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의 퀸메이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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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등록일 :
2021.09.21 1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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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06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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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7.26 0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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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01 시련의 굴(1)

DUMMY

"허억!"


거친 호흡과 함께 온몸이 떨리는 것을 느끼며 잠에서 깨어났다. 눈을 뜨자마자 상체를 일으키려고 했으나 전신이 무거워지는 감각과 함께 머리가 붕 뜨는 감각으로 감각들이 말을 듣지 않았다.


"신혁아!"


쩌렁거리는 목소리가 귀를 간지럽혔다. 귓바퀴 안으로 느껴지는 간지러움을 무릅쓰고 고개를 돌려보자 단발머리의 여성이 눈에 들어왔다.

흐르듯이 내린 연갈색 머리카락도, 오뚝한 콧대도. 너무나도 익숙한 얼굴에 익숙한 목소리였다.


"선, 영아."


"어?"


"선영...이 맞지?"


동그란 눈동자가 무슨 소리를 하냐는 것처럼 나를 쳐다본다. 그제야 머릿속이 복잡한 이유를 깨달았다. 나는 이 장면을 알고 있다. 아니 기억하고 있다.


그 죽음의 전장에서, 그 절망 속에서 나는, 회귀했다.


비록 머리는 여전히 멍하고 어떻게 회귀하였는지조차 기억나지 않지만, 분명히 그 기억들을 가지고 나는 과거로 회귀한 것이다.


"하하..."


나는 목만 남은 채로 눈을 감았던 선영이를 떠올리며 한숨 같은 웃음을 내뱉었다. 여전히 선영이는 이해를 할 수 없다는 듯이 눈가를 찌푸리고 있었지만 어쩌겠는가. 너의 머리를 잡았던 감정만큼은 여전히 가슴에 생생하게 남아있었다.

다만 그와 반대로 미래의 기억은 불투명하게 떠올랐다. 마치 조금씩 기화하는 것처럼 머릿속에서 녹아내리는 느낌이다.


'마치 한 번 훑어본 책을 기억하는 느낌인데.'


대충 눈대중으로 살펴본 소설책처럼 줄거리의 큰 틀은 기억하지만 세세한 내용은 기억하기가 힘들었다. 그렇지만 지금은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게다가 지금 중요한 건 그런 게 아니니까.

아직 흐릿한 기억이 채 사라지기도 전에 나는 어느 시점으로 회귀했는지 알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여기! 여긴 어디야? 지금 몇 년도지?!"


무겁고 걸리적거리는 몸을 강제로 채찍질하여 가까스로 상체를 세우고는 주위를 둘러보며 외쳤다. 만약 정말로 내가 과거로 돌아왔다면...


"지금? 지금이야..."


선영이가 지구에서의 연도를 말하는 동안, 나는 근처를 살피며 기억을 더듬어 올라갔다. 갈색빛을 내도는 벽면들, 나의 5,6배는 되어보이는 커다랗고 유일한 통로. 그리고 한쪽에 정리된 탁자와 잡동사니. 이상할 정도로 눈에 띄는 커다란 벽판. 마지막으로 신기한 문양이 새겨진 빛나는 돌멩이들까지.


'시련의 동굴이다.'


탁한 기억 속에서 시련의 동굴에 대한 기억이 떠올랐다. 이곳은 다음 세계로 들어가기 위한 튜토리얼 같은 장소. 여신들이 최소한의 거름망을 유지하기 위해 만들어둔 훈련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년 적지 않은 탈락자가 나오는 곳.


"아니, 왜 그러는 거야? 아까는 악몽이라도 꾼 것처럼 끙끙대더니. 너 혼자 잠들어있을 때 온몸이 불덩이 같았던 거 알아? 혼자 한참 동안 깨워도 일어나지도 못하고..."


선영이가 넋 놓고 있던 내 어깨를 잡고 뒤흔들며 말했다. 그 말을 듣고 나니 확실히 온몸이 물에 젖은 것처럼 옷이 축축하게 변해있었다. 이 정도로 땀을 흘린 건가? 끈적이던 손을 내려보니 과거의 자신의 손이 눈에 들어왔다. 아직 굳은살도 채 박히지 않은 대한민국 20대 초반 청년의 손. 그리고 이제 곧 흉터와 굳은살로 얼룩지게 될 손.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뭔가, 컨디션이 안 좋았나 봐. 괜찮아."


"괜찮은 거 맞아? 너 땀이..."


"걱정하지 마. 게다가 그런 걱정을 할 때가 아니니까."


기억대로라면 여긴 우리 둘만 있던 장소가 아닐 것이다. 우리와 같이 여신의 계약서에 자의든 타의든 서명을 하고 날아온 이들이 있을 것이다.


"다른 사람들은?"


"응?"


"다른 사람들 말이야. 혹시 없었어?"


우리는 여기에 납치되었다. 지구에서 이 거지 같은 세계, 알타스로.


내 기억이 맞는다면 우리 둘은 여름 방학용 아르바이트를 구하고 있었다. 짧게 한탕 하고 놀러 갈 계획을 세우며 카페에서 핸드폰으로 알바처를 찾는 중이었지. 그러던 도중에 찾아낸 광고는 우리 둘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고액 아르바이트. 업무 끝나는 대로 퇴근 가능.]


너무나도 짧은 알바 모집 문구였지만 그 아래로 이어지는 항목들은 우리의 눈길을 끌기에 부족이 없었다. 특히 시급 부분과 더불어 업무 위치가 집 근처라는 점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버스조차 탈 필요가 없을 정도로 가까운 알바처. 마치 하늘이 내린 것만 같은 기회였다. 그 탓에 아무 생각 없이 당일 바로 아르바이트 면접을 찾아가고 말았다.


'거기서부터가 문제였지.'


지금 생각해보면 애초에 줄 생각이 없었기에 가능한 시급이 아니었나 싶었다. 어찌 되었든 당일 둘이서 찾아간 면접장소는 근처의 작은 물류창고였다. 며칠 묵으면서 상품을 분류하는 아르바이트라고 소개하던 남자는 불쑥 몸을 쓰는 일임을 알려주고는 친절하면서도 빠르게 계약서에 사인할 것을 추천했었다.


언제부터 시작하는지, 어떤 일을 하는지도 제대로 듣지 못한 상태에서 계약을 할 사람은 없었겠지만 그 남자는 일단 사인만 하면 간단히 업무들을 알려주겠다고 했었다. 대충 뻔한 아르바이트일 것이라고 생각한 우리는 대수롭지 않게 계약서에 사인을 했다.


어차피 계약서는 우리가 주기 전까지는 알아서 보관하고 있으라고 했으니 업무 설명을 듣고 아르바이트를 할 건지 결정해도 늦지 않으리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계약서에 나와 박선영의 이름을 적자, 알 수 없는 광채가 종이에서 뿜어져 나왔다.


그리고 그것이 이 동굴, 시련의 굴로 오기 전까지의 마지막 기억이었다. 그리고 아마 우리와 같은 방법으로 납치된 사람들이 여럿 있을 것이다. 자의로 이곳으로 온 사람도 있을 것이고.


이곳으로 오게 된 이상 좋든 싫든 그들과의 협력은 필수사항이 되어버렸다. 그러나 기절이 오래 지속되었는지 주위에는 다른 사람들이 전혀 보이지 않자 초조함에 묻게 된 것이다. 그 외적인 이유가 있기도 하고.


"있긴 있었는데... 너가 쓰러진 사이에 주위를 둘러보고 오겠다면서 저쪽으로 나갔어..."


박선영은 그렇게 말하며 새하얀 손가락으로 굴의 출구를 가리켰다. 어두컴컴한 저편의 어둠에서 불길한 무언가가 꿈틀대는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제야 내가 진짜로 돌아왔다는 실감이 들었다. 이 좆같은 장소로, 그리운 시간으로, 내가 돌아왔다.

그러나 그 실감을 몸으로 느낄 여유는 없었다. 이미 다른 사람들이 저 굴로 사라졌다면 아마 맨손으로 가진 않았을 것이다.


"끙... 내가 얼마나 잠들어 있었어?"


"어? 아마... 1시간? 그 정도 지났을걸?"


"1시간이라..."


정찰치고는 좀 오래 걸리는 시간인데, 몇 명이나 나갔는지는 몰라도 아마 태반이 죽고 뿔뿔이 흩어져 돌아오지 못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게 아니면 이젠 돌아올 사람조차 안 남았거나.


어느 쪽이든 여기에 오래 있기는 힘들었다.


자리에서 일어나 벽면을 바라보자 전체적인 굴의 형태가 눈에 들어왔다. 갈색빛을 내도는 벽면들은 물론이고 내 2, 3배는 되어 보이는 커다랗고 유일한 통로. 그리고 한쪽에 정리된 탁자와 잡동사니들의 모습이었다.


중간에 벽면에 붙어있을 발광석들이 몇 개 비는 것으로 보아 아까 정찰을 나갔다는 사람들의 챙겨간 모양이었다. 그 옆에는 커다란 플레이트가 벽면에 떡하니 붙은 채로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대충 이 동굴에서 생활하는 방법에 대해 적혀있긴 한데... 쓸데없이 길게 적어놨지만 간단하게 요약할 수 있었다. 7일 안에 이 동굴을 나가지 않으면 영원히 이곳에 갇히게 된다는 것이다.


동굴 자체는 7일이나 걸릴 정도로 깊지는 않다. 미로처럼 얽혀있기는 하지만 구조가 단순한 탓에 걸어서만 간다면 4일에서 5일이면 충분히 도착하고도 남을 것이다.


문제는 동굴의 구조가 아니라 내용물에 있었다. 동굴은 크게 지금 이곳과 같이 생필품이나 장비들이 있는 '방'과 방들의 사이를 연결하는 '통로'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 장소를 제외한 방들에는 여신이 준비한 골렘들이 배치되어 있다. 그리고 여신의 명령을 받는 골렘들은 '방'에 접근한 자들에게 무자비한 공격을 자행한다.


다행히 방 밖으로 골렘이 따라오지는 않지만 식량을 구하기 위해서라면 방에 들어갈 필요가 있었다. 결국 사람들은 살아서 출구로 나가기 위해서 괴물들과의 사투를 벌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필요하다면 인간들까지도 적이 될 테고.


이런 위험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라도 처음에 있는 방에서 충분한 장비를 갖출 필요가 있었다. 다행히 여신들도 맨몸으로 골렘들과 싸우도록 해두지는 않았다. 방어구는 물론 무기에 전투와 생존에 도움이 될 도구들을 소량씩 시작의 방에 배치해 둔 것이다.


문제는 남은 무기들인데...


"이런 쯧..."


무기와 장비들이 들어있을 상자들은 이미 텅텅 비어버린 지 오래였다. 그나마 남아있는 것들이라고는 과도나 될 법한 작은 단도나 화살 몇 개 정도. 그나마 활은 하나 남겨두고 가긴 했군.


'확실히 활은 쉽게 사용할 장비가 아니긴 하지.'


활이라는 무기는 사용하기가 까다롭다. 활을 쏘는 자세는 단조로워 보일지 몰라도 제대로 목표를 맞추기 위해서라면 몸의 모든 부위를 사용해야 할 정도로 세밀하고 정밀한 작업이다. 특히 현대의 양궁과 달리 옛 시대의 냉병기인 활은 더욱 어려울 수밖에 없다.


게다가 방금 언급했듯이 주된 적은 골렘이다. 물론 사람들도 조심해야겠지만 어쨌든 전투의 목표는 골렘에게 맞추는 것이 맞다. 재수가 좋다면 사람을 안 마주치고 이 동굴을 탈출할지도 모르지만 골렘은 안 만나려야 안 만날 수 없을 테니까.


'돌덩이로 만든 놈들한테 화살로 어떻게 대미지를 주냐고.'


마나를 싣는다면 모를까 일반적인 놈들에게 화살로 피해를 입히기는 어렵다. 어려운 수준이 아니라 거의 불가능하다. 그나마 대인전에서 큰 효율을 발휘할 수 있겠지만 지금 당장 필요한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얘 앞에서 마나를 쓸 수도 없고.'


극소수의 재능러들을 제외하고는 시련의 동굴에서 마나를 깨우치는 경우는 없다. 기억 속의 나는 물론이고 박선영도 이 동굴을 나가서 마나를 익히고 깨우칠 수 있었다. 당연히 여기서 혼자서 뽐내며 마나를 흘리고 다닐 생각도 없다.


그래서는 과거로 돌아온 의미가 없으니까. 적어도 그년들에게 들키지 않도록 성장할 필요가 있었다. 물론 들키지만 않는다면 어디까지고 성장할 테지만.


일단은 급한 대로 활과 화살들을 집어 들었다. 다행히 옆에 있던 바구니에서 작은 화살 통을 발견하여 허리춤에 둘러매고는 화살을 안에 챙겼다. 그나마 다행인 건 내가 활을 사용해 본 경험이 있다는 것이다. 물론 사수는 아니었지만 몇 번인가 자기 방어용으로 초창기에 쓴 경험이 있었다.


사제는 생각보다 몸을 지킬 능력이 없는 직업이었으니 어쩔 수 없었다. 어떻게든 그때의 기억을 되살리며 활의 시위를 잡고는 고개를 돌려 말했다.


"아, 박선영. 너도..."


그러나 박선영은 이미 손에 큰 검을 쥐고 있었다. 아마 내가 잠들어 있던 사이에 자기도 한몫을 챙겼던 것일까.


그런데 박선영의 표정이 영 좋지가 못했다. 미간을 모으며 고개를 앞으로 내빼는 저 행동. 평소에 무언가 고민할 때 나오는 행동이었다.


"... 왜?"


"아니, 그냥... 너 뭔가 엄청 침착하다...?"


박선영의 말에 순간 가슴이 철렁거렸다. 기억이 혼선되면서 느낀 감정의 범람에 잠시 묻혀있던 위기감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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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P.01 시련의 굴(6) 24.08.06 7 0 7쪽
6 P.01 시련의 굴(5) 24.08.05 8 0 16쪽
5 P.01 시련의 굴(4) 24.07.28 11 0 20쪽
4 P.01 시련의 굴(3) 24.07.27 10 0 22쪽
3 P.01 시련의 굴(2) 24.07.27 13 0 16쪽
» P.01 시련의 굴(1) 24.07.26 15 0 12쪽
1 EP. Prologue 24.07.26 21 0 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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