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의 퀸메이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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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9.21 1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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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7.28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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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01 시련의 굴(4)

DUMMY

그녀가 가리킨 것은 벽에 새겨진 긴 화살표 모양의 낙서였다. 누가 봐도 인위적인 마크. 의미는 따로 생각할 필요도 없었다.


"이거 아까 너가 잠들어 있던 사이에 앞서간 사람들이 남긴 표식인가 봐!"


'이런 망할.'


선영이의 말에 속에서 욕설이 튀어나왔다. 저 놈들이 우리를 위해서 남긴 건지, 아니면 자신들이 헤맬까 봐 남긴 건지는 몰라도 참으로 쓸데없는 짓거리를 해놨다.


"글쎄..."


나는 언뜻 부정적인 분위기를 풍겨봤지만 그녀에게는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그녀의 머릿속에는 이미 앞서 나간 사람들과 만나는 상상까지 이어지는 모양이었다. 그녀는 이미 저것을 우리들의 지침 표로 정한 듯했다. 이렇게 된 사람들은 아무리 말을 해도 쉽게 사고를 바꾸지 않는다. 그렇다면 지금 필요한 건 지침이라는 사실을 부정하는 게 아니라 그 목표를 바꿀 필요가 있다.


"과연 우리가 먼저 간 사람들과 만나도 될까?"


"응? 그게 무슨 소리야?"


선영이가 갸웃거리는 사이 나는 빠르게 머릿속을 간추리며 생각해나갔다. 가능하면 사람들을 피하는 건 조금 뒤에 가르쳤으면 했지만 이렇게 되면 빠르게 속성 강의로 진행할 수밖에 없지.


"저 사람들도 우리와 같은 납치 피해자일지도 모르지만 이런 상황에선 어떻게 돌변할지 모르잖아."


"에이, 그럴 마음이 있었으면 아까 너가 잠들어 있던 사이에 진작에 해코지했겠지."


"그때는 몰랐었잖아. 이 동굴에 이런 게 있다는 사실을."


나는 그렇게 말하며 발로 바닥에 녹아내린 진흙 덩어리를 툭하고 차보였다. 찐득하니 옆으로 흘러내린 진흙은 어느새 선영이의 발 앞까지 흘러내렸다. 순간적으로 뒤로 발을 뺀 선영이는 말을 잃었다. 그녀가 생각하기에도 아까와 지금은 상황이 달랐다. 적어도 그전까지는 인간의 짓이라고 생각했을 테니까. 아니, 아직까지 우리가 모르는 기술을 가진 인간의 짓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상관없다. 고도로 발전된 기술은 마법과도 다름없으니, 우리의 상대는 어느 쪽이든 마법사와 같다.


"그렇지만... 이럴 때일수록 사람들끼리 뭉쳐야 살아서 나갈 수 있지 않을까?"


선영이가 정론을 입에 담았다. 그러나 정론은 오래된 만큼이나 깨는 방법이 쉬운 법이다.


"이런 때이니까 무서운 거야. 진짜로 믿을 수 있는 사람들끼리 뭉쳐야지. 누가 알아? 우리보다 먼저 나간 사람들 중에 우리를 납치한 납치범과 한 패인 사람들이 있을지."


"설마... 납치범들이 뭣하러 그런 수고를 들이겠어?"


"납치범들이 몇 명인지는 모르겠지만 만약 납치된 사람보다 수가 적다면 충분히 그럴 수 있어. 소수가 다수를 컨트롤하는 방법은 그 다수의 일원이 되는 거니까."


물론 실제론 그렇지 않지만 진실 따위는 상관없었다. 중요한 건 앞서 나간 사람들을 믿기에는 정보가 불확실하다는 어필을 하는 것뿐이니까.


"으음..."


다행히 내 말을 들은 선영이는 고민에 빠졌다. 이제 자기 스스로도 저들을 믿을 수 있다는 확신이 사라진 것이다. 의심이란 잡초와 같아서 하나의 씨앗으로도 순식간에 커져버리고 만다. 1회차 때 정치가 필요한 경우 자주 쓰던 수법이었는데.


"그래도 따라가 보는 게 낫지 않을까? 우리보다 아는 게 더 많을지도 모르잖아."


선영이는 이 이정표를 포기하고 싶지 않은 모양이었다. 그녀는 이미 이 길을 따라가기 위한 변명을 만들어내고 있다. 이대로 그녀를 설득하려면 시간이 좀 걸릴지 모르겠지만...


'그건 내가 원하는 바이지.'


시간을 끌면 끌수록 선발조와의 거리는 멀어진다. 보다 안전한 시련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저 놈들이 뭔가 아는 게 있어봤자 나보다 많이 알 것 같지도 않고.


"저 사람들도 우리처럼 납치된 사람들이라면서? 알아봤자 뭘 알겠어."


"그치만 우리가 놓친 정보들을 알고 있을지도 모르잖아. 게다가 아까 너 말대로 납치범이 끼어있다면 진짜로 뭘 알고 있을지도 모르구."


"그렇다고 쳐도 너무 위험해. 위험부담이 너무 크단 말이지. 게다가 납치범이라면 뭣하러 우리에게 자기 정보를 알려주겠어? 오히려 더 위험한 가짜 정보에 속을지 모르니 더 주의해야 하는 거 아니야?"


대화가 점차 길어지자 다시 선영이는 고민에 빠지기 시작했다. 입을 오물거리며 고개를 갸웃거리는 모습은 귀여우면서도 절도 있는 듯한 착각까지 들어 새삼 매력적이기 까지도 했지만 굳이 입 밖으로 꺼내지는 않았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동굴의 차가운 한기가 다리를 타고 스멀스멀 기어오르는 뱀처럼 파고들었다. 얼음 같은 뱀이 허벅지를 감싸 올라가려던 무렵, 드디어 선영이가 결정을 내렸다.


"좋아, 알았어. 그럼 너는 어떻게 하고 싶은데?"


이제야 다시 이야기가 협상 테이블 위로 올라왔다. 당장 우리 앞에 보이는 통로는 3가지. 선발대가 선택한 것은 가장 왼쪽에 있는 통로였다. 미로를 빠져나가는 요령으로 선택한 것일까. 어느 쪽이든 이제 선택지는 두 개뿐이다. 몬티 홀 딜레마대로 생존율도 올라갔으니 기분 좋게 고를 수 있을 테지.


"남은 두 문중에서 하나를 고르고 싶어."


나의 말에 그녀는 고개를 돌려 남은 두 개의 통로를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다가가 통로들을 하나하나 꼼꼼히 살펴보기 시작했다. 아마도 아까와 같은 흔적이 없는지 확인하려던 모양이었다. 다행히도 그런 흔적은 전혀 발견되지 않았지만. 결국 남은 선택의 시간이 다가오자 선영이는 다시 고개를 돌려 내게 말했다.


"그럼 이제 어디로 가고 싶은데?"


그녀의 말에 나는 아까부터 정했단 통로를 향해 손가락을 들어 올리고 말했다. 가장 우측에 있던 통로. 선발대가 간 통로와 가장 먼 통로였다.


"세 번째 통로? 왜 저기를 골랐대? 설마 앞서간 사람들이랑 제일 멀어서?"


나는 그녀의 말에 속으로 헛기침을 삼키고는 벽에 다가가 손을 짚으며 말했다.


"미로를 탈출하는 방법이 몇 가지 있는데, 그중에서 가장 대중적으로 알려진 방법으로 좌수법, 우수법이라는 게 있어."


"좌수법, 우수법?"


"간단하게 말하면 한 손으로 벽을 잡고 그대로 따라가는 방법이야. 그렇게 가다 보면 출구가 나온다는 거지. 물론 모든 미로에 통하지는 않아. 그럴 땐 변형 우수법이란 것도 있는데 마킹을 해둬서 같은 곳을 헤매지 않도록 하는 거지."


"아, 저 사람들이 해놓은 것처럼?"


"맞아. 물론 이런 방법으로도 구조가 바뀌거나 단순히 벽으로만 이루어진 게 아닌 미로라면 탈출할 수 없겠지만... 지금 할 수 있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은 이것뿐이니까."


나는 그렇게 말하며 벽에서 손을 떼고는 가볍게 손을 들어 내가 선택한 통로로 선영이를 안내하듯이 손을 내밀었다. 아까와 같이 앞장서서 걸으라는 의미임은 의심할 여지가 없었던 모양이다. 그녀의 볼에 햄스터처럼 빵빵하게 차오르고는 순순히 검을 쥐어 잡고 앞으로 나아갔으니까.


그런 그녀의 모습에 나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졌다. 나는 혹시라도 그 모습이 그녀에게 보일까 빠르게 표정을 지우고는 그녀의 뒤를 따라 걸으며 다시 사념에 빠져들었다.


'우선순위를 정해야 한다.'


상태창을 개방할 수 없는 지금, 우리가 무엇을 우선해야 할지에 대해서 고민할 필요가 있었다. 가장 우선적으로 생각해야 하는 것은 안전일 것이다. 설정을 부여받지 못하고, 장비도 거의 없는 상태인만큼 먼저 장비를 갖출 필요가 있었다.


'가능하면 상태창을 개방할 수 있는 장비나 도구를 입수하는 게 중요하겠지만...'


당연히 그런 도구들은 더럽게도 숨겨져 있으며 수량도 무척 적었다. 사실상 로또에 당첨될 확률일 테니 기대할 수는 없었다.


'그럼 역시 장비의 업그레이드다.'


마나를 깨우치지 못하는 장비라도 완성도가 높다면 무서운 흉기가 될 수 있었다. 물론 그렇다고 하더라도 소수라는 점이 우리에게 불리하게 작용하리라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었다. 즉, 장비의 업그레이드는 중요사항이지만 그것만 믿고 갈 수는 없다는 것이다. 결국 가장 중요한 건 원맨쇼를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라도 마나가 깃든 장비로 상태창을 개방할 필요가 있는 것이고.


즉, 정리하면


1. 상태창을 개방할 수 있는 도구 입수

2. 장비 개선

3. 동료 영입


이렇게 요약할 수 있다. 당연히 1번이 가장 중요한 사항이지만 거의 불가능하니 기대를 걸긴 힘들고 혹시라도 기회가 된다면 우선해서 확인하도록 하고, 2번을 차우선적으로, 그리고 3번이 그다음이 될 것이다.


'동료를 늘리는 것은 중요하긴 한데 어떻게 늘릴지 고민을 해봐야겠는걸.'


이 시련의 굴을 나가게 되면 알타스에서 본격적으로 생활하게 된다. 그 세계에서는 윤리가 기존의 세계보다 비뚤어진 곳이니 지구의 생활을 기억하며 살아나가기에는 무리가 있다. 뒤통수를 치고, 배신하고, 암살의 위험을 겪는 것이 이 거지 같은 알타스니까.


그러다 보니 초창기부터 함께한 동료는 믿음이 된다. 기수를 속이거나 출신을 속이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신원이 확실한 동료는 신뢰가 가기 쉽다는 이야기다. 결국 이런 시련의 굴 동료들은 오래 친분이 생길 가능성이 높다.


바꿔 말하면 꽤 오래 얼굴을 볼 사이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말하면 이기적으로 보일지 모르겠지만 생존이 걸린 문제인 만큼 확실히 해두어야 한다. 스펙이 떨어지는 자는 동료로 삼고 싶지 않았다. 그런 자들은 알타스에서 살아가면서 짐이 될 수밖에 없다.


배신과 음모가 도사리는 세계인만큼 명분과 이미지는 더욱 중요시된다. 그나마 그 사람을 파악할 수 있는 수단이니까. 그런데 초창기부터 함께하던 동료를 버리는 이미지와 같은 것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 당연히 가지고 싶지 않은 이미지이다.


문제는 설정이라는 게 아주 거지 같은 것이라... 상태창을 개방하기 전까지는 그 사람의 스펙에 대해 감히 짐작하기가 힘들다는 것이다. 물론 지구에 있을 때 해온 경력이나 능력이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정말 아무도 생각 못한 복권이 될 수도 있는 것이 설정이다.


정말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했던 사람이 상태창을 개방하자 나보다도 높은 스펙을 가지게 될 수도 있다는 점에서 무척 불공평함을 느끼게 되지만 이제 와서 투덜거려봐야 소용이 없다. 이미 우리는 이 거지 같은 세계에 넘어와 버렸으니.


'그런 점에서 가능하면 내가 기억하는 사람들을 영입해야만 한다.'


나와 선영이가 속해있던 기수, 32기 기수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사람들. 알타스에서도 이름을 높이거나 적어도 이 흐릿한 기억에 남을 수 있었던 사람들.


문제는 그런 사람이 단 한 명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너무나도 강렬한 이미지인 탓인지 32기 기수 사람들에 대해 몇 번 소문을 들은 게 있었던 것 같은데 태양 아래의 반딧불처럼 가려지고 만 것이다.


그 정도로 뛰어난 재능을 가진 천재가 한 명 있었다. 문제는...


'하필 외국인이야. 빌어먹을.'


이 알타스로 오는 티켓은 1년에 2번 열린다. 이 상반기와 하반기를 나눠서 기수라고 부르는 것이다. 우리는 짝수 기수이니 하반기에 뽑혀서 오게 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다 같이 이 시련의 굴로 옮겨지게 되는데 적응을 돕기 위한 것일까, 같은 문화권의 사람들만 모이게 되는 것이다.


즉, 아까 우리가 깨어난 방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한국인이다. 외국인들은 이 굴 어딘가에 있을 다른 방에서 깨어나서 출구를 찾아 헤매고 있겠지. 재수가 좋다면 출구에서 마주칠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그건 너무 뒤의 이야기이다. 지금 당장 영입할 동료가 될 수는 없었다.


결국 그녀의 영입은 포기하고 다른 사람들을 찾을 수밖에 없지만 그럴수록 32기 기수에서 떠오르는 건 그녀뿐이었다.


'가장 성공적인 루트는 사람들을 피해서 다니면서 출구에서 그녀를 만나 동료가 되는 건데.'


"하."


스스로 생각해놓고도 말도 안 되는 상상에 헛웃음이 튀어나왔다. 다행히 목소리가 크진 않았는지 앞서가던 그녀가 눈치를 채진 못한 모양이었다. 그렇게 생각하고 다시 생각에 빠지려던 찰나, 그녀가 입을 열었다.


"그런데 우리... 나갈 수 있을까?"


"뭐?"


"그때 벽에 그렇게 적혀있었잖아. 7일 안에 나가지 못하면 여기에 갇히게 된다고. 이 동굴이 얼마나 큰지도 모르는데 우리가 일주일 안에 나갈 수 있을까? 그것도 다른 사람의 도움도 없이 말이야."


다시 불안감이 퍼진 것일까, 선영이의 목소리에는 자신감이 없었다. 그 목소리에 나도 모르게 아니라고 소리치고 싶은 마음을 간신히 욱여넣고는 잠시 고민했다. 어떻게 해야 그녀가 불안하지 않을 수 있을까. 생각은 오래 이어지지 않았다.


"완전히 불가능한 일은 아니라고 생각해. 할 수 있을지 시험하기 위해서 시키는 것일 가능성이 높으니까. 그리고 만약이라도 우리 둘이서 하기 힘들다는 결론이 나오면 아까 그 사람들이 남긴 마킹을 따라서 가면 합류할 수 있을테니까 너무 고민하지 말자."


무난한 대답. 그러나 결국 이런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두 가지 방법밖에 없다. 시간과 결과. 즉, 적응이 되거나 적응을 하거나, 이 둘 중 하나이다. 이 상황을 자주 접하며 무뎌지는 방법보다는 역시 결과론적으로 가능할지 모른다는 기대감을 가지는 것이 개인적으로는 더 선호되는 방법이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다음 방에서도 우리 둘이서 충분히 이 미로를 나갈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줘야만 한다. 아마 다음방이 두번째 방이라면 아직 그렇게 튼튼한 골렘들이 나오는 방은 아닐 가능성이 높았다. 여신들은 우리가 이 세계에 적응하길 바라는 것이지 숫자가 줄어들길 바라는 것이 아니었다.


즉, 우리 둘이라도 충분히 클리어가 가능한 방이라는 것이다. 결국 그녀에게 필요한 건 자신감이었다.


"너무 걱정하지는 마."


나는 그녀가 안심할 수 있도록 조곤조곤히 말했다. 그러나 그녀의 시선은 내게 돌아올 여력이 없었다. 다시 눈 앞에 나타난 문은 그녀의 마음을 뒤흔들고 있었던 탓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내가 한 발더 앞장서서 발광석을 들이밀며 빛을 비췄다.


"아까 본 진흙놈들 기억나? 괴상하게 생기긴 했지만 그게 전부였어. 따로 뭔가 무기가 있는 것 처럼 보이지도 않았고."


나의 말에 선영이는 맞다는 듯이 고개를 흔들며 호응했다. 그러면서도 천천히 검을 뽑는 모습은 이미 그녀가 이 동굴에 적응해나가고 있다는 증거임이 틀림없었다. 길조일테지.


"그럼 당연히 우리가 우세할거야. 숫자는 적더라도 무기의 중요성은 검도를 해본 너에게 설명할 필요는 없겠지?"


다행히 아까보다는 그녀의 얼굴이 밝아진 느낌이 들었다. 아닌가? 발광석이 더 가까워져서 그런가? 어쨌든간에,


"물론 아까와 다른 놈들이 나올수도 있어. 그러니 대충 작전을 설명해줄게."


나는 그녀가 스스로에게 자신감을 가지면서 내게 신뢰를 쌓을 수 있는 기회가 왔음을 느꼈다.


잠시의 작전타임이 지난 후, 우리는 당당하면서도 조심스럽게 입구를 지나 방 안으로 들어갔다. 인기척이 느껴지자 방 구석에 잠들어있던 골렘들이 하나,둘 눈에 빛을 내며 깨어나기 시작했다.


빠르게 눈을 굴려 세어보니 그 숫자는 7기. 아까 전에 우리가 보았던 머드돌들이 4기, 그리고 사람크기보다 조금 커진 정도의 사이즈를 가진 머드골렘이 3기였다.


머드골렘도 머드돌과 마찬가지로 유의미한 공격을 줄 능력은 없었지만 차이점으로는 그 크기에 있었다.


머드돌과 같이 상대에게 녹아 움직임을 방해하는 전법을 사용하지만 크기가 크기인만큼 족쇄처럼 상대의 몸을 묶어버릴 수도 있고 제대로 누우면 상대의 호흡기계를 막기도 쉽다.


거기다 팔다리가 사람만큼 길다보니 급소인 가슴의 보석을 방어하기도 요연하기도 하고.


"준비해!"


나는 그렇게 외치며 뒤도 안돌아보고 앞으로 뛰어나갔다. 골렘들은 나의 행동에 고개를 돌려 바라보더니 곧장 뜀걸음으로 내게 달려들기 시작했다.


그러나 나의 시선은 그것들을 슬쩍 쳐다보고는 다시 원래의 목표로 돌아갔다. 바로 방의 벽면에 배치된 탁자의 상자들이었다.


골렘들은 잘 프로그래밍된 기계와 같다. 그들에게 각인된 명령은 무엇보다도 충실한 노예가 되는 원동력인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받은 명령은 몇가지 있을테지만 1회차때 확인된 바로는 가장 최우선으로 실행되는 명령이 바로 '방의 안에 있는 도구를 가져가는 자를 공격할 것'이었다.


시련의 굴에서 방은 쉼터이자 요충지이며, 생산처였다. 체력을 회복하고 적들의 공격을 방어하며, 무엇보다도 방에 있을 식량과 무기들은 없어선 안될 존재들이었으니까.


즉 이 시련의 굴에 갇힌 사람들은 울며 겨자먹기로 방의 내용물을 챙겨야하기 때문에 골렘들은 그걸 사수하려는 것이다.


그리고 그 본능은 나를 막기 위해서 오직 나에게로만 시선이 몰려 있었다.


"잡았다!"


활도, 화살도 놓고 오로지 맨몸으로 달려나간 덕분에 금방 상자를 잡아챌 수 있었다. 문제는 내 등 뒤로 따라붙은 머드골렘들의 존재였지만 그것도 이미 계획의 안이었다.


"흡!"


등 뒤 어딘가에서 선영이의 기합소리가 들렸다. 그녀가 자신의 할 일을 수행하고 있다는 증거겠지.


내가 아무리 빠르게 상자를 잡아봤자 골렘들의 포위망을 벗어날 수는 없다. 그러나 혼자가 아니라면 도망칠 수는 있을 것이다. 다행히 이 놈들은 그럴 수 있는 존재들이었다.


다리가 길수록 달리는 속도는 당연히 빠르다. 그리고 머드골렘은 머드돌보다 더욱 빠르게 달릴 수 있다. 즉, 나를 뒤쫓더라도 머드골렘들이 더 먼저 따라오고 그 뒤로 머드돌들이 따라붙는다는 소리다.


"하압!"


다시 한 번 기합소리가 들렸다. 그러나 돌아볼 여유도 없이 오로지 앞만 보며 달렸다. 머드골렘들의 키는 나보다도 크다. 일부로 작은 상자를 고르긴 했지만 아무리 달린다 한들 이놈들을 뿌리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니 내가 해야할 것은 최대한 머드돌들이 뒤떨어지도록 하는 것이다.


방의 출구 근처까지 도달하자 그 옆으로 머드골렘들이 포위망을 좁혀왔다. 이미 한 마리는 출구쪽에 자리잡은 것으로 보아 그들 나름대로의 전략적 선택지가 있는 모양이었다.


그러는 사이에도 작게 선영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포위망을 바라보듯이 천천히 뒷걸음칠하며 둘러보자 저 멀리서 마지막 남은 머드돌에게 칼을 찔러넣는 선영이의 모습이 보였다.


"됐어!"


선영이의 목소리가 동굴안에 퍼졌다. 머드돌이 모두 전멸했다는 소리였다. 그나마 다행히 이제 남은 것은 세마리의 머드골렘뿐.


"받아!"


당연히 무기없이 싸울만한 존재들은 아니었고, 그럴 자신도 없었다. 나는 내 머리만한 나무상자를 바닥에 내려놓고는 온 힘을 다해 패스하듯이 선영이가 있는 머드골렘 너머로 차버렸다.


콰직, 하면서 어딘가 부서지는 소리와 함께 나무상자는 미끄러지듯이 날아가 선영이의 근처까지 헤엄치기 시작했다. 당연히 골렘들의 시선도 그 상자를 따라가기 시작했고.


차가운 바닥을 누비던 상자의 종착지는 선영이의 품이었다. 먼저 앞서나가 상자를 낚아챈 선영이는 어느새 검을 집어넣고는 상자를 잡고 내게서 돌아 방의 입구를 항해 달렸다.


당연히 나를 배신하려는 것은 아니다. 골렘들의 시선과 목표가 내게서 선영이로 바뀐 것이 보였으니 첫번째 목표는 달성한 셈이다.


"제발..."


골렘들이 이번엔 선영이를 뒤쫓는 사이에 나는 아까 상자들이 있던 곳으로 달려가 서둘러 아무 상자나 열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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