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ime Walker Rain. 13-2 핏빛 수호자.
<b>13-2
핏빛 수호자</b>
<b>"Bloody Moon."</b>
그렇게 단지 중얼거렸을 뿐이다.
하지만 그 중얼거림은 그와 성연과의 거리를 완전히 무시하며 성연의 귀에 도달했다.
성연이 그 소리를 듣고서 '뭐지?'라고 생각하는 순간 이변이 발생했다.
쿠우우웅-!
무엇인가 자신을 위에서 아래로 짓누르기 시작했다.
그 것은 마치 태산(太山)으로 짓누르는 것과 같은 무거움.
"크흑-!"
온 몸의 신경이 뇌로 '무겁다.'라는 것을 인식하는 순간 Time Card로 타임 슬로우와 타임 페스트를 발동 시켰지만, 소용이 없었다.
주변의 시간이 느려지고, 자신의 시간이 빨라졌다.
허나 무거움은 사라지지 않는다.
오히려 더욱더 미칠듯이 온 몸이 짓눌린다.
아니, 성연의 체감 시간 때문에 더욱더 고통은 심화되어간다.
마치 거대한 압축기에 온 몸을 끼워넣은 채로 찌부러지는 것과 같은 느낌.
콰득- 콰드드득-!
온 몸의 뼈가 부숴진다.
근육이 파괴된다.
내장기관들이 파열된다.
눈과 코와 귀, 입에서 선홍색의 피가 울컥거리면서 토해져 나온다.
말 그대로 죽기 직전의 상태.
조금만 더 시간이 지나면 성연은 그대로 붉은색 고깃덩어리 자체가 될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훙-
하지만 그 직전에 성연을 짓누르던 무거움이 씻은 듯이 사라진다.
숨이 붙어 있고 영혼이 육체에 붙들려 있지만, 이 것은 살아도 산 것이 아닌 상태나 마찬가지다.
하지만 오기가 생긴 성연은 부러진 뼈 때문에 목이 들리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있는 힘, 없는 힘을 모두 짜내어 시선을 위로 올렸다.
이미 휠체어는 산산조각이 나서 땅바닥에 흩어져 있다.
성연의 몸은 땅 위에 엎어진 채, 사지를 뻗은 개구리마냥 꿈틀대고 있을 뿐.
그래도 눈을 움직여 자신의 앞에 있을 남자를 바라본다.
흘러내린 피로 인하여 붉어진 시야. 뇌에까지 충격을 받았는지 초점조차 잡히지 않는다.
그렇지만 그런 시야 속에서도 확실하게 알 수 있는 것들이 있었다.
저 남자는 여전히 권태롭고 지루하다는 표정으로 턱을 괴고 옥좌에 앉아 있을 것이며, 자신을 한심하다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라는 것을.
그 생각을 마지막으로 성연은 기억이 끊어졌다.
"흠. 어떻게 보는가 혈마(血魔)."
스륵-
그가 앉아 있는 방에 세워진 기둥의 그림자에서 한 존재가 불쑥 모습을 드러낸다.
190cm의 장신. 옥좌에 앉아 있는 그와 마찬가지로 핏빛의 머리카락과 핏빛의 눈동자를 지닌 존재가 나타나 입을 연다.
"글쎄요.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주군."
"그런가. 그렇다면, 내가 지금의 저 녀석을 수련시키면 어떻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만(萬)번이면, 만(萬)번. 모두 죽을 것입니다."
"그런가."
"......."
잠시간의 침묵이 공간을 가라앉힌다.
"좋은 방법이 있나?"
"주군께서 직접 가르치시는 것은 무리입니다. 그렇다고 다른 A.V(Acient Vampire)의 로드들에게 부탁을 하는 것도 어불성설. 그들에게 맡겨도 모두 죽을 것입니다. 몇몇 일족을 제외하고는 모두 자제심이라는 것이 있는지도 잘 모르겠으니까요."
"그렇다면 남은 방법은?"
남자의 질문에 한참을 고민하던 혈마는 어쩔 수 없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면서 입을 열었다.
"제가 가르치거나 아니면, Crimson Knight들에게 부탁하여 맡기는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쯧. 역시 그 수밖에 없어 보이나?"
"Yes, Lord."
피떡이 되기 직전의 상태로 바닥에서 아직도 간헐적으로 몸을 떨고 있는 성연을 보면서 그는 못마땅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설마 했건만, 애송이여도 이렇게 애송이일 줄이야.
"가서 H.V(Holy Vampire)에게 던져주고 와라. 어떤 일이 있어도 살리라는 말과 함께."
"예."
혈마가 대답과 동시에 성연의 앞으로 이동하여 짊어지는 것을 본 그는 혀를 쯧쯧- 하고 차면서 자리에서 일어나 여전히 권태롭다는 듯이 느긋하게 어디론가로 향하기 시작했다.
눈을 뜨자 보인 것은 하얀색으로 도배되어 있는 천장이었다.
그와 동시에 코를 찌르는 약향(藥香)이 느껴졌다.
"크윽!"
대체 이 곳이 어디지? 라는 생각과 함께 몸을 일으키려고 하는 순간 온몸을 커다란 바늘 수백개로 찌르는 듯한 고통에 식은땀을 흘리며 도로 쓰러져버렸다.
차마 말로써 표현하기 힘든 고통에 오만상을 찌푸리고 있는 성연에게 한 남자가 다가왔다.
하얀색 옷을 입고 있는 남자.
그런 그는 아무리 무지한 사람이라도 '나 의사요.'라는 것을 알 수 있게 해주었다.
"일어나셨소?"
"여긴... 어디......."
입을 열어서 말을 하는 데에도 온 몸이 욱신욱신 아파온다.
대체 이 곳은 어디지?
더불어 내가 대체 왜 이 곳에?
"기억이 안나십니까? 하긴... 거의 시체 상태로 오셨었으니."
지끈-
남자가 말을 하는 순간 머리가 아파오면서 기억이 되살아난다.
<b>"Bloody Moon."</b>
뇌리에 밖혀 있었다가 한번에 밖으로 표출되듯이 튀어나온 그 음성.
그리고 그 음성이 떠오르는 순간 마치 학질에 걸린 것과 같이 온 몸이 사시나무 떨리듯이 덜덜덜덜 떨리시 시작했다.
영혼 깊숙히 밖혀버린 듯한 공포.
그 것이 성연의 정신을 좀 먹어간다.
"정신 진정(Soul quiet)."
성연을 바라보고 있다가 그의 몸이 떨리기 시작하는 것을 목격한 남자는 급히 자신의 오른손을 성연에게 뻗으며 단어를 뱉었고, 그와 동시에 남자의 몸에서 백색의 휘광이 발해지면서 성연에게 흡수 되었다.
털썩-
그리고 백색 휘광을 받은 성연은 마치 기절한 것처럼 다시 잠에 빠져들었다.
그런 성연을 보면서 남자는 고개를 절래절래 내저었다.
"아무튼... 자비가 없으신 분이라니까. 우리의 주군은."
한숨을 내쉰 남자는 다시 성연의 곁에서 그가 깨어나기를 묵묵히 기다리기 시작했다.
그의 정체는 현 H.V.L(Holy Vampire Lord)인 블래서 세크리.
"그나저나 대체 이 소년의 정체가 무엇이길래......."
독백과도 같은 말이 성연이 잠들어 있는 공간에 나직하게 울려퍼졌다.
눈을 떳다.
여전히 코를 자극하는 알싸한 약향이 맡아진다.
다시 한번 잠들었다가 또 다시 눈을 뜬 성연은 아까처럼 무리하게 몸을 일으키지 않고 천천히 몸 상태를 살피기 시작했다.
하체야 원래부터 움직이지 않았으니 감각이 느껴지지 않아도 이제는 익숙하다.
그렇다면 다른 부분들은 어떠한가.
양쪽 손의 손가락들이 모두 움직이는 것으로 보아서 양팔의 신경과 근육은 모두 무사하다고 생각.
냄새 역시 계속해서 맡아지니까 무사하다고 판단.
눈을 깜박이고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려보자 초점이 흐릿해지는 것과 시야가 흔들리는 것이 없는 것으로 보아서 역시 무사하다고 판단.
어디선가 사각사각- 하고 무엇인가 갈리는 듯한 소리를 귀가 듣고 있으니 청각 역시 괜찮다.
가끔가다 느껴지는 바람 같은 것이 피부로 느껴지니 촉각 역시 이상이 없다.
"후. 정말 무식할 정도로 강한 힘이었네."
짧게 숨을 내쉬면서 성연은 양팔로 몸을 지지하며 상체를 일으켜 세웠다.
여전히 머리 한 구석에서 핏빛 머리카락과 눈동자의 사내가 나직하게 중얼거린 'Bloody Moon'이라는 말이 계속해서 맴돌지만 아까와 같지는 않다.
상대는 자신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일을 겪고 오랜 시간동안 수련하고 실전을 겪은 초월자.
그런 그에 비하면 자신 따위는 태양 앞의 반딧불이나 다름이 없으리라.
허나, 상대가 보여준 한수는 정말로 상상을 초월했다.
전 공간을 짓눌러버리는 무지막지한 기의 압력이라니.
타임 슬로우와 타임 페스트의 결계가 통하지 않은 적은 이번이 처음이다.
반응할 시간조차 주지 않고 적을 멸살(滅殺)한다.
심지어 과거로 돌아오기 전에, 싸웠었던 사룡왕(死龍王)에게도 어느 정도 먹혔던 시간의 결계들이다.
그런데 그런 것들을 깡그리 무시하고(사용하지도 못하게 하고) 직접적인 일격으로 침몰시켜 버리다니.
"그런데....... 나, 계속해서 그 무서운 사람하고 싸워야 하는 건가?"
자신도 모르게 내뱉은 말에 안색이 창백하게 변해진다.
이 것은 절망 그 자체.
수련이고 자시고 일격도 받아내지 못하는 상황인데 수련이라는 명목하게 아주 사형을 당하게 생겼다.
그의 목소리에는 감정의 고저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완전한 무심(無心)이라고 해야 할까?
마치 커다란 얼음 덩어리 속에 자신의 마음을 가두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손을 쥐었다, 폈다를 반복하면서 그 일격에 대항할만한 방법을 찾아본다.
분명히 다음에도 그 공격으로 자신을 덮칠텐데 이번처럼 단순히 시간의 결계만을 믿고서 나대다가 또다시 꼴사납게 죽기 일보 직전까지 갈 수는 없지 않은가?
"아니. 그런 것보단 또 다시 그런 꼴 당하면 아마 그 사람은 날 그냥 죽일 것 같아."
성연의 중얼거림.
그리고 그 중얼거림은 사실이다.
단 한번의 만남이었고, 부딪힘이었지만 성연은 그가 어떠한 존재인지에 관하여 알아버렸다.
살기 위한 몸부림이랄까.
"일단, 나는 그 사람에 대해서 아는 것이 전무. 그렇기에 단순히 그 사람의 공격 하나를 알았다고 해서 달라질 것은 없겠지."
머리 속에서 조용히 울려퍼지는 그의 목소리를 완전히 떨쳐낸 성연은 침착하게 하나씩 생각하기 시작했다.
"일단 이 곳을 둘러봐야겠어. 물론, 이 곳도 대체 어디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직접 부딪혀 봐야지. 기다리고 있다고 해서 나에게 찾아 온다는 보장은 없으니까."
주먹을 불끈 움켜쥐고 성연은 조심스럽게 몸을 움직여 휠체어에 몸을 싫으려는 순간, 하나를 깨달았다.
"...내 휠체어가 아마 부숴졌었었지?"
그랬다. 그 막대한 압력에 짓눌리면서 성연의 휠체어는 말 그대로 가루가 되어 땅속으로 밖혀 버린 상황.
그 말은 곧, 성연은 이 곳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소리나 마찬가지었다.
"빌어먹을. 이구만, 딱 잘라서."
한숨을 푹푹 내쉬는 성연.
그렇다면 별 수 없다. 다른 곳을 둘러보지는 못하겠지만, 이 곳이라도 어떤 곳인지 알아봐야 할 것이다.
"저기, 아무도 없......."
"있습니다만."
"흐에에에에에엑-!!!"
****
오늘은 여기까지 입니다. 재미있게 읽으셨는지 모르겠습니다.
오랫만이라면 오랫만에 등장한 핏빛 수호자 군요.
자세한 잡담은 리플로 확인해 주시기 바랍니다 ^^
오늘도 좋은 하루 보내시길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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