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의 퀸메이커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노페이스
작품등록일 :
2021.09.21 10:53
최근연재일 :
2024.08.06 07:00
연재수 :
8 회
조회수 :
88
추천수 :
0
글자수 :
51,456

작성
24.07.27 17:55
조회
9
추천
0
글자
22쪽

P.01 시련의 굴(3)

DUMMY

애초에 나는 어떻게 회귀하게 되었는지조차 모른다. 그저 눈을 떠보니 12년 전의 장소로 돌아와 있었을 뿐. 혹시 회귀의 방법이 시간역행에 가까웠다면 지금 이곳에 있는 것은 12년 전의, 상태창을 열기 전의 자신이라는 뜻이 된다.


'차라리 그게 더 말이 되는군.'


그렇다면 차라리 다행이다. 무언가의 문제로 상태창을 열 수 없게 된 것보다는 이제부터라도 상태창을 열 수 있다는 것이 희망적이니까.


문제가 있다면 그 상태창을 여는 방법이 귀찮다는 것이다. 이 알타스에서 상태창을 여는 방법은 몇 가지 있다.


첫 번째는 이 장소, 시련의 굴을 나오는 것이다. 동굴을 나오는 순간 여신은 직접 밖으로 나온 모든 인원에게 상태창의 축복을 부여한다.


두 번째는 마나를 체내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왜인지는 모르지만 이 시련의 굴에서 마나를 받아들인 사람들이 상태창을 열었다는 이야기는 도시전설처럼 알려져 있다. 실제로 극소수의 재능 금수저들은 이 튜토리얼에서 마나를 습득하여 상태창을 열고 여포 짓을 했다고 들어왔다. 적어도 그와 함께 굴을 나온 사람들은 그렇게 증언했다. 상태창이 개방되지 않고서는 보일 수 없는 능력이었다고. 참고로 이렇게 나온 소수의 재능러들은 어김없이 알타스에서 크게 한 자리씩을 맡았다.


성공의 티켓이라고 볼 수 있을까. 왜 마나를 습득하면 상태창이 열리는지에 대해서는 많은 의문이 있었지만 가장 유력한 후보는 여신의 축복이 있는 마나를 빨아들였기 때문이라는 설이었던가.


세 번째는 시련의 굴 어딘가에 있을 도구를 사용하는 것이었다. 게임 속의 이스터에그처럼 이 시련의 굴에는 숨겨진 보물들이 있다. 스테이터스를 올려주는 영약이나 꽤 쓸만한 무구, 희귀한 스킬북에다가 심지어 히든 클래스까지... 이러한 물건들에 세겨진 마나는 강제로 사용자에게 설정을 부여하기도 했다. 물론 하늘에 별 따기 수준으로 숨겨져 있겠지만.


마지막은... 살인이었다. 우스운 일이지만 이곳에서 상태창을 열고도 비밀로 숨기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런 사람들이 이러한 분류에 속했다. 한, 두 명 정도로는 어림도 없었지만 몇 명인가 살해한 인물들이 상태창을 열었다는 사실은 이미 본인의 입을 통해 증명되었다.


만약 나의 가설이 사실이라면 이 셋 중에서 한 가지 방법을 골라 설정을 부여받을 필요가 있다. 문제는 어떤 방법을 선택하느냐인데. 첫 번째 방법은 당연하게 아웃이다.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멀리 봤을 때 가능하면 빨리 상태창을 열 수 있게 되는 것이 안전할 것이다.


두 번째 방법은 현재 가장 효율적이라고 볼 수 있는 방법이었다. 비록 몸은 마나를 받아들이는 방법을 잊었을지라도 내가 가진 노하우나 지식들만 있다면 10분도 안 돼서 마나를 체내에 돌릴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방법은 너무 눈에 띈다. 당장은 여신들의 눈에 들지 않는 것이 필요하다. 시작부터 마나를 쓰는 극소수의 재능을 가진 사람들을 연기할 자신은 없다.


그나마 가장 현실성 높은 것은 세 번째 방법이지만...


'너무 맨땅에 헤딩인데.'


1회차의 기억도 흐릿한 마당에 한 번밖에 안 들려 본 이 동굴에서 그런 도구를 찾기는 무리가 있다. 그렇다고 마지막 방법을 택하자니...


'방법적인 측면에서는 편하기는 하지만, 선영이를 데리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겠지.'


갑자기 연쇄살인마가 되어서는 선영의 신뢰가 무너져버릴지도 모른다. 게다가 그 이상을 넘어 알타스에서 활동하기가 힘들어질 수 있다. 게다가 1회차와 같다면 이 동굴 어딘가에 '그녀'가 있다. 소위 천재라고 말하는 그녀가. 혹시라도 그녀를 마주치게 된다면 내가 제물이 되어버릴지도 모르는 일이다.


"아마 마주칠 일은 없겠지만..."


"응? 뭐라고?"


아차, 속으로만 생각한다는 것이 나도 모르게 입 밖으로 나온 모양이다. 저번 회차 때부터 혼자 생각할 일이 많아 생긴 버릇이었는데 기억은 습관까지도 함께 가지고 와버렸다.


"아냐, 혼잣말. 무시해도 괜찮아."


"뭐야... 괜히 긴장하게 하고 있어."


나는 그녀의 투덜거림에 작게 입가를 올리고는 다시 고민에 들어갔다. 결국 남은 방법은 두 번째 방법, 마나를 받아들이는 것뿐인가? 진지하게 고민하던 나는 갑자기 선영이의 발걸음이 멈추고 나를 향해 돌아보는 것이 느껴져 고개를 들었다.


"야, 이신혁. 저거..."


"응?"


들어 올린 나의 시야에 들어온 것은 희미하게 보이는 방의 입구였다. 입구에 흐릿하게 세겨진 글자들과 그 안에서 흘러나오는 빛들은 우리를 긴장시키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벌써 도착했나'


역시 내 기억과 마찬가지로 방에는 발광석들이 있는 모양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빛이 세어 나오는 것이겠지.


시작의 방에서 여기까지 이어진 길은 일직선이니 아마 우리와 같이 있었다는 그 사람들도 이 방에는 도착했을 것이다. 가장 처음 만나는 방인만큼 손 풀이용 인형들만 있을 테니 쉽게 방을 청소하고 다음 방으로 갔을 가능성도 있지만 혹시라도 남아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활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원래 세계나 이쪽 세계나 그렇듯이, 언제나 사람이 제일 무서운 법이지.'


골렘들은 방 밖으로 못 나가기라도 하지, 인간들은 그런 제약도 없었다. 게다가 더욱 교활하게 움직인다는 점에서 어떻게 보면 골렘보다도 주의가 필요한 위험인자일 것이다. 특히 상태창을 개방하지 못한 지금이라면 더더욱이나.


"출구... 는 아니겠지?"


선영은 일말의 기대를 품으면서도 스스로 이미 답을 알고 있는 듯이 머뭇거리며 입을 열었다. 당연히 이런 동네 산보 수준으로 끝날 리가 있나.


"그런 것 치고는 빛이 약하네. 아마 방 같은 게 아닐까 싶은데?"


"방이라고?"


내 말에 잠시 고개를 기웃대던 선영은 곧 검을 들어 올려 자세를 잡았다. 예전부터 느껴왔던 깔끔하고 정갈한 형태에 순간 눈길을 빼앗겼지만 곧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앞서 나갔던 사람들이 있으니 아마 빈방이라고 생각되긴 하지만...'


그래도 혹시나 하는 생각에 긴장을 늦출 수 없었다. 어느새 꽉 움켜쥔 손가락은 땀조차 내지 않으며 활을 쥐어 잡고 있었다. 여차하면 언제라도 활을 쏘겠다는 마음가짐으로 화살에 손가락을 가볍게 대고는 들고 있던 발광석을 아래로 떨어뜨렸다.


데구루루, 굴러가는 소리에 선영이가 잠시 멈칫하고는 뒤를 돌아봤지만 금세 상황을 이해하고는 천천히 앞장서며 방의 안으로 진입하기 시작했다.


"... 갈게?"


선영이는 떨리는 목소리로 그렇게 말하고는 내 대답도 기다리지 않고 천천히 왼쪽 발을 내세우며 앞으로 이동했다. 그렇게 방의 안으로 들어간 선영의 눈동자가 바쁘게 굴러갈 무렵,


"으... 응?"


주위를 둘러보던 선영이 긴장 풀린 헛바람 소리를 내쉬며 칼을 천천히 내렸다. 역시나.


그녀의 뒤를 따라 걸어 들어가자 처음 방의 반만 한 작은 방이 보였다. 그 주위로는 작은 탁자들과 바닥에 흩뿌려진 진흙들이 가장 눈에 띄게 들어왔다.


"이게 뭐지?"


어느새 긴장이 풀린 선영은 진흙들을 발로 밀어보며 확인을 하기 시작했다. 저것들이 바로 여신들의 골렘들이다. 정확히는 골렘이었던 것이겠지만.


그래도 역시 첫 번째 방이었던 만큼 매드돌들이 배치되었던 모양이다. 사이즈로 보니 성인 신장의 절반 정도라는 점에서 그렇게 추측할 수 있었다.


매드 돌은 이름 그대로 진흙으로 세워진 인형들이었다. 사이즈도 사이즈지만 몸이 진흙으로 빗어 내구도가 약해 상태창을 열지 못한 인간들도 손쉽게 잡을 수 있는 존재들인 것이다.


"어? 저게 뭐야...?"


깔끔하게 비어버린 탁자를 보며 입맛을 다시던 사이, 무언가를 발견한듯한 선영이 입을 열었다. 그녀의 손가락을 따라가 보니 절반도 채 남지 않은 매드 돌이 상체의 두 팔만 어떻게든 짚어가며 우리를 향해 기어 오고 있었다.


역시 골렘 계열이라 그런지 마지막까지 명령에 충실한 그 모습을 보며 감탄하면서도 좋은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다. 연한 갈색의 몸체에 이질적인 움직임, 상체에 떡하니 박혀있는 붉은색의 보석이니 깊게 파인 듯이 새겨진 눈, 코, 입은 처음 이곳으로 날아온 사람이 여기가 어디인지 혼란스럽게 함과 동시에 이 과정을 통해 적어도 여기가 지구가 아니라고 인지할 수 있게 해 준다.


그렇기 때문에 가능하면 첫 번째 방은 선영이에게 체험시키고 싶었다. 고작 저거 하나 남은 걸로 인식이 될지 애매했지만 없는 것보단 나을 테니까. 다행히 선영이는 이 상황에서 빠르게 적응해나가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자신이 이해할 수 없는 존재를 보자마자 검을 들어 올린 것이다. 여전히 힘이 너무 들어가 검이 조금씩 흔들리고 있었지만 혼란에 빠져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것보다는 훨씬 낫다. 나는 그 사실에 다시 한번 감사하며 활시위에 화살을 걸고 바닥을 기어 오는 골렘을 향해 겨눴다.


'윽...'


역시 상태창을 개방하지 못해서 그런지 시위가 빡빡하게 당겨진다. 활은 생각보다 근력을 많이 쓰는 무기이다. 시위도 그렇고 제대로 날아가기 위해서도 활대를 잘 잡고 있어야만 한다. 그런데 어제까지 사회에서 펜 붙잡고 공부하던 입장에서 활을 쏘기란 쉽지가 않았다.


물론 그렇다고 화살촉 들고 달려가서 찌를 생각은 없으니 이 짓거리라도 하는 게 나을 것이다. 게다가 지금의 목표는 저 골렘을 맞추는 게 아니니까. 강하게 휘어잡았던 시위를 놓자 짧게 쌔액하는 소리와 함께 화살이 나와 선영이의 사이를 지나 골렘의 근처에 곤두박질쳤다. 그나마 경험이 있었던 덕인지 화살이 던져지는 게 아니라 촉을 중심으로 아래로 날아가 땅에 부딪치고는 공중으로 휘어올랐다.


골렘에게 맞지는 않았지만 조준이 제대로 되리라는 기대는 없었으니 실망도 없었다. 애초에 목표는 적대심을 보이는 것뿐이다.


갑자기 일어난 나의 돌발행동은 선영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심지어 골렘의 관심도 끌 수 있었다. 선영을 향하던 고개는 자신을 빗나간 화살을 보자마자 뒤에 있던 내게로 옮겨진 것이다. 선영은 여전히 상황을 파악하고자 검을 쥐고 바닥을 기어 오는 머드돌만 겨누고 있었다. 그리고는 결국 무언가 선택을 내릴 필요성을 느꼈는지 뒤돌아 보지도 않고 크게 외쳤다.


"이거 어떡해? 공격해도 되는 거 맞아?"


내가 먼저 선제공격했건만 따라 들어오기에는 불안이 있던 것일까. 그러나 신중한 것은 도움이 되는 법이다. 게다가 말하는 순간까지 뒤를 돌아보지 않던 것은 훌륭한 자세였다. 전사가, 그것도 선봉에 선 자는 누구보다도 먼저 적을 맞게 된다. 당연시 어떤 상황에도 후위를 믿고 시선을 전방에서 놓치는 일은 있어선 안된다. 역시 그녀에게는 재능이 있었다.


"나도 몰라! 근데 가까이 오게 하면 안 될 거 같아!"


나는 그렇게 외치며 다음 화살을 시위에 걸었다. 마치 무척이나 다급하고 당황했다는 듯한 목소리. 사람은 당황하면 비이성적인 행동을 보이고는 한다. 그리고 나는 이것을 변명거리로 써먹을 생각이었다. 지금이야 어떨지 몰라도 후에는 나의 돌발행동들에 의구심을 품을지도 모르니 대충이나마 그 근거들을 마련해 두려는 것이다. 이러한 정황 증거들은 후에도 도움이 될 테지. 결국 빠르게 눈동자를 굴리며 상황을 살피던 선영은 눈가를 찌푸리더니 결정을 내린 것 같았다. 뒤로 천천히 뒷걸음질 치면서 상황을 더 살피기로 한 것이다. 확실히 기어서 오는 머드돌의 속도는 뒷걸음질 치는 속도만큼이나 느릴 수밖에 없었다.


위험을 회피하려는 시도 자체는 나쁜 것이 아니다. 단지, 그 행위가 문제에서 눈을 돌리려는 것인지 아닌지 고민되었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상황을 미루는 것이 아니라 문제를 미루기 위해서 상황을 미루는 것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선영이는 그걸 깨달을 필요가 있었다.


'그럼 그게 도움이 안 된다는 것을 알게 해 주면 되겠지.'


나는 현에 걸었던 화살에서 힘을 살짝 풀었다. 대신 왼발을 앞세우며 천천히 앞으로 다가갔다. 선영의 뒷걸음질과 나의 앞걸음질. 결국 순식간에 그녀와 나의 위치는 역전이 되고 말았다. 조금씩 뒤로 오다가 갑자기 내가 앞으로 나가는 것이 눈에 들어온 선영이 깜짝 놀라며 외쳤다.


"너 뭐야? 미쳤어?! 빨리 뒤로 안 와?"


"아까 봤잖아! 뒤에 있으면 맞지를 않아!"


나는 그렇게 말하며 슬그머니 화살을 쥔 손에 힘을 넣었다. 다시 팽팽하게 돌아온 현은 화살을 날려 보내기 위한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리고 살짝 조준을 흩트리고는 다시 손가락의 힘을 풀어 화살을 튕겼다.


이번에도 쌕하는 소리와 함께 화살이 허공을 날아 땅바닥으로 떨어져 내렸다. 아까보다는 조금 더 목표에 가깝지만 여전히 머드 돌에게는 맞지 않았다. 나는 나지막이 욕설을 내뱉었다. 작으면서도 선영이에게는 확실하게 들리도록.


허둥지둥 대며 다시 화살 하나를 꺼내 활에 걸고는 다시 천천히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슬쩍 눈동자만 돌려보니 선영이는 이해하기 어렵다는 표정으로 뒷걸음질 치던 발이 멈춰있었다. 다시 상황을 파악하는 중이겠지.


그러는 사이에도 머드돌은 조금씩 기어 오고 있었고 결국 나의 발치까지 도달하고 말았다. 목표까지 도달한 머드돌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기어 오던 팔을 내밀어 나의 발을 잡고는 내 위로 기어오르기 시작했다.


머드돌들의 전투 방법은 생각보다 무식하고 간단했다. 어느 정도 굳어있지만 가볍고 약한 내구도는 깨지기 쉽고 열에도 쉽게 녹는다. 바꿔 말하면 몸으로는 타격감을 주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공격을 하느냐.


바로 상대의 몸에 들러붙어 스스로의 내부에 열을 가하는 것이다. 즉, 상대에게 붙은 채로 자신의 몸을 녹여 상대의 움직임을 방해하는 전법을 사용한다. 물론 급하면 작은 방망이 같은 손으로 때리기도 하지만 효과적인 피해를 주기는 힘들다는 것은 머드돌들도 알고 있다.


그렇다면 머드돌들에게는 사실상 적을 해칠 방법이 없는 것인가. 그것도 아니다. 머드돌들이 녹으면 아까 바닥에 있던 진흙들처럼 변한다. 겉으로 보면 단순한 진흙이긴 하지만 골렘을 만든 재료인 덕분에 이것저것 다양한 재료가 들어가 조금 끈적이는 재질의 진흙이 된다.


요컨대 진흙이지만 쉽게 떨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런 것들이 몸에 붙으면 당연히 움직임이 제한된다. 시간이 지나면 순식간에 굳어가면서 더욱 귀찮게 되기도 하고.


그렇게 몇 마리의 머드돌이 몸에 붙으면 팔다리가 무거워지면서 움직이기가 힘들다. 그 상태로 다른 머드돌의 공격으로 몸이 흔들리거나 미끄러지면서 바닥에 눕게 된다면? 그리고 그 위로 머드돌들이 쌓여 올라간다면?


호흡기계를 막거나 무게로 짓눌러 다른 사람의 도움이 없으면 그 상태를 유지하게 되는 경우가 발생하는 것이다. 물론 이건 단독으로 많은 수의 머드돌을 상대해야 하는 경우에만 일어나는 일이다. 당연히 지금처럼 반파된 머드돌이 사용할 수 있는 전법이 아니다.


그렇다면 지금 내가 머드돌에게 피해를 입을 가능성은? 단언컨대 전혀 없다. 내 옷이나 조금 더럽힐 수 있겠지. 하지만 선영이는 그 사실을 모른다. 게다가 내 다리를 통해 기어올라오는 머드돌에게 기겁하며 뒤로 자빠지는 등 행동을 취하며 겁에 질린 표정을 짓고 있는다면 더더욱 생각하기도 어려울 것이다.


선영이는 소리를 지르며 뒤로 넘어간 내게 다가올 생각조차 하지 못한 채로 손을 떨고 있었다. 아까까지만 해도 곧게 서 있던 칼날은 양 옆으로 진자처럼 흔들리기 시작했고 그와 같이 선영이의 눈동자도, 입술도 떨리고 있었다.


일단 그 상태에 만족한 나는 활에 걸었던 화살을 손에 집어 들고는 단검처럼 밑으로 내려찍었다. 정말로 혼란스럽다는 표정과 행동. 가슴까지 기어올라온 머드돌을 처음 접하는 사람이 행할만한 행동이었다. 아마도 그럴 것이다.


머리를 반 정도 깨부순 나는 슬슬 질려가는 연기를 마무리 짓기 위해 양 손으로 머드돌을 밀어 바닥으로 내팽개쳤다. 다행히 무게가 가벼워진 머드돌은 순순히 내 손길에 바닥으로 굴렀고 머드돌이 떨어지자마자 나는 옆으로 돌아 허리춤의 단검에 손을 가져갔다.


묵직한 무게감을 느낀 나는 순식간에 단검을 꺼내 들고는 훅, 하는 기합소리와 함께 바닥에 누워있던 머드돌의 가슴부에 박혀있던 붉은색의 보석을 향해 내리쳤다.


보석이라고 보기에는 약한 경질을 가진 머드돌의 핵은 순식간에 금이 가고는 조각조각 나며 바닥으로 떨어졌고, 그와 함께 반파된 머드돌도 무너져 내리고는 결국 주위에 있던 자신의 동료들과 같이 진흙 덩어리로 남게 되었다. 그렇게 우리의 첫 전투는 끝이 나게 되었다.


나는 천천히 숨을 몰아쉬는 연기를 하며 슬쩍슬쩍 선영이의 상태를 살폈다. 약간 충격을 먹은 듯이 표정은 굳어있었지만 아까와 다르게 떨림은 멎어있었다. 상황이 끝났다고 인식하는 것일까.


멋대로 상황을 끝났다고 판단하는 것은 좋지 않은 습관이었지만 지금 그런 걸 말해줄 상황은 아니었다. 지금 당장 그녀가 알아야 할 교훈은 그런 것이 아니었다.


'뭔가 이해했으면 좋겠는데.'


이론보다는 실전이 더 도움이 되는 사람들이 있다. 선영이는 그런 분류의 사람이었다. 몸으로 익히는 것이 더 잘 맞는 체질이었던 것이다. 지금 상황에서 자신의 역할이 무엇인지도 깨달을 수 있으면 좋겠건만.


"죽... 은건가?"


선영이는 그제야 천천히 입술을 열어 내게 말을 걸었다. 애초에 살아있다고 말하기도 애매한 존재라 죽었다는 표현이 맞는 걸까, 살짝 고민하면서 대답했다.


"아마 그런 거 같은데... 주위에 있던 진흙들이 이런 놈들이었나 봐..."


나는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나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상황을 살피려고 돌아보는 2것처럼 보였겠지만 실상은 아까 못 살핀 물건들을 살피려는 속셈이었다.


아까 미처 확인하지 못한 부분까지 얼추 살피며 확실하게 동굴이 비었음을 확인한 나는 속으로 혀를 차며 선영이에게 말을 걸었다.


"괜찮아?"


"어어... 괜찮은 거 같아. 너는?"


"다행히도... 아까는 진짜로 죽는 줄 알았어. 몸을 기어 오는 감각이 아직도 느껴지는 게, 으..."


나는 진심으로 질색한다는 표정으로 선영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내 표정에 살짝 움찔하더니 눈길을 내려 내 흉부를 바라보았다. 당연히 진흙으로 된 놈이니 내게 상처는 없었지만 혹시 모르니 살피려는 모양이었나 보다.


그녀가 과연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이번 사태에서 자신의 역할에 대해서, 사고방식에 대해서 무언가를 깨달은 것이 있을까? 나는 감히 그녀의 마음을 짐작하며 단검을 살펴보았다.


재질이 좋지는 않았는지 그 한 번으로 벌써 끝부분의 날이 나가버렸다. 오래 쓸 물건은 아니었으니 미련은 없지만 무기가 구하기 힘든 지금으로써는 가능하면 오래 버텨주길 바랄 뿐이다. 그리고 그러기 위해서는 서둘러 다음 무기를 구할 방으로 이동할 필요가 있었다.


다시 다음 방으로 떠나기 전에 나는 이 기회에 조금씩 그녀를 가르쳐야겠다는 생각에 고민에 빠져있던 그녀에게 다시 말을 걸었다.


"방금 그 놈들... 가슴에 이상한 보석을 달고 있었지? 머리를 반이나 깨부수었는데도 움직이던 게 가슴에 보석을 때리니까 멈추더니 무너졌던 거 같아."


"응? 그랬나?"


"제대로 안 보고 있었냐? 확실해. 내 코 앞에서 잡았으니까 내 눈으로 똑똑히 봤어."


그녀는 내 말에 잠시 동공이 흔들렸지만 곧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랬던 것 같긴 해... 머리가 아니라 가슴이 약점인 건가?"


"확실한 건 저건 기계나 사람 같은 게 아니야. 저 정도의 기술은 들어본 적이 없어."


"그게... 무슨 말이야?"


"내 말은... 우리는 최악의 상상까지도 해야 한다는 거지."


나는 그렇게 말하며 바닥을 내려다보았다. 진흙처럼 변한 골렘은 그 사이로 작게 빛나는 붉은 보석을 반짝이고 있었다. 나를 따라 바닥으로 내려다보던 선영의 눈에도 그 보석이 보였던 것일까. 천천히 주위로 눈길을 돌리자 그제야 아까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녀의 눈에도 다른 진흙들 사이에 묻혀 있던 붉은 보석 조각들이 들어온 것이다. 그리고 이전에 정찰을 나갔던 사람들이 이것들과 싸웠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도 살기 위해서 이 괴물들을 잡았다는 것도. 그리고 우리도 그렇게 해야만 한다는 것도. 그녀는 비로소 자신의 역할과 마음가짐을 이해했다.


착잡해진 분위기를 깨고 다시 방을 나서기로 한 것은 약간의 시간이 지난 후였다. 처음에는 서영이가 금세 방을 나가려고 했지만 방 안에 있을 물건을 살핀다는 명목으로 붙잡아 둔 탓이다.


'지금 바로 출발할 필요는 없지.'


상태창을 열 수 없는 지금, 나는 선영이를 보호할 자신이 없어졌다. 그렇다면 다른 사람들과 마주하는 것은 안전에 위험이 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아마 앞서서 출발한 사람들도 여기서 싸우고 쉬다가 출발했을 테니 우리와 거리 차이가 별로 안 날지도 모르는 마당에 굳이 따라잡고 싶지는 않았다.


'기억이 애매하니까 1회차 때 시련의 굴에서 만난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이 있었는지 떠올릴 수가 없으니...'


이 굴에서의 보상을 독식하고 싶은 마음도 있고 괜히 이상한 놈이 꼬이는 건 방지하고픈 마음에 가능하면 사람들을 피해서 갈 생각이었다. 그러나 그런 나의 계획은 선영이의 눈썰미로 순식간에 무너져 내리고 말았다.


"야, 신혁아. 이것 좀 봐."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회귀자의 퀸메이커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8 P.01 시련의 굴(7) 24.08.06 3 0 17쪽
7 P.01 시련의 굴(6) 24.08.06 7 0 7쪽
6 P.01 시련의 굴(5) 24.08.05 8 0 16쪽
5 P.01 시련의 굴(4) 24.07.28 11 0 20쪽
» P.01 시련의 굴(3) 24.07.27 10 0 22쪽
3 P.01 시련의 굴(2) 24.07.27 13 0 16쪽
2 P.01 시련의 굴(1) 24.07.26 14 0 12쪽
1 EP. Prologue 24.07.26 21 0 4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