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월검의 연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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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해품글
작품등록일 :
2022.07.03 19:15
최근연재일 :
2022.10.09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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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8.19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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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망천강의 손님

DUMMY

“전신, 오늘은 얼른 돌아가야 할 것 같아요.”


전신의 얼굴빛에서 조금 전까지의 온화함은 사라지고, 지옥의 개를 바라보는 눈길에는 옅은 분노마저 어리고 있었다.


“너의 발치까지 그것이 떨어지고 있으니, 얼른 개를 품에서 떼어 내거라 자운.”


마치 자운이 일을 저지른 것처럼, 자운의 얼굴빛도 부끄러움에 몸 둘 바를 몰라 하고 있었다.


“소당과 소선이 함께 씻으러 가야할 것 같으니, 전신께는 여기서 인사드리고 먼저 돌아가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다음에 뵙겠습니다. 전신.”


하얀 연기 속으로 강아지를 안은 채로 자운이 급하게 사라져가고, 사라진 연기 뒤로 몇 방울의 물기가 여지없이 허공에서 바닥위로 떨어지고 있었다.


‘ 미인, 아무래도 이건... 너의 계략 안에 말려든 것 같다.’



****



“아녕 총관. 어제는 어쩔 수가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속내를 잘 드러내지 않는 아이였지만, 어두운 곳에서도 확연히 드러날 만큼, 불편한 심기를 그대로 드러내고 있었다.


“ 귀진검의 큰 힘을 업고 갔음에도, 두 번 세 번 의 기회가 필요하다는 말이냐!"


주춤하던 무평귀가 맥없이 대꾸하였다.


“전신만 함께 있었더라도, 한쪽을 유인한 후에 틈이라도 찾을 수 있었을 텐데, 어제는 지옥의 개까지 공주가 계속 껴안고 있었으니, 잠깐의 틈조차도 절대 찾을 수가 없는 상황 이었습니다.”


함께 서있던 온통 붉은 빛깔의 요귀가 퉁명스럽게 말을 보태기 시작했다.


“이보시오 신군. 영혼이라도 지켜야지 다음 생을 약속 할 수라도 있지 ... 삼두견에게 물리면 그 자리에서 영혼까지 소멸 된다는 걸 아는데, 아무리 미물이라도 제 목숨은 소중한 법이거늘, 누가 함부로 나설 마음이 나겠소?”


콧방귀를 뀌며 그의 주군을 닮은 투로, 음흉스럽게 아이가 말을 내뱉었다.


“적과 싸우다 목숨을 부지할 가능성이라도 챙기는 것이 낫지, 한 번 더 몸을 사리게 되면 귀왕께 먼저 소멸이 될 운명을 피할 수나 있을까?

다음 기회 에서는, 그 미련한 머리라도 제대로 굴려야 할 것이야 !”


말을 끝낸 아녕이 그들의 표정은 쳐다보지도 않은 채, 곧장 빛이 있는 곳으로 걸어 나갔다.


“무평귀, 저것들이 하는 약속은 믿어도 되는 거야? 정말 이번 일을 제대로 하면, 마귀의 혼에서 벗어나 호선로를 타고갈 수 있는 혼령으로 바꾸어 준다는 말 말이야.

이건 그야말로, 적군에게 죽을래. 아니면 우리 편 대장한테 죽을래를 선택하라는 거잖아!"


쪼그맣고 약해빠진 아이에게 야단맞는 것이 기분 나쁜 표정의 홍귀가, 무평귀에게 투덜거리며 날카롭게 아녕의 뒷모습을 흘겨보고 있었다.


“쬐끄만 게, 귀왕의 힘을 너무 믿고 까불어 대고 있잖아. 녀석, 귀진검으로 함께 싹뚝 베어버릴까 보다!"


깜짝 놀란 무평귀가 넌지시 주변을 살피며, 홍귀에게 이빨을 악물고 낮은 소리로 말하였다.


“이런, 쉿 ! ... 이 미련한 홍대가리야. 귀왕이 자식처럼 여기는 놈이야. 네가 한번 베면, 넌 귀왕한테 고기다지듯 다져진다.”


“한칼에 죽고 나면 끝이지, 뭐가 겁나는데 ! 재수 없는 녀석 !”


이번엔 조금 더 큰소리로, 누구라도 들으라는 듯이 무평귀가 떠들어댔다.


“ 지옥의 개라는 녀석이, 여자아이한테 안겨서 오줌 지르는 꼴을 봤냐? 내가 다 부끄럽더라. 삼두견도 별거 아니야. 다음번에 만나면 낑 소리도 못하게 한 칼에 다 같이 끝내 버리자구 !"



****



천계의 망천강류 에서는, 여지없이 삐거덕 거리는 소리를 흘리며 한척의 낡은 배가 어둔 강 위의 짙은 운무를 헤쳐 나가고 있었다.


움직임이 없는 횃불아래에 비춰지는 사내의 얼굴위로 불빛처럼 따스한 미소가 번져가고 있었다.


“오늘은 왠일이지? 원래 망자가 먼저 와서 기다리는 게 규칙이 아닌가?”


이미 강을 건너고 기슭에 배를 세운채로 기다리고 있었지만, 운우의 모습은 아직도 나타나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기대에 찬 표정으로 한껏 들뜬 우의를 입은 사내의 입가에는, 망천강의 분위기와 어울리지 않게 콧노래까지 새어나오고 있었다.


“운우, 벌써 기억이 돌아 온 거야? 날, 기다리게 하겠다 ... 이거지? 그래도 상신이 규칙을 어기면 되나! 그래 조금만 봐줄게."


삐걱거리는 소리마저도 끊어진 망천강 주변의 세상은, 또다시 모든 것들이 완전히 멈춰 선 듯이 어떠한 움직임도 소리도 존재하지 않았다.

떠돌던 미물의 혼들마저도 조용함에 묻혀 깊은 잠속에 빠져 든 것 같았다.


강가에서 한동안 멈춰 서 있던 배위에서 쭈그리고 앉아있던 선풍이 지루한 듯이 기지개를 켜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어둡기만 했다. 그의 기지개 소리에 몇몇 작은 혼들이 깨어나 잠시 빛을 발했다가 이내 어둠속으로 다시 사라졌다.


“운우, 이제 시간이 얼마 없는 것 같은데 ... 다른 망자가 오기 전에 빨리 건너가야 한다구 ! ”


또다시 얼마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선풍이 이번에는 자리에서 일어나 횃불을 빼서 이리저리 주변을 비춰보기 까지 하고 있었다.


“ 큰일이군. 운우 길을 잃은 거야? 너무 어두워서? 그럴 리가 없잖아. 몇 번이나 다녔던 길이야. 다음 망자가 오면 어쨌든 건네 줘야 하는데... 그러면 너랑 순서가 달라지잖아. 운명이 바뀐다구. 이 고집쟁이 !”


이제 서서히, 횃불에 일렁이던 풍신의 얼굴에 어둠이 서리고 불안함이 물들기 시작했다.


‘지난번 내가, 너무 불편하게... 했었나? 화난거야? 겁을 포기할 정도로? 설마... 도하노인, 그래 이 영감탱이가 술이 과했던 탓에 오늘이 운우가 오는 날이라고 착각한지도 모르겠군!'


선풍이 잠시 멍해 있는 사이, 칠흑같이 어두웠지만 뱃전 앞에서 분명 소리가 들린 것 같았다.


“저기... 이 배를, 타야 하나요?”


순간 놀라움과 반가움에 뒤범벅이 된 선풍이, 거의 울 것 같은 표정으로 소리가 나는 곳을 향해 몸을 돌렸다.


하지만, 선풍이 바라본 여인은 운우가 아닌 것이 분명했다.

죽기 전 인간의 모습에서 아직 바뀌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분명 이 여인은 운우가 아니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선풍이 배의 한 켠에 쌓여지는 노잣돈 쪽으로 다가가 횃불을 들이댔다. 노잣돈은 두 뭉치였다.

먼저 쌓여진 두둑한 노잣돈은 분명 운우의 것이었다. 그 옆에 다시 자그마하게 쌓여진 노잣돈의 망자를 먼저 만난 것 같았다.


‘큰일이군. 운우가 길을 잃었어 !‘


아직 멍하니 배의 한쪽에 서 있기만 한 사공을 향해, 여인 또한 멍한 표정으로 사공의 행동을 가만히 지켜만 보고 서 있었다.


“사공, 그럼... 전 어디로 가야 하나요?”


“아, 망자... 어서 배에 오르시오”


여전히 정신이 다 나간 표정을 한 선풍이, 떨리는 음성으로 여인에게 대답하였다.


“그런데, 망자... 혹시 오는 길에 젊은 여인의 모습을 한 망자를 한 분 만나지 못했습니까?”


이 상황이 낯설기만 한 여인 또한, 여전히 두렵고 어리둥절한 표정을 가득 짊어진 채, 선풍과 같은 떨리는 음성으로 겨우 몇 마디 대답을 해줄 뿐이었다.


“오는 길은 한 길 밖에 없었어요. 한발씩 내딛을 때마다 길이 조금씩 만들어 지던걸요. 길도 여인도 있을 리가 없죠.”


아직도 자신이 가는 길에 확신이 없는 여인의 몇 마디 대답 속에는, 두려움이 가득 담겨 있었다.


어쨌든, 눈앞의 망자를 놀라게 할 수는 없었다.


“망자, 이곳으로 와서 배를 탄다는 것 자체가, 당신이 세상을 참 잘 살았다는 증거입니다.

이곳을 건너면, 한 곳을 향해 걸어가고 있는 다른 망자들을 만나게 될 겁니다.

그들을 따라서 편안한 마음으로 나아가면 다시 환생할 수 있는 명운대 쪽으로 이르게 될 테니, 두려워하지 말고 계속 앞으로 나가세요.”


처음으로 편안한 표정을 짓는 여인을 배에 태웠지만, 강을 건너는 선풍의 온몸에는 열감이 오르기 시작했다.

불안함과 초조함으로 붉어진 얼굴과 함께, 노를 잡은 두 손으로까지 번진 열기는 몇 번이나 손에서 노를 놓칠뻔하게 만들었다.


그의 눈은 강변 가에 박아 놓은 듯이 움직임이 없었지만, 이내 운무로 덮인 어둠이 가득 차오르고 강변의 모습도 시야에서 사라지자,

이번엔 조금의 소리라도 놓칠 새라 귀를 기울이며 강가에서 배가 점점 멀어지는 순간까지 감각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오늘 따라, 더 크게 삐걱대는 낡은 배의 노 소리는 한없이 그의 신경을 자극하고 있었다.



****



“자네도 저런 코흘리개 어린 아이였을 때가 어제일 같은데...

이젠 자네가 나를 위해 머리를 조아리면, 다른 사람들 눈엔 내가 아주 나쁜 놈으로만 보이겠어...허 허."


“아이쿠, 어른 무슨 말씀이세요! ”


깊고 주름진 눈자위 안으로 꺼질 듯이 깊숙이 들어간 작고 흐릿한 눈동자에서는, 한 생의 고난을 그곳에 다 쌓으며 살아온 것 같은 노인이 또 다른 노인 앞에서 공손하게 머리를 조아리고 있었다.


“이번엔 어른께서 한 해가 다 가기 전에 한 번 더 들러주셔서... 제가 세상을 떠나기 전, 뵙고 인사는 드리고 갈 수 있게 되었으니 정말 다행 스러울 뿐입니다.”


마을에서 가장 많은 아이들이 살고 있는 이 집의 주인은, 가여운 아이들을 거두어 보살피고 철이 들면 세상에 나갈 수 있도록 도우며, 평생 고단하고 행복한 삶을 함께 누리며 살아온 것 같았다.


“어른께서 소인이 어릴 적 거두어 주시고 평생 아이들을 위해 일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셨는데, 은혜도 다 갚지 못하고 가게 되어서 송구스럽습니다.”


나지막한 대청마루에 마주앉아 식어가는 찻잔을 들어 올리며, 두 노인이 환한 미소와 함께 서로를 바라보고 있었다.


“구야, 벌써 한생이 끝날 때가 되어 가느냐?”


“네 어른, 곧 그리 될 것 같습니다..."


넓은 마당에서 걱정 없이 뛰어 노는 아이들의 모습을, 두 노인네가 함께 지긋이 바라보고 있었다.


푸석하게 늘어진 잿빛 수염을 단, 더욱 노쇠한 할아버지가 어른이라고 부르기엔 오히려 더 단단해 보이는 체구와 홍조를 띤 맑은 얼굴의 노인을 깍듯하게 대하고 있었다.


상석에 앉은 노인은 누더기 옷을 걸치고 헝클어진 하얀 머리칼을 대충 묶어 올린 덥수룩한 모습이었지만, 집 주인이 내어준 두껍고 깨끗한 방석위에서 단아하고 귀해 보이는 자태로 앉아 있었다.


집주인 할아버지가 아주 어린 아이였을 때부터, 상석에 앉은 누더기 노인은 지금의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은 모습으로 변함없이 그대로 머물러 있었지만,

이제 노인이 된 아이는, 그때부터 지금까지 아무 의구심도 없이 누더기 노인을 태산처럼 여기며 공손히 따르며 살아왔다.


누더기 옷의 노인이 애잔한 미소를 지으며, 그의 앞에서 불편하게 엉거주춤 앉아있는 노인을 응시하였다.


“몸뚱이를 이기기에는 힘들 것이다. 편히 앉거라.”


“네, 어른 감사합니다. 그럼...”


멋쩍은 표정을 지으며 주인 할아버지가 뉘적 뉘적 다리를 펴는 듯하더니, 한쪽 다리를 굽히며 두 손으로 잡아 안았다.


가만히 이 모양을 바라보던, 누더기 노인이 다정스럽게 말을 건넸다.


“네 어머니가 망천강을 건너기 힘든 이유가, 너 때문 이었단다”


“네?... 아, 네 어른...”


주인 할아버지에게는 의아한 말 이었지만, 역시 그저 평온한 미소만 짓고 있었다.


‘ 자식을 두고 발길을 떼지 못하는 여인이 너무 안쓰러워, 네가 한생을 다 할 때 까지는 돌보아 줄 테니, 편안한 마음으로 망천강을 건너라고... 네 어미와 약속을 해 버린 걸, 어떻게 하겠느냐.’


누더기 노인이, 이젠 힘없이 고꾸라지듯 앉아있는 눈앞의 노인을 바라보며 이전의 일을 떠올리고 있었다.


하지만 주인 노인의 생각에는, 이 어른께서 그의 어머니의 마지막 길을 곁에서 지켜 주셨으리라고만 생각하고 있을 뿐이었다.


“어머니가 돌아가실 때 까지도 끝까지 옆에서 보살펴 주시고 저까지 평생 거두어 주셨는데, 이 은공을 어떻게 갚을 길이 있겠습니까 !”


그런데 누더기옷의 노인이 오히려 재미있다는 듯이, 주인 할아버지를 요리조리 쳐다보고 있었다.


“네 어머니께 내가 한 약속 이었을 뿐이다. 내가 시간 날 때, 딱히 할 일도 없고... 쌓이는 돈을 거기서는 쓸 때도 없고. 허허..."




함께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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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 태마경의 위력 +4 22.09.04 39 6 12쪽
59 귀신 잡는 말 +2 22.09.03 38 6 12쪽
58 초요의 손님 22.09.02 34 5 11쪽
57 위기의 운우 +2 22.09.01 44 5 14쪽
56 자운 돌보기 22.08.31 38 5 14쪽
55 마존과 연수의 거래 +2 22.08.30 38 4 12쪽
54 무모한 정 22.08.29 43 4 12쪽
53 보연의 언니 22.08.28 40 4 12쪽
52 운우의 흑화 +2 22.08.27 48 4 13쪽
51 자운의 부활 22.08.26 42 5 12쪽
50 정심검의 또다른 여인 +2 22.08.25 41 5 14쪽
49 귀진검의 공격 22.08.24 41 5 11쪽
48 염라옥의 흐물요괴 +2 22.08.23 45 4 12쪽
47 귀왕에게 잡힌 운우 +2 22.08.22 42 4 11쪽
46 전신과 마존의 악연 +2 22.08.21 48 5 13쪽
45 사라진 운우 22.08.20 42 5 12쪽
» 망천강의 손님 22.08.19 42 6 13쪽
43 그믐밤의 연인들 +2 22.08.18 49 6 16쪽
42 보연의 거래 22.08.17 42 6 12쪽
41 애매한 고백 +2 22.08.16 42 6 12쪽
40 귀왕에게 향한 보연 22.08.15 41 5 12쪽
39 슬픈 마존 +2 22.08.14 46 5 16쪽
38 촉수귀의 습격 22.08.13 45 5 13쪽
37 조용한 위기 +4 22.08.12 55 5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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