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t 52. 은혜는 바다 같이 - (1)
병실에서 익숙한 얼굴이 나타난다.
이시환의 매니저 방석우.
요새 들어서 더욱 자주 만나는 얼굴이지만, 그의 얼굴은 유독 침울함을 띠고 있다.
“석우 씨.”
“형님, 형님은 괜찮습니까?”
같이 복도에 있던 상범이가 자리를 박차고 그에게로 달려간다.
나 역시 상범이를 쫓아 방석우의 옆으로 다가간다.
방석우는 시름이 가득한 상태에서도 우리를 향해 애써 웃었다.
“네, 이제 막 잠드셨어요. 다행히 생명에 지장은 없으시답니다.”
“후우···”
방석우의 한 마디와 동시에 상범이의 자세가 무너진다.
상범이는 오른손으로 자신의 가슴팍을 붙잡고 짙은 한숨을 내쉬고 있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성대를 타고 짙은 한숨이 배어 나온다.
응급처치에 성공하고, 이시환은 곧장 인근 병원으로 후송되었다.
그의 상태는 내가 판단했던 대로 열사병이었다.
냉방 장치가 고장 난 역에서 계속 뛰어다니고 힘을 쓰는 등.
너무 무리하게 움직인 탓에 몸의 열이 폭발적으로 증가하여 발생한 결과다.
“다행히 지혁 씨의 응급처치가 정말 효과적이었다고 해요. 의사 선생님 말씀으론 그 응급처치가 아니었다면 큰일 치를 수도 있었다고······”
방석우가 말꼬리를 흐리며 눈시울을 붉혔다.
옆에 있던 상범이는 나를 보며 다시 한번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역시 지혁이형입니다. 열사병인지는 대체 어떻게 아신 겁니까? 아니, 다들 놀란 와중에도 곧바로 응급처치부터 들어가시는데 저는 무슨 응급구조사 보는 줄 알았습니다.”
상범이가 놀란 토끼 눈을 하며 이쪽을 바라본다.
열사병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이유는 특별한 것은 없다.
“여름에 군에서 가장 자주 일어나는 사고가 바로 열사병이잖냐.”
다른 현장 직업들도 대부분 비슷하겠지만, 유독 군부대의 경우 하계 시즌에 열사병이 특히 자주 일어난다.
괜히 여름만 되면 온열 손상 킷을 챙기고 일정 기온 이상으로 올라가면 야외 활동이 전면 취소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한 것은 정말 별거 아니었다.
그때 당시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은 방법을 몸소 실행한 것이 전부다.
“선배님이 무사하셔서 다행입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지혁 씨 아니었으면 저희 시환이형 하마터면···”
방석우는 고개를 떨어뜨린 채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하긴 벌써 5년 넘게 이시환과 함께했다고 했던가?
대기실에서도 마치 친형제처럼 서로를 챙기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누구에게나 친절하고 사교성 좋은 이시환인 만큼, 그의 주변에도 좋은 사람들만 모이는 것이겠지.
괜스레 상범이의 눈시울도 붉어지려 한다.
나는 그의 등을 토닥이며 말을 덧붙였다.
“석우 씨가 울면 어떡해요. 선배님이 편찮으시니, 이럴 때일수록 석우 씨가 선배님 잘 도와드려야죠.”
“네, 네! 맞아요, 이럴 때일수록 제가 더 힘내야 우리 시환이형을···”
“석우 씨만큼 선배님에 대해 잘 아는 사람 없잖아요. 선배님 겨우 이정도로 쓰러지실 분 아닙니다. 금세 정신 차리셔서 언제 그랬냐는 듯 대본 읽고 준비하실 분이잖아요.”
방석우는 시선을 떨어뜨린 채로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을 확인하고서야 조금 안심이 된다.
“상범아 우리도 이제 일어나자. 선배님도 석우 씨도 이제 좀 쉬셔야지 우리 있으면 불편하실 거야.”
“예, 형님!”
얘가 또 형님 소리를.
괜히 병원에서 크게 오해받을라.
“석우 씨 그럼 저희는 일어나 볼게요. 조만간 또 찾아올 테니까 우리 선배님······”
“저, 지혁 씨!”
“···예?”
돌연 방석우가 내 말꼬리를 자르고 내 이름을 부른다.
생전 그러질 않던 사람이 갑자기 말꼬리를 자르고 들어오니 괜스레 당혹감이 번진다.
손가락을 꼬물거리며 한참을 망설이던 그는 이윽고 조심스럽게 입술을 떼었다.
“따로 좀 한 가지 부탁드려도 될까요?”
***
“호록.”
자리에 앉은 방석우가 씁쓸한 모습으로 커피를 홀짝인다.
나는 상범이를 먼저 돌려보내고 방석우와 함께 병원 내에 있는 카페를 찾았다.
갑작스러운 부탁이라는 말에 당황스럽기도 했지만, 한 번도 내게 부탁이란 말을 꺼내지 않았던 방석우가 부탁이란 말을 꺼낸 것에 뭔가 있다고 여긴 까닭이다.
나는 방석우를 따라 앞에 있던 카페 모카를 홀짝이고서야 천천히 입술을 떼었다.
“아까 말씀하신 부탁은······”
“아, 네! 실은 시환이형 관련해서 부탁드리고 싶은 게 있어서요.”
역시 이시환에 관련된 일이었나?
하긴 방석우가 갑자기 내게 부탁할 것이라고 한다면 그 이외의 일이 있을 리가.
하지만 호기로운 시작과는 달리 방석우는 조금 말을 잇는 것을 망설였다.
아무래도 선뜻 이야기를 꺼내기 조금 곤란한 화제인가 보다.
“편하게 말씀하세요.”
“······”
“이시환 선배님은 제가 힘들 때, 정말 큰 도움을 주신 분입니다. 선배님과 관련된 일이라면 두 팔 걷어붙이고 도와드릴 테니 편하게 말씀해주세요.”
방석우의 눈동자가 큼지막하게 떠진다.
울먹일 듯 망설이는 눈동자 사이로 그는 천천히 입술을 떼었다.
“저희 시환이형 좀 말려주세요.”
“···예?”
난데없이 이시환을 말려 달라?
이건 또 무슨 소리야.
의문을 가득 담은 눈동자가 방석우에게로 향한다.
그제야 비로소 자신의 실수를 눈치챈 그는 황급히 말을 덧붙였다.
“제가 너무 두서없이 말씀드렸네요··· 시환이형 이번이 첫 주연 작품인 거 알고 계시죠?”
물론 알고 있다.
처음으로 주연을 맡고 그가 얼마나 기뻐했던가.
평소에도 주연의 자리에 어울리는 연기를 펼쳐야 한다며 남들보다 두 배 세 배는 더 연습하곤 하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사실은 그거 때문이에요.”
“···주연 맡은 것 때문에요?”
“네, 시환이형··· 평소 체력보다도 훨씬 더 무리하고 계셔요.”
방석우는 목소리가 침울한 기색을 띄었다.
순식간에 허물어지듯 무너져 내리는 그의 목소리에 눈동자가 가늘게 변한다.
방석우는 이리저리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면서도 나를 향해 서서히 진실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마냥 기뻤어요. 지혁 씨도 아시잖아요. 우리 시환이형 정말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정말 많이 노력했다는 걸요. 하지만 실력에 비해 운이 없었어요. 매번 조연에 조연에 조연··· 항상 조연뿐이었잖아요.”
“······”
“드디어 주연을 꿰찼을 땐 정말 세상을 다가진 것처럼 기뻤어요. 드디어 우리 시환이형도 뜨는구나, 갈고닦은 실력을 인정받아서 드디어 주연을 맡았다고 생각했는데···”
자랑스럽게 이어가던 방석우의 목소리가 가늘게 떨렸다.
차츰 흐려져 가는 목소리 속에 방석우는 씁쓸한 표정으로 다시금 말을 덧붙였다.
“하지만 그게 시환이형에겐 독이었나 봐요.”
“석우 씨.”
“시환이형 주연을 맡고서 하루를 제대로 쉰 적이 없어요. 집에서도 촬영장에서도, 차에서도 매일 같이 대본만 들여다보고, 어떻게 하면 더 연기에 집중하고 몰입할 수 있을지 하루도 빠짐없이 그것만 생각하고 있어요.”
“······”
“정말··· 매니저로서 이런 말 하면 안 되는데. 시환이형, 꼭 연기에 미쳐버린 사람 같아요.”
어느새 방석우는 흐느끼고 있었다.
걱정과 탄식으로 가득 찬 목소리가 나에게 발악하듯 감춰두었던 속내를 털어놓기 시작한다.
“주연으로 인한 부담감 때문인지 완전히 미친 사람처럼 하루 종일 대본만 쳐다보고 한강우에 몰입하고 있어요.”
“···말려 보셨어요?”
조심스러운 물음에 방석우의 눈동자가 비로소 나를 향한다.
끝없는 걱정으로 가득 찬 눈은 입술 대신 대답하듯 몇 번이고 깜빡인다.
“말려 봤냐고요? 당연하죠. 저 시환이형 매니저잖아요. 시환이형이 컨디션 조절하시도록 몇 번이고 말려봤죠. 하지만 소용없어요. 주연에 대한 부담감 때문인지 자꾸만 대본만 들여다보고 잠잘 시간까지 줄여가면서 연기에만 매진하고 있어요.”
“차라리 대본을 뺏으면요.”
“불같이 화내요. 한번은 대본을 숨겨 놓은 적이 있었는데, 언제 카피해 두셨는지 카피본을 읽고 계시더라고요.”
그 정도로 미쳐 있었던가?
처음으로 주연을 맡은 자부심이 굉장히 강했으니, 그 자리에 부족하지 않게 정말 열심히 노력하는 정도로 알고 있었는데.
생각보다 훨씬 더 연습에 매진하고 있었다.
“지혁 씨도 아시잖아요. 시환이형 특기가 메소드 연기인 거, 너무 연습에만 매진하고 있는 까닭인지, 작중 한강우의 성격처럼 성격도 점점 까칠해지시는데··· 이러다 한강우에 잡아먹힐 것 같아 무서워요.”
스트레스와 중압감과 간절함, 거기에 한강우인가?
한가지 문제가 아니었다.
자리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왕관의 무게라고 했다.
하지만 방석우의 말을 들어보면 이시환은 왕관의 무게에 견디고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이대로라면 왕관의 무게에 짓눌려버릴지도 모른다.
“지혁 씨··· 지혁 씨는 시환이형이 아끼는 후배잖아요.”
“······”
“제발 우리 시환이형 좀··· 시환이형 좀 말려주세요.”
드륵.
울먹이듯 애걸하는 방석우의 모습을 보며 나는 대답 대신 앉아있던 의자를 밀었다.
밀려나는 의자를 박차고 자리에서 일어서자, 물기를 머금은 그의 눈동자가 나를 향한다.
“선배님 아직 주무시죠?”
***
방석우에게 양해를 구하고 나는 홀로 이시환의 병실을 찾았다.
“······”
병실의 이시환은 곤히 잠들어 있었다.
그간의 쌓인 피로와 스트레스 덕분인지, 그는 모든 것을 잊은 채, 편안한 얼굴로 잠들어 있었다.
새하얀 벽으로 둘러싸인 1인실 아래 잠들어 있는 그의 얼굴이 동공을 가득 채운다.
고민이 많은 줄은 알고 있었는데.
혼자 뭘 그렇게 무리하고 있습니까?
“······”
바보같이 좀 몸도 쉬어가면서 해야지.
주연이 뭐라고, 평소 하던 것에 몇 배나 더 무리하면서 사람 걱정이나 끼치고.
“······”
이시환은 어떠한 대답도 없었다.
당연했다.
그는 병상에 몸을 기댄 채, 그저 자고 있을 뿐이니까.
하지만.
‘너무 조바심내지 마. 첫술에 어떻게 배부르겠냐.’
분명 잠들었을 터인 이시환의 목소리가.
‘충분히 잘하고 있어. 네 나름대로 그렇게 노력하고 있잖냐. 단지 네 전에 그 역할 했던 사람이 너무 잘했을 뿐이야. 그러니까 너무 그렇게 마음 담아두지 말고.’
연거푸 머릿속으로 떠오른다.
한세강의 ‘다시’ 연호에 완전히 멎어버린 사고를 일깨워준 그의 모습이.
답답한 마음을 환기시키며 지난 기억을 되살려 준다.
‘그냥 좀. 옛날 보는 모습 보는 거 같아서. 옛날에 나랑 내 동기들도 너처럼 선생님께 된통 혼난 적이 있었거든.’
처음으로 다가선 벽 앞에서 어찌할 방법도 모르고 방황하던 내게.
기꺼이 먼저 손을 내밀고.
‘그러니까 힘 좀 내. 그렇게 욕먹고도 아직까지 배우를 계속하는 나 같은 놈도 있는데, 한번 혼난 거 가지고 다 큰 사내놈이 축 처져 있으면 되겠어?’
못난 후배를 다독여준 상냥함이.
그의 모습을 보고 있던 두 주먹에 더욱 힘을 불어넣는다.
‘감사는 무슨. 먼저 일어난다. 얼른 기운 차리고 나중에 같이 소주나 한잔하자고.’
“같이 소주 하자시던 분이 그렇게 무리하시면 어떡합니까.”
띠링!
때마침 주머니에 있던 스마트폰에서 익숙한 알람이 울린다.
나는 곧바로 스마트폰을 꺼내 화면 위로 떠 있는 메시지를 확인했다.
- 긴급 임무 : [과열] -
내용 : [과열]로 인해 스스로를 잃어버리고 있는 이를 구하시오.
보상 : 3000코인
힌트 : [주연], [선배]
* 성공 시 작품 개봉 시, 보다 더 흥행에 성공합니다.
마침 필요한 타이밍에 내가 가장 원하던 임무다.
그래, 다른 누구도 아니고 이시환이다.
힘든 시기에 내게 큰 힘이 되어 주었던 사람.
받은 은혜는 제대로 갚아야 하지 않겠는가?
딱 기다려요. 그 열 제대로 식혀줄 테니까.
끼익.
곤히 잠든 그를 두고 나는 병실을 나섰다.
마침 병실 앞에서 기다리던 방석우가 환한 표정으로 이쪽으로 다가온다.
“지, 지혁 씨! 시환이형은요?”
“뭐··· 똑같죠. 아직 잠들어 있어요.”
설마 벌써 정신을 차릴 리가.
금세 방석우의 어깨가 축 처진다.
하지만 여기서 실망하기엔 이르다.
“그보다 도와드릴 방법이 생각났어요.”
“저, 정말입니까?”
방석우의 눈빛이 호기심을 띤다.
금세 기운을 차린 눈동자가 내게로 향한다.
피식 웃으며 그를 바라보던 나는 그를 향해 조용히 웃었다.
“여름에 기력을 보강하는 방법은 역시 그게 최고잖아요.”
“그거라면······”
“뭐긴요 보양식이죠.”
“예?”
기운 없을 땐 먹을게 최고죠.
- 작가의말
오늘 업로드 될 ‘은혜는 바다 같이‘ 에피소드는 2회차로 나뉘어 업로드 될 예정입니다.
그 중 한편이 지금 올라가는 회차이고 나머지 한편은...지금으로부터 1시간 뒤인 22시 50분에 올라갈 예정입니다.그렇습니다, 연참입니다.모두 소리 질러!!!!!!
P.S 준비상 쪼끔 시간이 더 걸릴 것 같습니다 기다리신 분들께 정말 죄송합니다 50분에 뵐게요 8ㅅ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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