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ime Walker Rain. 9-10 여우.
<b>9-10
여우</b>
오진호의 여섯번 째 꼬리가 가지고 있는 힘은 두가지.
그 중 첫번째는 얼음 거울 기둥들을 셀 수 없을 정도로 세워 환상의 얼음성을 만들어내는 것.
하지만 이 것은 단순한 무대 장치일 뿐이다.
환상의 얼음성은 상대의 시각을 흐트린다. 그렇게 시각을 봉한다.
또 하나. 환상의 얼음성은 말 그대로 수백개의 얼음 거울 기둥들이 세워져 이루어졌기에 이동하기 힘들게 만드는 것이 있다.
거울들은 교묘하다. 어떤 것은 평면 거울, 어떤 것은 볼록 거울, 어떤것은 오목 거울.
이런 다양한 거울들은 상대적으로 적의 거리 감각을 무너트리게 된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두번째 기술은.
<b>물 분신</b>.
수십명의 오진호가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어디로 가든지 그의 분신들과 만나게 될 것이다.
그 것으로 끝이 아니다.
물 분신이라고 하면 말 그대로 오진호의 모습을 물로 만들어낸 분신이라고 생각하겠지?
아니다. 여섯번째 꼬리에 있는 두번째 힘, 물 분신은 그런 단순한 것이 아니다.
그 증거로 오진호와의 거리를 벌리기 위하여 이동하던 성연이 물 분신들 중 하나와 조우했다.
'어떻게 된 것이지?'
성연이 눈을 반개한 채 생각에 잠긴다.
충분히 거리를 벌렸다고 생각했는데 상대와 마주치다니?
설마 이 공간도 자신이 가지고 있는 힘들 중 하나인 미로와 비슷한 것인가?
그렇다면 골치아프게 되는데.
상대가 어째서 자신보다 앞서 올 수 있는지에 대하여 생각하려고 하지만, 상대는 성연에게 그럴 시간따위는 주지 않는다.
출몰한 여섯개의 꼬리를 휘날리며 양손에 물로 만든 쌍검을 들고 살벌한 기세로 성연에게 돌격.
다행이 원거리, 또는 광범위한 공격이 아니라 대인 공격. 그 것도 접근전.
계산한다. 상대가 언제 자신에게 도착할 것이며, 검을 어떻게 휘두를지.
검이 위치한 곳을 면밀히 보고 예측한다.
휠체어 왼쪽 바퀴를 가볍게 굴려 오른쪽 바퀴를 축으로 시계 반대 방향으로 90도 회전한다.
아슬아슬하게 공격이 성연의 머리카락을 스치고 지나간다.
동시에 성연의 반격.
사용시에 상당한 제약이 있지만, 이 정도거리와 타이밍이라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클로버 1의 카드를 개방!
깃들어 있는 힘은......!
<b>"일그러짐!"</b>
키리리리릭-!
섬뜩한 소리와 함께 성연의 손이 닿은 오진호의 몸이 뒤틀리기 시작한다.
이 것이 일그러짐.
성연의 손에 접촉한 곳을 중심으로 그 어떠한 것이라도 일그러트려버리는 힘이다.
그.러.나.
철퍽-
"......!"
성연의 공격에 닿아 몸 전체가 처참하게 일그러져 있던 오진호의 얼굴에 미소가 나타나는가 싶더니 갑자기 물로 변하여 바닥에 흩어진다.
"이게 무슨......."
당황하는 성연 하지만, 그 당황을 진정시킬 틈도 없이 그를 포위하듯이 나타나는 수많은 오진호.
'분신... 인 것인가?'
하지만 그렇다고 보기에는 너무나도 리얼했다.
손으로 접촉했을 때의 촉감, 그리고 체온까지.
더불어 물로 만든 것인데 어떻게 녀석이 입고 있는 옷의 색이나 머리카락, 눈동자의 색까지 똑같을 수 있지?
전혀 분간이 안간다.
더 중요한 것.
그 것은 일그러짐을 발동 시키고 녀석의 표정은 실제 생명이 있는 존재가 죽어가는 것과 같았다.
그런데 그 것이 가짜라고? 물로 만든?
수많은 오진호가 성연을 포위하고 있는 상황.
그 상태에서 성연은 입술을 깨물었다.
그 것이 진짜 물 분신이었는지, 아니면 오진호였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이 난관을 헤쳐나가는 것이 중요할 뿐.
현재는 포위된 상태.
녀석들의 주위를 슬쩍 바라보니 물의 구체들이 어른거리고 있는 것이 심상치 않다.
사단이 나도 크게 날 것 같은 느낌
"우습게... 보지 말아라!"
남은 카드들 중 하나를 뽑는다.
추측해본다.
과연 저 분신들이 자신의 상대의 의지에 따라서 조종되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보다 강한 물의 정령들이 오진호의 모습으로 바꾸고 있는 것일까?'
첫번째라고 해도 상관 없다.
누가 그러지 않는가?
자신이 직접 조종하고 있다면, 조종하고 있는 대상이 타격을 받으면 조종하고 있던 자 역시 타격을 받는다.
두번째? 역시 마찬가지다.
물의 령들이 상대의 모습으로 둔갑하고 있는 것이라면, 역시 역소환 시켜버리면 되는 것 아니겠는가.
더불어 클로버 3과 클로버 4의 카드가 아마 중요할 때 활약을 해줄테지.
얼추 세어보니 10명 정도 된다.
이 중에 진짜가 있을까?
상관 없겠지.
"깊고 깊은 수렁 속으로 떨어져라, 기어 올라올 수 없는 수렁 속으로."
성연의 손에서 조용히 기다리고 있던 클로버 5의 카드가 지금 발동.
성연의 검지와 엄지에 붙잡혀 있던 카드가 녹는다.
마치 아이스크림 처럼. 끈적끈적하게 성연의 발밑으로 떨어지는 클로버 5의 카드.
검은색의 젤리처럼 성연의 발밑에 도달한 카드가 삽시간에 여러개로 나누어지던니 쾌속한 속도로 질주한다.
목표는 성연을 포위한채 흉흉한 기색을 뿜고 있는 분신들.
성연의 공격이 시작된 것을 모르는 것일까?
아니면 성연이 자신의 공격을 알아차리지 못하도록 한 것일까?
그 것은 중요하지 않다. 성연이 발동한 카드가 적들의 발 밑에 모두 도달했다는 것이 중요할 뿐.
저벅-
상대의 모습을 하고 있는 분신들이 성연을 공격하기 위하여 동시에 한발짝씩 내딛는 그 순간, 이변이 일어났다.
스아아아-
지옥의 구멍에서 들리는 소리가 이러할까?
온 몸에 소름이 돋고 등에서 식은땀이 흐를것 같은 음산한 소리와 함께 그들의 발 밑에서 잠잠히 있던 검은색의 액체들이 돌연 몸을 키웠다.
한방울에 불과한 검은색 액체가 삽시간에 몸을 부풀리더니 거대한 두개의 손이 된다.
거인의 손이 있다면 이러한 크기일까?
하나하나의 크기가 성연이나 오진호에 비하면 약 2배 정도 커다랗다.
지면에서 하늘로 쑤욱 하고 솟아난 손은 깍지를 끼더니 그대로 지면으로 손을 내린다.
마치 저승에서 올라온 두 손이 저승으로 끌고가려고 하는 것처럼.
『끼이이익-!!!』
그리고 오진호의 몸을 이루고 있던 물들이 모두 박살난다.
성연이 발동 시킨 클로버 5의 카드가 지니고 있던 힘은 절망(絶望).
더불어 성연의 가설들 중 두번째 가설이 맞았다.
오진호가 만들어낸 분신들. 그 것은 첫번째 꼬리로 불러낸 물의 령들보다 한단계 더 위에 있는 물의 령들이었다.
오진호가 올 때까지 포위를 하려고 했었기 때문이었을까?
그 것이 그들을 한번에 일망탕진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허나 성연 역시 이제는 슬슬 한계.
벌써 몇장의 카드를 불러내고 사용했는지.
몇번의 공격을 분석하고 피해냈는지.
머리가 핑- 하고 도는 것이 차마 좋은 기분은 아니다.
"킥-"
그러나 의미심장한 미소를 짓는다.
자신이 이렇게 피곤하고 지치는데 상대라는 과연 멀쩡할까?
아마 자신보다 더욱 많은 피로감을 느끼고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자신이 미리 발동 시켜 놓은 고갈과 피로 때문이다.
이 두개의 힘은 그 즉시는 아무런 효과를 보지 못한다.
허나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효과는 증폭 된다.
고갈은 상대의 체력을 야금야금 갉아 먹는다.
미처 눈치채지도 못할 정도로 조금씩.
하지만 낙숫물이 댓돌을 뚫는다는 말이 있는 것처럼 자신의 체력이 이상하다고 느꼇을 때에는 이미 늦은 것이다.
그리고 피로.
초월자들의 힘은 강인한 육체, 마르지 않는 기(氣)나 마나(Mana), 마지막으로 그 것들을 사용하고 구현할 수 있게 해주는 정신력에 달려 있다.
오래 싸우면 싸울수록 지치고 피곤해지는 것은 인간이나 초월자나 별반 다름이 없다.
초월자들의 대결에서 오래끌 수록 이기는 것은 정신력이 높은 사람이다.
같은 기술을 써도 훨씬 더 강할 수 있고, 같은 시간을 싸워도 앞으로 더 오래 싸울 수 있게 해준다.
그 정신력을 갉아 먹는 것이다.
피로감[疲勞感]이 온 몸을 좀먹는다.
그렇지 않아도 고갈에 의하여 체력을 갉아 먹고 피로감이 정신을 갉아 먹는다.
절묘한 이중주의 트랩인 것이다.
"후우, 후우-"
심호흡을 하여 흐트러지려고 하는 정신력과 몸을 부여잡는다.
이제 말그대로 서로의 한수만을 남겨두었을 것이라고 성연은 생각하고 있다.
녀석의 남은 꼬리는 3개. 그 중 제대로 사용할 수 있는 것은 최대 두개 정도.
세개는 절대로 무리다.
지금쯤이면 자신의 몸과 정신이 정상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됬을 터.
조급해지는 것은 자신이 아니라 상대다.
성연의 생각대로 오진호의 몸과 정신 상태는 생각보다 좋지 않았다.
"대체... 어떻게 된거지?"
당황한다.
자신의 정신력과 체력은 분명히 8개의 꼬리를 전부 개방하고도 남을 정도다.
아홉번째의 꼬리를 개방하는 것은 구미호 일족의 금기(禁技)이기 때문에 사용하지 못한다고 치자.
그런데 겨우 6개의 꼬리를 개방한 것 때문에 이렇게 지쳐있다고?
첫번째와 여섯번째의 꼬리를 개방하고나서 불러낸 물의 령들이 상대의 수법에 의하여 모두 강제로 역소환을 당했다고 치더라도 이 것은 아니었다.
그는 수련을 할 때 동시에 수련을 한다.
정신력과, 체력.
이 두가지 모두가 부족함이 없도록 수련하는 것이다.
"빌어먹을. 이렇게 되면 딱 한번 밖에 공격을 하지 못하는 것인가."
성연의 예상이 살짝 빗나가고 만다.
적어도 두개 정도는 쓸 수 있는 상태일 줄 알고 있던 성연의 예상이 빗나간다. 물론 성연에게 좋은 쪽으로 빗나간 것이지만.......
이를 악물었다.
어떻게 된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니다. 이 것은 아마도......."
녀석이 꺼내든 두개의 종이가 사라지면서 자신에게 달라 붙었던 검은색 기류의 영향일 것이다.
어떠한 이유 때문에 자신이 이렇게 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기류가 현재 자신의 몸상태를 엉망으로 만든 것이 확실하리라.
"쯧. 방심했나."
주저 앉아서 투덜댄다.
설마 이렇게 뒤늦게야 알아차릴 수 있을 줄이야.
그렇지만, 아직 마지막 기회가 남아 있다.
기필코 저 녀석을 쓰러트리고 난 꿈에 이르던 여자 아이와 단란한 신혼 생활을 보낼테다!
일곱번째의 꼬리.
이 녀석으로 불러내는 존재는 자신도 차마 감당할 수 없는 힘을 지니고 있으니까.
"푸하하하하! 그 '존재'를 보고서 까무러칠 녀석의 얼굴이 눈에 훤하군."
킥킥대며 자리에서 일어난다.
다리가 후들거리지만, 참아낼 수 있다.
그 녀석을 반듯이 쓰러트리고 행복한 나날을 손에 쥘테다.
더불어 무대 역시 완벽하다.
그 '존재'는 이 환상의 얼음성에 사는 모든 존재를 지키는 '지킴이'이자 '족쇄'이니까.
두 사람이 대면한다.
아니, 일인(一人) 일수(一獸)가 지금 이 자리에서 최후의 공격을 위하여 준비하고 있다.
"볼 품 없어졌네요? 땀 좀 흘리시는거 보니까 당장이라도 쓰러지시겠어요?"
"너를 쓰러트릴 때까지는 절대로 먼저 쓰러질 수는 없지."
서로를 잡아 먹기 위하여 이빨을 드러낸다.
"덤비시죠. 당신의 마지막 공격. 화려하게 사라지게 만들어드리죠. 전 마술사니까요."
오만한 자신감
오른손을 앞으로 내민채 오진호에게 까닥이는 성연.
대체 저 자신감은 어디서 나오는거지?
"후, 후하하하! 좋아 좋아. 원한다면... 해주지."
<b>일곱번 째 꼬리. 나와서 억압해라.</b>
오진호의 뒤에서 드디어 일곱번째 꼬리가 등장한다.
유난히 푸른색을 띄고 있는 것이 지금까지 했었던 공격은 장난이라고 말하는 것 처럼 보인다.
더불어 꼬리에서 뿜어지고 있는 기운은 지금까지 오진호가 했었던 그 어떠한 공격보다 강렬하다.
'계획대로로군.'
하지만 성연은 그 광경을 보면서 미소를 지었다.
오른손을 앞으로 내밀어 까닥인 것은 시선을 끌기 위함이었다.
성연의 왼손에는 어느새 두장의 카드가 들려 있었으니까.
마술사의 시선 끌기는 알면서도 당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콰우우우우우-
일곱번째 꼬리에서 뿜어져나오는 푸른빛이 갈수록 진해지면서 오진호가 하려고 하는 일이 피크에 올랐다는 것을 알려준다.
그 순간.
성연의 왼손에 들려 있던 두장의 카드가 신기루처럼 사라진다.
"나와서 선택하라, 야칼."
퉁-
매우 가벼운 소리와 함께 성연의 정면에 한 남자가 나타난다.
약 2m에 이르는 키. 그렇지 않아도 휠체어에 앉아서 남자를 올려다 봐야 하는 성연은 그가 더욱더 크게 보일 것이다.
자신을 소환한 성연쪽으로 몸을 빙글 돌리는 남자는 기사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망토를 두르고 검은색 뿔이 3개가 나 있는 투구를 쓴 기사.
하지만, 그 겉모습만큼은 기사가 아닌 악마처럼 보인다.
허나 얼굴 전체가 보이고, 입고 있는 갑옷이 정확하게 보이고 있기에 그 남자는 악마가 아닌 '기사'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오른손에 들고 있는 검에는 검은색의 기운이 마치 악몽처럼 모여있다.
『명대로. 선택. 합니다.』
야칼이라고 불린 악마 기사.
그는 자신의 왼쪽 팔을 들어 올린다.
칼을 들고 있지 않은 왼쪽 팔이 서서히 들어올려지더니 성연의 오른팔을 가차없이 부러트린다.
뿌드드득-!
"끄아아아아아아아악!"
섬뜩한 소리와 함께 성연의 비명 소리가 환상의 얼음성 안을 내달렸다.
****
자, 반전반전. 즐거운 반전. 이대로 성연은 기브업? 네.
흐엉흐엉 그러면 성연이 솔로 되는거예요? 네. 레알 솔로임.
올레! 아싸! 드디어 저 빌어먹을 염장질이 끝나는구나! 올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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