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월광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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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등록일 :
2022.02.16 2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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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4.18 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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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8화. 신군 갈단의 과거

DUMMY

“그동안 잘 지냈느냐, 그런데 옆에 계신 분들은 누구신가?”


신군의 말소리는 나직했으나 위엄이 깃든 말씨였다. 갈소군은 대답을 못하고 고개만 숙이고 있었다.


그러자 옆에 있던 전불원이 나섰다.


“자네는 나를 모르겠나? 아니면 일부러 모른 체하는 건가?


나는 사해를 내 집으로 삼고 원수를 찾아 동가식서가숙, 일정한 거처가 없이 떠돌아다니는 전불원이네.


이 동생은 비열한 놈들을 보면 참지 못하는 소년 영웅이지.”


전불원이 신군을 노려보고 빈정거리듯 큰 소리로 말하자 신군은 순간적으로 놀라는 것 같더니 이내 평정심을 회복하고 헛기침을 했다.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군, 사람을 잘못 본 것 같소.”


“하하하, 갈단! 네놈이 시치미를 뗀다고 딴 놈이 되겠느냐!”


“글쎄···, 이름은 맞지만 난 당신을 모르오!”


전불원은 기가 차서 말이 막혔는지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노소자는 무슨 영문인지는 몰랐지만, 무영문의 배반자인 ‘갈단’이란 이름을 듣자마자 가슴 저 깊은 곳으로부터 분노가 끓어올랐다.


그러나 아직 확실히 밝혀지지 않았기에 경거망동을 할 수 없었다.


복받치는 격한 분노를 추스른 후에 말에서 내려 포권을 하고 공손하게 말했다.


“노소자라고 합니다.”


비록 약관의 나이도 되지 않았지만 의젓하고 중후한 기상이 엿보이는 노소자의 거동에 신군은 여전히 웃음을 띠고 고개를 끄덕였다.


신군은 갈무종이 명을 제대로 이행하지 못하자 화를 내며 부하들을 풀어놓았다.


그러나 갈소군이 귀신처럼 빠져나가자 자신이 직접 앞질러 와서 이들의 의표를 찌른 것이다.


신군은 갈소군과 자주 어울리는 놈을 직접 보고, 비위에 거슬리면 일찌감치 제거하여 화근의 싹을 잘라버리려고 마음먹었다.


그러나 노소자가 비범해 보이기는 하나 자신의 눈에는 아직 젖먹이 애송이에 불과하였다.


게다가 부모의 명을 거역하면서까지 갈소군과 어울린 노소자가 윗사람에 대한 예의를 갖춰 공손하게 대하자 웃으며 답례를 하였다.


“나는 주위 사람들이 화염신군이라 부르는 갈단이라 하네, 이렇게 만나게 된 것도 인연이란 생각이 드는군.”


웃으며 말하는 신군의 모습은 누가보아도 악당들의 두목으로는 보이지 않았고 인자하고 덕이 높은 군자로 보였다.


그러나 ‘갈단’이라는 이름을 본인한테 직접 듣는 순간, 노소자는 깊은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져 내리는 충격에 몸을 떨었다.


그동안 갈소군에게 물어보지도, 말도 하지 않았지만, 두려움이 현실로 나타난 것이다.


갈소군과 갈무종을 보면서 혹시 만에 하나라도 소군의 아버지가 무영문의 배반자라면 어떻게 해야 하나, 하고 혼자 마음속으로 고민하고 있었다.


사람으로서 차마 하지 못 할 비열한 짓을 한 자가 가증스럽게 군자의 모습을 하고 나타났으니 타오르는 분노를 억제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아직은 분노를 표출할 때가 아님을 안 노소자는 마음을 진정시키고 겉으로 드러내지 않았다.


이런 사정을 모르는 전불원은 노소자가 신군이란 별호를 듣고 두려워서 쩔쩔매는 것을 보고,


인물은 쓸 만하지만 담이 적어 큰일을 하기엔 좀 부족하다고 여겨 혀를 찼다.


갈단은 노소자가 자신의 별호와 이름을 듣고는 잔뜩 겁에 질려 부들부들 떨다가 간신히 얼굴색을 회복하는 걸 보고 속으로 웃음이 나왔다.


막상 만나보니 허울만 그럴싸했지 담이 작은 겁쟁이였다. 구렁이 같이 음흉한 놈들이 어린애를 내세우고 정작 본인들은 뒤에 숨어있다고 생각했다.


더구나 자기 딸을 좋아해서 놀러나 다니는 것을 보면 자신의 추측이 틀림없다고 믿었다.


그런 애송이를 자신의 신분으로 직접 손을 쓴다는 것은 체면을 깎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직접 손 쓸 가치가 없어지자 마음은 오히려 너그러워졌다. 그래서 갈단은 만면에 웃음을 띠우고 말했다.


“얘야, 이제 그만큼 놀았으면 애비와 같이 가자. 네 어미도 널 무척 그리워하고 있단다.”


갈소군은 혼자계신 어머니를 생각하면 당장이라도 집에 가고 싶었다.


그러나 과거 만무방에서 자신을 욕보이려던 못된 놈과 파렴치한 갈무종을 생각하곤 고개를 저었다.


“전 돌아가고 싶지 않아요, 특히 갈무종 같은 위인은 더욱 보고 싶지 않구요. 때가 되면 돌아가겠어요.”


“네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는 건 아니지만 고집부리지 마라.”


신군이 한 발작 내딛으며 갈소군이 탄 말의 고삐를 잡으려고 하였다. 그러나 갈소군은 말을 뒷걸음질시켜 뒤로 물러나며 소리쳤다.


“죄송해요, 지금은 돌아가지 않을 거예요!”


갈소군의 단호한 말에 신군은 얼굴색이 변하였으나 곧 쓴 웃음을 지었다.


다른 사람들이 있는 곳에서 딸아이하고 옥신각신하는 추태를 보이기 싫어 할 수 없이 손을 거뒀다.


“네가 애비를 거역하면 할수록 네 어미만 더 고통을 받는다는 것을 명심해라. 두 분과는 인연이 있으니 다시 만나게 될 겁니다. 그럼, 이만···.”


신군은 뼈 있는 말을 하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휘적휘적 걸어갔다.


순간 어디서 나타났는지, 유령처럼 갑자기 나타난 두 노인이 그 뒤를 따라 천천히 걸어갔다.


그 두 노인이 근처에 있었는데도 노소자와 전불원은 전연 눈치를 채지 못했으니 그들의 무공조예를 가히 짐작할 수 있었다.


“갈 공자, 저 두 노인에 대해 아는 게 있나요?”


노소자의 물음에 갈소군은 고개를 저었다. 자신도 그 노인들을 처음 본 것이다.


노소자는 그런 귀신같은 노인들을 호위로 거느리고 있는 신군의 실력이 과연 어떠한 경지에 이르렀는지 짐작도 할 수 없었다.


어차피 한 번은 서로 격돌을 해야 하는데 자신이 서지 않아 걱정이 앞섰다.


기가 막혀서 옆에서 눈만 부릅뜨고 이를 갈고 있던 전불원은 신군이 사라지자 겨우 정신을 차리고 말했다.


“이제 말로만 듣던 신군의 얼굴도 보았고, 두 괴인도 보았으니 빨리 돌아가서 대책을 세워야겠네, 어서 가세.”


전불원의 말에 정신을 차린 노소자가 갈소군을 쳐다보니 안색이 좋지 않았다.


아버지의 말을 거역하고 따르지 않은 용기는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노소자는 지금 갈소군의 심경이 얼마나 착잡할까하고 생각하니 가슴을 저미는 듯 아파왔다.


“갈 형, 뭐라고 말해야 할지···.”


“아니에요, 이미 결정한 일이니 너무 마음을 쓰지 말아요.”


갈소군은 노소자를 생각해서 억지로 웃어보였다.


그런 모습을 보자 노소자의 가슴은 찢어지는 것 같았다. 산전수전 다 겪은 전불원은 가라앉은 분위기를 띄워주려고 특유의 우스갯소리를 하였다.


“난 아까 정말 조마조마했었네.”


“왜요?”


갈소군은 세상에 두려운 것이 없는 듯 행동하는 전불원이 조마조마했다는 말에 의아해서 물었다. 전불원은 씩 웃으며 말했다.


“이 세 필의 준마를 자기네 말이라고 달라고 하면 우린 걸어가야 하는데 큰일이 아닌가, 그래서 마음이 조마조마했지.


그렇지만 달란다고 선뜻 내 줄 내가 아니지, 하하하.”


갈소군과 노소자는 깔깔대며 웃음을 참지 못했다. 웃던 갈소군이 별안간 웃음을 멈췄다.


불현듯 엄마와 깔깔대던 모습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아까 아버지가‘애비를 거역하면 할수록 네 어미만 더 고통을 받는다.’라고 한 말이 자꾸 귓가에서 떠나지 않았다.


어머닌 지금 뭘 하고 계실까, 내 걱정에 잠 못 들고 뜬 눈으로 지새우시지나 않을까, 하는 생각에 마음이 괴로웠다.


일단 집에 가서 엄마를 만나서 잘 말씀드리고 다시 오리라 생각한 갈소군은 노소자에게 자신의 마음을 말했다.


노소자는 말리고 싶었지만 어머니를 보러간다고 하는데 결코 말릴 수는 없었다. 가슴 한 구석이 떨어져나가는 아픔이 일었다.


갈소군은 눈가에 이슬이 맺혔지만 한동안 쳐다보다가 말(馬)을 돌리면서 나직이 말했다.


“우리 집은 화산자락에 있는 대나무 숲에 있어요, 나중에라도 시간이 있다면···.”


노소자는 멀어져가는 갈소군의 뒷모습을 하염없이 바라보다가 모습이 보이지 않자 할 수 없이 말을 몰았다.


노소자는 돌아오는 동안 내내 허전한 마음을 달래며 말을 재촉해야 했다.


“참, 형님! 신군 갈단에 대해 잘 아시는 것 같던데, 얘기해 주실 수 있습니까?”


“정말 부끄러운 일이라 아직 아무에게도 말한 적이 없지만···, 동생에겐 무슨 말을 못하겠는가.”


전불원은 옛날을 회상하는지 한동안 허공을 응시하다가 과거지사(過去之事)를 낱낱이 털어놓았다.


어릴 때, 전불원과 갈단은 사천성에 있는 외진 산골마을에서 같이 자랐다. 삼십여 호의 마을사람들은 산자락의 밭떼기에 농사를 지으며 가난하게 살았다.


마을사람들은 모두 한 식구처럼 다정하게 지내서 서로를 아껴주었다.


전불원의 이웃에는 손소연(孫小鷰)이란 소녀가 살았는데 전불원을 오빠처럼 여기고 잘 따랐다.


전불원과 갈단은 소연을 동생처럼 생각하였고 시간이 있을 때마다 같이 어울렸다.


산에 가서 작은 짐승도 잡고, 열매를 따고, 산나물도 캐며 같이 놀았다.


몇 해가 지난 어느 날, 갈단의 부모님이 병으로 돌아가셨다. 갈단에겐 형이 있었는데 농사를 짓기 싫어해서 오래전에 집을 나가 돌아오지 않았다.


홀로 남은 갈단이 부모님의 장사를 지낸 후, 큰 도시로 가서 돈을 벌어 오겠다며 전불원의 만류를 뿌리치고 떠나버렸다.


갈단이 떠나자 전불원과 손소연은 더욱 가까워졌다.


전불원은 나이가 들수록 농사일에 열심이어서 흉년이 들어도 먹고사는 데에는 걱정이 없었다.


세월이 흘러 전불원이 이십 살이 되자 주위사람들이 전불원과 손소연을 결혼시키려고 하였다.


물론 두 사람 모두 바라던 바라 그해 추수가 끝나면 결혼하기로 약속을 하였다.


여름이 끝나갈 무렵, 돈을 벌려고 외지로 나갔던 갈단이 마을로 돌아왔다. 전불원과 손소연은 매우 반갑게 갈단을 맞이했다.


갈단은 돈을 많이 벌었는지 비단옷을 입었으며 마차로 선물들을 잔뜩 실어와 전불원과 손소연은 물론 마을 사람들에게도 나눠주었다.


자연스럽게 세 사람은 전불원의 집에서 저녁을 먹으며 지난 얘기들로 꽃을 피웠다.


갈단은 그동안 무예를 배워 지금은 이름난 표국에서 표사노릇을 한다고 했다.


이제는 표국에서도 알아주는 사람이 되었고, 집도 장만했으니 손소연에게 같이 가자고 말했다.


순간, 전불원과 손소연의 안색이 변했다. 전불원은 추수가 끝나는 대로 손소연과 결혼식을 올리기로 했다고 털어놓았다.


그 말을 듣자 갈단은 표정이 야릇하게 변했으나 곧 웃음을 띠우고 결혼을 축하한다며 술잔을 들어 건배를 하였다.


갈단은 유쾌한 표정으로 표물을 호송하던 중 일어난 일들을 얘기하며 밤이 새도록 즐겁게 보냈다.


다음날, 갈단이 돌아가야 된다고 인사를 하자 전불원과 손소연은 매우 아쉬워하였다.


전불원은 갈단을 전송하기 위해 산길을 걸었다. 이제 헤어지면 언제 또 만날지 몰랐다.


헤어지기가 아쉬운 전불원은 산을 넘어 이웃 마을까지 같이 가려고 하였다.


가파른 산을 넘자 갈단이 잠시 쉬어가자고 하여 두 사람은 정상에서 잠시 쉬었다.


갈단이 절벽 끝에 가서 소변을 보며, 천하를 발아래 굽어보며 소변을 보니 천하가 다 내 것처럼 보인다고 떠들어댔다.


어릴 때도 그러고 놀던 생각이 나서 전불원도 천하를 굽어보며 소변을 보았다.


바로 그때 눈을 사납게 뜬 갈단이 뒤에서 전불원의 등을 세차게 걷어찼다.


전불원은 무슨 영문인지도 모른 채 피를 뿜으며 까마득한 절벽 아래로 떨어졌다.


갈단은 음흉한 미소를 띠우며 칼을 뽑아 자신의 팔뚝과 다리에 상처를 내었다.


절벽 아래로 떨어진 전불원은 중간에 튀어나온 나뭇가지에 부딪쳤다가 다시 깊은 계곡으로 떨어졌다.


울창한 숲이 하늘을 가리고 있는 밑바닥에 피를 뿌리며 너부러진 전불원은 죽었는지 움직이지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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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 제82화. 노소자여 안녕히 +12 22.05.02 541 17 12쪽
81 제81화. 회자정리 會者定離 거자필반 去者必返 +2 22.05.01 447 14 11쪽
80 제80화. 제 버릇 개 주랴 +4 22.04.30 456 13 11쪽
79 제79화. 산중수복(山重水複) 갈길은 먼데 길은 보이지 않고 +3 22.04.29 491 15 11쪽
78 제78화. 건곤일척(乾坤一擲)의 혈투를 벌이다 +4 22.04.28 501 13 11쪽
77 제77화. 못된 제자와 사부의 결투 +2 22.04.27 468 15 12쪽
76 제76화. 또다시 스승을 배반한 신군 갈단 +4 22.04.26 485 15 11쪽
75 제75화. 용호상박 龍虎相搏 +2 22.04.25 505 15 11쪽
74 제74화. 무림의 운명을 결정짓는 비무대회 +2 22.04.24 504 12 12쪽
73 제73화. 갈단의 사부, 구유귀왕(九幽鬼王) 뇌진성 +2 22.04.23 493 12 11쪽
72 제72화. 화산 성채를 접수하다 +2 22.04.22 513 12 12쪽
71 제71화. 불구대천의 원수 +4 22.04.21 561 16 11쪽
70 제 70화. 금면악동(金面惡童) 상관마, 상관해 +2 22.04.20 627 18 13쪽
69 제69화. 파렴치한 갈단의 과거 +2 22.04.19 549 15 13쪽
» 제68화. 신군 갈단의 과거 +4 22.04.18 567 17 12쪽
67 제67화. 마침내 신비의 인물, 신군과 만나다 +4 22.04.17 578 15 12쪽
66 제66화. 사나이 대장부의 길 +2 22.04.16 581 12 14쪽
65 제65화. 노소자 사로잡히다 +4 22.04.15 580 11 13쪽
64 제64화. 흑랑채의 채주 금안랑군(金眼狼君) 호대랑 +2 22.04.14 578 14 12쪽
63 제63화. 인생이란 결국 빈손, 공수래공수거 空手來空手去 +4 22.04.13 588 15 12쪽
62 제62화. 위기일발 (危機一髮)의 순간 +4 22.04.12 605 16 13쪽
61 제61화. 독 안에 든 쥐 +4 22.04.11 620 13 13쪽
60 제60화. 결국 꼬리를 밟히다 +2 22.04.10 624 16 14쪽
59 제59화. 도화곡(桃花谷)에서 +2 22.04.09 650 15 14쪽
58 제58화. 쫓고 쫓기는 숨막히는 추격 +2 22.04.08 617 13 13쪽
57 제 57화. 태행산으로의 잠행 潛行 +2 22.04.08 663 16 14쪽
56 제56화. 솔바람 그늘아래 벽계수 흐르는데 +4 22.04.07 710 18 14쪽
55 제55화. 화산파의 멸문지화 滅門之禍 +2 22.04.06 716 19 13쪽
54 제54화. 갈소군의 과거 +2 22.04.05 697 17 13쪽
53 제53화. 이 파렴치한 놈아 +4 22.04.04 710 18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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