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6화. 또다시 스승을 배반한 신군 갈단
두한풍이 그나마 철포삼의 기공을 연마하지 않았더라면 옆구리에 깊은 상처를 입고 피를 뿌리며 나자빠졌을 것이다.
이를 갈며 눈을 부릅뜬 두한풍이 신군을 슬쩍 쳐다보더니 기합을 넣으며 현진도장을 향해 달려들었다.
달려오던 기세로 한 마리 학이 날아오르듯, 일학충천(一鶴冲天)의 수법으로 육중한 몸을 공중에 띄웠다.
공중에서 떨어져 내리는 기세를 귀두도에 싣고 산을 쪼갤 듯 엄청난 위력으로 현진도장의 정수리를 향하여 내리쳤다.
현진도장은 무서운 기세로 내려오는 귀두도를 맞받아 올려쳤다. 귀를 찢는 날카로운 소리가 울려 퍼지며 잘려나간 귀두도의 칼 조각이 현진도장의 오른쪽 가슴 위에 꽂혔다.
구경하던 사람들은 모두 놀라서 날카로운 비명을 질렀다.
그러나 현진도장은 상처는 아랑곳하지 않고 검을 뒤집어 왼쪽으로 비스듬히 내려쳤다.
두한풍이 기겁해서 몸을 옆으로 비틀었으나 오른쪽 발목이 잘려나갔다.
두한풍의 발목에선 진한 피가 솟아나왔고, 두한풍은 떨어져나간 발목 옆으로 벌렁 쓰러졌다.
현진도장 역시 가슴에서 피가 흘러나와 가슴의 혈도를 막았으나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다.
사람들이 무대 위로 올라와 두 사람을 밑으로 옮겼다. 현진도장은 상처가 매우 위중해서 노소자가 상처를 치료하기위해 급히 달려갔다.
뒤이어 흑룡방의 금면악동(金面惡童) 상관해가 표표한 신법으로 몸을 날려 비무대 위에 사뿐히 내려섰다.
공손휘도 앉은 자세 그대로 몸을 날려 무대 위로 올라왔다. 공손휘의 멋진 신법에 구경하던 많은 사람들이 박수를 치며 환호성을 질렀다.
공손휘가 두 손을 맞잡아 인사를 하는데 상관해가 얼굴을 찌푸리고 손사래를 쳤다.
“생사를 가름 하는데 인사는 무슨 놈의 얼어 죽을 인사요? 빨리 시작이나 합시다.”
상관해는 상대를 아주 무시하는 태도로 한 손으로 뒷짐을 지고 말했다. 그러나 공손휘는 화를 내지 않고 침착하게 검을 뽑아들며 말했다.
“귀하도 병기를 뽑으시오.”
“흥! 내 두 손이 병기요.”
공손휘는 검을 중단에 겨누고 한 발작 앞으로 나아갔다. 상관해는 두 손을 가슴 앞에 모으고 진기를 모으고 있었다.
그러자 상관해의 두 손이 점점 시커멓게 변하기 시작했다. 처음부터 자신의 절기인 풍뢰십삼장(風雷十三掌)을 쓰려고 작정한 모양이었다.
상관해가 오른손으로 제 일 식인 뇌정벽력(雷霆霹靂)으로 천둥과 벼락이 격렬하게 내리꽂히듯 공손휘의 견정혈을 내려치고, 왼손으론 뇌정만리(雷霆萬里)의 수법으로 공손휘의 허리 요혈을 움켜쥐려고 하였다.
쇠갈고리처럼 억센 손가락이 몸에 닿기도 전에 매서운 바람이 몰아쳤다. 공손휘는 재빨리 오른쪽으로 몸을 날렸다.
순간 상관해의 오른손이 왼쪽 어깨를 스치며 지나갔다. 공손휘는 몸을 빙글 돌려 상관해의 뒤로돌아가서 재빨리 검을 휘둘렀다.
상관해의 등짝이 길게 찢어지며 피가 허공으로 튀었다.
얼굴을 잔뜩 찌푸린 상관해가 번쩍 몸을 날리며 오른손을 들어 바람이 일고 번개가 치듯 공손휘의 허리를 공격했고,
왼손으로는 뇌신앙천(雷神仰天)으로 손가락을 창처럼 모아 아래에서 위로 턱밑을 찔러들었다.
상관해의 공격은 그야말로 수발유심(收發由心), 즉 마음먹기에 따라서 공력의 발출과 회수를 자유롭게 할 수 있는 경지에 이른 것 같았다.
공손휘는 왼손을 아래로 뻗으며 상관해의 오른손의 공격을 막고 검을 내려쳐 턱밑을 찔러오는 손을 노리고 베었다.
공손휘의 전광석화와 같은 공격에 상관해의 손가락이 잘려져 나가려는 순간, 상관해가 공손휘의 왼손 손목을 움켜쥐고 힘을 주었다.
우드둑! 하고 뼈가 부러지는 소리와 동시에 공손휘의 검이 상관해의 왼쪽 손목을 베어버렸다.
공손휘와 상관해는 모두 상처를 입고 뒤로 신형을 뽑았다. 공손휘는 왼팔의 팔꿈치가 부러져 덜렁거렸고, 상관해의 왼쪽 손목에서 피가 분수처럼 뻗어 나왔다.
상관해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얼른 왼손의 혈도를 눌러 피를 지혈시키고 눈을 부라리며 공손휘에게 다가갔다.
상관해는 최후의 격전을 벌이려는 듯 십성의 공력을 끌어 모으는 중이었다.
공손휘도 왼손이 부러져 몸을 움직일 때마다 덜렁거려 그 통증으로 견디기 힘들었지만 여기서 포기할 수는 없었다.
공손휘는 오른손의 검을 상단으로 겨누고 벽력검의 절초를 사용하려고 하였다.
두 사람은 내력을 잔뜩 끌어 모아 일격에 적을 거꾸러뜨리려고 틈을 노리고 있었다.
이대로 맞붙는다면 누가 봐도 두 사람 모두 목숨을 부지하기 힘든 상황이었다.
이때, 노소자가 벌떡 일어나 소리쳤다.
“이번 시합은 우리가 졌소, 공 대협, 내려오십시오!”
“문주님, 걱정 마십시오. 아직 싸울 만합니다.”
구경하던 사람들은 이제 막 흥미진진해지려는 데 싸움을 중지시키자 우! 우! 하며 야유를 보냈다. 그러나 노소자는 의연한 자세로 다시 말했다.
“공 대협! 이건 명령이오. 그만 내려오시오.”
공손휘는 분했지만 할 수없이 검을 꽂고 왼팔을 잡으며 밑으로 내려왔다.
노소자는 어차피 한 사람이 남을 때까지 싸우기로 했으니 공 대협의 목숨을 잃게 할 수는 없었다.
나머지는 자신이 감당하기로 마음먹고 결단을 내린 것이다.
지금까지의 승부는 첫 판은 비기고 이번엔 졌으나 아직 승부가 끝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흑룡방에는 실력을 가늠할 수 없는 신군과 뇌진성이 버티고 있었다.
신군은 이미 무림의 지존이 된 듯, 만면에 인자한 웃음을 띠우고 사람들을 둘러봤다.
정파의 인물들은 말은 안하고 있었지만 모두 얼굴색이 변하여 초상집분위기였다.
이런 분위기를 깨려는 듯 소림의 방장, 무오대사가 허연 수염을 휘날리며 무대 위로 날아올랐다.
구경하던 사람들은 무림의 태산북두인 소림사의 방장스님, 무오대사가 올라오자 모두 눈빛을 빛내며 환호성을 질렀다.
그러자 천지쌍살이 무대 위로 모습을 드러냈다. 이들은 올라오자마자 무오대사를 가운데에 두고 양쪽으로 나누어 섰다.
두 사람이 한 사람을 상대한다고 생각한 사람들이 야유를 퍼부었다. 그러나 원래 앞을 못 보는 천지쌍살의 안색은 조금도 변하지도 않았다.
그래도 귀는 무척이나 밝아서 야유하는 소리를 듣자 첫째인 엄숭일이 변명을 하였다.
“우린 태어날 때부터 지금까지 한 번도 떨어진 적이 없소. 잠을 잘 때도 같이 잤고, 밥을 먹을 때도 같이 먹었소.
열 사람과 싸울 때도 같이 싸웠고, 한 사람과 싸울 때도 같이 싸웠소. 오늘도 마찬가지요.”
엄숭일의 말을 듣고 구경하던 사람들 속에서 누가 떠들었다.
“제미랄, 변소에 갈 때에도 둘이 붙어 다닌다면 냄새나는 변소를 크게 지어야겠군···.”
“크크크! 그거 냄새는 좀 나겠지만, 볼만하겠는 걸···.”
사람들이 모두 웃음보를 터뜨려 매우 시끄러웠다. 그러자 총관인 모흥강이 눈을 부라리며 큰소리로 말했다.
“여긴 생사가 왔다 갔다 하는 곳이요, 공연히 쓸데없는 소리로 분위기를 깨지 말기를 바라오.”
그 바람에 주위가 조용해 졌다. 무오대사는 목에 걸고 다니던 검은색의 염주를 손에 쥐고 천지쌍살에게 가볍게 인사를 했다.
“그럼, 두 분께서는 손에 인정을 남겨주시길 바랍니다. 아미타불···.”
무오대사는 천지쌍살 사이에서 왼손에는 염주를 쥐고 오른손을 가슴에 세우며 미동도 하지 않고 석상처럼 서 있었다.
천지쌍살은 눈이 보이지 않았지만 청각은 매우 발달해서 일반인들이 듣지 못하는 소리까지 들을 수 있었다. 심지어 바늘 하나 떨어지는 소리도 들을 수 있었다.
그러나 상대가 움직이지 않으니 섣불리 공격할 수가 없어 쌍방은 한동안 움직이지 않고 일촉즉발의 대치상태에 있었다.
보는 사람들의 눈에는 재미가 없었지만 당사자에게는 매우 긴장되고 피를 말리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사람들에게는 인내력에 저마다의 한계가 있었다.
오랜 참선(參禪)으로 마음을 닦은 무오대사는 심신이 안정되어 꼼짝을 않았지만, 천지쌍살은 좀이 쑤셔 견딜 수가 없었다.
둘째 엄숭수가 한 발 앞으로 다가오자 첫째도 앞으로 한 발 다가왔다. 천지쌍살은 서로 마음이 통했기 때문에 말을 하지 않아도 서로의 마음을 읽고 있었다.
그러나 무오대사는 조금도 움직이지 않고 태산처럼 서있었다.
고요함으로 움직임을 제어하고, 현상을 유지하면서 닥쳐올 변화에 적절히 대처하는(以靜制動 以不變應萬變 이정제동 이불변응만변) 고수의 수법이었다.
첫째가 두 손을 가슴에 모으고 다시 한 발 다가오자 둘째도 무오대사를 향해 다가왔다. 이제 거리는 서너 발걸음 정도로 가까워졌다.
그래도 무오대사는 움직이지 않았다. 그러자 천지쌍살은 무오대사의 정확한 위치를 가늠할 수가 없었다.
천지쌍살이 다시 한 발 움직이는 순간, 무오대사는 살짝 쪼그리고 앉으며 첫째를 향해 왼손의 염주 두 알을 튕겨내고, 오른손으로 둘째의 발에 있는 환도혈을 후려쳤다.
첫째는 염주 알이 날아오는 파공성을 듣고 왼쪽으로 몸을 빙글 돌려 피하며 두 손을 앞으로 뻗어 세찬 장풍을 쏟아내었다.
둘째도 발을 번쩍 들어 공격을 피하는 동시에 앞으로 뻗어 무오대사의 얼굴을 공격했다.
무오대사는 구부린 오른쪽 발을 축으로 삼아 왼발을 팽이처럼 돌렸다.
몸을 빠르게 회전시키는 바람에 첫째의 장풍이 큰 상처를 주지 못했고, 돌려차기에 천지쌍살 둘째의 장딴지가 파열되면서 꽈당! 뒤로 나가떨어졌다.
무오대사는 벌떡 일어나면서 염주 세 알을 손가락으로 퉁겨냄과 동시에 몸을 날려 첫째 엄승일의 가슴에 있는 기문혈을 노렸다.
엄숭일은 염주를 피하느라 전광석화처럼 다가간 무오대사의 공격을 막을 수가 없어서 가슴에 충격을 받아 그대로 주저앉았다.
무오대사는 쓰러져서 꼼짝 못하는 천지쌍살에게 다가가 혈도를 풀어주고, 몸을 날려 가볍게 제자리로 돌아왔다.
자비를 근본으로 삼는 무오대사는 인명을 살상하고 싶지 않아 두 사람을 해치지 않았다.
무오대사에게 고마움을 느낀 천지쌍살의 첫째는 둘째를 업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신형을 날려 비무대를 떠났다.
신군은 얼굴색이 약간 변했으나 곧 평정심을 찾고 여전히 웃음 띤 얼굴로 앉아있었다.
처음부터 줄곧 주위 사람들과 한 마디 말도 없이 눈을 감고 조용히 앉아있던 뇌진성이 차례가 되어 눈을 번쩍 뜨더니 비무대 위로 몸을 날렸다.
화살이 내리꽂히듯 찰나지간에 비무대에 내려선 뇌진성은 안색이 매우 어두워보였다.
마치 무거운 짐이 가슴에 쌓여 주체할 길이 없는 것처럼 보였다.
신군은 사부 뇌진성이 당연히 싸움에 참가해서 일거에 정파의 무리를 박살낼 것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뇌진성은 말로만 응원할 뿐, 옆에서 적극적으로 도와주지 않았다.
이에 불만을 품고, 교활한 신군은 부하들을 시켜 몰래 뇌진성의 뒤를 캐었다.
각지에 분산되어 있는 첩보망을 통해 뇌진성이 하나 남은 증손녀을 찾아내어 함께 있다는 것을 알았다.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한 신군은 뇌진성이 자리를 비운사이에 증손녀와 손자며느리를 납치해서 은밀한 곳에 숨겨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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