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경도의 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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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휘준
작품등록일 :
2020.05.27 2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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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12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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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3.12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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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SAR 3

DUMMY

고요한 산악의 K-7 소리에 우리도 간이 떨린다. 그래서 누가 앞에 정찰을 나가 있으면 편하다. 소리가 나고, 정찰병이 본대를 보고, 쏘고, 정찰병이 ‘소리 괜찮아! 크지 않았어!’ 신호를 받는다. 그럴 때는 시신(혹은 준 시신)을 수풀로 끌어 총과 실탄 수류탄을 노획한다.


‘난 가까이 가서 보고 싶지 않아. 난 식물인간 상태를 봤다고. 그리고 내가 말을 하는데, 그분이 내 말을 알아듣는다는 걸 느꼈어. 아주 미묘한 씰룩임. 내 목소리와 날 알아들었어. 의사가 사망 선고하기 전까지 좀 그래.’


3인의 등장.

중대장은 묻고

김중사님은 끄덕였다.


난 불안했다. 세 명을 아무 소리 없이 처리한다고? 말도 안 되는 소리!


속사, 정밀사격 필요성 때문에, 두 명 이상이 등장하면 주저하게 된다. 첫 사람을 쐈을 때, 이것이 총소리인지, 무성총 소리인지 분간이 안 되면 모르지만, 이제 인민군은 우리가 무성총을 쓴다는 걸 안다.


김중사님이 쏴서 적중하는 건 봤다. 하지만 세 명은 아닌 거 아냐? 미친 거 아냐? 그 전처럼 운이 있을 거라고 생각 안 한다. 두 번은 말끔했다. 가서 칼을 쓸 일도 없었고, 그냥 재빨리 떠났다. 이번에도 그런 요행애? 총알을 약간만 빗겨맞아도 지난번과 다를 거였다. 맨 처음 목격에서 김중사님은 잘 안 보이는 상황에서 연사를 넣는 데 성공했다.


그래 쐈다고, 영화라면 0.5초 만에 다른 사람이 엎드리고 포복을 해서 사라진다? 꼭 그렇지 않다. 우리도 처음에는 총격을 받고 얼음 땡이 됐다. 제대로 조준하고 쏜 것도 아닌데 미친놈처럼 뛰었다. 두 번이 되고 세 번이 되자, 소리를 듣고 총알이 정확히 날아오는지 파악하고 응사 무-응사를 결정하기 시작했다.


‘김중사님 미친 거 아냐? 자신감이 너무 이상해!’


우리 중대 추적자 처리를 두 번 성공했다. K-7에게 일임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봤다. 그러나 이제 셋. 우리를 향해 오르막으로 오고 있었다. 우리와 걸릴 수 있고, 그들이 지나갈 때까지 움직이지 못하며, 그들이 간 방향을 포기해야 한다. 분명 우릴 찾는 놈들이었다.


1-2-3 속사. 1과 2거리 2m. 2와 3 거리 5m. 휴대 장비 특이사항 없음.

우리 팀 사수는 천천히 일어나서 은폐를 버리고


– 서서, 나무에 의탁해

– 정확히 쐈다.


1번 머리. 딱.

2번 머리. 딱.


나가면서 1~2번 몸통에 다시 하나씩. 딱. 딱.

놈들이 엎드린 위치에 확인사살, 단발 연사. 딱. 딱. 딱.

두 명은 머리를 맞았고 3번은 사수가 나가면서 엎드린 걸 찾아서 쐈다.


내 입은 벌어지고, 앞으로 나가는 사격자 선배를 본다.

그때 내 기분은

사람이 사람이 아니다.

사람 죽는 것이 충격이 아니다.


‘빨리빨리.’

빨리 완전제압.

‘나만 살면 돼. 우리만 살면 돼.’


수풀 사이 검은색에서 뿜는 연기.

탁. 탁. 탁탁!


1번은 머리가 반대편으로 훅 밀리면서 맥없이 몸이 스르르 넘어간다. 술 취한 사람처럼. 2번은 고개를 우리 쪽을 돌렸으나, 무릎에 힘이 사라지고 오그라들 듯이 넘어간다. 3번은 정확히 기억이 안 나지만 엎드린 것 같다.


탁! 따닥!

김중사님이 앞으로 걸어가며 계속 쏜다.

우린 고개를 뽑아 사방을 두리번거리며, 무엇이 알아듣고 나타나지 않을까 눈이 커진다. 까놓고 말해 우리 귀에는 엄청나게 크게 들렸다. 발사음이 어마어마하게 크게 들린다.


서로가 서로의 눈을 맞추며

‘뭐 없어? 없어? 반응 없어?’


와중에 김중사님이 돌아온다.

중대장이 뻗는 손가락 세 개.

‘3번은?’

김중사님이 손으로 자기 목을 친다.

‘확인사살은 머리다.’


난 돌아오는 김중사님의 얼굴. 눈. 본다. 가끔은 사격 직후, K7 사수의 눈에 살짝 오르는 만족감. 아주, 아주 미묘하다. 입가에 약간 힘이 들어가는.


그다음 우리의 말은 똑같다.

벌써 발은 움직인다.

”Go.“

중대장 목소리.


이 생각은, 이 장면은, 수십 번도 반복된다. 꿈에는 나오지 않았지만 계속 재상영된다. 그 중심 컷은, 더욱 반복된다. 총을 들고 손잡이와 방아쇠를 잡고 있던 1번, 2번 3번은 어떻게 맞았는지 기억에 없다. 2번은 우릴 쳐다봤으니 얼굴 정면에 맞았을 것 같다. 떠날 때 조준경으로 보니 2와 3도 완전히 너부러져 있었다. 내가 기억하는 건 1번. 정확히 봤다.


딱! 소리와 함께 머리가 한쪽으로 밀리면서 까딱, 그리고, 절벽에서 바다로 다이빙하는 것처럼, 통짜로 그대로, 통나무처럼 1자로 넘어갔다. 연기가 꽤 나는 K-7. 중사님을 돌아보니 그 연기 와중에 서 있다. 그리고 날 지나쳐 앞으로 나간다.


난 이것이 현실인가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저걸 뭐라고 표현해야 하지. 저걸 어떻게 생각해야 하지? 말로는 다 했지. 말로는...


‘비참하다. 정말로 비참하다. 저것이 비참한 것이다.’


그리고 며칠 지나, 김중사님. K-7 사수님이 갔다. 팀의 첫 번째.


총과 실탄이 간절하지 않은 이상, 적의 시신을 뒤지지 않는다. 재수가 없어서가 아니다. 총알이 날아오니까. 단 3초가 생사를 가르니까. 우리 중대원도 뒤지지 않는다. 중대원의 물건을 회수할 정도면 총에 맞지도 않았다. 하지만, 다른 총은 버려도 K7은 반드시 회수하고 떠난다. 종부성사는 못 해줘도 K7은 입고하고 간다. 회수할 때는 전용 9mm 탄을 모두 회수한다. 적이 총을 쏴도 반드시 건지고 가야 한다.


총은 담당관이 들었고 실탄은 내가 챙겼다. 조끼를 뒤져서.

난 아직도 김중사님이 가벼운 미소로 떠났다고 생각한다.

내 착각인진 몰라도.


------------------------------


Head shot.

손발이 멈추면서 통나무처럼 넘어가던 북한군.

공장 굴뚝이 쓰러지는 줄 알았다.


[니가 무슨 고로 생각하는 인간인 줄 알았냐? 이 병신아.]


[인간 모양의 가축. 너 하나 죽어도 표 안나.]


[마지막으로 땅에 자양분이나 실컷 녹여주고 꺼져!]


‘나도 저렇게 죽는다...’


생각하니 지금 다시 소름이 돋는다.


”쉿! 쉿!“

또 멈추고 또 들어간다.


뭐지?

지역대장이 손가락으로 공중에 원을 그린다.

이번엔 적이 아니다. 상의가 필요한가 보다.


원형 경계로 자리를 잡자, 지역대 폭파 선배가 앞에 있는 유중사님 머리를 지시한다. 저 아래 남쪽에서는 감히, 감히 고참에게 할 수 없는 행동. 유 선배는 금방 알아듣고 자기 인민군모를 벗어 주나, 유중사님은 교환해 받은 벙거지를 내켜 하지 않는다. 벙거지를 워낙 싫어했다.


(대리) 지역대장이 GPS를 찍어 확인, 지형 보고 지도 보고, 원사는 노안 때문인지 눈을 실처럼 누른다. 둘은, 조종사가 숨을만한 지형이 어디일까, 손과 지도로 상의한다.


총소리.

총소리가 필요하다.

코카소이드의 위치.


하지만 총소리가 들린다면 거의 잡혔다는 소리 아닌가? 미국 공군 조종사가 북한군보다 잘 뛰거나 걸을 수 없다. 독수리훈련 때 오는 그린베레는 ‘뭘 그렇게 많이, 그렇게 빨리 걸어?’ 우릴 북한 보듯 하고, 우린 ‘뭐가 이렇게 무거워!’ 장비 빨에 숙연해진다. 걸을 때 사람들을 보면 내가 봐도 정신이 나간 것 같긴 하다.


난 너무 불안하다. 너무 낮은 곳으로 내려와서 겁이 난다.

미군 코노넬은 눈에 띄면 잡힌다. 거기서 끝이다.

두 간부가 결론을 내는 듯하다.


‘여기 어디 있어. 여기.’


총소리 아니면 폭격이 다시 있어야 한다. 항공에서 탄이 떨어지면 그 어디 있다는 뜻 아닌가?


여긴 이제 게릴라전이 아니야. 우린 도망도 못 쳐. 숨으려고 온 것이 아니야. 죽으려고 온 것 같다. 하지만 똥 누고 나올 때 마음도 달라진 거지. 작계대로 공격했으면 거기서도 우린 죽었어. 매한가지야. 얍삽한 생각은 말자고. 근데, 이 양반, 저 양반들은 정말 나처럼 안 무서운가? 안 그런 척하는 건가? 아무에게도 말 안 했지만, 난 여기 넘어와서 거의 총을 쏘지 않았다. 쏠 일도 없었고, 좀 쏘려고 하면 뛰었다. 총을 거의 쏘지 않았다는 뜻은, 사람을 조준해서 쏜 일이 없다는 거다. 쏘긴 쐈다.


쏘고 싶어도 쏠 대상이 없다. 모든 것이 너무 빠르다. 사격장의 삑~ 소리를 듣고 총을 들어 조준경을 볼 때, 그때보다 더 빠르게 흐른다. 총소리 첫 방부터 우리도 상대도 금방 사라진다. 빵! 소리 들으면 이미 난 엎드려 있다. 내가 숨으면 상대도 보기 힘들다. 다시 빵! 소리 들으면 난 뛰고 있다. 처음엔 총소리 듣고 뛸 엄두가 안 났지만, 스타트를 어떻게 끊느냐에 따라서 상대도 정말 맞추기 힘들다는 걸 안다. 따라오는 총알의 피탄을 보면 조준에 무력하다. 처음에는 허리를 굽히며 뛰었지만, 이제 몸 펴고 전력 질주.


어쩌면 항상 피해만 왔다. 살기 위해. 작전을 지속하기 위해.


유중사님은 말했지.

”개 같지 않냐?“

”뭐가 말입니까.“

”도망 다니는 거. 개 존나.“

”임무가 그렇잖습니까.“


”몰라서 그러냐? 쏘고 도망치고, 먹다가 도망치고, 자다가 도망치고, 이게 염병 안 그러냐? 씨, 취향 안 맞아. 내가 용감한 영웅도 아니고 뭣도 아니다만 이게 뭐야. 쫄쫄이 굶고. 산만 내려가면 먹을 게 널렸어. 내려가면 죽지. 임무 때만 내려다가 잠깐 때리고 도망질이야. 난 그냥 더러워. 뭐야 이게. 그지냐 씨. 개 같은 거 진짜.“


입이 원사다. 원사들은 틈을 보이면 말에 반이 욕이다. 욕을 접두사처럼 달고 산다. 아래 애들이 불편해하니까 말 무척 참는다. 원사들이 퍼마시는 자리 옆에서 있어 봤다. 말이 다 욕이다.


유중사님이 양반 자세에서 주먹을 쥐어 땅을 쳤다.

”어후~~~~ 진짜.“


도망. 도망자. 유중사님 말이 맞다. 우리 숫자가 적으니 어쩔 수 없다, 기분 더러운 건 변하지 않는다. 어쩌면 유중사님과 난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난 하사. 부대에서 하사는 성격을 드러낼 권리가 없다. 항상 찌질하고 뛰는 상태여야 한다. 하지만 고참들은 하사들 진짜 성격을 모른다. 심지어 나조차. 난 담당관들 하사 시절이 보고 싶다. 우리 팀 선임담당관님은 반 폭력으로 중사님들을 통솔했다. 그런데 다 좋아한다. 뒤끝이 없어서. 중사가 뭐 잘못하면 웃으면서 ‘이건 폭력 아니다!’ 가슴을 주먹으로 퍽퍽 친다. 나에게는 주먹을 들었다가 ‘하사가 무슨.’ 다시 내린다.


중사님이라고 불렀다가 맞아 죽을 뻔했다. 그것도 지역대 모인 가운데 나불거렸다가. 무조건 (폭. 통. 의. 화) 담당관님. 팀 왕고는 선임담당관. 다른 명칭은 조수가 자기 주특기 담당관을 사수! 라고 부르는 것밖에 없다. 내 사수는 폭파 계산, 나는 점검 준비 챙기기 노가다. 난 알아서 그런 중사가 되는 줄 알았다.


아니다. 난 약하다. 난 무섭다.

그리고 이제 도망 다니다 못해, 찾아왔다.

중간에 끼지 않으려 했던 우리가 저들의 중간에 왔다.


심장이 발칸포처럼 흔들린다.

건축용 콤프레셔 엔진소리 같다.

심장이 이렇게까지 뛸 수도 있구나.

오늘은 무슨 날이냐.

죽는 날은 자기가 아는 건가?


내 몸을 내가 보지 않아도 침을 삼킬 때면 볼에서 당기는 살이 없다. 해골에 비닐 같은 피부만 남아서 침을 삼킬 때 온 피부를 당긴다.


여기 앞을 보면서도 눈에 선한 것, 내 두고 온 것들이 동시에 보인다. 두고 온 것이 아닐 수도 있지. 세상이 내 것은 아니니까. 그냥 거기 있는 것들. 하지만 내가 보고 싶은 것들, 돌아가 다시 내 것으로 만들고 싶은 것들.


‘도시락 창피하지 않아?’

‘연락 기다렸어. 내가 싫어?’


이렇게 두 가지가 눈에 보일 때 이제 종착역인가. 사람이, 제 때에 맞춰 나에게 온 것을 부정하면 안 되지. 세상을 막아? 아무리 봐도 그 순서는 못 막는 것 같다.

낮이지만 낮이 아니다. 구름 한 점 없는 푸른 하늘이 아니다. 세상 모든 것이 암울하다. 나에게는 이 대낮도 스산한 밤. 빠져나오지 못할 터널로 들어간다. 낮이 그믐날 같다. 그 밤에 늑대가 운다. 늑대가 ‘너 걸리기만 해봐. 물어뜯는다.’ 이를 갈며 포효한다. 널 찾아가겠다고 운다. 태양이 달로 변한다. 산란 되어 빠르게 흐르는 구름 속, 달빛이 스산. 처음부터 끝까지 암울한 2시간짜리 영화를 보는 것 같다.


귀신이 다음 타자를 데려가려고 잠을 깰 시간. 기다렸다는 듯 바람이 분다. 내 살에 닿기 싫은 바람이 분다. 비는 황산이다. 날 녹여 죽일 거다. 비가 몰려올 것 같다. 황산에 내 몸이 녹아 백골만 남는다. 둥 둥 둥 둥 북소리가 들린다. 나 미쳐가나 봐. 여기 오늘의 제물이 있다. 이제 내 몸이 차례야. 하늘이 말한다. 사람은 자기가 죽는 날은 알아야지. 사람은 자기가 죽는 날을 알아야지. 네 차례란 것이 아직 실감이 안 나냐?


등골에 갑자기 주르륵 강줄기.

뭐, 이런 땀이 갑자기 흐르지?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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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SAR 3 21.03.12 437 20 14쪽
194 CSAR 2 21.03.10 472 17 13쪽
193 묘향산 붉은 단풍 (CSAR) 21.03.08 483 20 12쪽
192 묘향산 8 21.03.05 434 2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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