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이머 아카데미 유학생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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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피아톤 아카데미 작가
작품등록일 :
2022.05.20 17:59
최근연재일 :
2022.07.02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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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6.21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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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쪽

결심

DUMMY

“금발 언니가 납치됐다고요?!”

“그래, 우리 방금 만난 녀석은 다른 개체야.”


찌직찌직.

그동안 수첩에 정리해둔 일정표를 박박 찢었다. 애꿎은 종잇조각들이 풀풀 휘날리며 바닥을 수놓는다. 괜히 볼펜심만 낭비했네.


“그 빌어먹을 싸이코 과학자가 선수를 친 것 같다. 최소 한 달은 걸릴 줄 알았는데.”

“그래서 지금 어디 가세요?”

“놈의 지하연구소.”

“네?”


똑똑히 기억한다. <브레이브 하트>의 첫 번째 보스 던전. ‘바알의 지하연구소.’

입구는 두 곳. 하나는 놈의 교수실에 숨겨진 비밀 엘리베이터. 당연히 출입증이 없으니 거긴 사용불가다.

그리고 나머지 한 곳이······.


“하지만 주인님,”


빠득빠득 어금니를 갈며 분을 삭히고 있는데, 프리지아가 내 발목을 물고 당겼다.


“첫째 언니는요? 첫째 언니는 어쩌려시고요?”

“······.”

“테이머들 다 모이면 출발한다고 했단 말이에요. 자칫 늦으면 사파리 월드 출입도 통제될 텐데.”

“······씨발.”


육두문자를 내뱉으며 그대로 주저앉고 말았다.

좆같다. 잔인하다.

걔한테 발목 잡히기 싫은데, 괜히 감정이입해서. 적당한 선에서 끊을 걸.


“첫째 언니만 합류하면 그런 싸이코 과학자는 한 주먹거리도 안 될 거예요. 빨리 가서 데려오죠!”

“3시간.”

“네?”

“탐사는 최소 3시간이야. 테이머들이 요청하면 연장될 수도 있고.”


아랫입술을 누른 앞니에 힘을 꽉 주었다. 찌릿한 고통이 퍼지며 짜고 비린 액체가 맺힌다.


“그 사이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몰라.”

“빨리 연구소로 달려가서 싸이코 과학자를 처치하고 복귀하면요?”

“바알이 호구도 아니고, 그렇게 일찍 처리하는 건 무리야.”

“으으으, 왜 하필 지금!”

“내 말이.”


최악의 경우엔 질 수도 있다. 이벤트가 무려 한 달씩이나 앞당겨지는 바람에 프리지아의 레벨이 턱없이 모자라다.

프리지아는 32. 바알은 50.

이 정도 차이면 상성이고 나발이고 게임이 안 되는 수준이다. 레슬링 챔피언이라도 전투기와 줄다리기를 하면 결과가 뻔하듯이.


입 안이 바싹 타들어간다.

이제 선택을 할 시간.

사파리 월드, 혹은 지하연구소.


“동전 던지기로 정할까요?”

“월드컵 심판 보냐?”


냉정히 저울추를 달아보니 당연히 한쪽으로 균형이 확 쏠린다. 거의 확실하게 용기의 로기아를 얻을 수 있는 루트. 실낱같은 확률로 윤나래를 구조할 수 있는 루트.

합리적인 선택을 하려면 당연히 전자다. 로우 리스크 하이 리턴이니까. 후자는 반대. 예전이라면 고민조차 안 했을 텐데······.


‘축하해, 네가 1등이네.’

‘나 신경 쓰지 말고 잘 갔다 와. 이미 다 끝난 일이잖아. 비행기 타놓고 여비 걱정하면 여행 못 즐긴다?’

‘용기의 로기아, 만약 찾으면 나한테 제일 먼저 보여줘. 괜찮지?’


눈을 질끈 감고 고개를 저어도, 물리적으로 귀를 틀어막아도 계속해서 그 목소리가 메아리친다.

내가 이토록 정이 많은 놈이었나? 석 달 동안 키운 몬스터를 메타에 안 어울린다고 칼같이 내버린 게 엊그제 같은데.


윤나래한테 접근한 것도 단순히 그런 이유였다. 2부 보스전을 생략하기 위해서. 그런데 프리지아 말대로 용기의 로기아가 그토록 강력하다면, 굳이 몸 비틀어가며 선역으로 남기지 않아도 되겠지. 어차피 한방 컷일 테니.


······효율만 따졌을 때 이야기다.

그럼 걘 109번째로 죽겠구나.

내가 보는 앞에서.


“어, 카메라를 든 사람들이 잔뜩 있네요?”

“기자들이겠지.”


머리를 쥐어뜯으며 고민하는 사이, 어느덧 정의관 근처까지 왔다. 마음에 병이 들면 오감이 둔해진다는 말이 슬슬 이해가 가는군. 프리지아가 알려주기 전까지는 전혀 몰랐네.


“피해가자.”

“왜요?”

“먹잇감을 찾는 승냥이들이야. 괜히 기삿거리 제공해줄 필요 없지.”


안 그래도 기분 저기압인데, 자칫 예민한 질문에 실언으로 답했다간 언론에 찍힐 수 있다. 제목 한 줄로 사람 쓰레기 만드는 건 누워서 떡 먹기니까. ‘오만하고 신경질적인 1위 유망주’라니, 네티즌들이 물어뜯기 딱 좋은 소재다.


“그런데 다들 저쪽 건물에만 모여 있네요. 왜 저럴까요?”

“환영식이랑 회의를 정의관에서 진행하거든. 최전선에서 활약하는 스타급 테이머들을 볼 기회가 흔치 않으니까.”

“그럼 하루 종일 저러고 있겠네요. 인간들은 지치지도 않나요?”

“다 먹고 살려고 하는 짓이다. 얌전히 주인 명령 따르기만 해도 잠자리랑 먹이가 절로 떨어지는 몬스터와는 달라.”

“흠, 소원을 다시 정해야하나?”

“너 설마 인간이 되고도 나한테 얹혀 살 작정이었냐?”

“에헤헤헤헤, 들켰나요.”

“······.”

“얼레?”


진지하게 환불을 고민하고 있는데, 자택경비원을 지망하는 고양이가 화제를 돌렸다.


“기자 한 명이 다른 곳으로 빠지는데요.”

“뭐?”

“새 기삿거리라도 찾은 걸까요?”

“그럴 리가 없는데. 가만히 앉아있기만 해도 일주일치 기사가 절로 나오는 명당을 버린다고?”

“저~기요, 저기.”


급하게 프리지아가 가리킨 방향을 확인했다. 가늘게 실눈을 뜨자 생김새를 대략 알아볼 수 있었다.

뻣뻣하고 날카로운 단발.

핏발이 선 눈동자.

뱀파이어처럼 창백한 피부.

다른 기자들보다 눈에 띄게 야윈 여성이 조심스레 눈치를 보더니, 살금살금 뒤로 물러섰다. 곧이어 기자들은 의문을 품을 새도 없이 빈자리를 차지하려 다투기 시작했다.


“희한하네요. 저쪽은 자유관인데, 혹시 거기서도 특별한 이벤트가 있나요?”

“······있지.”

“뭔데요?”

“디아볼로스 군 호출용 통신 서버 개설.”

“아.”


워낙 큰 사건들이 겹치는 바람에 까맣게 잊고 있었네.

오늘은 3월 14일. 바알의 책사이자 핵심 수하, 네리오가 물밑 작업을 하는 날이었지. 수첩에도 정리해뒀었는데.


“미리 잠입해 있다가 언론사 기자 신분으로 위장하고 접근하는 거야. 오늘이라면 아카데미 관계자가 아니더라도 의심을 안 살 테니까. 영악한 년.”

“어떻게 하죠?”

“족쳐야지.”


마침 잘 걸렸다. 정보 캐내기엔 딱 좋겠군. 겸사겸사 분도 풀고.


“이번에도 그 생명공학자로 변신해서 접근할까요?”

“필요 없어.”

“네?”

“저딴 쓰레기한테 【흉내쟁이】는 너무 자비로워. 연기하면서 질질 끌 시간도 없고.”

“그, 그럼요?”


불끈 쥔 주먹 위로 힘줄이 불거진다. 그동안 착한 모범생 코스프레하느라 가슴 깊이 꾹꾹 억눌러온 악마가 꿈틀댄다.


“훨씬 잔혹하고 더러운 수단으로 괴롭혀줘야지.”






두리번두리번.

광대뼈가 흉측하게 튀어나온 여기자가 잔뜩 긴장한 표정으로 사방을 살핀다. 자기 임무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을 테니까. 가뜩이나 신중한 성격이기도 하고.

아카데미 네트워크를 담당하는 서버 룸. 성냥갑처럼 밋밋하고 네모난 CPU들이 에어컨 바람 아래서 맹렬히 열기를 올리는 중이다.


그리고 서버를 총괄하는 메인 컴퓨터. 보안 시스템 패스워드, 연구 기밀 등 디아볼로스 군의 손에 넘어갔다간 대참사가 벌어질 데이터들이 테라바이트 단위로 들어있다.


“후.”


여기자는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하고 가슴을 쓸어내렸다. 곧이어 손가락에 입힌 모조 지문을 비닐처럼 뜯어내고 혼잣말을 늘어놓았다. 여유를 되찾았다 이거지.


“꺄하하하하, 참 하등한 생물들이라니까? 자기들 심장과도 같은 부위를 이토록 소홀하게 관리하다니!”


방심할 만하다. 이미 감시카메라에는 수작을 부려서 가짜 영상을 입혀뒀을 거고. 이대로 서버에 잠입해서 핵심 기밀을 빼낸 다음, 디아볼로스 군이 침입할 수 있도록 보안 시스템을 열어버리면 게임 끝.

물론 방해꾼이 없을 때의 이야기지만.


“하등해서 미안하다.”

“어?”


스으으윽.

손으로 천을 쓰다듬는 것처럼 미묘한 마찰음이 울렸다. 곧이어 무색투명한 허공에서 사람의 윤곽이 하나둘씩 드러났다. 머리카락, 귀, 턱, 어깨, 허리, 다리까지······. 마치 광학 아머가 기능을 잃어가는 것처럼.

승리감에 도취된 눈동자에서 점차 여유가 사라진다.


“하, 학생이 왜 여기에? 아니, 그보다 무슨 수로 인간이 투명화를?”

“【은신】.”

“말도 안 돼. 그건 몬스터 자신만 숨길 수 있는데!”

“가끔 예외가 있거든.”


호박 귀신으로 변한 파트너에게서 손을 떼자, 윤곽은 물론이고 옷과 피부의 색채까지 원래대로 돌아왔다. 꼭 광학위장 아머를 벗어던지는 것처럼.


“유령족 ‘펌프킹’은 속도가 0으로 고정된 대신, 유틸리티 기술의 범위를 테이머까지 넓힐 수 있다. 아가페 대륙의 몬스터니까 넌 모르겠지만.”

“······.”


【흉내쟁이】가 레벨2로 업그레이드된 덕분에 스캔할 수 있었다. 인터넷 서핑해서 대충 사진만 찾아도 되니까.

네리오는 인상을 쓰며 내 미간을 노려보았다. 겁을 먹었다기보단 불쾌한 표정이다. 고작 이딴 녀석에게 뒤를 잡히다니.


“기삿거리라도 찾으시나? 컴퓨터랑 인터뷰해봐야 썩 유쾌한 대답은 안 나올 텐데. 얌전히 투항하지 그래.”

“너였구나, 꼬마야.”


금세 탈을 벗고 본모습을 드러내는 바알의 참모.

좌우로 쩍 갈라지는 얼굴, 그 안에서 드러나는 송곳니와 외눈, 쿠크리를 연상시키는 갈고리 발톱이 구역질을 유발한다. 크툴루 신화의 괴물 일러스트가 떠오르네. 흉측해도 적당히 흉측해야지, 원.


“시르포를 등껍질 조각만 남기고 산화시킨 놈이. 맞지?”

“빙고.”

“제 발로 찾아와주니 오히려 고마운 걸? 그나저나 의외인데. 아무리 날이 무뎌졌다곤 해도 고작 이런 애송이한테 당하다니. 시르포 녀석이 방심한 걸까?”


네리오의 시뻘건 외눈에 의문과 호기심이 서렸다.


“뭐 어때? 덕분에 바알 님한테 확실히 어필할 수 있겠어. 그 겁쟁이 따위보단 내가 훨씬 유능하다는 사실을.”

“미안하지만 더 이상 말동무가 돼줄 생각은 없다. 나도 슬슬 급해서.”

“그래? 무지 바쁜가보네. 누나가 소원대로 일격에 보내줄게. 자~”

“【블러드 다이아몬드】겠지?”


내가 선수를 치자, 크툴루 괴물이 전기라도 통한 것처럼 경직되고 말았다. 핏발이 선 눈동자가 파르르 떨린다.


“내 기술을 어떻게?”

“그거 원툴이잖아. 시뻘건 보석 안에 가두고, 묽은 황산을 서서히 채워서 고문하는 악질 전용기.”

“······.”

“일격에 보내준다면서 채널링 스킬을 쓰고 앉았네. 기왕 괴롭힐 작정이면 화끈한 걸로 고르지. 내가 시범을 보여줄까?”

“시범?”

“보면 알 거다. 꽤 반가울 걸.”


프리지아의 변신을 풀었다. 그리고 지금껏 봉인해둔 금단의 저주를 해금했다. 차라리 죽여 달라고 애원하게 되는 최악의 고문을.


“【인피니티 페인】.”


나지막하게 기술명을 읊조리자, 프리지아의 몸에서 검은 아우라가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더불어 바다처럼 맑은 벽안에 진홍빛 살기가 서렸다. 으르렁대며 위협하는 목소리가 점차 굵은 톤으로 변해간다.


“으아아아아아아아악―!!!!!”


곧이어 차마 눈뜨고 보기 힘든 참상이 펼쳐졌다.

크툴루 괴물의 다리가 괴상한 각도로 꺾인다. 입 속의 외눈에서 피눈물이 줄줄 흐른다. 예리한 발톱이 머리를 마구 긁으며 깊은 외상을 남긴다.


“그, 그마아아아아안! 뇌가 쪼개질 거 같아―!!!”

“안 죽는다. 잘 알잖아? 네 보스도 쓰는 기술이니까.”

“바, 바알 님의 전용기를 어째서 네가······. 끄아아아아아아악―!!!”

“스톱.”


저주를 멈추자, 괴물은 걸레짝이 된 채로 차가운 바닥에 축 늘어지고 말았다. 바들바들 경련하는 다리만이 유일하게 생존을 증명해줄 뿐이다. 그러나 터럭만큼의 동정심도 들지 않았다.

지금쯤 공포에 질려 오열하고 있을 소녀를 떠올리면.


“인터뷰 좀 받아주겠나, 기자 양반?”

“우, 우으으으으윽······.”

“윤나래는 어디 있지?”


목소리를 바닥까지 깔고 으르렁댔다. 분노와 증오 때문에 이성이 마비되기 직전이다.


“대답 안 하면 죽인다. 등껍질 조각만 남긴 네 동료처럼.”

“나, 나는 절대로 바알 님을 배신하지 않······.”

“【인피니티 페인】.”

“우아아아아아아악―!!! 으헉, 으허어억!”


2차 고문.

순순히 입을 안 열겠다, 이거군. 염라대왕 면접장 입구 구경이나 시켜줘야겠다. 고삐 풀린 망아지 뒷발길질이 얼마나 무서운지 모르는 모양이네.


“다시 한 번 묻는다. 윤나래 어디로 데려갔어?”

“사, 상생관 지하연구소!”

“그건 알아. 몇 층?”

“지하 24층!”


드디어 술술 나오는 자백. 금쪽같은 정보들이다.

그나저나 귀찮게 됐군. 24층이면 최심부 근처잖아. 윤나래만 쏙 빼내서 도망칠 수도 없겠어. 결국 바알과 일전을 치러야한다는 뜻인데.


“걔를 납치해서 뭘 할 작정이지?”

“우리 디아볼로스 군으로 끌어들일 거야! 인간형은 여러 모로 쓸모가 많으니까!”

“역시.”


나쁜 예상은 한 치도 빗나가는 법이 없군. 알약처럼 쓰디쓴 한숨이 나온다.


“마지막 질문. 걘 아직 무사한가?”

“끈덕지게 버티고 있어! 쓸데없이 고집만 세서는!”

“버틴다고?”

“그래, 도무지 이해가 안 된다니까? 인간사회가 도대체 뭐가 좋다고 그러는지! 일회용 쓰레기봉투처럼 버림받은 주제에!”

“······.”


그 순간, 복잡한 심경이 실타래처럼 엉키기 시작했다.

역사가 바뀌었다. 달콤한 유혹 몇 마디에 울먹이며 고개를 끄덕이던 소녀가, 이번엔 결코 디아볼로스 군에 들어가지 않겠다고 저항하고 있다. 그 어떤 선택지를 골라도 이런 루트는 없었는데. 적어도 지금까지는.

이 녀석, 설마······.


“그래서 판단력을 흐리게 만드는 약물을 투여해서 우리 군의 인자를 받아들이게 할 예정이야! 약물 완성까지는 앞으로 2시간! 그럼 돌이킬 수 없지!”

“2시간?”


뚝.

이성의 끈이 끊어지는 소리가 났다.


“이, 이제 놓아줘! 아는 건 다 얘기했으니까!”

“살려준다는 말은 한 마디도 안 했는데.”

“뭐?”

“멋대로 설레발치지 마. 그런 악행을 저질러놓고 무사히 넘어가려고? 너희가 촉법소년이냐?”

“치, 치사한 녀석!”

“치사한 건 이사장한테 빨대 꽂아서 뒤통수치려는 너희들이고.”


혈관을 순환하는 액체가 용암처럼 끓어오른다.

고문할 시간이 부족한 게 아쉬울 지경이다.


“그럼 작별할 시간이군.”


프리지아에게 두 번째 저주를 준비시키자, 이번엔 푸른 보석으로 만들어진 눈이 서서히 불길한 진보랏빛을 띠었다.

죽음을 상징하는 색깔.


“정보는 고맙다. 유언 정도는 남기게 해주지. 20초 이내로 끊어라.”

“그 기술은······.”


눈이 휘둥그레진 채 프리지아를 주시하는 네리오. 그러자 자기 운명을 받아들이기라도 한 건지, 실성한 환자처럼 킥킥대기 시작했다.

뭐야, 이 자식.


“꺄하하하하하하!”

“뭐가 웃기지?”

“대단해, 정말 대단해!”


웃음소리가 끊이질 않는다.

불쾌지수가 천장을 뚫고 달나라까지 닿으려한다.


“그 하얀 고양이, 조만간 볼만해질 거야! 그때 네가 어떤 표정을 지을 지 궁금한 걸?”

“뭐?”

“우리 기술을 써보니 즐거워? 흥분해서 미칠 거 같아? 그렇다면 소질은 충분하네! 걱정 안 해도 되겠어! 꺄하하하하핫!”

“······.”

“자, 이제 그만 보내줘. 그리고 앞으로 잘 부탁해!”

“【다크 인페르노】.”


담담한 명령 한 마디에 보랏빛 번개가 방출되었다. 내 품에 쏙 들어올 만큼 아담한 고양이의 몸에서 뿜어져 나온 거라곤 상상도 못할 규모. 종족치가 조금이라도 높았으면 서버 룸 전체가 소멸할 뻔했다.


<와이즈 프로퍼시>의 최종보스, 마몬이 즐겨 사용하는 기술. 상태이상에 걸렸거나 무력화된 적을 단번에 죽음으로 몰고 가는 즉사기.


“······끝났군.”


네리오는 번개에 닿자마자 한 줌의 재로 변하고 말았다. 단말마조차 없이.

연기가 풀풀 피어오르는 사체를 만져보자, 한여름 해변의 모래처럼 따스한 온기가 남아있다.


“주, 주인님. 방금 그게 제 기술이에요?”

“그래.”

“왜 이렇게 사악한 힘이 깃든 거죠? 전 로기아인데······.”

“이 세상에 사악하거나 선한 힘 따윈 없어. 모두 쓰기 나름이지. 사람을 죽일 수도, 식재료를 다듬을 수도 있는 식칼처럼.”


자기 힘에 오들오들 떠는 고양이를 살포시 안아주었다.

사탕처럼 달콤한 향기가 코를 찌른다.


“걱정하지 마, 프리지아. 난 결코 살인마 따위 되지 않을 거니까. 반드시 최고의 요리사로 거듭나서 널 당당히 자랑할게. 이 자리에 오르게 해준 위대한 식칼이라고 말이야.”

“주인님······.”

“괜찮다니까? 내 목숨을 걸고 맹세해.”


한참이나 토닥이며 위로하자, 마침내 노력이 결실을 맺었는지 파트너도 마음을 놓고 내 가슴에 얼굴을 파묻었다. 쿵쿵대는 심장박동을 조용히 가라앉힌 채로.


“이런 능력을 주신 스승님의 속뜻은 모르겠어요. 하지만 주인님이라면 믿어요. 끝까지 따를게요.”

“그래.”


친밀도 100의 위력인가.

신뢰가 깨질 만도 한데, 새삼 고마움이 일었다.

얘를 첫 파트너로 선택하길 잘했어.


“그리고 방금 결심했다. 어디로 갈지.”

“어디로요?”


후회할 거란 직감이 뇌리를 스친다. 지금 미쳤냐며 이성이 발목을 붙든다. 왜 지름길을 놔두고 멀리 돌아가냐면서.

하지만 윤나래가 그랬지. 비행기에 오른 다음 여비 걱정해봐야 아무 짝에도 쓸모없다고. 한 번 결정을 내리면 기회비용 따윈 깨끗이 잊어버리라고.


그래, 네 말이 맞아. 달콤한 삶을 버리고 고난을 택한 헤라클레스도 마찬가지였을 거야.

감미로운 술과 값진 황금, 예쁘장한 시종들을 포기한 걸 후회했을까? 헤라가 부른 괴수들을 때려잡으면서? 오히려 진정한 영웅의 자리에 오를 수 있다는 기대감에 시간 가는 줄 몰랐을 거다.


나라고 못할까? 전설의 몬스터를 포기하고, 양부모에게 버림받은 소녀를 선택하는 게 바보라면······.

기꺼이 바보가 돼주지.


“가자, 지하연구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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