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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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글짓는목수
작품등록일 :
2022.05.12 08:11
최근연재일 :
2022.09.12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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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5.21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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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화. 사회생활의 기본 의전

DUMMY

"띠리리링"


"안녕하십니까 DB 중공업 전략기획실 IR담당 이상한입니다. 아! 네 주주님 너무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그 공시 건은 해외 사업 확장을 위한 차입입니다. 조만간 해외 공장에서 매출이 올라오고 안정을 찾으면 주가가 다시 제자리를 찾을 겁니다."


"띠리리링, 띠리리링"


"DB 중공업 전략기획실 전희택입니다. 아~예 주주님, 지금 주식 담당자분이 통화 중이셔서요."


"야~이 새끼야! 니들 정말 죽고 싶어? 도대체 회사관리를 어떻게 하는거야?"


"아~~ 네··· 주주님 진정하시고요"



오늘 아침부터 기획실 전화통에 불이 났다. 최근 잇따른 계열사들의 채무보증 공시로 주가가 계속 하락하고 있었다. 이에 폭발한 주주들의 항의 전화로 업무가 마비될 지경이다. 그 화약고의 중심은 중국 대련에 S조선소를 따라 야심 차게 투자한 3만 평 부지의 대형 선박 블록 공장이었다.


투자 당시 국내의 대형 조선소들의 중국 진출이 잇달았고 메이저 고객사 중 한 곳인 S조선소의 중국 동반 진출 권유와 맞물려 중국 사업 진출의 교두보로 삼으려던 핵심 거점이었다. 더욱이 회장의 차남이 총경리의 중책을 맡고 중국 사업을 진두지휘하고 있어 그 무게감 만큼이나 기대감도 컸다.


그러나 현재 대련 공장은 수주잔량이 거의 바닥이 난 상태로 공장 야드(yard)가 반쯤 비어있는 상황이다. 드넓은 야드는 쉬는 시간 직원들의 축구장으로 변해버렸다. 결국 공장의 고정비용을 감당하지 못해 운영자금 조달을 위해 또 다시 300만불(약 30억)을 은행으로부터 차입하기로 결정했다. 연이은 자회사 채무보증과 갈수록 악화되어 가는 재무구조가 전혀 개선의 조짐이 보이지 않던 차에 또 한번의 차입 관련 공시가 올라오자 주식 시장의 반응은 싸늘했다. 이날 결국 주가가 하한가를 쳤던 것이다.


전략기획실 기획파트 직원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성난 개미 주주들의 전화를 받느라, 업무가 마비된 상황이다. 사연도 가지가지다. 어떤 한 주부는 남편 몰래 퇴직금을 우리 회사에 다 부었다며 울며불며 하소연을 한다. 돈 안 돌려주면 회사 앞에서 분신자살을 하겠다며 협박을 한다. 나는 그런 개미들을 어르고 달래느라 혼이 빠져나갈 지경이다.



"도 팀장~! 회사 주가가 왜 이 모양이야! 일 안 하냐? 나 거지 만들 거야?"



사장은 기획실 사무실을 지나가며 기획실 팀장 대행인 도다리에게 날 선 말투로 한마디 던지고 지나간다. 사장은 회사 걱정인지 본인 재산 걱정인지 알 수 없는 말투다.



"상한아~ 안 되겠다. 지금 바로 대박 증권에 연락해서 약속 좀 잡아! 그리고 지호랑 희택이도 오늘 저녁 시간 비워두고!"


"예..."



'아놔~~ 오늘 또 죽겠구만'



퇴근 후 나는 지호 씨의 차를 같이 타고 조용한 고급 일식집 주차장에 도착했다. 도다리와 상한씨는 아직 도착 전이다. 우린 근처 편의점으로 향했다. 전투에 임하기 전의 비장한 군인의 표정을 한 채 1+1컨디션을 두 병을 사서 나눠 마셨다.



"아~놔! 할 일도 많아 죽겠는데 무슨 술은··· 하필 그것도 증권사 애들이랑..."


"희택씨, 뭐 어쩌겠어요 기왕 이렇게 된거 오늘 오래간만에 술이나 질퍽하게 마셔봅시다 하하하"



지호씨는 근심 가득한 나완 달리 싱글거리며 입맛을 다신다. 역시 그의 넉살 하나는 알아줘야 한다. 그는 평소에 금융, 증권, 보험 쪽에 관심이 많은 듯 밤마다 퇴근은 않고 회사에 남아 관련 서적들을 보며 공부를 하고 늦게 퇴근하곤 했다. 나는 일이 넘쳐서 야근이고 누구는 자기계발을 위해 야근한다. 아무리 생각해도 업무분장에 문제가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그는 기획실 업무 때문에 하는 공부라 나에게 둘러댔지만 그는 PR담당인데 그가 보는 건 상한씨나 재무팀 직원들이 봐야 그럴듯한 핑계가 될만한 책들이다. 그도 남몰래 나처럼 이직을 준비하는 건가? 겉으론 허허실실인데 속내를 알 수 없다. 그의 관심 분야 때문인지 증권사 사람들을 만나 얘기하는 걸 흥미로워 했다.


오늘은 적진에 세 명이 포진되었다. 다행히 쪽수는 우리 쪽이 한 명 더 많다. 대박 증권의 개부장(술을 개같이 먹어서), 그의 간신 같은 충신 종과장(딸랑딸랑을 잘해서) 그리고 딱 봐도 신입티가 풀풀나는 앳된 모습의 청년이 하나 추가됐다.



"인사해! 저의 부서 신입 막내입니다. 오늘 대외 업무 보는데 처음으로 데려왔어요"


"안녕하십니까? 대박증권 법인영업팀 상한가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오! 대박증권에 상한가만 치는 신입이 들어오셨네요"


"하하하하"



상한씨의 입담에 다들 한 바탕 웃음으로 술자리는 시작되었다. 일식집의 최고급 풀코스 요리가 식탁에 올라온다. 개부장은 고개를 돌려 종과장에게 눈짓을 준다. 그러면 종부장은 기다렸다는 듯 모든 잔을 자신의 앞으로 가져다 모은다. 신입도 옆에서 거든다. 잔의 수가 엄청나다 일인당 맥주잔이 3개씩이다. 제조 비율은 3:1? 정도 소주가 3다. 맥주는 색깔만 우려내는 색소 첨가제일 뿐이다. 일단 3잔을 스트레이트로 쉬지 않고 비운다. 빈 속에 들어간 진한 소맥이 위벽을 자극한다. 알코올은 급속도로 혈관 속으로 스며든다. 마약 하는 기분이 이러할까?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도 팀장님 오늘 주가가 장난 아니던데요?"


"아~ 네 안 그래도 그것 때문에 머리가 아프네요, 사장님 불호령도 떨어지고 요즘 죽을 맛입니다"


"그래도 명색이 DB중공업인데... 별 일이야 있겠습니까?"


"그래서 말인데··· 부장님이 도움 좀 주셔야 될 것 같은데요"


"아~ 저희야 당연히 뭐든지 도와드려야죠 하하"


"회사 애널 기사 하나 잘 좀 써주세요"


"도 팀장님 부탁인데... 써드려야죠 호재가 없으면 만들어서라도 하하하"


"그럼 부장님만 믿겠습니다."



종과장의 초반 러시 이후엔 옆에 있던 신입이 바통을 이어받아 종과장이 했던 방법대로 따라서 쉬지 않고 폭탄주를 말아댄다. 저 신입은 바텐더가 체질인 듯 보인다. 말없이 술만 말고 있다. 유리 잔에 보이지 않는 눈금선이라도 있는 것처럼 정교하게 비율을 맞춘다. 증권사 신입사원 교육과정에 바텐더 과정이 있는 것이 분명하다. 덕분에 나와 기획팀 팀원들은 혀가 꼬이고 눈의 초점이 흐려지는 마비 증상을 최단 시간에 느낄 수 있었다. 그래도 시작 전 마신 컨디션 한 병이 그나마 마음의 위안이 되는 듯하다.



"아우님~ 이제 좋~은데 가야죠"


“그럼요 갑시다 형님 가는데 아우가 당연히 따라야죠!"



어느새 둘은 부장, 팀장에서 형, 아우로 호칭이 변해있었다. 눈 앞의 펼쳐진 유흥가 거리는 화려한 네온사인 불빛이 꼬리를 물고 늘어진다. 곳곳에 선정적인 간판들의 문구와 사진들은 어떻게 수컷들의 음흉한 상상력을 극대화시킬까 고민한 흔적이 역력하다.


나와 지호씨는 서로의 부축을 받으며 개부장과 도다리의 뒤를 따라 걷는다. 상한씨는 최근 둘째를 임신한 와이프가 성화 섞인 전화 연락에 못 이긴척 1차가 끝나고 말없이 조용히 도망쳐 버렸다. 이제 3:3 일대일 매치전이 시작되었다.


술은 종종 착시효과를 일으킨다. 많이 마시면 세상에 웬만한 여자는 다 예뻐 보인다. 옛날 그 시절 어른들이 말하던 술만 먹으면 아이가 생겼다는 말이 거짓은 아닌 듯하다. 다행이 혈액 속 알코올은 정자에게까진 전달되진 않는 모양이다. 만약 그랬다면 술취한 정자들이 비틀거리며 난자를 찾아가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고 보면 술은 인간의 종족번식에 크나큰 공헌을 한 장본인인 것이 분명해 보인다.


잠시 뒤 6명의 코카콜라 병 몸매에 원피스인지 원피스 수영복인지 헷갈리는 수영선수?! 아니 미스코리아 선수들이 야릇한 미소를 지으며 룸 안으로 입장한다. 술이 거나하게 취한 심사위원들을 향해 야릇한 미소를 보내며 우리들의 초이스를 기다리고 있다.



"도 팀장! 먼저 골라~"


"아뇨~ 형님 먼저~고르셔야죠"



꽐라가 된 형님과 아우가 실랑이를 벌이는 동안 시간이 돈인 선수들의 표정이 굳어간다.



"그럼 야~ 너네들이 먼저 골라"


"그래 그래 그럼 막내 먼저~~ 콜!"



증권사 신입은 잠깐 놀라는 표정을 짓더니 서슴없이 손가락을 들어 가운데 서 있는 그 중에서 가장 육감적인 선수를 클릭한다.



"오! 막내가 참 거침없구먼 하하하"


“신입이 정말 큰일 하겠는데요 하하하”



'헐! 미친! 저 여자 개부장건데··· 개념이 없네 쩝'



이윽고 다들 파트너를 한 명씩 끼고 앉아 2차전에 돌입했다. 사실 우리 같은 사원 나부랭이들에겐 콜라 병의 몸매도 아무 의미가 없다. 뭐 만지고 빨고 감상할 시간은 오로지 뒤에 꽐라 된 형 아우(팀장 부장)들의 몫이다.


우리는 그저 그들이 소파에서 난리 부르스를 여유롭게 즐길 수 있도록 앞에 나가 쉬지 않고 노래와 춤을 플레이 해줘야 한다. 뭐 플레이 하면서 파트너와의 스킨십 정도는 가능하지만, 가무(歌舞)에 탬버린 박자 맞추면서 스킨십까지 다 하기에는 이미 몸 속에 흡수된 과다한 알코올과 소진된 체력으로 쉽지 않다. 자칫 노래가 끊어져 그들의 여흥이 깨지기라도 하면 사회생활에 기본 의전(儀典)이 안된 인간으로 낙인 찍힐 수도 있다.


그런데 이 증권사 신입은 비상(非常)한 녀석이 분명하다. 녀석은 개부장과 종과장이 소파에서 뒹구는데 정신이 팔린 틈을 노려 육감녀를 룸 코너에 몰아세워 놓고 연신 물고 빨고 부르스를 추는 것이 아닌가? 그녀의 타이트한 원피스 속에서는 녀석의 손이 무덤처럼 봉긋 솟아올라 동서남북으로 휘젓고 다닌다. 육감녀도 젊고 반반한 남자의 손길이 싫지 않은지 녀석의 머리를 감싸 앉으며 거친 신음소리를 내뱉는다.


그 덕분에 나와 지호 씨는 번갈아 가며 쉬지 않고 노래를 불러야 했다. 내 파트너는 그런 내가 안타까워 보였는지 목이 쉬어가며 노래하는 나의 이마와 목덜미에 흐르는 땀을 닦아주는 아량(雅量)까지 베풀어 준다. 그리고 목을 축이고 부르라며 맥주잔을 가져다준다. 주객전도(主客顚倒)란 이런 상황을 보고 말하는 것인가?



"오빠야가 참! 고생이 많다 정말~"



그녀는 마이크를 잡고 목이 터져라 노래하는 나의 귓가에 대고 얘기한다. 그 말에 난 더욱 힘을 내어 노래를 부른다. 이 여자는 지금 나에겐 유흥주점 아가씨가 아닌 치어리더에 가깝다.



'언젠간 나도 소파에 누워 즐기면서 누군가가 날 위해 노래를 불러주는 날이 오겠지?'



파티가 끝이 나고 선수들은 퇴장한다. 시간은 새벽 2시가 넘어가고 있다. 올려다본 하늘은 눈부신 네온사인에 불빛에 가려 별이 보이지 않는다. 어둠을 삼켜버린 밤이다.


몇 시간 뒤면 다시 회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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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39화. 사랑과 민주주의의 상관관계 22.05.29 197 8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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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37화. 꽃 밭에 누워 22.05.28 214 10 12쪽
36 36화. 전업 주부의 느낌 22.05.28 224 11 12쪽
35 35화. 동굴 속 사피엔스 22.05.27 224 15 12쪽
34 34화. 때론 정면 돌파가 답이다 22.05.27 229 13 13쪽
33 33화. 그녀의 과거 그리고 현재 22.05.26 228 12 13쪽
32 32화. 알 수 없는 여자 22.05.26 247 13 17쪽
31 31화. 중국 담배의 추억 22.05.25 237 12 11쪽
30 30화. 술이 웬수다 22.05.25 246 12 15쪽
29 29화. 술과 담배를 연구하다?! 22.05.24 259 13 11쪽
28 28화. 충성과 애정 사이 22.05.24 267 17 11쪽
27 27화. 둘만의 주말특근 22.05.23 298 15 12쪽
26 26화. 난세의 간웅 22.05.23 286 14 16쪽
25 25화. 초고속 승진 +1 22.05.22 326 16 16쪽
24 24화. 사랑의 유일한 승리는... 22.05.22 303 13 13쪽
23 23화. 여직원의 세계 22.05.21 298 13 15쪽
» 22화. 사회생활의 기본 의전 22.05.21 303 16 11쪽
21 21화. 흑기사는 괴로워 +2 22.05.20 314 14 11쪽
20 20화. Face to Face 22.05.20 317 16 11쪽
19 19화. 사랑을 놓고 두 마리 토끼를 쫓다 22.05.19 335 15 14쪽
18 18화. 티라노 키우는 남자 22.05.19 368 14 12쪽
17 17화. 차도남 vs 차도녀 22.05.18 380 19 15쪽
16 16화. 달력모델 +1 22.05.18 399 12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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