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부집단군 사령부에 온 하이에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한 옥스퍼드 대학 교수는 우라늄으로 만들 수 있는 가공할 대량살상무기, 원자폭탄에 대해 설명했다.
"쉽게 설명하자면, 우라늄의 원자핵이 분열되는 과정을 이용해서 가공할 힘을 얻는 것입니다. 이 기술을 개발하는데 성공한다면 한 도시 하나를 완전히 날려버릴 수 있는 어마어마한 힘을 얻게 될 것 입니다"
순간 정적이 흘렀다.
'원자핵 분열을 이용한 대량살상무기에 관한 소문이 진짜였단 말인가?'
런던 정계 수뇌부들 사이에서 원자폭탄에 대한 소문은 이미 돌고 있었다. 하지만 독일을 한 방에 작살낼 수 있는 무기, 어마어마한 위력을 가진 대구경 포, 신기술로 만든 전투기 등 실용화가 불가능한 엉터리 무기들에 관한 소문은 세계대전때부터 늘상 있었기에 정치인들은 이에 대해 믿지 않았던 것 이다.
처칠은 이 이야기를 해야할지 신중하게 고려했었다. 하지만 독일이 모스크바로 진격한다는 소식 이후로 영국에서는 또다시 체임벌린파가 득세하고 있었다. 그래서 처칠은 이 위험한 정보를 이야기한 것 이었다. 물론 영국에서도 원자폭탄에 대한 연구가 진행 중이었기에 오늘 회의 참석자들 중에는 이에 대해 알고 있는 정치인도 몇 있었다. 하지만 처칠이 이렇게 말해두었으니, 조만간 원자폭탄에 대한 소문은 정계에 쫙 퍼질 것 이다. 한 정계 수뇌부가 말했다.
"독일이 1939년 체코슬로바키아와 우라늄 관련 협약을 체결했다는 것은 이미 그 때부터 원자폭탄에 대한 연구를 하고 있다는 말이군."
"이게 실용화될 가능성이 얼마나 있습니까?"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가 이에 대해 대답했다.
"실용화되는 것은 시간 문제입니다. 최소한 한 국가는 길어야 7년 안에 개발에 성공할 수 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독일이 7년 안에 우리를 날려버릴 수 있단 말이군."
"우리가 더 빨리 만들면 되지 않겠습니까?"
"미국과 협력해야겠군."
너무 위험한 정보가 나올 것 같아 처칠은 의제를 바꾸었다.
"현재 발칸 반도에 대영제국의 동맹국은 그리스 밖에 없습니다. 지금 독일의 공세가 모스크바로 간다고 안심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닙니다."
"터키의 상황은 어떻습니까?"
"현재 터키 쪽에서 우리 쪽에 외교적 접근을 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독일 제국과 경제적 협력을 끊기는 어려울 것 입니다. 그리고 이걸 보십시오."
처칠은 세계 지도를 보여주며 말을 이었다.
"독일이 모스크바를 포위하는데 성공하여 전쟁에 승리한다면, 독일은 분명 불가리아에 군대를 주둔할 것 입니다. 이는 터키, 나아가서 지중해와 근동에서 대영제국의 이권에 큰 위협이 될 것 입니다."
다음 날, 처칠은 영국 국민들 앞에서 연설을 했다.
"먼 대륙에서 일어나는 전쟁은 대영제국과 아무 연관이 없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독일이 이번 전쟁에서 승리하면, 중부 유럽과 동부 유럽의 대다수의 국가들이 독일과 최선의 관계를 맺을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저 또한 전쟁을 경험했고 그 누구보다 전쟁을 원치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진실을 알아야 합니다! 유럽의 힘의 균형이 깨져가고 있으며, 이 사태를 방관하는 것은 전쟁 없이 패배하는 것 입니다.
제가 누구보다도 공산주의에 반대했다는 것은 모든 국민들이 알고 있을 것 입니다. 소련에서 벌어지는 전쟁은 지구 반대편에서 벌어지는 일이라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침략 전쟁에 맞서서 누구보다 강한 의지로 계속해서 죽음을 각오하고 싸우고 있습니다.
나약함과 공포를 바탕으로 하는 유화책은 무용한 것 입니다. 그러나 힘을 바탕으로 하는 유화책은 세계 평화로 가는 가장 확실하고 유일한 길입니다!"
그리고 처칠은 체임벌린 총리에게 프랑스와 공개적인 동맹을 맺으라고 요구했다.
"프랑스와의 동맹을 맺는 것 만으로 독일의 힘을 억제하고, 전쟁을 예방할 수 있습니다! 지금 행동하지 않으면 1942년에는 지금보다 더욱 어려울 것 입니다!"
처칠의 연설에 일부 영국인들이 동의하고 일부 영국인들은 반박했다. 영국의 모든 술집에서는 독소전과 처칠에 대한 이야기로 떠들썩했다.
"처칠의 말은 상당히 논리에 맞아! 그 양반이 반공산주의에 진심이 아니었던 적이 있었나?"
한 영국인은 오늘자 황색 언론지에 올라온 사설을 가리켰다.
[전쟁을 찾아 온 유럽을 기웃거리고 있는 처칠.]
영국인들은 다 같이 그 사설을 읽기 시작했다. 그 사설은 독일이 서유럽에서 전쟁을 벌일 의도가 없다고 주장하고 있었다. 참고로 이 사설은 런던 주재 독일 대사관이 기자에게 약간의 파운드화를 주고 언론지에 실리게 된 것 이었다.
[최근 히틀러의 연설을 보면 타당하고 합리적이며 독일 제국이 서유럽에서 전쟁을 할 의도가 없는 것이 확실하다.]
"연설 따위로 어떻게 크라우트의 의도를 알 수 있겠나?"
"독일이 소련에게 당한게 있으니 전쟁 명분이 있기는 했네! 하지만 협상할 것처럼 해놓고 전쟁을 일으킨 놈들이라 독일 놈들 말도 믿을 수가 없네."
"이런 사설은 다 독일측으로부터 돈 받은거라고!"
한편, 체임벌린은 독일이 모스크바로 공세를 한다는 것에 안심하고 있었다. 독일이 청색 작전으로 나갔다면 체임벌린 내각은 무너졌을 것이 분명했다.
'독일이 캅카스로 갔다면 이는 대영제국에 대한 직접적인 위협이었을 것 이다. 하지만 독일이 대영제국을 적대시하며 양면 전선을 벌이는 위험을 감수할 이유가 없었다. 나라도 당연히 모스크바로 갔을 것 이다.'
체임벌린은 최근 처칠이 독일의 원자폭탄 개발에 대하여 다른 정치인들에게 이야기했다는 것을 보고 받았다.
'처칠은 자기 자신만 대영제국을 지키고 싶어하는줄 아는군...'
체임벌린 또한 독일의 원자폭탄 개발에 대하여 예전부터 알고 있었고 이에 대해 경계했으며, 원자폭탄 연구를 위하여 물리학계에 많은 연구 지원을 해주고 있었던 것 이다.
체임벌린은 최근 런던 주재 독일 대사에게 온 서신을 읽어 보았다. 런던 주재 독일 대사는 체임벌린에게 전쟁이 독일의 승리로 끝난 이후에도 독일은 불가리아에는 군대를 주둔하지 않겠다고 영국과 비밀 협약을 맺을 수 있다고 제안했다. 이 협약은 문서화될 것 이며, 지금 당장은 아니지만 체임벌린이 적절한 시기에 공개해도 된다는 조건도 덧붙였다.
체임벌린은 독일과도 조만간 회담을 하기로 했다. 그리고 체임벌린은 최근 프랑스가 독일 국경에 군대를 집결하고, 독일군과의 교전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이 분명한 제병 협동 훈련을 실시하고 있다는 것에 주목했다. 체임벌린은 이에 대해 자세한 조사를 명령했다.
다음 날, 군사 전문가가 이에 대해 보고서를 올렸다.
[현재 프랑스-독일 국경에 병원이나 의료 시설은 없음. 아직까지 프랑스가 본격적인 군사 행동을 보일 조짐은 없음.]
'단순한 시위성 움직임인가...'
하지만 상황은 언제 어떻게 뒤바뀔지 모르는 것 이었다. 체임벌린은 프랑스의 달라디에 총리가 제안한 정상회담에 대해서도 긍정적으로 대답하고 날짜를 잡기로 했다. 달라디에와 정상회담을 하면 굳이 뚜렷한 결과물을 내놓지 않더라도, 현재 영국 정계에 만연한 강경파의 불만을 어느 정도 잠재우는데 효과가 있을 것 이었다.
그리고 체임벌린은 외무부에 절대로 프랑스에 어떠한 군사적 약속도 해주지 말라는 명령을 내렸다.
'달라디에는 대독 온건파이지만 최근 군사적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전쟁 발발을 막아야 한다.'
한편, 미국 정보조정국 OCI에서 워싱턴의 비선 실세, 재계 수뇌부, 월가를 움직이는 손들이 최근 독소전에 대해 회의를 했다.
"소련이 멸망하면 일본은 북방이 안정화되어 바로 태평양으로 향할 것 입니다."
주가 변동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월가의 큰 손이 속으로 생각했다.
'이번 독일 공세가 성공하면 루스벨트의 정치 생명에 치명타겠군...'
그리고 루스벨트 또한 이번 독소전 진행 상황에 대해 계속해서 보고를 받고 있었다. 또한 루스벨트는 자신의 친구인 독일 제국의 루이스 페르디난트 왕자로부터 온 친서를 읽고 있었다. 친서에는 앞으로 독일 제국과 미합중국이 우호적이고 발전적인 관계를 유지했으면 좋겠다고 적혀 있었다. 물론 루스벨트의 개인적 친분과 정치는 별개의 문제였다. 하지만 루스벨트는 최근 여러 정치적 상황을 고려하여 노골적인 대독 견제 정책은 줄이되 소련 지원을 계속하기로 결정했다.
1941년 4월 22일 07:00 중부집단군 사령부, 한스 파이퍼는 참모들과 함께 모형 지도를 초조하게 바라보았다. 현재 501 중전차대대가 있는 2기갑군의 24 기갑군단은 다수의 적 전차들을 격파하면서 여전히 쾌속 진격하고 있었다.
'반드시 공세의 힘을 유지해야 한다!!!'
중부집단군 참모장 한스 폰 그라이휀베르크 소장이 보고했다.
"현재 우익이 지나치게 늘어나고 있습니다!"
그라이휀베르크 소장은 2기갑군이 얼마나 낮은 밀도로 2기갑군의 우익을 보호해야 하는지 보고했다. 그리고 육군 병참국의 에두아르드 바그너 소장이 올린 보고서를 제출했다. 병참국의 보고에 따르면 원래 약속했던 것 만큼의 연료를 보급할 수가 없다는 내용이었다. 그라이휀베르크 소장이 모형 지도를 가리키며 말했다.
"이렇게 진격하다간 선봉 기갑 부대의 연료가 조만간 떨어질 것 입니다. 지금 비어있는 측면만 여기부터 여기까지에 달합니다! 급작스러운 측면 공격을 받으면 선봉 기갑 부대가 포위될 위험이 있습니다!"
그라이휀베르크 소장의 지적은 타당했다. 아직까지는 소련군은 측면을 공격할 조짐은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소련 또한 결정적 한 방으로 독일군 전격전 공세의 측면을 노릴 것이 분명했다. 만약 선봉 기갑부대가 너무 빨리 진격했다가 포위되어 고립되기라도 한다면 그야말로 재앙이었다.
한스가 말했다.
"공세의 힘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연료는 야간에 보충하면 된다. 각 지휘관들에게 가능하면 계속 진격하라고 명령한다."
어차피 임무형 지휘체계라 각 지휘관들이 알아서 결정할 일이고, 특히 구데리안 성격을 고려하면 상부에서 멈추라고 멈출 일은 절대 없을 것 이었다.
지금 한스는 모스크바를 포위하는 북익과 남익에 모든 기갑군을 집중한 상황이었다. 그리고 모스크바를 포위하는 기갑군 중에 남익을 담당하는 구데리안은 자신의 2기갑군의 측면을 보호하기 위하여 17 기갑사단을 보내달라고 했다. 참고로 17 기갑사단은 중앙집단군이 보유하고 있는 중요한 예비대였다.
한스는 구데리안의 요청을 승인했다. 이에 참모들이 반발했다.
"17기갑사단을 2기기갑군의 측면을 보호하기 위해서 보내면 중앙집단군의 남쪽이 너무 취약해집니다."
"기갑부대 없이 보병들만으로 이 넓은 구역을 방어할 수는 없습니다."
한 참모가 아군 항공기에 대한 자료를 제출하며 현 상황을 설명했다.
"17기갑사단이 2기갑군의 측면을 보호하기 위해 전진하면, 아군 전투기의 지원 없이 진격해야 합니다."
지금 한스 파이퍼는 모스크바를 포위하는 선봉 기갑부대를 지원하기 위해서 모든 항공군 지원을 투입한 것 이었다. 그렇기에 현재 남부 집단군 쪽에서 항공군이 부족한 상황이었다. 남부 집단군 사령부에서는 육군최고사령부 측에 Bf-110과 슈투카를 지원해달라고 요청하고 있었다.
하지만 한스는 자신의 결정을 그대로 강행했다. 뿐만 아니라 2항공군단을 이용하여 2기갑군의 선봉대의 진격을 계속해서 지원했다.
한스 파이퍼는 육군 병참국의 에두아르드 바그너 소장에게 전화를 걸고는 빠른 연료 보급을 요청했다. 다른 참모들은 한스 파이퍼가 전화하는 광경을 바라보았다.
"모스크바를 포위하기 위해서는 공세의 힘을 유지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이런 식으로 찔끔찔끔 받아서는 공세의 힘을 유지할 수 없다는 것을 알지 않습니까! 지금 당장 연료가 필요합니다!!"
"현재 남부집단군과 북부집단군에서도 소련군의 공세가 있기 때문에 무작정 중부집단군에 모든 연료를 투입할 수는 없습니다."
"그건 국지적 공세일 뿐이오!! 지금 필요한 것은 자잘한 전투의 승리가 아니라 적의 중심부에 쐐기를 박는 공격이오! 이런 식으로 가면 승리할 수 없소! 독일 제국을 위한 일이니 신속히 연료를 보내주시오!!"
한스 파이퍼는 여태까지 출격한 항공기에 대한 보고서를 읽었다. 구데리안의 진격을 지원하는 2 항공군은 공세 2일차인 어제까지 슈투카만 300회 가까이 출격한 상황이었다.
'항공기가 더 필요하다!'
한스는 최고사령부 측에도 계속해서 지원을 요청하고 항공기를 더 보내달라고 했다. 그리고 한스는 자신의 집무실로 들어가서 서둘러 서류 작업을 했다. 그 때, 베를린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받아 보니, 한스와 연줄이 있는 외교계 인사였다. 한스가 물었다.
"현재 일본에서는 대소 전선에 참전할 움직임이 없습니까?"
한스가 속으로 생각했다.
'일본 네 놈들도 전리품을 갖고 싶으면 빨리 행동하는게 좋을 것 이다...일본이 참전하지 않는다면 시베리아 산업구역까지 모조리 독일 제국의 손에 들어올 것 이다.'
외교계 인사는 아직까지는 일본의 움직임이 없으나, 추후 정보를 얻게 되면 바로 한스에게 알려준다고 했다.
그리고 한스는 담배를 피우기 위하여 잠시 중부집단군 사령부 밖으로 걸어나왔다. 그 때, 퀴벨바겐 한 대가 중부집단군 사령부에 도착했다. 그 퀴벨바겐에서는 현 돌격대 지도자인 하이에와 세계대전때부터 참전했던 전쟁 베테랑인 피셔가 내렸다. (작가 주석 : 피셔는 세계대전때도 한스와 같이 싸운 최정예 베테랑이고 현재는 하이에의 밑에서 싸우고 있음.)
이들의 엄청난 무공은 독일 전체에 그 소문이 자자했다. 하이에와 피셔가 그려진 엽서는 현재 독일에서도 인기리에 팔리고 있었다.(이 당시 독일군은 뛰어난 무공을 세운 군인들의 초상화가 그려진 엽서를 판매했음.)
하이에와 피셔가 걸어오자, 중부집단군 사령부의 공기가 바뀌었다. 보초를 서는 국방군들도 순간 긴장했다.
'생긴건 딱히 특별하진 않는데...'
한스는 하이에를 보자 자신도 모르게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한스는 세계대전때부터 오스카 바르크만 등 많은 군인들을 목격했다. 살기가 있고 전투력이 강한 군인들은 비교적 흔했다.
하지만 하이에는 그들과는 완전히 종류가 달랐다. 범죄자들, 그리고 군사학교에서 살상 기술을 배우고 나서 가장 기고만장하고 혈기 넘치는 1학년들도 하이에 앞에서는 겁에 질린 개처럼 꼬리를 내릴 것 이었다. 하이에 특유의 정돈된 살기는 수 년 동안 전쟁을 경험한 한스조차도 처음 보는 것 이었다.
'힘러의 사냥개라...이런 자는 사냥개가 아니다. 자기 자신의 판단에 의해 행동하고 그 누구에게도 충성하지 않겠지.'
하이에와 피셔가 한스에게 경례를 했다. 1918년 한스와 같이 싸웠던 최고의 전사인 피셔는 무장친위대 제복을 입고 있었다. 한스는 피셔가 왜 무장친위대가 되었는지 대충 직감하고는 다소 씁쓸함을 느꼈다. 피셔는 한스가 전우로 느낀 세계대전 참전 용사 중 한 명이었다.
한스가 이들의 경례를 받아주고는 최근에 자신이 읽은 하이에의 근접 전투 전술에 대한 보고서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귀관의 근접 전투 전술에 대한 보고서를 읽었소. 혁신적인 내용이더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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