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월검의 연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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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해품글
작품등록일 :
2022.07.03 19:15
최근연재일 :
2022.10.09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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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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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1,8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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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8.20 1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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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2쪽

사라진 운우

DUMMY

“아. 네... 어른.”


여전히 알아듣지 못할 말만 하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평생 그는 언제나 이 아비와 같은 존재에게 말대답을 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구야, 넌 평생을 너와 같은 고아들을 위해 착한 일을 하면서 살았으니, 네가 세상을 떠나는 날에도 반드시 나를 다시 만나게 될 것이다.

편안한 마음으로 네게 펼쳐지는 길만 따라서 가거라.”


“네... 어른.”


반쯤 정신이 없는 표정이었지만, 여전히 노인은 공손히 웃으며 대답하였다.


“이번에 가져온 돈도 저 창고 방에 쌓여 있을 것이다. 네가 갑자기 떠나도 저 아이들이 무탈하게 자라도록 잘 정리를 해 두어야 하지 않겠느냐?.”


“네 어른. 마침 제게도 말년의 복이 많아, 가족같이 살뜰히 챙겨주는 아이가 제 곁에 하나 남아 있었습니다.”


집 주인 노인이 마당 한쪽 우물가에서 아이들을 씻기고 있던 처자에게 눈길을 돌리며 이름을 불렀다.


“도윤아 ... 이리 와서 어른께 인사 올리거라. ”


잘 익은 복사 열매처럼 생기가 흐르는 여인이, 노인의 말에 물기를 머금은 손을 그대로 움켜쥔 채 일어나 웃음기 가득한 표정으로 이곳을 쳐다보고 있었다.


급한 대로 앞치마를 돌돌 말아, 씻기던 아이의 얼굴을 닦이고 자신의 손까지 야무지게 닦은 후, 다시 앞치마를 탈탈 털어 펼치며 노인 쪽으로 잰걸음으로 다가왔다.


“네 할아버지, 무슨 일이세요?”


“인사 올리거라. 이 곳을 있게 해주신 분이시다!"


여인이 방금 전의 수줍음을 거두고, 씩씩한 말투로 두 노인 앞에서 고개를 조아리며 인사를 올렸다.


“소녀 인사 올립니다 어른, 도윤이라고 합니다.”


누더기의 노인이 여인을 한동안 바라보더니, 크게 소리 내어 웃기 시작하였다.


“그래, 좋구나 ! 저 돈을 쓰기에 딱 좋겠구나.”


여인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두 노인을 번갈아 바라보고 있었다.


“얘, 아가야! 저 돈은 쓰는 사람이 옳으면 좋은 일을 불러 올 것이고, 쓰는 사람이 옳지 않으면 많든 적든 쓴 돈의 몇 갑절만큼 액운이 생기게 만드는 무서운 힘을 가지고 있단다.”


누더기 노인의 이야기를 옆에서 함께 듣고 있던 노인이 뿌듯한 표정으로 말을 보태었다.


“그래, 한때는 저 창고 방에 돈이 넘쳐난다는 얘길 어떻게 들었는지, 도둑들이 거의 밤낮으로 찾아 들끓었었지.

하지만 저 돈을 몰래 훔쳐간 이들이 저 돈만 쓰면 좋지 않은 일이 생기니까, 이제는 소문이 나서 창고 방을 하루 종일 열어 두어도 돈이 도둑맞는 일은 절대 일어나지 않게 되었단다.”


“아, 네...”


호기심이 가득한 얼굴로 여인이 즐겁게 대답하였다.


“어디보자...! 너의 천기를 조금만 훔쳐보자구나.”


누더기 옷의 노인이 두 눈을 반쯤 감은 채로, 앞에 선 여인의 이마를 지그시 바라보았다.


잠시 후, 움찔 놀라며 반쯤 감았던 눈을 크게 부릅뜬 노인이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그럴 리가 없는데 ... 이유도 없이 저렇게 큰 비와 바람을 세상에 부린다고...?’


누더기 노인이 근심스러운 표정을 떨치지는 못했지만, 희미하게 미소를 지으며 여인에게 말을 이었다.


“얼마 후에, 큰 비와 바람이 불어 마을사람들이 많이 위험 하겠구나.

네가 그들까지도 책임을 져야 할 것 같으니, 미리 많은 방을 정리하고 먹을 것을 사들여 놓도록 하여라.”


여기 까지 말을 꺼낸 노인이 찻잔을 들어 올리며 생각에 잠기려 할 때였다.


“도하 노인 !”


급하게 대문으로 들어 선, 이 출중한 외모의 젊은이를 모두가 넋을 놓은 채 바라보고 있었다.


어디서 왔는지, 구김하나 얼룩하나 없이 귀해 보이는 옷감을 걸치고 하얀 얼굴과 붉은 입술에서 흘러나오는 말투는

어떤 말만 하면서 살았기에, 그의 아름다운 모습에 견줄 수도 없을 만큼의 위엄 또한 가득 느껴지고 있었다.

아마도 궁의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임이 분명할 것이라고, 주변의 인간들이 생각을 하고 있었다.


“아니, 선풍...”


갑작스러운 상신의 등장에 놀라기는 했지만, 누더기 노인이 젊은이를 반기며 호탕하게 대답하고 있었다.


“ 지금쯤 많이 바쁘실 텐데, 여기까지 웬일인 게요? ”


하지만, 인간계에 급하게 내려온 상신의 표정이 딱할 만큼 많이 어두워 보였다.


“운우가 오지 않았네!"


“... 뭐라 구요 ? 어떻게 그런 일이 !”


손가락을 세워 마디를 짚어보던 노인이 의아한 눈빛을 띠며 젊은이를 쳐다보았다.


놀란 듯이 마주보는 노인과 젊은이에게, 위아래의 관계는 별로 중요한 것 같아 보이지 않았다.


“도하, 일단은 빨리 돌아가서 상황을 알아보아야 할 것 같네. ”


선풍이 다급한 어투로 노인을 재촉하고 있었다.


“그렇게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어 허... 참! 이 무슨 일인지 ! ”


누더기의 노인도 자리에서 일어나 급한 걸음으로 대청마루 아래로 나섰다.


주변의 사람들에게 다급한 듯이 간단히 눈인사를 건넨 후, 젊은이와 함께 대문 쪽으로 나서자

집주인 노인은 언제나 그랬다는 표정으로, 미소만 지으며 뒷모습을 향해 허리를 굽혀 인사를 하였다.


그들의 사라지는 모습을 잠시 바라보고 서 있던 도윤이, 이 보기 드물게 훤칠한 젊은이의 모습을 한번이라도 더 보기위해

그들의 뒷모습이 사라지기 전, 얼른 문 쪽을 향해 한달음에 달려가 보았다.


하지만 대문 기둥을 잡고 선채로 노인을 향해 돌아선 도윤이 놀란 눈을 커다랗게 뜨고 있었다.


“사라졌어요. 할아버지 !”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숱 작은 푸석한 수염을 한 손으로 건들며 노인이 다시 천천히 대청마루에 걸터앉았다.


“어른께서는,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큰길로 다니지 않으신다. 다음에 오시려면, 또 한참이나 후가 될 텐데... 한 번 더 뵐 수나 있으려나..."


노인의 다음 말은 더 넓게 펼쳐진 푸른 하늘을 바라보며 입속으로 중얼거리고 있어서, 도윤은 귀를 기울여도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 ... 한평생 어른 덕에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걱정 없이 잘 지낼 수 있었습니다. 감사 했습니다...!"



****


“소당, 좀 가만히 있어봐. 앗 차가워 !”


정영지 연못 가장자리에서 물에 담기기를 거부하는 강아지가, 네 다리를 푸덕거리며 사방으로 물살을 튀겨내고 있었다.


머리와 얼굴에 온통 물을 뒤집어 쓴 자운이 소당을 물에 담구어 씻기느라, 애를 먹고 있었다.


“너 그 모양으로는, 마존께 그냥 가기에 민망하지 않겠니?

지금 하는 거 봐서, 아까 일은 비밀에 부쳐줄 테니까. 협조 좀 하는 게 어떨까 !”


그래도 협박이 먹혔는지 갑자기 소당의 기가 꺾이며 축 늘어졌고, 처음보다는 수월하게 목욕을 끝낼 수가 있었다.


이전, 현연과 자원과 항상 함께 앉아서 소일을 하던 널따란 바윗돌위에 소당을 올려놓고, 그 옆에 예전처럼 두 다리를 쭉 뻗치고 앉아 보았다.


그때가 벌써 아득한 기억너머의 일이 되어 버린 것 같은 생각에 마음이 무거워지자, 맞추어 눈시울도 무거워 지고 있었다.


“앗 차가워 소당 !”


생각이 멈출 겨를도 없이 놀란 운의 옆에서, 소당이 있는 힘껏 몸을 비틀며 물기를 털어내고 있었다.


머리에서 꼬리 끝까지 시원스럽게 물기를 털어낸 작은 강아지가 이번엔 뉘적뉘적 자운의 두 다리 위로 올라오더니,

고단한 듯이 입을 크게 벌려 하품을 한 후에 자운의 두 다리 위에서 잠이 드는 것 같았다.


“그래. 어차피 아까부터 다 젖어 있었으니까, 좀 더 축축해져도 괜찮지 뭐 ... 이대로 한숨 자고 일어나면 집에 데려다 줄게, 푹 자라 소당.”



그녀의 무릎위에 올라앉은 축축하게 젖은 솜털 같은 강아지를 쓰다듬는 사이,

조금 전 인간계에서 전신과 함께 한 순간이 떠오르자, 온몸으로 뻗치는 열기에 그녀의 가느다란 손끝이 살며시 떨리고 있었다.



****



하늘에서 구름을 뚫고 나온 햇살 길 아래에 서 있으면, 연분홍 볼 빛이 유독 사랑스러워 보인다는 생각이 들고 있었다.


항상 검은 옷을 입고 다니며 바램이라는 것을 가져 본 적이 없었던 그는,

언제 부턴가 비를 맞을 때, 눈을 맞을 때, 그리고 아파서 잠이 들었을 때 담겨진 그녀의 모든 순간의 모습들을,

이제는 정말 혼자만의 기억 속에 담아두고 싶다는 욕심이 생기게 된 것 같았다.




파한정의 입구 안으로 들어섰지만, 주인의 흔적이 느껴지지 않는 곳에서 어디로 향해야 할지 몰라 한동안 가만히 서 있기만 하는 자운의 모습을,

조금 떨어진 곳의 가장 높은 나뭇가지위에 걸쳐 누운 그가, 가만히 바라만 보고 있었다.


뽀송뽀송해진 강아지를 품에 안은 채, 발그레한 볼 살을 살짝 집어 물며 난처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


“아무데로나 가... 너 가고 싶은 곳으로 !”


허공에서 울리는 목소리에 자운이 함박웃음을 지었다.


반면 이상하리만큼 얌전해진 소당이 자운의 품속으로 꺼져 들어 갈 듯이, 꼬리조차 말아가며 웅크러들고 있었다.


“마존, 어디계세요?”


“여기..."


햇살을 뚫고 바라보는 자운의 반쯤 작아진 눈 속으로, 나뭇가지에 걸린 채 팔랑거리는 마존의 검은 옷자락이 비쳐들고 있었다.


“우와- 근사한 곳에 계시네요! 파한정 주변이 다 보이겠죠?”


한 손을 이마 앞으로 갖다 붙여 그늘을 만들며, 높다란 가지 위를 요리조리 살피고 있었다.


“올라와 볼래?”


“네. 마존 !”


대답이 참 급하게 나왔다.


“위로 올라와. 내가 당겨줄게.”


“네!”


이번에는 마존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더 빨리 대답이 반응했다.


동시에 자운이 한손으로 수인을 맺으며, 그가 걸쳐있는 나무 가지위로 찬찬히 올라가기 시작했다.


자운의 연 노란빛 옷자락이 나비의 날갯짓처럼 그녀를 감싸 안고 펄럭 거리며 나무의 반쯤까지 올라왔을 때, 이번에는 마존이 맺은 수인이 반응하며 자운을 더 높은 곳으로 가볍게 당겨 올리기 시작했다.


소당을 안은 채로 마존이 이끄는 기운에 싸여, 자운이 그의 곁으로 사뿐히 함께 걸쳐 앉았다.


“정말 멋져요! 파한정이 이렇게 생겼구나... !"


깊은 나무숲이 색을 달리하며 빽빽하게 펼쳐져 있고, 그 사이에는 간간이 계곡들도 흐르고 주변에는 꽃과 새들이 부지런히 그들의 삶을 이어가고 있었다.


자운의 긴 머리칼이 허공 위를 흩고 지나가는 바람결을 따라 날리며, 마존의 얼굴 위를 어루만지듯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마존이 그녀의 목뒤로 가만히 손을 뻗어, 흩어 진 머리칼을 가지런히 모아 한쪽 어깨위로 넘겨주었다.


하지만 바람에 마음이라도 담긴 것인지, 이내 심술궂게 곧바로 ‘파-' 하고 불어대는 통에,

모아둔 머리칼이 한꺼번에 일어나 흩어지며, 마존의 얼굴과 가슴 앞으로 안기듯이 온통 덮치고 있었다.


한꺼번에 밀어닥친 여인의 향은, 안 그래도 어색하게 앉아있던 마존의 몸을 사정없이 몰아붙이며 비틀거리게 만들어 버렸다.


잠시 중심을 잃고 하마터면 떨어질 뻔하는 모양을 자운의 품안에 다소곳이 앉아 있던 소당이 놀란 눈을 동그랗게 떠서 쳐다보고 있었다.


자운도 어렴풋한 느낌이 들자, 마존을 돌아보며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아, 마존... 높은 곳이어서 그런지 바람이 세게 부는 것 같아요. 제가 소당이 때문에 손을 놓을 수 없으니, 마존이 제 머리칼을 대충 좀 닿아주시겠어요 ?”


“보 본존은, 그런 거 ... 해본 적이 없는데, ”




함께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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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 마존 형님 +2 22.09.08 44 5 11쪽
63 운우에게 부는 바람 22.09.07 44 5 12쪽
62 다시 만남 +2 22.09.06 38 5 10쪽
61 상심석 +2 22.09.05 40 5 12쪽
60 태마경의 위력 +4 22.09.04 39 6 12쪽
59 귀신 잡는 말 +2 22.09.03 38 6 12쪽
58 초요의 손님 22.09.02 34 5 11쪽
57 위기의 운우 +2 22.09.01 44 5 14쪽
56 자운 돌보기 22.08.31 38 5 14쪽
55 마존과 연수의 거래 +2 22.08.30 38 4 12쪽
54 무모한 정 22.08.29 43 4 12쪽
53 보연의 언니 22.08.28 40 4 12쪽
52 운우의 흑화 +2 22.08.27 48 4 13쪽
51 자운의 부활 22.08.26 42 5 12쪽
50 정심검의 또다른 여인 +2 22.08.25 41 5 14쪽
49 귀진검의 공격 22.08.24 41 5 11쪽
48 염라옥의 흐물요괴 +2 22.08.23 44 4 12쪽
47 귀왕에게 잡힌 운우 +2 22.08.22 42 4 11쪽
46 전신과 마존의 악연 +2 22.08.21 48 5 13쪽
» 사라진 운우 22.08.20 42 5 12쪽
44 망천강의 손님 22.08.19 41 6 13쪽
43 그믐밤의 연인들 +2 22.08.18 49 6 16쪽
42 보연의 거래 22.08.17 42 6 12쪽
41 애매한 고백 +2 22.08.16 42 6 12쪽
40 귀왕에게 향한 보연 22.08.15 41 5 12쪽
39 슬픈 마존 +2 22.08.14 46 5 16쪽
38 촉수귀의 습격 22.08.13 45 5 13쪽
37 조용한 위기 +4 22.08.12 55 5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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