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경도의 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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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휘준
작품등록일 :
2020.05.27 2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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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12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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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3.05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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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묘향산 8

DUMMY

그림자.

‘뭐야.’

무의식적으로 당기지 못했다.


‘누구야.’


왜 저러는 거야.


그리고... 그림자가 더 걸어와 선다. 완연한 북한 군복 그림자.


우린 안다. 저 그림자가 우리를 봤다는 걸. 뒤로 돌려 총을 겨누니 희미한 달빛이 얼굴에 쏟아진다. 아무리 위장해도 총의 무엇이 빛나고 있고, 상대는 그 빛으로 인적을 감지했다. 극도로 집중하면 AK 총열 덮개 나무에 바른 - 오래전에 공장에서 바른 니스칠 빛도 보인다. 그림자는 그걸 보고 섰다. 총도 몸통에 붙어 안 보이고, 그림자가 AK라도 확증할 수 없다.


우린 겨눈 상태에서 ‘이상’을 견지한다. 아는 사람 같다는 느낌.

그림자가 손날로 자기 목을 친다.


‘뭐라고?’


이어 양팔로 X-자로 만든다. 뒤이어 엄지로 자기 등 쪽을 계속 찍는다.


‘작전 중지.’


그림자는 드디어 깊은숨으로 몸통이 출렁거린다. 하얀 이빨이 보인다.



예상을 넘어서는 가중치.

대대본부에서 두 명이 나타났다. 등장 자체가 충격이다. 언젠가부터 대대는, 대대본부는, 없었다. 대대가 모이거나 연락이 된다는 걸 바라지도 추구하지도 않았다. 멀지 않은 지역에 있을 거였지만, 우린 대대본부의 정확한 위치도 몰랐다.


보안이었다. 통신만 방위각으로 알고 있었다. 교신을 하려면 한번 교신한 각도에서 이동한 위치를 따고 각도를 다시 계산해야 했다. 약정된 시간의 정점이 지나고 다른 지역대는 대대본부와 교신 시도에 성공/실패했을 것이다. 우리 골프는 손망실로 장거리 무전기가 사라졌다. 멀쩡한 걸 본부팀이 가지고 있었지만, 팀 자체가 사라졌다.


두 사람이 우리 지역대를 찾은 것은 (사용할 표현은 아니지만) 충격적인 행운이었다. 두 명은 대대 작전담당관과 계원. 원사는 서류를 볼 필요도 없이 우리 작계를 당연히 안다.


‘뭐지?’


[긴급명령]


저 높은 상부에서 긴급명령이 떨어졌는데, 가용한 병력이 없고, 가장 가까운 지역대는 정해져 있었다. 위치가 가장 가까운 골프가 우리였다. 하지만 이것도 못 믿을 것이다. 교신이 되는 골프가 있으면 보내면 되는 것 아닌가. 한 20km 후딱 날아간다. 다만... 우리 부대 모든 것이 항상 그렇듯. 다른 지역대가 어디, 얼마나 떨어져 있는지 모른다. 그걸 아는 것이 지역대장과 행보관인데, 그 두 사람이 결정적으로 지금 우리에게 없다. 우린 말로 안 한다. 까놓고 말해 이 목표에서 지난번 공격에 지역대장은 전사했다. 전사한 것이다. 그리고 본부팀의 적어도 반은 지역대장 옆에 있었다.


애써 말로 묻고 대답할 것이 아니었다. 차라리 말을 말아야지.


우리를 찾은 것은 작전담당관 원사다. 원사가 아니면 우릴 찾을 수 없었을 것이다. 원사는 우리 지역대 목표를 알고 있었고, 일대로 와서 우릴 찾았다. 야전훈련에서 아무리 꼼수를 부리려고 해도 대대본부 각 담당관 원사들이 마음먹으면 다 잡아낸다. 천리행군만 최소 10년, 기본 15년은 한 사람들이다.


“빨리. 빨리. 총 안전으로 돌리고 속보로.”


그림자를 쫓아서 MSS에서 500m 뒤로 빠졌을 때 병력이 모여 있었다. 갑자기 이상한 사람이 있어 자세히 봤더니, 피로에 절어 거의 누워 있는 대대본부 원사님이었다. 대리지역대장이 대대 계원이 있는 곳으로 손짓한다..


“무슨 일입니까?”

“긴급명령 떨어졌다.”

“예?”

“뭔데요?”


“싸 떨어졌어.”

“예?”

“싸 작전. C-S-A-R 떨어졌다고.”

“엄마 씨발.”

난 한동안 무슨 말인지 몰랐다.

“와... 이게 정말 떨어지는구나 진짜.”

[탐색구조].

CSAR은 예비 작전 항목 5번쯤에 있었다.

“잠깐만, 지금, 정확히 무슨 소리야!”

“추락 조종사 구출. 이거 미군일 거야. 연특사 명령일걸.”

“조용해. 설명해봐.”

대대 작전계원. 대대라고 다르지 않다. 눈에 띄게 핼쑥하다.

“좌표는 중대장님 드렸고. 탐색구조 헬기가 왔다가 격추됐습니다.”


아니, 무슨 헬기가 여기까지 날아와..

몽롱하던 정신에 안개가 걷힌다. 특수작전팀은 게릴라가 되었고 게릴라들은 다시 특수작전을 요구받게 되었다.


“격추? 헬기가 왔어? 에구 씨발. 홍보영상처럼 되는 거 아니라니까.”

“일단 들어봐. 계속해.”


“하달된 분명한 이유가 있습니다. 네. 계급 같습니다. 우리 자신이 발설할 우려가 있기에 정확히 말은 안 했는데, 제 추측 상, 무궁화 두세 개 정도 되는 거 같습니다. 지위가 높거나 기종이 특별하거나, 그러니까 그러겠죠?”


“아니 그런데 그 조종사가 아직 죽거나 잡히지 않았다는 걸 알아? 보증해?”

“회피기동 중입니다. 생존 무전기 살아있답니다.”

“그럼 구출해서 어떻게 해. 헬기가 와?”

“우리가 구출하면 안전을 보장한 상태에서 야간에 부릅니다.”

“무전기가 없어. 우리.”


“저기.”


계원이 누운 원사를 향해 지시했고, 원사가 소텍용 무전기를 들어 보인다.


“조종사 서바이벌 무전기하고 안 되잖아. 저걸로 돼?”

“연결은 되죠. 미군이 항공중계로 통제기와 구출반도 합니다.”


난 소텍. 어깨에 단 견장밖에 모른다.


“지금 송신하면 항공중계로 간다고?”

“아니요. 우리가 호출했을 때 응답하는 조종사에세 항공중계기로 통보를 요청하면, 중계기가 이쪽으로 무전을 걸어올 겁니다. 조기경보기는 우리 구출팀이 가지고 있는 소텍 무전기 시리얼 번호를 모르니까요.”

“일단 조종사와 접선이 되어야 할 거 아냐. 약정이 있나?”

“해봐야 압니다.”

“대대에서 하겠다고 했을 거 아냐. 명령이라며.”

“상호약정 암구어만 내려왔습니다. 우리가 다가간다는 가정 하에. 주한미군이면 모두가 아는 겁니다.”

“뭔데.”

“추락 조종사는 보니파스. 우린 폴 버년입니다.”

“1여단 작전?”


“대충 거리부터.”

“15. 킬로.”

“엉? 이 정도면 공중에서 폭발이 안 들릴까?”

“들린다고 우리가 그게 뭔지 아냐.”


너무 뜻밖이다. 넘치고 넘치는 미군의 특수전 헬기부대와 구조부대. 구조부대는 미 항모전단에도 있고 비행장의 미 공군에도 있다. 조종사 구출만 훈련된 부대다. 어쩌면 드디어... 전 세계를 상대로 특수작전 구출작전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던 미군이 베트남전쟁 이후로 지금까지 나이롱뽕만 상대했다는 방증이다.


여긴 어디 비교할 데가 없는 방공망이다. 구버전에 낡았지만 엄청나다. 맘 놓고 들어오면 죽는다. 현재 미군의 대-방공포 전술은 레이더를 쏘는 방공포만을 위해 특화되었다. 그리고 여긴, 레이더조차 안 쏘는 구형 고사총이 넘치는 땅이다. 소리만 듣고도 쏜다. 군사목표물 근처 저공은 엄청 깔린다. 미군 항공기가 격추된 목표 상공이라면 뭐가 깔려도 깔린 거다.


“그렇다고 우릴 찾아?”

“우리밖에 없습니다.”

“다른, 다른 지역대는?”


계원이 말을 안 한다. 그 닫힌 입의 눈빛이 CSAR보다 충격적이었다.


‘뭐야. 정말로? 정말로?’


다른 지역대 동기. 같은 주특기들. 없어?


“아무래도 작은 비행기가 아닌가?”

“무슨 기종이길래 그러지?”


사실, 바로 이때쯤... 사람들이 정신을 차리기 시작했다. 알아듣는 척은 했지만 꿈같았다. 오늘 밤 ‘누가 죽을까?’가 아니라 ‘살 사람이 있을까?’ 세상에 종료를 고하고 있었다. 사형수가 교수대로 걸어갈 때 이런 기분이었는가.


그리고 누군가 등장했을 때 사람들이 보인 반응은 짜증이었다. 집중하고 있는 걸 깨트린 것이 화를 나게 한다. 손톱 발톱 깎고 머리칼 잘라서 비닐봉지에 넣고 유성 매직으로 자기 이름을 쓸 때처럼 조용히 준비하고 있었다. 일종의 의식 변이상태로, 정상적인 사고는 사라지고 목적만을 생각한다. 죽음을 각오한 것이 아니라 목적으로 삼았다. 안 죽을 수가 없는 목표. 생존 가능성을 배제했다. 그런데 그런 상태에서 - 부흥회에서 빛을 보고 방언이 터지는 상태에서 누가 나타나 떠들기 시작한 거다. 기껏 피안과 차 안의 중간에 이르러 ‘가고’ 있는데 방해자가 나타났다. 수도자와 같이, 마음을 버리고 가고 있는데, 그 과정은 표현으로도 이루지 못할 초연함 같은 것이 있었다. 그런데 그 와중에 불쑥... 그게 짜증이 났다.


“하시겠습니까?”

“하냐고? 명령 아냐?”

“네. 맞습니다.”

“명령이 하고 자시고가 있냐.”

“브라보장 말을 정확히 전달해! 지금 작계 골프작전 중이야. 똑바로! ‘현 작전을 중단하고.’ 맞아?”


원사가 몸을 일으킨다.


“맞다고 이 새끼들아... 말, 개 많아.”


대리 지역대장이 부산하다.


“좌표. 좌표. 지도 펴고 GPS 찍어!”


상사가 다가간다.


“원사임. 못 찾으면 어쩌려 그랬어? 찾는다는 보장도 없이 여길 와?”

“반반이야. 못 찾으면 우리라도 그냥 가보려고 했다. 도울 거 없나. 놈들이 얼마나 몰렸겠어. 가뜩이나 없는 살림에 미안하다. 연락도 안 되는 데가 있어. 깡그리.”

“어떻게 여길 찾아.”

“지도만 있으면 찾아. 이 병력이 다냐? 개별낙오 없고?”

“우리 가지고 되겠어 이거?”

“그래도 낙하산으로 떨어진 사람 낙하산 타는 부대가 구출해야지.”


그들은 좀 거만하다.

그러나 폭탄을 주었다. 그건 우리에게 엄청난 힘이었다.

적은 우리보다, 우리가 부를 항공폭격을 공포로 바라본다.

부른 우리도 무서울 지옥의 충격과 화염.

어떤 때는 전폭기를 구경도 못 하는데 떨어진다.

갑자기. 별 탈 없는 고요 속에,

쉭쉭쉭 소리가 나고는 모든 게 조각나고 불탄다.


사실 떨어진 사람이 백인인지 흑인인지 히스패닉인지 누가 아나.

하지만, 그들은 우리에게 도움을 받아야 할 이유가 있다.


“여기서 지금 출발한다.”

상사가 대원들에게 속삭인다···.

“톱 꺼내. 부목 급조들것 만들 로프나 끈 준비해!”

상사가 고개를 돌린다.

“김원사임. 그거 소텍 무전기, 예비배터리 있어?”

“없어 이 새끼야.”

“그거 하나로 돼?”

“없는 걸 어떻게. 이 배터리가 닳기 전에 못 구하면 땡이지.”

“무전기는 누가 잡아. 지금 여기 소텍 없어.”

“내가 잡아.”

“원사임. 소텍 알아?”

“상사 때 받았어. 너 입대하기 전에. 피도 안 마른 새끼가.”


원사들은 교육 찍찍이를 잘 안 단다. 무겁다고.

“자, 모두 일어서! 작전계획은 가면서 생각한다. 내가 목표지역 감제고지로 이끈다. 원사님은 지금 무전기 켜서 항공중계 요청하고, 하나, 예상 도착시각. 둘. 암구어 재확인 요청. 셋. 중계로 조종사에게 현 상황 통보받을 것. 선두는 나와 김중사. 이상사가 후미. 나머지는 중간. 이상. GO."


지도 펴는 손이 떨린다. 갑자기 무척 떨린다. 모두에게 전이 된다. 살 수 있다는 기분이 들자 죽은 줄 알았던 공포가 몰려온다. 차가운 바닷물에 두 시간 동안 담갔다 빼서 떨리는 것 같다. 갑자기 체력이 떨어진다. 오들오들 떨린다. 모두 알고 있었다. 오늘 밤 우린 모두 죽었다. 벌써 죽었던 것이다. 도망치고 싶은 사람도 있었다. 어차피 저기 가면 죽는다. 총알이 몸을 때리고 수류탄이 살을 찢는다. 모두 받아들였다. 수도자의 심정으로 제단을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그런데 공기가 바뀌었다. 여기서 어딜 가나 위험하기는 매한가지지만, 보다, 더욱 한 명이라도 살 수 있다는 생각이 들자. 무섭다. 다시 떨린다.


하지만 생기가 돈다.

새로운 작전의 설렘 때문인가,

지옥의 문에서 탈출한 까닭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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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묘향산 8 21.03.05 434 2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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