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조선건국기 [1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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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k0926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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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8.01 2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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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8 1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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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08 2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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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조선건국기 [5부] 2화-1641년 4월~1645년 1월 근대화의 바람 (2) - 남인과 중인을 등용하라

[신조선건국기]




DUMMY

그렇게 몇 주 뒤, 우진이 청국에서 돌아왔다.

도르곤이 조선의 제안을 받아들였다는 말에 임금은 흡족한 미소를 띠어 보였다.

무엇보다 조선이 원했던 아담 샬이 조선에 들어와 있으니 이루고자 한 것도 이룬 셈이었다.


“참으로 고된 일을 하였다. 예친왕 앞에서도 기 죽지 않고 잘 해내주었구나.”


“아니옵니다.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그래, 이제 탕약망 선생도 조선에 들어왔고 우리는 약조대로 명과 청에 병사들을 동원해야겠구나..”


임금은 말 하면서도 얼굴에 그늘이 져 있었다.

당연한 결과였다.

조선은 전란의 아픔이 채 가시지도 않은 상황이었고 백성들은 고국도 아닌 타국으로 가 외국 간의 전쟁에 참전해야 하는 상황이었으니 말이었다.


“전하, 성심을 굳건히 하시옵소서.”

우진은 임금의 표정을 살피고는 말했다.


“나도 그러고는 싶지만 모든 것이 쉽지 않구나.. 조정에는 아직도 북벌을 하고 명을 지키자는 친명을 주장하는 자와 현실을 받아들이고 청을 받아들이자는 친청을 주장하는 자가 팽팽히 대립하고 있다. 또한 탕약망을 쥐고 내가 원하는 개혁을 실현하고자 하여도 조정 대신들이 일으킨 반정과 청이 옹립한 임금, 아비를 몰아낸 임금이라는 딱지가 계속 나를 따라다니는구나..”


임금의 말에 우진도 말이 없었다.

임금은 용상에 앉게 된 과정도 조선 역사상 이례적인 일이었다.

무엇보다도 반정을 성공시킨 자들이 대거 조정의 한자리를 꿰차고 있었기에 임금은 자신이 원하는 개혁을 펼치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우진은 잠시 생각하더니 생각을 마치고 임금에게 조심스럽게 말을 건냈다.


“전하, 소신, 그에 대해서는 방안이 있을 듯 합니다.”


우진의 말에 임금은 놀란 표정을 띠며 물었다.


“그것이 무엇인가?”


“지금 대부분 조정대신들은 서인 출신입니다.”


“해서?”


“정계 밖에 퇴출되었던 남인과 중인 출신들을 등용하시는 것이 어떨까 하옵니다.”


“남인을?”


“예, 전하. 선왕 때부터 조정은 서인들의 세상이질 않사옵니까? 남인들과 중인 출신들을 대거 등용한다면, 조정도 서인으로 기울이지 않고 균형을 유지할 수 있을 것입니다. 무엇보다 전하께서 그들을 밀어주신다면, 그들은 전하의 편에 서 개혁에 앞장 설 것입니다.”


“듣고 보니 일리가 있는 말이구나.”



그리고 다음 날,

어전회의에서 임금은 우진과 상의했던 것에 대해 이야기를 꺼냈다.

“난 그대들에게 말한 적이 있소. 뜻하고자 하는 바가 있고 그에 대해 노력하는 자에 대해서는 같은 기회를 가질 수 있는 나라를 만들 것이라고 말이오.”


“나는 정계에 진출하지 않고 사림에 머물고 있는 남인들과 어미가 천출이라는 이유 만으로 기회 조차 얻지 못하는 중인 출신들에게도 기회를 줄까 하오.”


임금의 갑작스런 선포에 대신들은 당황한 눈치였다.

이에 병조참판이 나서서 반박했다.

“전하, 물론 더 많은 이들에게 기회를 주자는 전하의 뜻에 반하는 것은 아니오나, 만일 남인들과 중인 출신들을 등용한다면, 붕당이 더 심해질 것이옵니다.”


임금은 병조참판의 말에 병조참판을 매섭게 노려보며 물었다.

“그들에게 기회를 주고 싶지 않아서겠지.”


임금의 말에 병조참판은 놀란 표정으로 임금을 바라보았다.

임금은 표정을 고치지 않고 병조참판을 본 채, 말을 이어 나갔다.


“내가! 그들에게 기회를 준다면! 서인들의 입지가 좁아지니까 그런 것이 아닌가?!”


임금의 말에 대신들은 눈치를 본 채, 아무도 나서지 않았다.


“내 말에 반하거든 내가 납득할 만한 논거를 제시하도록 하시오! 이판!”


“예, 전하.”


“오늘부로 인재들을 등용하는 데에 있어 출신, 혈연, 지연 상관없이 남인 출신들과 중인 출신들도 등용토록 하시오. 나도 함께 국사를 펼치는 데에 있어 도움이 될 만한 인재들을 같이 선별할 것이니 유념토록 하시오.”


“예, 전하, 명을 받잡겠나이다.”


“잘 들으시오. 내가 용상에 앉은 한, 서인들이 조정을 좌지우지 하며 임금을 허수아비 처럼 굴던 시대는 끝날 것이오!”



어전회의가 끝나고 서인들은 모두 분개한 마음을 얼굴에 드러낸 채, 밖으로 향했다.

예조판서와 호조판서, 병조참판도 굳은 표정으로 밖으로 나섰다.

예조판서는 궐에서 나오자마자, 병조참판을 보며 말했다.


“병참 대감, 언제까지 참고 기다려야 하는 것입니까? 임금이 남인과 중인까지 조정으로 끌어들인다면, 우리 서인의 입지가 좁아질 것입니다.”


“맞습니다. 대감. 우리가 어떻게 잡은 권력입니까? 선왕 때도 북방이나 지키던 저희였습니다. 이제 막 권력을 잡고 우리들의 세상이 왔구나 했는데...”

호조판서 또한 병조참판을 보며 말했다.

병조참판은 굳은 표정으로 그들의 말을 듣고만 있었다.

그때, 저 멀리서 누군가가 헐레벌떡 뛰어 오는 것이 보였다.

행색을 보니 누군가가 부리는 하인인 듯 했다.

그는 병조참판의 앞까지 달려와 멈춰서서는 숨을 고르며 말했다.


“헉헉.. 병참대감, 봉림대군께서 병참대감을... 뫼셔오라고 명하셨습니다.”


그 말에 병조참판과 예조판서, 호조판서는 놀란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 날 밤,

한양의 기생집 명월관,

그 곳으로 병조참판과 예조판서, 호조판서가 안으로 들어섰다.

안으로 들어서자, 어린 기생들이 어깨가 다 드러나고 가슴골을 다 드러낸 채, 음식을 나르거나, 가야금을 연주하고 있었다.

술에 취해 기생에 안겨 나가는 선비들과 술에 거나하게 취해 기생의 연주에 춤을 추는 자들도 보였다.


그때 행수가 나와 그들을 맞이하며 말했다.

“오셨습니까? 병참 대감.”


“그래, 대군께서 부르셨네. 대군은 어디 계신가?”


“이 쪽으로 오시지요. 먼저 오셔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그렇게 문이 열리고 행수의 안내에 따라 방으로 들자, 병조참판은 깜짝 놀랬다.

그곳에는 상석에는 봉림대군이 앉아 있었고 딱 보기에도 다섯은 되 보이는 사람들이 양쪽으로 더 앉아 있었기 때문이었다.

병조참판이 둘러보니 그들은 한성판윤, 김자점의 아들들인 김련과 김식, 안주목사, 대비의 아비이자 영돈녕부사인 조창원이 있었다.

봉림대군은 놀란 표정을 짓고 서 있는 병조참판을 보며 미소 지으며 말했다.


“병참. 와서 앉으시오. 우리와 뜻을 함께 한 이들이오.”


병조참판은 대군의 통솔력에 놀랐다.

병조참판은 자리에 앉고는 한성판윤을 보며 물었다.


“대감께서는 지난 번에는 나서지 않으실 것처럼 하시더니 지금은 이 곳에 와 주셨군요?”


“가만히 보고 있으니, 이러다가 우리가 어렵게 얻은 자리를 남인이나 중인 놈들에게 내어주게 생기질 않았나? 그건 두고 볼 수 없지.”


병조참판의 물음에 한성판윤이 미소 지으며 말했다.


“암 그렇고 말고요. 그걸 어찌 보고만 있겠습니까?”

호조판서도 미소 지으며 동조했다.


병조참판은 말을 끝내고 쓱 돌아보다가 조창원을 보고는 놀란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아니 영돈녕부사께서 어찌?”


“당연한 것 아니겠나? 지금의 주상 때문에 가엾은 우리 중전마마께서 대비로 물러나시고 저 먼 청국에 가시질 않았나?”


“걱정 마십시오. 제가 다 돌려 놓을 것입니다. 청에 가 있는 전하와 대비 마마를 다시 뫼셔와야지요.”


봉림대군이 조창원을 보며 말했다.

대군의 말에 조창원은 말없이 한숨을 쉬고는 앞에 놓인 술잔을 들어 자신의 입에 털어 넣었다.


“그리고 이곳에는 복수를 위해 함께 한 자들도 있소.”

대군은 병조참판을 보며 말했다.


“인사 올립니다. 병참 대감. 소인 김련, 김식이라고 하옵니다. 지난 날 상왕 전하를 보필하다 돌아가신 낙흥군이 저희 아비입니다.”


“아, 그대들이 낙흥군의... 잘 와 주었네. 큰 힘이 될 걸세.”


“내 그대들을 부른 이유는 누가 나의 편인 지는 서로 알아야 하질 않겠는가? 군사들을 훈련시키도록 하게. 명이 망하고 상왕 전하께서 돌아오시는 날, 거사를 시작할 것이네. 준비에 차질 없도록 하게.”


“잊지 마시게. 이는 조선을 다시 되돌려 놓기 위함이니.”


시간은 어느 덧 지나, 1645년



그동안 조선, 명, 청에서는 많은 일들이 있었다.


먼저 조선에서는 임금이 자신의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 서인을 견제하는 목적에서 남인과 중인들을 등용했고 많은 남인들과 중인들이 조정에 등용되는 결과를 낳았다.

이때 등용되었던 인물 중에 윤휴, 윤선도, 허목이 있었다.

이들은 명과 청 사이에서 노선을 정하겠다는 임금의 의지를 지지하며, 져가는 명이 아닌 청을 받아들이고 훗날을 도모해야 한다는 주장을 했다.

조선은 아담 샬과 우진의 건의로 성균관에서 가르치는 과목을 더 확대하여, 경제학, 지리학, 수학, 세계사, 영어, 독일어, 스페인어, 천문학, 역학 등 다양한 과목들을 가르치게끔 했다.


또한 성균관에는 남인 출신 유생들도 소수 입학을 받았고 서인 출신 유생들은 이를 못 마땅해 했다. 또한 임금은 규장각이라고 하는 왕립도서관을 세워 중인 출신 인재들을 이곳에서 일하게끔 했으며, 그들이 실현하고자 하는 정치개혁에 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 시기 규장각을 통해 명 만을 섬기고 다른 이들을 오랑캐로 얕잡아보는 성리학과 달리 민중을 연구하고 그들의 삶을 연구하고 실리를 따지는 실학이 싹트고 있었다.


그 시각, 명은 1641년 말부터 1642년까지 지속된 송산전투에서 청군과 조선군의 연합에 대패하였다. 조선은 1641년, 우진의 제안에 따라 명과 청 두 국가에 원병을 파견하였고, 명 황제는 조선의 원병과 함께 청과 대대적인 전투에 나섰으나, 송산전투에서 대패한 것이었다. 원인에는 송산전투에 파견되었던 조선군 지휘관 수혁이 제대로 나서지 않았으며, 수혁은 비밀리에 청에 파견된 조선군 지휘관 류림과 내통하고 있었다.


이 전투로 인해, 명군은 큰 타격을 입었고 사실상 대규모 병력을 동원할 힘을 잃게 된다.

이 일로 힘을 잃은 명을 치기 위해 기회를 틈틈이 노리던 이자성의 농민군은 북경으로 진격해오면서, 북경은 격렬히 저항했으나 결국 성문을 열어주게 되고 명 황제 또한 자결하면서 그 길던 명나라는 역사 뒤편으로 사라졌다.


그 시간, 청은 1642년 산해관을 제외한 명의 요동 대부분을 손에 넣었으나, 1643년, 후사를 정하지 않고 칸이 갑작스런 지병으로 죽어버리자, 명을 정벌하려는 서진정책을 잠시 멈추고 후사를 누구로 할 것인가에 대해 분분했다.


칸의 첫째 아들 호오거와 칸의 아우 도르곤이 각축을 벌였으나, 하지만 호오거는 지지를 받지 못했고 결국 호오거가 직접 황위를 포기하니, 칸의 구남인 푸린을 황위에 앉히게 되고 도르곤은 섭정왕으로써 실질적인 권력을 쥐었다.


푸린이 황위에 앉고 도르곤이 섭정왕이 되자, 도르곤은 선대 황제의 뜻이라며, 서진 정책을 다시 이어 나갔고, 그 과정에 북경으로 이자성의 군대가 들어오게 되었지만, 이자성은 북경으로 들어와 지식인들과 권력층을 대상으로 재산을 약탈하고 모진 고문을 가해 평이 좋지 않았고 산해관을 지키려던 오삼계를 자신의 편으로 만들기 위해 설득하였으나, 오삼계는 이자성을 배반하고 결국 청군에게 산해관을 열어주면서, 청군은 북경으로 진격하게 된다. 청이 중원의 주인이 되는 때였다.


결국 청군이 북경으로 진군하여, 중원을 차지하게 되자, 상왕을 데리고 있을 필요가 없던 청은 상왕과 대비에게 조선으로 완전 귀국을 명하였다.

그리고 이는 상왕의 복위를 노리던 반란군들에게 거사의 명분을 만들어주었다.



1645년 1월,


눈발이 흩날리던 겨울,


안주에는 무장한 군사들이 모여 있었다.

병사들의 수는 족히 천 오백은 되어 보이는 수였다.


군사들의 앞에는 병조참판, 호조판서, 예조판서, 영돈녕부사 조창원, 한성판윤, 강화유수, 김자점의 아들 김련, 김식 형제가 있었다. 그리고 그들의 앞에 봉림대군이 있었다.

봉림대군은 검을 높게 들어 보이며, 군사들을 보며 소리쳤다.


“작금의 주상은 조선의 근간인 성리학을 부정하고 있다! 또한 명과 청 사이에서 노선을 정한다고 해놓고선 명과 청에 4만의 군사를 파견하여 전보다도 더 혼란스러운 정국을 만들어 놓고 있다! 우리는 오늘 조선을 다시 되돌려 놓을 것이다!”


봉림이 소리치자, 병조참판과 호조, 예조판서, 조창원, 한성판윤, 안주목사, 김련, 김식 형제 또한 검을 높게 들어 보이며 함성을 질렀다.


이에 군사들 모두 함성을 지르니 그 함성이 천지를 울리는 듯 했다.












3화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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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8 신조선건국기 [5부] 6화 - 1645년 1월 근대화의 바람 (6) - 봉림鳳林의 난 (完) +1 24.08.17 47 1 15쪽
127 신조선건국기 [5부] 5화 - 1645년 1월 근대화의 바람 (5) - 봉림鳳林의 난 (3) 24.08.15 48 1 13쪽
126 신조선건국기 [5부] 4화 - 1645년 1월 근대화의 바람 (4) - 봉림鳳林의 난 (2) 24.08.11 55 1 17쪽
125 신조선건국기 [5부] 3화 - 1645년 1월 근대화의 바람 (3) - 봉림鳳林의 난 (1) 24.08.09 57 1 11쪽
» 신조선건국기 [5부] 2화-1641년 4월~1645년 1월 근대화의 바람 (2) - 남인과 중인을 등용하라 24.08.08 56 1 13쪽
123 신조선건국기 [5부] 1화 - 1641년 4월 근대화의 바람 (1) - 조선에 천주학이 들어오다 24.08.05 60 1 12쪽
122 5부 프롤로그 24.08.03 63 1 3쪽
121 신조선건국기 [4부 完] 30화 - 1641년 4월 새로운 시대 (13) - 탕약망(湯若望) (完) 24.08.01 67 1 15쪽
120 신조선건국기 [4부] 29화 - 1641년 4월 새로운 시대 (12) - 탕약망(湯若望) (6) 24.07.28 71 1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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