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월검의 연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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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해품글
작품등록일 :
2022.07.03 19:15
최근연재일 :
2022.10.09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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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8.30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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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존과 연수의 거래

DUMMY

다행히 마존의 손아귀가 힘겹게 접혀지고 뜨거운 바람도 바닥으로 스며들자, 마존이 지친 몸을 의자에 누이며 두 눈을 꼬옥 내리 감았다.


“갑시다 !”


진소가 여전히 마음에 들지 않는 듯이, 여인의 한쪽 팔을 잡고 앞장서고 있었다.


쓰러지듯 의자에 파묻힌 마존을 몇 번 뒤돌아보던 여인이, 올 때보다는 자잘한 발자국 소리를 남기며 멀어지고 있었다.


하지만 힘없이 멀어지던 발자국 소리가 완전히 사라지기 전, 마존의 음성이 대전의 허공을 타고 울려왔다.


“기다려라 !”


놀란 여인과 진소가 동시에 서서 뒤돌아보았지만, 마존은 그대로였다.

두 눈을 꼬옥 감은 채로 의자 깊숙이 들어앉은 몸은, 마치 의자와 한 몸이라도 된 듯이 미동도 없었다.

한참을 기다렸지만 아무런 반응이 없는 그를 뒤로하고 다시 발걸음을 옮기려는 순간, 마존의 음성이 다시 들렸다.


“제안을 하겠다.”


잘못 들은 것이 아니었다. 여인의 표정이 바뀌며 동그랗게 부릅뜬 눈동자 가득히 마존을 받아들이며 마주 섰다.


“본존이 말하는 제안을 생각해 보거라.”


“네 마존. 어떤 제안이든지 받아들이겠습니다!"


‘내가 무슨 말을 할 줄 알고, 저렇게 무모할 만큼 대범하게 나오는지 ... 보아 하니, 범유의 딸이 맞긴 한 것 같군.'


보이지 않게 마존이 옅은 미소를 띄우고 있었다.


“보연이 중천의 공주를 해쳤으니, 네가 대신 인간계로 가서 그녀가 중천으로 다시 돌아 올 때 까지 옆에서 안전하게 지켜라. 이번엔 보연과 함께 너희 둘의 목숨을 걸어야 할 것이다. 그때까지는 보연을 놓아두도록 하지."


여인이 아무 말도 없이, 가만히 마존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그것 만요?"


마존 또한 그녀를 가만히 내려 보았다. 차가운 기운에 스며드는 그녀의 따스한 미소 때문인지, 그의 동자가 미세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인간계의 자운은 그녀의 몸이 가진 기억대로 살아가겠지만, 한편으론 확실하지 않게 겹쳐지는 그녀의 원래 기억 때문에 혼돈스러워 할 것이다.

물론 어디서 덤벼들지 모를 갑작스런 요 마귀들의 해코지도 반드시 막아내어야 한다”


여인의 얼굴가득 밝은 미소가 번졌다.

참 맑고 고운 모습이, 보연과는 너무 다르다는 생각이 마존은 들고 있었다.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현령계의 영물들이신 여러 사부님들께 배운 재주도 적지 않으니, 잘 사용하도록 하겠습니다. 마존!”


오히려 즐거워하는 여인의 모습에 마존과 진소가 적잖이 놀라고 있었다.


“그러시면... 마존. 소선이 자운공주를 무사히 모시고 돌아오는 날에는, 보연에게 아무 잘못도 묻지 않으시고 저와 함께 현령계로 갈수 있도록 허락하여 주시는 건가요?”


“당연하다.”


마존이 여인에게 전음부를 띄울 수 있는 현빙화의 꽃잎을 날려주었다.


“다급한 일이 생기면 그 전음부를 보내라. 바로 대응할 것이다. 그리고 그 전에 반드시 보연에게 가서 전하라.

지금껏 하던 일은 모두 그만두고, 본존의 눈에 띄지 않도록 침소 밖으로 절대 나오지 말아야 할 것이다!"


“네 알겠습니다 마존.“


연수의 목소리에 잠시 그늘이 졌지만, 이내 수긍하는 그녀의 얼굴빛은 다시 밝은 선홍빛으로 생기를 머금고 마존을 바라보았다.


“감사합니다 마존. 곧 준비를 마치고 내려가도록 하겠습니다.”


마존이 가볍게 머리를 끄덕거렸다.



**



“보연아 ...! 얘는 어디로 간 거야?”


보연의 침전 주변을 돌며 연수가 볼멘소리를 내뱉고 있었다.


“염라옥에도 용마천에도 없고, 마령들에게 물으려 해봤자 모두 잡아먹을 듯이 인상부터 그어대니, 원... 참.

딱하긴 하지만, 네가 네 눈을 찌른 걸 누구를 탓할 수 있겠느냐 !”


한참 동안이나 보연을 찾을 수 없었던 연수가 힘없는 걸음으로 동생의 침소 안으로 들어가, 잘 정돈된 탁자와 함께 놓인 의자에 몸을 기대었다.


마계에서는 , 마존과 당당이 심하게 다친 이유가 보연 때문이라는 사실이 소문을 타고 퍼지자, 보연은 이제 순식간에 모두의 적으로 완전히 외면당하는 존재가 되어있었다.


하지만 그 이유보다, 보연이 지금껏 마존의 마음을 이용해서 많은 이들을 괴롭혀 온 사실 만으로도 이번 일은, 돌무더기에 돌 하나 더 던져놓은 격 밖에 되지 않을 정도였지만,

드디어 마존의 마음이 돌아섰다는 이유만으로 마계의 주민들은, 이제 기분 좋게 그녀를 외면할 수 있었다.


“그래... 이해해. 들어보니, 보연이 하나같이 다 잘못한 일이더라고.... 그래도 내 동생인 걸 어쩌겠어.

빨리 찾아서, 중천의 공주를 무사히 데리고 올 때까지 조금만 참고 기다리라고 얘기를 전하고 가야 할 텐데.”


지금 그녀의 마음처럼 그동안 외로웠을 동생의 마음이 사무치자, 언제나 밝기만 했던 연수의 입가가 울먹거림으로 못나게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보연아... 어디있어. 이제 그만 좀 나타나라..."


어느새 훌쩍거림으로 들썩이는 목의 장단에 따라, 눈물로 희뿌옇게 보이는 그녀의 시야사이로, 저만치 탁자 끝에 놓여 있는 봉투가 어렴풋이 눈에 들어차 보였다.


여전히 훌쩍임을 멈추지 못한 채 소맷자락으로 눈물을 훔치며, 의자를 몇 개 돌아 탁자에 놓인 봉투를 집어 종이를 꺼내 펼쳤다.


“아주 짧군..."


‘... 내 살길은 내가 찾아. 넌 네가 살던 데로 가서 살아.’


“얘는 용기가 끓어 넘치는 것인지, 원래가 모자란 아이인지 알 수가 없어. 일이 또 꼬였네... 마존께는 뭐라고 말씀을 드려야 하나!"


어느새 울음이 그친 연수의 선홍빛 볼 위로 하얀 눈물선이 말라가고, 한동안 멍한 표정으로 앉아있던 연수의 표정이 일그러진 채 구긴 편지를 입으로 질겅질겅 씹어 물고 있었다.


"당분간은... 삼켜두자!"



****



낮은 풀이 소담스럽게 피어오른 파한정 마당 안으로, 구름 사이를 뚫고나온 밝은 햇살이 빛 길을 만들어 내리고 있었다.

가끔씩 주변의 숲이 술렁일 때마다 밀려드는 따스한 미풍은 마당 한쪽에서 힘겹게 앉아있는 마존과 당당의 굳은 몸을 포근하게 보듬어 주며 스쳐가고 있었다.


“마존. 괜찮으십니까?”


걱정을 가득 안은 목소리로 진소가 마존과 당당을 번갈아 바라보고 있었다.


“괜찮다. 이제 곧 당당이 깨어날 것이다.”


마존이 운기조식을 막 끝내며, 지친 눈을 들어 당당을 사랑스럽게 바라보고 있었다.


아직은 당당이 아무 미동도 없이 굵고 뾰족한 두 귀만 꿈적거리며 그대로 누워 있었다.


“녀석, 이 와중에도 꿈을 꾸고 있나 보군. 조금 더 지켜보자.”


여전히 애틋한 눈길을 거두지 않으며 마존이 말을 이었다.


“연수는 어떻게 되었나? 인간계로 내려갔느냐?”


진소가 당당을 바라보던 눈길을 걷으며, 마존을 향해 나지막하게 대답하였다.


“네 마존, 보연이 사라졌지만 보연이 저지른 일들은 그대로 남아있으니, 조금이라도 매듭을 지어야 하는 것이 도리라고 하면서 망설이지 않고 바로 내려갔습니다. 하지만...”


마존이 천천히 진소를 돌아보았다.


“하지만, 나중에라도 보연이 마계로 돌아오면, 내쫓지 마시고 그녀가 돌아올 때까지 이곳에서 기다리게 해 달라고 부탁하고 갔습니다.”


대답 없이 마존이 다시 천천히 고개를 돌려 당당을 바라보았다.


“본존의 폐관수련이 좀 늦어지더라도, 그녀가 부탁 하는 대로 네가 살펴주도록 하여라.”


“분명 귀왕에게로 간 것 같은데, 어떤 마음을 품고 올지 모르는데 어떻게 받아주라고 하십니까! 마존”


진소가 걱정스럽게 그를 바라보았다.


“연수의 마음이 아름다우니, 최대한 아프게 하지 말고 지켜 주도록 하여라. 물론 보연이 나타난다면 마계에서 더는 활보할 수 없도록 잘 지켜보아야 한다.”


“네 마존. 분부하신대로 명심 하겠습니다."


“ 나머지는 모두 네가 잘 알아서 할 것이라고 믿는다.

혹시, 본존이 없을 때 연수에게서 전음부가 날아오면 반드시, 늦지 않게 전신에게 소식을 보내어야 한다.”


“네. 알겠습니다 ... 마존."


진소의 목소리에 슬픔이 베어나고 있었다.


서로가 차마 말로는 꺼낼 수가 없었지만, 만약 폐관수련 도중 그의 약해진 기운으로 인해 마존이 주화 입마가 된다면, 그는 물론이고 마계의 모든 것이 엉망이 되고 말 것이었다.


주화 입마가 된 그를 멈추기 위해서는, 구중천의 모든 계가 함께 나서서 그의 주군의 목숨을 끊어놓아야 일이 매듭 될 수 있을 것임이 분명했기 때문에, 진소는 여전히 무거운 마음을 내려놓을 수가 없었다.


"진소, 더 강해져서 나올 것이니 너무 걱정하지 말아라. 당당이 깨기 전에 본존이 먼저 갈 것이니, 너는 이곳에서 당당을 더 지켜보도록 하여라."


“네 알겠습니다. 마존.”


진소가 흔들리는 눈빛으로 그의 주군의 초췌한 모습을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지만, 마존이 조용히 일어나 그의 어깨를 한번 다잡아 준 후 곧바로 검은 연기와 함께 사라져 버렸다.


저 멀리 폭포수가 떨어지는 곳 옆에, 마존이 원하는 모습으로 지어놓은 누각이 눈살을 찌푸린 각도에 따라 겨우 보일 듯 말 듯한 모습으로, 숲 사이에 비밀스럽게 들어서 있었다.


그리고 그 누각엔, 얼마 전에야 비로소 마존이 직접 쓴 ‘미운정’ 이라는 현판이 달아 올려졌다.


그곳이 바라보이는 아래에서는, 위험천만한 폐관수련의 고충을 견뎌낼 그의 주군을 위해서, 진소가 두 손을 모아 올리며 진심어린 염원을 담아 보내고 있었다.



****



“뉘시오?”


아까부터 계속 대문 앞을 왔다 갔다 하며 신경을 긁고 있는 이 촌티가 물씬 나는 여인에게, 커다란 대문 앞을 지키는 두 명의 문지기 병사가 더는 못 참겠다는 듯이 여인 앞으로 불쑥 다가가 폼 나게 서서 으름장을 놓고 있었다.


“보시오. 이곳이 뉘댁인지나 알고 왔소?

보아하니, 이 댁에 볼 일이 있을만한 처자는 아닌 것 같은데... 신경 거슬리니까, 어서 지나 가던지 아니면 좀 멀찌감치 떨어져 계슈."


병사의 말에는 별로 관심이 없다는 듯이, 그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현빙화의 꽃잎을 따라 이 곳까지 온 연수가 꽃잎이 허공에 머무르고 있는 이 곳에서 잠시 현빙화의 반응을 기다리고 있었다.


역시 꽃잎이 대문과 연결된 담 위로 넘실넘실 날아 들어가고 있었다.


‘그래, 드디어 도착 했구나! 이렇게 엄청난 부잣집이라고? 마존도 참 신경을 많이 쓰셨네. 어쨌든 덕분에 나도 밥은 잘 얻어먹겠다!’


드디어 결정을 내린 여인이 문지기 병사에게 말을 건넸다.


“여기가 어떤 댁이오?”


병사들의 눈이 뚱그래졌다.


“정말 모르는 거요? 신요국 황제의 사황자, 주선왕의 선왕부... 를 모르다니. 어디 하늘에서 떨어졌소?”


순간 연수가 찔끔 놀랐다.


‘인간들의 혜안이 이 정도나 되는 거야? 설마...'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던 연수가 잠시 더듬거리며 말을 받았다.


"그게, 그... 머 비슷하긴 한데. 좀 먼 곳에서 온 셈인거지...요!"


"행색을 보아하니, 그런 거 같구려. 젊은 처자가 딱해 보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저리 썩 가시오."


으름장에도 전혀 미동이 없이, 이제는 대문 안쪽으로 삐죽삐죽 눈길까지 넘겨보는 여인을 향해, 문지기 병사가 이번에는 아예 밀쳐낼 요량으로 험상궂게 다가오려고 하는 몸짓을 하고 있었다.


' 왕부라고? 그럼 무슨 말을 해야 하지? 에라 모르겠다. 아무런 말이면 뭐 어때.’


다가오는 사내들 앞에서 자리에 풀썩 주저앉은 연수가 품고 있던 보자기를 반쯤 풀어 뒤적뒤적 하더니, 마존이 미리 준비해준 하얀 백지를 꺼내 그들 앞으로 내밀어 주었다.




함께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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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2

  • 작성자
    Personacon 이웃별
    작성일
    24.01.12 22:33
    No. 1

    연수에게 운이를 지키게 하다니. 너무 좋은 제안이에요!
    마존이 일일이 신경을 쓰다보면 귀왕에게 금방 들킬 테니까요. 아니 신경을 쓸 수 없을 만큼 몸이 약해져서 걱정입니다ㅠ 폐관수련 잘 이겨내시길 저도 진소와 함께 기도드립니다.
    정심검의 주인들이 이렇게 만나는군요.

    해품글님~ 만월검은 솜씨있게 잘 지으신 글입니다.
    고개 높이 드시고 작품활동 열심히 부탁드립니다^-^*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14 해품글
    작성일
    24.01.13 00:28
    No. 2

    우와아~~
    이웃별님..
    오늘 저를 너무 심쿵하게…흑흑..!!
    만들어 놓으셨어용..
    작품을 만들어두고, 얘들이 점점 사라져가는 느낌이 들때에는..
    사실 아무것도 해주지못하는 내가 참.. 미안하고, 부족하게 느껴지는 마음만 가득했는데,
    누군가에게는 이런 의미를 느끼게 해주었다는게..
    어찌 이리, 행복할까요~~
    그저, 이렇게 매일 만월검을 찾아주시는 것만으로도,,
    정말, 감사합니다. 별님~~!!
    열심히, 하겠습니당~~^^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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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 초요의 계획 22.09.10 40 6 12쪽
65 상심석의 응답 22.09.09 38 5 11쪽
64 마존 형님 +2 22.09.08 44 5 11쪽
63 운우에게 부는 바람 22.09.07 44 5 12쪽
62 다시 만남 +2 22.09.06 39 5 10쪽
61 상심석 +2 22.09.05 40 5 12쪽
60 태마경의 위력 +4 22.09.04 39 6 12쪽
59 귀신 잡는 말 +2 22.09.03 38 6 12쪽
58 초요의 손님 22.09.02 35 5 11쪽
57 위기의 운우 +2 22.09.01 44 5 14쪽
56 자운 돌보기 22.08.31 38 5 14쪽
» 마존과 연수의 거래 +2 22.08.30 39 4 12쪽
54 무모한 정 22.08.29 44 4 12쪽
53 보연의 언니 22.08.28 40 4 12쪽
52 운우의 흑화 +2 22.08.27 48 4 13쪽
51 자운의 부활 22.08.26 43 5 12쪽
50 정심검의 또다른 여인 +2 22.08.25 41 5 14쪽
49 귀진검의 공격 22.08.24 42 5 11쪽
48 염라옥의 흐물요괴 +2 22.08.23 45 4 12쪽
47 귀왕에게 잡힌 운우 +2 22.08.22 42 4 11쪽
46 전신과 마존의 악연 +2 22.08.21 48 5 13쪽
45 사라진 운우 22.08.20 42 5 12쪽
44 망천강의 손님 22.08.19 42 6 13쪽
43 그믐밤의 연인들 +2 22.08.18 49 6 16쪽
42 보연의 거래 22.08.17 43 6 12쪽
41 애매한 고백 +2 22.08.16 43 6 12쪽
40 귀왕에게 향한 보연 22.08.15 41 5 12쪽
39 슬픈 마존 +2 22.08.14 46 5 16쪽
38 촉수귀의 습격 22.08.13 45 5 13쪽
37 조용한 위기 +4 22.08.12 55 5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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