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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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글짓는목수
작품등록일 :
2022.05.12 08:11
최근연재일 :
2022.09.12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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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5.16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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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12화.자연 속 첫 만남

DUMMY

"달그락~ 달그락~"


"뭐하노? 새벽부터 부엌에서?"


"어~ 아무것도 아이다, 도시락 좀 싼다고"


"일요일 새벽부터 뭔 도시락이고?"


"산에 좀 댕기올라고"


"참~ 별일이네~ 안 하던 짓을 다하고"



일요일 이른 아침부터 첫 산행을 위한 도시락 준비에 온 가족의 단잠을 방해한 모양이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는 말이 왜 나왔겠는가? 아침부터 데리야키 오므라이스 향이 집안 가득이다.



"갔다 오께~ 오므라이스 볶음밥 많이 해놨으니 아침으로 먹으래이~"



아침 6시가 조금 넘은 시간, 일요일의 이른 아침이 이렇게 고요한지 그전에는 몰랐다. 버스 안에는 나를 포함해 10명도 되지 않는 사람이 앉아있다. 나처럼 등산복을 입은 몇 명과 새벽까지 마신 술에 취해 차창에 머리를 박고 자는 사람, 이어폰으로 뭔가 흥얼거리며 듣고 있는 학생 등, 몇 안 되는 승객이라 한눈에 들어온다. 아직은 쌀쌀한 3월의 꽃샘 추위 속에서 마치 겨울잠에서 깨지 않은 조용한 도시를 달리는 듯한 기분이 나쁘지 않다.


등산동호회 집결장소는 백양산의 초입에 있는 작은 놀이터이다. 일찍 왔나 보다, 약속한 장소엔 2명의 남녀가 서로 모르는 사이인지 따로 멀찌감치 떨어져서 핸드폰만 만지작거리고 있다. 마음은 여자 쪽으로 향했으나 발걸음은 남자 쪽을 향해 가고 있다.



"저~기, 혹시 산푸른 카페에서 오신 분이신가요?"


"예! 맞는데요~ 그쪽도?"


"네~ 닉네임 몽롱이라고 합니다. 반갑습니다. 첫 산행이라 아는 분이 없어서 어색하네요"


"오~ 그래요? 전 산지라고 해요, 저도 카페 닉넴이예요, 저도 첫 산행인데, 정말 반가워요"



까무잡잡한 얼굴에 앞머리에 집중된 새치가 눈에 띈다. 유난히 돌출된 두 눈알은 그 어린 시절 보던 만화 주인공 ‘보거스’를 닮았다는 생각이 문득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예의상 그 생각은 마음속으로만 품고 있는게 좋을 것 같다는 생각에 입 밖으로 내지 않았다. 그의 목에는 꽤 묵직해보이는 DSLR 카메라가 걸려 있었다. 카메라 렌즈가 그의 눈알처럼 불룩 뛰어나온 것이 제법 값비싸 보인다. 초면이지만 같은 신입이라는 공통점과 대화 중 알게된 동갑이라는 사실이 금방 친근감을 만들어 주었다.



"산푸른 회원분들은 이리로 모여 주세요!"



산지랑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고 있을 때, 먼 발치에서 작고 야무지게 생긴 여자 한 명이 이번 산행을 주최한 산행 대장인 듯 우리 쪽을 향해 손짓을 하며 외친다. 그녀 곁으로 모인 사람들은 10명 남짓되어 보인다.



"안녕하세요~ 전 오늘 산행을 맡게 된 산행대장 딱너구리입니다, 잘 부탁드릴게요, 오늘 산은 힘든 코스는 아닌데요 종주산행이라 시간은 6시간 정도 소요될 것 같아요, 처음 오신 분들은 조금 힘드실 수도 있어요, 제가 되도록 회원분들 페이스에 맞춰서 갈 예정이니 걱정 마시고요, 잘 따라와 주시기 바랍니다. 산 능선에서 도착해서 간단히 점심 먹도록 할게요. 그리고 산행 끝나고 간단히 치맥으로 뒤풀이하고 헤어질까 합니다. "


'너구리도 아니고 딱따구리도 아니고 딱너구리 킥킥킥, 그리고 저 포스는 뭐지? 조굔가?'



딱너구리 산행대장의 연설이 끝나고 산을 오르기 시작한다. 10분도 채 지나지 않아 온몸에 열기가 올라온다. 챙겨간 손수건은 이미 땀으로 흠뻑 젖었다.



'아~ 힘들어, 내 체력이 이 정도였단 말인가? 군대 있을 땐 산에서 날아다녔었는데···'



옆에 있는 산지 녀석도 힘이 드는지 조금씩 숨이 거칠어진다. 그런데 좀 전까지 우리 뒤에서 쫓아오던 여자가 성큼성큼 우리를 앞지르는 것이 아닌가? 집결지에 처음 도착했을 때 혼자 서 있던 그 여자다.



'뭐지?! 쟤는? 여자가 깡이 좋은 거야, 체력이 좋은 거야? 이거 뭔 남자가 돼서 체면이 말이 아니구만···'



훤칠하게 긴 다리에 딱 벌어진 어깨, 키가 족히 170은 되어 보인다. 묶어올린 똥 머리에 드러난 하얀 목선에선 미끄럼틀 타듯 땀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내 옆을 추월해 지나가는 그녀의 옆모습은 씩씩거리는 앳된 아이 같은 모습이다. "후웃 후웃" 규칙적인 호흡을 내뱉으며 쭉쭉 뻗어나간다.


오기가 생긴다. 그래도 명색이 대한민국 육군 수색 대대 출신인 내가 저깟 여자한테 뒤쳐진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아니 말이 되면 안 되는 것이다. 그녀를 추격하기 시작한다.



"허어억, 허어헉!"



숨이 턱까지 차오른다. 그런데 그녀와의 거리는 좀처럼 좁혀지지 않는 듯하다. 자존심에 스크래치가 날려고 할 때쯤이었다.



"자~ 여기서 잠시 쉬었다 갈게요!"


"야~ 너 왜 이리 빨리 가나?"


"후~후~ 그냥 오기가 생겨서"


"오기?! 무슨 오기?"


"아냐~ 그런 게 있어"


"너 저기 한 번 서바바! 사진 한 장 찍어 줄게!"


"사진?! 어.. 그 그래~ 사진 좋지!"


"찰칵찰칵!"



찍은 사진을 보니 나름 사진 작가 느낌이 난다. 내가 아닌 것 같다. 사진이 실물보다 나은 건 다 그 녀석의 테크닉 덕분인가? 아니면 비싼 장비 빨인가? 알 수는 없지만 일단 기분은 좋다. 그렇게 사진을 보고 흐뭇한 표정을 짓고 있을 때였다.



"저기요? 저희도 좀 찍어 주시면 안 돼요?"



대학생처럼 보이는 여자 둘이 팔짱을 끼고 다가왔다. 그녀들은 녀석의 큼지막한 DSLR에 자신들의 추억을 담고 싶어 하는 눈빛이 역력했다. 녀석은 대수롭지 않은 듯 그녀들을 향해 셔터를 누르기 시작했다.



"와~ 사진 정말 잘 나왔다. 이 사진 카페에 올려주실 거죠?"


"예 물론이죠, 근데 사진 작업하려면 시간이 좀 걸려요, 개인 이메일 주소 주시면 그리로 먼저 보내드릴께요"


"와~ 정말요? 감사합니다."



녀석은 수완이 좋다. 목이 부러져라 들고 다니는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큼지막한 망원렌즈를 장착한 DSLR은 주변의 시선을 끌기에 충분했다. 다른 산행 대원들도 몇몇 사진을 부탁한다. 그렇게 녀석은 등산 동호회를 사진 동호회로 바꿔가고 있었다.


산행은 다시 시작되고 난 이를 악물고 이번에 그녀에게 뒤쳐지지 않으려 그녀의 뒤를 바짝 따라붙었다. 다리가 후들거린다. 옷은 땀으로 범벅이 된지 오래다. 이게 산행인지, 훈련인지 헷갈리기 시작한다. 군 복무시절 산악행군이 떠오른다. 그럼 내 앞에 있는 그녀는 여군 소대장인가? 군 시절 산악 행군 때 온몸이 부서지는 듯한 고통 속에서도 앞에 소대장의 뒤꿈치만 보고 좀비처럼 따라가던 모습이 떠오른다.



"와! 정상이다~!!"


"정말?~ 와 진짜네, 다 왔다 다 왔어"


"다들 가방 내려놓으시고 여기서 간단히 식사하고 쉬었다 갈게요"



난 가방을 내려놓기 무섭게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리고 숨을 고르며, 가져온 이온음료를 목구멍으로 들이붓는다. 아직도 체력이 남았는지, 그녀는 스트레칭을 하며 전망대 나무 테크에서 서서 경치를 바라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우~씨! 쟤는 도대체 정체가 뭐야?! 철인인가? 혹시 운동선수?"



난 싸온 도시락을 꺼내 산지와 같이 앉아 먹는다. 산지 녀석은 천국에서 온 김밥을 은박지에서 꺼낸다.



"와~ 이거 뭐야? 네가 만든 거야? 오~ 맛있는데!"


"그래? 너 다 먹어라, 난 입맛이 없네, 목만 타구"



그녀는 앞 쪽에 앉아 혼자 밥을 먹고 있다. 하얀 쌀밥에 김치, 오뎅볶음, 오징어젓갈 한 눈에 봐도 단출한 반찬이다. 산행대장이 그녀 옆으로 가서 말을 건네며 앉는다. 그녀도 미소를 지어 보이며 옆자리를 내어주며 대화를 이어간다. 아까 산을 오르며 씩씩거리던 모습과는 다르게 아이 같은 해맑은 웃음을 지어 보인다. 밥먹는 짧은 시간동안 산행대장과 친한 언니 동생 사이처럼 금방 가까워지는 친화력을 보인다.



"자~ 식사들은 다 하셨죠? 이렇게 모인 것도 인연인데··· 오신 분들 간단히 각자 자기소개하는 시간을 가질게요!"



둘러 앉은 10명 남짓한 산행 대원들은 시계방향으로 돌아가며 자기소개를 한다.


그녀의 차례가 왔다.



"안녕하세요! 오떡이라고 합니다. 오뎅이랑 떡볶이를 좋아해서요 하하하, 팔공이고요, 오늘 첫 산행인데 경치 좋은 곳에 와서 좋네요, 잘 부탁드립니다."



또 동갑이다. "오떡이?" 오뚝이가 더 나을 거 같다. 오뚝이같이 지치지 않는 체력을 가진 여자다. 승부욕인지 질투심인지 모를 미묘한 관심이 그녀에게서 눈길을 떼지 못하게 한다.


내려오는 하산 길에서는 그녀의 타조 같이 길다란 다리가 최상의 성능을 발휘한다. 도저히 따라갈 수 없다. 포기다. 오르막은 깡으로 따라붙었지만 신체적 조건의 열세는 깡으로도 극복할 수가 없는가 보다.


산행이 끝이 나고 시내에서 조촐한 뒷풀이 자리가 마련되었다.



"오떡아~반가워 나 산지라고 해, 동갑이던데··· 같이 한잔해!"


"어 그래? 반가워. 첫 산행부터 동갑 친구도 만나고 행운이다."


"참~ 얘도 동갑이야! 희택아! 뭐 해? 인사해~"


"어··· 그래~ 이름은 전희택, 닉넴은 몽롱이야~ 반갑다."


"몽롱?!"


"대학때 중국어 원어 연극을 했는데··· 춘향전에서 주인공을 맡았는데··· 몽롱할 때 봐야 이몽룡같다며 그래서..."


"푸하하! 완전 웃기다"


"우리 동갑내기가 세명이네, 그럼 팔공을 위하여 건배!"


"위하여~!"



나는 산지의 주선으로 그렇게 그녀와 대면했다. 그녀는 강인한 체력만큼이나 주량도 강해 보였다. 의외로 털털한 성격에 오히려 내가 상대적으로 소심해 보이기까지 하다. 그녀는 산행 뒤풀이 술자리에서 사람들과 금방 친해지는 LTE급(3G 시대였음) 친화력까지 갖추었다. 여군 장교나 부사관으로 아닐까? 하지만 예상은 빗나갔다.



"넌 무슨 일해?


"특수학교 선생이야!, 음··· 선천성 지체장애 아동들을 가르치는 학교에 있어"


"와~ 정말! 대단하다. 엄청 힘들겠다!"


"뭐 힘들면 소주 한잔하면 되지, 짠~!"



산지 녀석의 그녀를 추켜세우는게 부담스러웠는지 재치 있게 벗어나는 그녀의 위트에 나도 점점 빠져들고 있는 것 같다. 부딪치는 술잔에 조금씩 취기가 오르고 있었다.



"희택아~ 너 아까 계속 나 쫓아오던 거 같던데··· 맞지?"


"어? 아니··· 내가 왜?"


"그냥 니가 항상 내 뒤에 있길래, 너 혹시 변태냐? 왜 여자 꽁무니를 밟어?"


"아니 내가 무슨··· 미쳤니? 너 같은 선머스마 뒤를 쫓게?"


"뭐~? 선머스마? 죽을래? 아니면 아니지 무슨 그런 막말을 하고 그러니?"


"아니 뭐~ 니가 착각에 빠져 있는 것 같아서 하는 얘기다!"


"아니 근데 희택아, 너 얼굴색이 변하는 게··· 어찌 수상한데···"



산지 녀석까지 한 마디 거드는 바람에 슬쩍 자리에서 일어나 화장실로 향했다. 취기가 올라서 그런 건지 아님 감춰 논 마음속에 있는 뭔가를 들켜서 그런 건지 거울에 비치는 내 얼굴은 홍당무가 되어있었다.



"자~ 이제 오늘 뒤풀이 마무리할게요! 각자 2만 원씩 각출해 주세요"


"야~ 우리 팔공끼리 2차 갈까?"



산지 녀석이 나랑 오떡에게 제안한다. 오떡은 잠시 머뭇거리더니



"아~ 그러고 싶은 맘은 굴뚝같지만, 낼 학교에 중요한 행사가 있어서, 오늘은 이만 가련다. 다음 산행 때 또 보자~"


"에이~ 홍일점이 빠지면 어떡하냐? 김빠지게"


"···"



난 그냥 손을 흔들며 멀어져 가는 그녀의 뒷모습에 손을 들어보이며 한동한 물끄럼이 바라보았다.


그녀와의 첫 만남은 그렇게 자연에서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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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35화. 동굴 속 사피엔스 22.05.27 224 15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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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26화. 난세의 간웅 22.05.23 286 14 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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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24화. 사랑의 유일한 승리는... 22.05.22 303 13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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