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이머 아카데미 유학생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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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피아톤 아카데미 작가
작품등록일 :
2022.05.20 17:59
최근연재일 :
2022.07.02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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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6.11 1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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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탐사 선발전(5)

DUMMY

####




무저갱처럼 깊고 음습한 구덩이.

기둥은 기괴하게 뒤틀려있고, 조명이 비추는 방향은 중앙을 한참 벗어나 벽 부근에 배치된 인큐베이터만을 비추고 있다. 인간이 팠다고는 상상도 못할 만큼 미적 감각이 결여된 모습.

이 소름끼치는 연구소의 주인은 입이 오리주둥이가 된 채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었다.


“시르포한테 아직 연락이 없다. 역시 뭔가가 잘못됐어.”


툭툭툭.

자판 눌리는 소리가 빨라진다. 안 그래도 짜증이 치미는데, 이 망할 년의 계집은 왜 아직도 눈을 안 뜨는지. 이를 바득바득 갈면서 약품 냄새가 풀풀 풍기는 눈앞의 인큐베이터를 바라본다. 아니, 그 안에서 태아처럼 몸을 웅크린 소녀를 바라본다.


EI-163.

생전 윤나래와 제일 흡사한 개체.

프로젝트의 핵심.

이 녀석만 깨어나면 모든 게 해결된다. 그 탐욕에 찌든 노인이 껄껄 웃으며 개발 자금을 무더기로 퍼줄 테니까. 지폐에 깔려죽을 만큼.

그럼 앞으로 하루, 길어야 이틀이면 완성될 텐데. 숨이 막힐 만큼 완벽한 예술품이. 비열하고 원시적인 종족에게 피바다를 선사할 최강의 병기가.


“바알 님.”

“음?”


벌써 몇 번째일지 모르는 코드 재조합을 거치고 있는데, 귀에 익은 목소리가 귓가를 간질였다. 아달베르트 교수는 인큐베이터 관리용 컴퓨터에서 시선을 떼고 그 목소리의 주인을 마주했다.

빗처럼 뻣뻣하고 날카로운 단발의 여성. 눈병이라도 걸린 듯이 핏발이 선 눈동자가 묘한 살기와 냉기를 내뿜고 있었다.


“무슨 용건이지, 네리오?”

“학생들이 산책로로 쓰는 숲에서 이걸 발견했어요.”


충직한 부하가 건넨 껍질 조각. 꼭 누구에게 공격이라도 당한 것처럼 불규칙하게 쪼개진 상태였다. 그 원래 주인을 떠올린 순간, 불안한 직감이 아달베르트의 뇌리를 스쳤다.


“이건 시르포잖아.”

“네, 전투가 있었던 모양인데요.”

“정체를 들켰단 말인가?”

“뭐, 평소의 안일한 언행을 감안하면 충분히 있을 법한 일이죠. 들키지 않고 장치 하나 부착하는 게 그토록 어려운 일인지, 원.”


가소롭다는 듯이 콧방귀를 뀌는 여성.

오히려 흐뭇하게 입 꼬리가 올라가고 있었다. 경쟁자가 한 명 사라졌다는 기쁨에 취해서.


“핵심은 그게 아니다.”

“네?”

“녀석이 졌다는 건데.”


반면에 아달베르트는 미간을 좁힌 채 낮은 신음소리를 냈다. 아카데미 학생들의 얼굴을 하나둘씩 떠올리며.


“도대체 누구한테? 설사 들켰더라도 【아토믹 레이저】 한 방에 목격자쯤은 처리할 수 있을 텐데.”

“글쎄요, 교수 아닐까요?”

“교직원들은 대개 출입하지 않는 곳이다.”

“으흠.”


네리오는 앵두처럼 물든 입술을 혀로 슥 핥다가 포부를 내비쳤다.


“좋아요. 제가 범인을 밝혀낼게요. 어차피 모레면 자유관 정보통신보안실에 잠입해야하니까요. 겸사겸사 살펴보도록 하죠.”

“가능하겠나?”

“바알 님도 참. 제가 시르포처럼 보이세요?”

“주의해라. 적의 실력을 가늠할 수 없으니까.”

“네~ 네~”


건성으로 대답하고 팔짱을 끼는 부하. 그 관심은 곧 인큐베이터 안으로 이동했다.


“얘는 하루 종일 붙잡고 계시네요.”

“핵심이니까.”


다시 자판을 두드리는 아달베르트.


“EI-163. 그 금발 계집의 행동 양식, 말투, 사고방식, 기억까지 100% 구현한 완성품이야. 마침내 오랜 여정에 마침표를 찍었지.”

“왜 이걸 이사장한테 넘기지 않는 거죠?”

“한꺼번에 방대한 양의 정보를 입력하는 바람에 그만 과부하가 걸렸어. 깨어날 생각을 안 하는군. 어떻게든 눈만 뜨면 되는데.”

“전기충격이라도 가할까요? 심실제동기처럼.”

“섬세한 제품이니까 함부로 건들지 마.”


아달베르트는 코드 배열 작업을 재개했다. DNA 다발에 손을 대는 행위는 도전의식과 스트레스를 함께 건드린다. 지금은 후자의 비중이 더 크긴 하지만.


“매번 의식이 문제로군요. 기껏 완성해도 살아서 움직이질 않으니.”

“하등생물 주제에 쓸데없이 정교하거든. 인간은 그래서 골치 아파.”


네리오는 연구소 내부 인큐베이터들을 쭉 둘러보았다. 배양액의 영양분을 빨아먹는 살색 실패작들이 꼭 기생충처럼 비쳤다.

그러자 의문 하나가 고개를 들었다.


“희한하네요. 지금 활동하는 윤나래의 대역은 어떻게 눈을 떴죠?”

“하늘이 도왔다.”

“네?”


환상, 마법, 기적.

합리적인 이론과는 한참 거리가 먼 현상을 설명하기엔 이만한 단어가 없었다.


“그년도 처음엔 실패작이었어. 아무리 유리벽을 때리고 소리를 질러도 대답이 없었지. 결국 힘이 빠져 주저앉고 말았는데, 어떤 목소리가 나한테 속삭이는 느낌이 들더군.”

“어떤 내용이었죠?”

“정확히 기억이 안 나. 하지만 그때부터 무언가 영감이 떠오르더니, 작업이 순조롭게 진행되기 시작했지. 틀어진 코드를 바로잡자마자 곧바로 눈을 뜨더군.”

“신기하네요. 도대체 누굴까요?”

“글쎄, 하늘도 희대의 천재를 알아본 게 아닐까.”


그 행복한 기억을 떠올리자 입 꼬리가 슬며시 올라갔다.


“절반의 성공이었어. 성격과 버릇, 기억까진 구현하지 못했으니까. 하지만 외형과 실력만큼은 확실했지. 그 늙은 물주도 만족했어. 며칠 전까지만 해도.”

“며칠 전까지라면 지금은······.”

“그 모자란 부분까지 채운 완성품을 내놓으라고 닦달이지. 하여간 욕심이 끝이 없는 종족이라니까.”


삐빅― 삐빅―.

그때였다. 불길한 전자 경고음이 울리며 인큐베이터 관리 컴퓨터의 모니터가 오류 메시지를 내비쳤다.


「ERROR! 생체 정보 데이터 배열이 불안정합니다. 즉시 포맷을 개시합니다.」


“이 빌어먹을······.”


코앞, 겨우 코앞까지 왔는데.

결국 아달베르트는 화를 참지 못하고 컴퓨터의 본체를 발로 걷어찼다. 그러자 파지직 하고 불안한 스파크가 튀었다. 냉장고를 훌쩍 뛰어넘는 덩치가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처럼 뒤뚱거린다.


“어?”


그때였다.

한 발짝 떨어져서 그 광경을 지켜보던 네리오가 떨리는 목소리를 냈다.


“바알 님, 저 계집······. 눈을 떴는데요?”

“뭐라고?”


아달베르트는 눈이 휘둥그레진 채, 완성품 아닌 완성품을 재차 주시했다. 그리고 꿈에도 그리던 광경을 마주하고 환희에 차올랐다.

마침내 움직인 눈꺼풀.

웅크린 자세를 풀고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사지.

그리고 공포로 일그러지는 표정.


“오오오!”


마음이 급해졌다. 컴퓨터가 고장이 난 탓에 개폐 시스템까지 망가졌지만, 일일이 그런 절차를 밟을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 아달베르트는 새하얗고 얇은 주먹으로 강화 유리를 힘껏 두드렸다. 그러자 총탄도 막아내는 보호벽이 쿠키처럼 박살나고, 내부를 채우고 있던 배양액이 콸콸콸 쏟아졌다.

알몸의 금발 소녀와 함께.


“콜록, 콜록, 콜록!”


실험체는 바닥에 쓰러진 채로 폐에 찬 용액을 토해냈다. 그리고 황급히 손으로 자기 몸을 가리며 그들을 째려보았다.


“너희 뭐야?! 납치범?”

“오오.”

“우리 아빠는 어디 있어? 브루노는?”

“완벽해.”


교육이 필요 없다.

처음부터 똑같다.

말투와 기억, 외모까지.

당장 옷만 차려 입히고 아카데미 한복판에 떨어뜨려놓으면 아무도 구분하지 못할 터. 그런 확신이 들었다.


“그 늙은이가 좋아하겠군. 네리오, 이 아가씨한테 따뜻한 옷부터 걸쳐주고 커피 한 잔 대접해줘. 귀빈이신데 함부로 대하면 쓰나.”


곧 아달베르트는 뚜벅뚜벅 엘리베이터를 향해 걸어갔다. 그리고 지하 24층의 컨트롤타워에 도착한 후, 손목에 부착한 통신 장비를 가동해 홀로그램 영상을 띄웠다. 급한 사정이 있을 때만 사용하는 긴급통신망. 가급적이면 쓰지 말라는 경고가 있었지만 이번엔 예외다. 정말 중대한 사안이니까.


「교수, 웬일인가?」


카이저 콧수염을 단 장년이 짜증 가득한 어투로 따졌다. 번듯하게 정장을 차려입은 채 무언가를 준비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임원 회의가 코앞이네. 용건만 간단히 전하고 끝내게나.」

“이사장님께서 굉장히 반길 만한 소식이 있습니다.”

「뭔가?」

“보시죠.”


스윽.

젊은 교수가 옆으로 비켜나자, 지하 25층의 광경을 담은 감시카메라 영상이 모습을 드러냈다. 어두컴컴한 연구소 바닥에서 울상을 짓고 있는 소녀. 금발에 파란 눈, 그리고 눈에 익은 이목구비까지.

예고도 없이 나타난 기적에 윤현수는 입이 떡 벌어졌다.


「나래? 저거 설마 나래인가?」

“어디 확인해보시죠.”


화면 측면에 부착된 버튼을 누르자, 곧 육성이 흘러나왔다.


「설마 내 몸값 노리고 이러는 거야? 뒤지고 싶어? 브루노는? 아빠는?」


사나운 말투, 또렷이 기억하는 집사의 이름.

성취감에 흠뻑 취한 생명공학자가 중간에 불쑥 끼어들었다.


“기억, 말투, 성격, 버릇, 외모, 그리고 실력까지. 이사장님께서 주문하신 요소가 모두 들어있는 완성품입니다.”

「해, 해낸 건가? 우리 나래가 돌아온 건가? 그 어설픈 가짜를 일일이 감시하고 비위를 맞춰주지 않아도 되는 건가?」

“자, 자. 인사는 나중에 하시는 게 어떻습니까? 저랑 맺은 약속이 있을 텐데요.”


아달베르트 교수는 손가락으로 원을 그리며 찡긋 윙크를 했다.


“연구 자금부터 대주시죠. 300만 골드. 그 전까진 만나게 해드릴 수 없습니다.”

「말이라고 하나? 당장 송금하겠네!」


됐다.

아달베르트는 눈앞의 어리석은 노인을 속으로 비웃었다. 자기 종족을 사지로 몰고 갈 병기를 스스로 완성시켜주다니.


「우리 딸은 언제 볼 수 있나?」

“지금 윤나래로 활동하고 있는 개체, EI-162를 소리 소문 없이 처리해야합니다.”


마지막으로 남은 골칫거리가 떠올랐다.


“어떻게 자연스레 떼놓을 수단이 없을까요? 사람들이 눈치 채지 못하도록 말입니다.”

「이번 주말이 찾아오면 별장에 호출하도록 하지. 사고사로 위장해서 처리하면 안 될까?」

“아니요, 진작 말씀드렸잖습니까. EI-162은 제 거라고.”


그냥 죽이기엔 아까운 개체다. 실패에 실패를 거듭하다가 기적적으로 탄생한 몬스터. 완성품 윤나래가 이사장의 손에 넘어가면, 자신에게 남는 몫은 이거 하나뿐이니까. 새로이 생산할 수도 없고.

만약 아군으로 끌어들일 수만 있다면 이용할 구석이 많을 텐데.


「좋은 방법이 하나 있네.」

“뭐죠?”

「그 녀석이 수석을 놓쳤을 때, 내가 불같이 화를 내면서 자네 교수실로 가도록 지시하겠네.」

“상생관으로요? 무슨 명분으로?”

「자네가 신입생 점수 데이터를 관리하고 있지 않은가? 거기서 함께 성적을 조작하라고 부추기는 거지.」

“아하. 그때 EI-162를 납치한 다음, 이번 완성품을 윤나래로 대신해서 투입. 포획한 개체는 제 마음대로 다뤄라······. 이 말씀입니까?”

「정확하네.」

“흐음.”


교활한 영감 같으니.

그럴 듯한 계획에 입 꼬리가 올라간다.

꽤 도움이 되는군.


“마침 좋은 기회가 있군요. 바로 내일입니다.”

「내일?」

“사파리 월드 탐사 팀에 합류할 학생을 선발하는 시험입니다. 거기서 EI-162이 절대 1위를 하지 못하도록 방해하겠습니다. 그럼 되겠죠?”

「하늘이 돕는군. 기가 막힌 타이밍이야.」

“좋습니다. 맡겨만 주십시오. 이런 건 제 특기니까요.”


아달베르트는 긴급통신을 끊고 지하 25층으로 내려갔다. 거기엔 파자마 같은 옷을 걸친 금발 영애가 씩씩 성질을 부리고 있었다. 아직도 진정이 안 된 모양.


“당장 내보내줘! 우리 아빠가 누군지 알아?”

“알아, 알아. 우리 은인이시지. 그분이 아니라면 이 연구소도 없었을 걸? 항상 감사하고 있어.”


곧이어 아달베르트는 자세를 낮추고 금발 소녀에게 부드럽게 말을 건넸다.


“너무 걱정할 필요 없어, 아가씨. 원래 집으로 돌려보내줄 테니까.”

“뭐? 언제?”

“하루만 기다려. 널 흉내 낸 가짜가 선발전에서 패배할 때까지.”


그리고 이 아카데미는 폐허더미로 변한다.

자신의 가장 위대한 창조물이자 디아볼로스 군의 신병기,

EI-01의 포효 아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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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탐사 선발전(6) 22.06.13 278 12 15쪽
» 탐사 선발전(5) +1 22.06.11 306 1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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