“어떤 문제?”

“저는 지역대 2차 목표를 모릅니다.”

“저도 모릅니다.”


“생포 확률 보안 대문에, 1차 후에 알려주기로 되어 있습니다. 그럴 시간이 없었습니다.”


아, 그렇지.

질문들이 이어진다.


“어딥니까?”

“중대장님만 알고 우린 모릅니다.”


대리 지역대장은 예상치 못한 안색이다.

의아심을 품는 눈들이 보인다.


“중댐. 일단 목표를 말씀하셔야죠.”

“목표를 알고 비교도 가능합니다.”

“특이해요? 말하십쇼. 그냥.”


열 명 중 여섯 명이 목표를 모르고 있었다.

대리 지역대장은 당황한다.


말하지 않는 공기. 대리 지역대장이 고참 상사를 찾아 눈빛을 던진다.


반은 인민군복 반은 디지털 픽섹, 남쪽 군복에 인민군모도 썼다. 총도 남북이 섞여 있다. 두 자루를 휴대한 대원도 있고, 북한군 권총도 부무장으로 가지고 있다.


작전 3주차, 피곤하고 절망적인 눈. 이제 사람들은 내색을 감추지 않는다. 예의를 차릴 사람도 없다. 누가 작계를 짰는가. 누가 침투 직전에 작계를 변경했는가. 넘어올 필요가 있었나 의문도 갖는다. 항폭유도팀과 꼭 필요한 목표에만 타격으로 넘어와도 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장 확실한 타격목표에 지역대 힘을 집중해야 했다. 일대의 밤을 무섭게 만든 것 외에 어떤 효과가 있었는지, 모를 리가 없다. 저 아래, 우릴 보낸 사람들만 실감하지 못한다. 10명이 지역대 목표를? 분명히 작은 것이 아닐 텐데.


‘그냥 다 죽으라는 거지 뭐.’


12명 팀이 400명 지키는 목표로 다가서기조차 힘든 경우도 있었다. 정찰은 충격이었다.


‘대체, 누가 이런 막무가내 작계를 짠 거야... 저길 가라고 씨발?’


쓰러지고 사라지고, 또 한 번 뛰면 하나둘 사라진다. 포로로 잡힌 사람도 있고 산중에서 홀로 죽음을 맞이한 사람도 있을 거다. 내과나 외상충격센터 들어가야 살 부상자를 의무주특기가 산중에서 항균과 지혈만 한다. 살 꿰매주는 것만도 어디냐. 지금쯤 아군이 도달했다면 모든 걸 이해할 수는 있다. 하지만, 아무리 평양 위쪽이지만 도로에 북한군은 아직 퇴각의 기운이 없다. 좌절. 언제까지? 지금 열 명 안에는 대화에 관심도 없는 사람이 있다. 무엇을 하건 어떻게 하건 죽음과 생존의 연장선상, 하루하루. 하루하루...


“중댐, 목표...”


표정들이 정지화면처럼 멈췄다. 끼륵끼륵 벌레소리가 두드러진다. 가뜩이나 고요한 산중, 물음표 가득한 침묵이 갑갑하다. 대리 지역대장이 입을 연다.

“2차 목표는 없다. 원래.”


소란이 일어난다.

“무슨 말입니까?”


대리 지역대장과 눈빛을 교환한 상사가 앞으로 나선다.

“대리 지역대장님, 제가 말해도 되겠습니까?”

대리 지역대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 이거 어떻게 말하나... 대리 지역대장님 말씀대로 지역대 통합작전 2차 목표는 없다. 다른 지역대는 2차 목표가 당연히 있고. 우린 없었다. 알다시피 여기 지역대 섹터에 뭐가 있냐. 1차 목표 공격 후에 후방 보급 통신 파괴 및 교란, 그리고 항폭유도가 작계 맞다. 허나, 거기 조건이 걸려 있었다.”


“조건요?”


“음, 1차를 반드시 파괴해야 한다는 조건이다. 우린 파괴하지 못했다. 그럴 경우에 대비한 ‘조건’이 걸려 있었던 거다. 우리 지역대 2차 공격은 1차 목표에 대한, 완파를 목표로 한, 재차 공격이다.”


처음에는 정확히 이해를 못했다. 잠시 후, 누구라고 할 수 없이 황망한 미소가 발전하여 껄껄껄 번진다.


“거길 또 간다고?”

“우리가 노렸다는 걸 뻔히 알고 있는 거길?”


“음, 최대 3차까지 공격하기로 돼 있었다. 에코 맘마 파파 공장은 없애야 한다. 이것이 어떤 용량의 급인지, 사실 완제품이 거기 있는지도 우린 모른다. 투하 형은 비행장으로 이동했을 수도 있고, 완제품이 다른 곳으로 이미 빠졌을 수도 있다. 포탄 형이 있는지는 미군도 모를 거다. 전쟁 전에 벌써 이동했을 수도 있다. 지금은 차량 몇 대만 움직여도 조기경보기에 걸려 때려 맞는다. 야간도 못 돌아다니지. 그 에코 맘마 파파는 아군 진격에 무척 위험하다. 기간산업 파괴와는 성질 자체가 달라."


"정말로 그게 터지면, 아군의 진격 시점에 터트리면 아군 무선과 전자기기가 먹통이 되고, 내구성 강하다면 군용 전자기기 회로 부품들이 녹아버려, 아예 기기를 교체하기 전까지 먹통 된다. 그 혼란은 우리가 상상할 범위를 밖이야. 모든 지역대가 EMP 강의를 받았지만, 알게 모르게 우리 지역대 교육이 더 길고 자세하게 진행되었다. 기억하지? 시험도 봤고. 종합하면, 몇 명이 남건... 완파 완수가 작계다. 이상.”


저 멀리 폭격이 떨어지고 고개들이 돌아간다. 번쩍이는 화염. 땅을 타고 중저음으로 달려오는 충격파. 저런 거 근처에 가면 지축과 맨틀이 따로 노는 것처럼 흔들린다. 바로 저 방향, 거기다.


‘우리의 지옥이 된 터널. 터널들...’


“니는 어떻게 된 게 팀을 잊아먹냐.”

할 말이 없다.

“승현이 몰라?”

더욱 입이 막힌다. 이분 동기다.

“내 참 씨벌.”

말할 필요 없지만 중사님 팀은?


머릿수가 한 타스 밖에 안 되는 각각의 팀들은 색깔이 있다. 기본적으로 중대장과 담당관이 밑칠이다. 다른 지역대 사람들보다는 당연히 더 친하지만, 중대들은 각각의 묘한 분위기 혹은 친밀감이 있다. 대단한 것은 아니지만 끼어들기는 그렇다. 그리고 그 와중에 지역대 누구나 좋아하고 누구나 꺼리는 사람이 있다. 유중사님도 대표적.


세상 참 희한하게 나와는 이상하게 ‘좀 친한 거 아닌가?’ 그런 분위기가 있다. 여친이 면회를 와서 가깝고 유명한 도시로 갔는데, 그 길바닥에서 만난 거다. 별 거 없었다. 같이 술을 먹은 것도 아니다 여친과도 눈인사 하고 헤어졌다. 그때부터 유중사님 눈을 보면 ‘좀 친한 거 아닌가?’ 그런 걸 봤다. 사람이 그런 걸 보면 또 반응하게 되어 있고, 빵 나눠줄 때 먼저라도 주는 거다. 별 거 아닌 우연. 거꾸로, 남들 때릴 때 나는 좀 봐주는 분위기. 그러므로 지역대 모두 사주경계 대상으로 보는 이 분에게 난 편한 감이 있다. 이 묘한 친밀도 아닌 친밀은 유중사님이 내 사생활을 남보다 요만큼 들여다봤다는 것에서 시작한 것 같다.


“팔은 괜찮으십니까?”

“이까이 거 뭐. 사람 안 죽는다!”


유중사님이 빤히 날 본다.


이 분은 나가서 뭐하시려나. 아니지. 여기서 돌아갈 기약도 없다. 하지만 이분을 보면 나가서 할 직업이 딱 떠오른다. 사람 무안할 정도로 빤히 보는 버릇이 있다. 이 눈빛에 졸병들이 간다. 그래놓고는 ‘너는 여기서 뭐 하냐.’ 질문을 던진다. 뭐를 하냐는 것이 아니라 너 왜 여기로 입대했냐 그런 거다. 가끔은 ‘너 부산 아냐?’ 그런 거 던진다. 부산에 연고도 사투리도 없고 그런 부모도 없는 사람에게. 가장 히트는 ‘라이터 줘봐.’ 담배 안 피우는 사람이었다. 없다고 하니까 그랬다. ‘그러니까 줘봐.’ 그런 사람이다. 왜 그런 사람이라 하냐면, 농담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어느 순간 편하게 있다가 고개를 돌리면 사람을 빤히 쳐다본다. 나에게는 그랬다. 너 아주 못 생긴 건 아니다...라고. 역시 진지했다. 무척 진지했다. 사람이 사람을 보는 관점이 좀 다른 것 같다. 사람 무섭게끔.


가끔 이름도 잘못 부른다. 김하사가 이하사가 된다. 이름은 기억한다.

“너는 살겠다.”

“제가 말입니까?”

또 빤히 본다.

“너는 살어.”

밑도 끝도 없다. 왜 내가 사냐고 물을 것도 아니다.


“가자. 밥 익는 냄새 난다.”


사방을 막은 불. 돌들 사이에 주황색을 빛내는 고체연료. 반합에서 김이 푹푹 뿜으며 뚜껑이 덜린다. 이때쯤이면 밝은 표정이어야 할 사람들이 충혈 된 눈으로 주황색에 빠진다. 고체연료 표면을 타고 올르는 노란 불. 냄새부터 진수성찬. 노획물 중에 대원들이 선호하는 공화국 소고기 맛 즉석국수, 다시 말해 북한 라면을 국으로 끓인다. 북한라면은 북한 주민들에게도 귀하다.


“어 씨발 냄새 나쁘지 않은데...”

“개나 잡아먹고 싶다.”


북한라면은 스프만 세 개다. 야채스프, 분말스프, 액상스프. 여기 노동자 월급 털어야 다섯 봉도 못 산다는 그 라면. 북한주민들은 이 라면에 물을 두세 배 붓고 감자 양파 두부도 넣고 양을 존나게 늘려 끓여먹는다. 우리처럼 낼름 하나 끓여 먹기에 아까운 맛이자 가격이라는 거다. 냄새가 화학탄처럼 번져 입을 다신다.


몇은 호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 폭격 떨어진 곳을 바라본다. 죽는다고 생각하면 식욕도 막힐 때가 있다. 멍하다가도 순간, 순간, 피-관측된다는 두려움으로 갑자기 사방으로 턱이 튀어 관찰한다. 지금은 폭격 떨어진 곳 - 오직 그곳만 보고 있다. 상사가 그곳에서 고개를 돌린다.


“먹을 동안 유중사가 내려가서 경계 짱박혀라.”

“하이.”


짬밥이 사라졌다. 무엇이든 교대로 순번을 한다. 그리고 상사는 유중사님을 신뢰한다. 뱀을 빤히 쳐다보다 밟아 죽이는 사람이다.


무엇을 하건 어디서건 경계를 세운다. 산중의 금수가 되어 100미터는 본능으로 스캔이 가능하지만, 그보다 먼 징후도 발견하고 뒤로 돌아가 뒤통수를 깔 수 있지만, 잘 때와 먹을 때 조심한다. 먹는 것은 사람의 오감을 순간 무너트려 반드시 경계가 필요하다. 경계를 받은 유중사가 총과 수류탄을 챙겨 50미터를 내려간다. 알아서 본인이 골라야 한다. 50미터 내외에서 지형이 목진지 형태로 막히는 곳. 꼼짝을 못하는 곳. 올라오다 경계병에게 서너 명은 어쩔 수 없이 발리는 곳. 밥은 경계병 것을 먼저 남긴다. 대체로, 식사 경계병 것은 좀 더 남겨준다.


밥도 했다. 오늘은 취사 양이 열 명이 먹고도 넘쳐난다. 처음에 가져왔던 야전식량은 기억도 안 난다. 불을 피우는데 도사가 되었다. 하지만 피울 수 있는 시간은 하루에 몇 시간 없다. 불을 피우는 것보다 중요하게 연기를 분산시켜야 한다. 계속해서 모자로 젓는다.


“나머지는 주먹밥으로 뭉쳐.”

상사가 소금 주머니를 대원에게 준다.

“이게 2020년대 맞는 건가?...”


사형수의 식사?

너무 초라하군.


그래서 사람이 거칠어


거길 다시 가?

목표에 대한 추억이 떠오른다.


시점은 다시 3일 전으로 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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