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월검의 연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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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해품글
작품등록일 :
2022.07.03 1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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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0.09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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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9.03 1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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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귀신 잡는 말

DUMMY

그가 말고삐를 살짝 움켜잡자, 대답이라도 하는 듯이 하얀 말이 경쾌한 콧소리를 몇 번 푸드득 거린 후에, 믿기지 않을 만큼 가볍고 빠른 속도로 길 위를 달려 나가기 시작했다.


동시에 그들이 앞서 나가는 길의 뒤쪽에서는, 멀리서 이 모습을 보고 급하게 달려온 연수가 경망스럽게 목소리를 질러대며 초요를 부르고 있었고, 하얀색의 작은 강아지 봉순이도 앙칼지게 함께 짖어대고 있었다.


그들의 소리에 놀란 시장사람들이 두 눈이 동그래져서 쳐다보고 있었지만, 포기하지 못한 연수가 한참동안이나 말 뒤를 따라오며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다.


그의 가슴 아래 둘러싸인 채 뒤를 돌아볼 엄두조차 낼 수 없는 초요가 얼버무리고 있는 사이, 초요를 태운 말은 사람들의 관심과 연수의 동동거림을 저만치 두고 재빨리 시장을 빠져 나오고 있었다.


초요가 사라지는 곳을 향해 외치고 서 있던 연수와 봉순이가 근처 지붕위에서 이런 모습을 바라보고도 가만히 서 있는 검은 개를 쳐다보았다.


검은 개도 초요가 사라지는 곳을 바라보고 있었지만 이상하게도 가만히 서 있는 모양새가, 전혀 움직여 볼 생각은 없어 보이는 것 같았다.


끓어오르는 가슴을 두드리며 연수가 지붕아래에서 당당을 다그치고 있었다.


‘안 따라가?’


봉순이도, 연수와 당당을 번갈아 쳐다보며 연신 짖어대고 있었다.


‘괜찮아, 기다려!'


당당의 목소리가 연수의 귓전으로 굵고 짧게 울린 후, 금방 사라졌다.


‘끄응...’


무척이나 의지하던 당당이 이렇게 무책임하게 내뱉는 소리에 기운이 빠진 봉순이가, 꼬리를 내리고 바닥에 주저앉아 버렸다.



**



얼마 전 하늘에서 내린 재앙이 세상을 할퀴고 지나갔다고는 하지만, 인간들의 의지와 힘은 경이로울 정도로 강하고 다부졌다.


신의 분노를 이겨낸 인간들이 만들어낸 세상은, 다시 이처럼 아름답고 감탄이 절로 나올 만큼 질서 정연하게 회복이 되어가고 있는 중이었다.


사내가 말한 것과는 다르게, 포구가 그다지 근처에 가까이 있는 것 같지는 않아 보였다.


재빠르게 달리는 말위에서도 한참을 달린 후에나, 넓은 강가에 큰 배들이 어수선 하게 매여 있는 곳에 도착하였다.


하얀 말이 또각또각 소리를 내며 강의 하류 쪽으로 걸어 나가자, 넓어지는 수면과 함께 점차 조용해지는 강변이 눈앞에 서서히 펼쳐지기 시작했다.


오후의 햇살을 받으며 흘러가는 강의 수면은, 물살위로 내려앉는 빛을 품은 채로 꿈틀 꿈틀 물결이 이는 대로, 아래로 이어지고 있었다.


얼마동안 그녀를 괴롭혀오던 산란하던 마음이, 강바람을 타고 조금씩 흩어지고 평안해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들고 있었다.


세상 구경을 처음 하는 사람처럼 온통 신기하게만 보이는 풍경 속에 빠져 있을 때쯤,


수면 위를 타고 내려가던 낮은 바람결이 그들 쪽을 향해 급하게 휘감고 지나가자,

흰말의 윤기 나는 갈기와 사내의 흩어지는 머리칼과 함께, 사내가 입고 있는 하얀 도포자락까지 사방에서 어지럽게 날리는 통에, 그 속에 감겨있던 초요가 방향감각을 잃고 또다시 말 위에서 휘청거리며 떨어질 뻔 하였다.


고삐를 잡았던 한 손을 놓으며 얼른 그녀의 허리를 다시 감싸 안은 사내가, 낮은 음성으로 알아듣기 힘든 말을 그녀의 귓가에 짓궂게 속삭이고 있었다.


바람결과 섞여진 그의 음성이 간지러웠던 탓에 어깨를 움츠리며 신경질적으로 초요가 뒤를 돌아보자. 이미 뒤쪽의 사내가 마치 기다리기라도 했다는 듯이 그녀를 지그시 내려다보고 있었다.


“공자, 사내가 이렇게 허리가 약해서 되겠소? 운동도 좀 하고 밥도 좀 더 많이 먹어야 할 것 같소!”


이내 짓궂은 표정으로 바뀐 사내가 초요에게 놀리듯 말을 건넸다.


발끈하며 무슨 말인가를 하려던 초요가, 볼 살을 볼록하게 내밀며 입술을 오므려 버렸다.


“배를 타려는 건가요?”


이번엔 초요가 무뚝뚝하게 말을 건넸다.


“그렇소.”


“먼 곳으로 가는가 보죠?”


“그렇소.”


처음 같지 않은 친숙한 느낌이 드는 사내에게 묘한 기분이 드는 것은 분명한데,

한편으로는 아무 남자에게나 이렇게 마음이 쉽게 끌리는 자신에게, 오히려 한심하다는 듯이 한숨까지 내쉬고 있었다.


“그럼 전, 어떻게 돌아가요?... 너무 멀리 온 것 같은데.”


“걱정마요.”


‘... 뭘 걱정 안 해 ... 묻지도 않고 이렇게 멀리까지 와 놓고선.'


“ 더 생각 안 해도 되요. 힘들게 하진 않을 테니까요. 약속해요!"


‘딸 꾹!'


그녀의 속마음에 답을 해버린듯한 사내의 대답에, 순간 초요가 깜짝 놀란 듯이 굳어버렸다.


“여기서도 그 습관은 그대로 네요? 긴장하면 딸꾹질부터 나오는 거.”


“네?”


그의 다음 대답은 없었다.


못 들은 듯이 말의 고삐를 당기더니, 어느새 사내는 아무 말 없이 가볍게 말에서 내리고 있었다.


“자 이쯤에서 이제 헤어져요. ”


“네?”


그의 입에서 헤어지자는 소리가 나오자, 이상하게 초요의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것 같았다.


“곧 다시 만날 거예요.”


그녀만의 생각을 잘도 받아주는 남자에게 호기심과 함께 두려움도 살짝 들기는 했지만, 이제는 두려움마저도 짜릿한 흥분으로 들뜨는 기분이었다.


처음만난 사내와 잠시 함께 있었을 뿐이었지만, 초요에게는 처음으로 모든 순간이 꿈처럼 빠르게 지나가는 것처럼 아쉽다는 생각만이 주책맞게 들고 있었다.


“그래서 ... 이 말을 잠시만 맡아줘요. 내가 돌아오면 다시 찾으러 갈게요. ”


말에서 내린 남자가 초요의 손에 대뜸 말고삐를 쥐어주며 여전히 함박웃음 속에서 유난히 맑은 목소리로 말을 건넸다.


“전 말을... 못 타요.”


“아뇨 탈 수 있을 거예요 쉬워요. 집에서 멀리 나갈 땐 이 말을 타고 다녀요.

혹시 급하면 말 이름을 부르면 얘가 알아서 달려 올 거예요. 얘가 좀 똑똑하죠. 집에 가면 연습해 봐요.”


' 원래 못타는 말을... 탈 줄 안다면, 타지나...? 답답하네! '


또다시 그녀의 속마음을 읽었는지, 초요의 얼굴에서 눈을 떼지 않던 사내가 짧게 웃음을 지어보이며 돌아섰다.


“배타는 데 까지 너무 멀잖아요?”


초요의 생각과는 전혀 다르게, 오히려 그를 걱정하는 말이 튀어 나왔다. 하지만 사내가 대답대신 가던 길에 그대로서서 손만 흔들어 줄뿐이었다.


" 그럼... 어떻게 알고 찾아올 거예요?"


사내에게 또다시 초요가 소리쳤다.


“괜찮아요 찾을 수 있어요. 그리고 그 애 이름... 숙이에요. 맑고 착하다는 뜻이에요!"


사내가 참 빨리 멀어지고 있었다.


“그나저나 큰일이군... 고삐를 잡고 걸어가려고 해도, 높아서 내리지도 못하겠는데... 어떻게 하지?”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살며시 고삐를 잡고, 말목을 안 듯이 궁둥이를 쭉 빼고 납작 엎드려 두발을 꼼틀해 보았다.


“숙아 가자...!"


말이 꿈쩍도 하지 않았다.


“응? 왜 안가니?”


초요가 엎드렸던 상체를 일으켜 이번에는 옆으로 비스듬히 숙여 말의 얼굴을 살펴 보려하자, 말이 먼저 머리를 돌려 그녀를 바라보는 듯하더니,


말이 움직였다. 그것도 미동도 없이 아주 조심스럽게,


그리고 잠시 후, 엎드리지 않아도 말을 타고 갈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자, 기분이 우쭐한 것이 ... 스스로의 재능에 탄복 하면서 자신 있게 내달리기까지 하고 있었다.


신이 난 기분 탓인지, 돌아오는 길은 너무 짧다고 생각이 들 만큼 금방 시장 안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사내와 만났던 곳, 연수가 소리 소리 지르며 따라오던 곳까지 온 것 같았다.


둘러보니, 연수가 부서진 의자중 하나에 위태롭게 걸터앉은 채로, 재주 좋게 졸고 있었다.

그리고 개인데도, 주인의 인기척에도 전혀 반응이 없는 봉순이는 연수의 무릎위에 올라앉아, 이불솜을 뜯어 말아놓은 하얀 솜뭉치처럼 몸을 동그랗게 말고 깊은 잠에 빠진 것 같았다.



초요가 없는 동안 조금 떨어진 지붕위에서, 이렇게 길거리에서 함부로 잠들어 버리는 이들을 지켜보느라 지루해진 당당이, 드디어 말을 타고 나타난 초요를 붉은 눈을 번뜩이며 날카롭게 바라보고 있었다.


‘정치마’


“응? 머라고?”


당당이 중얼거리는 소리에 연수와 봉순이 부스스 눈을 뜨고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아, 정치마 !'


잠이 덜 깬 어렴풋한 윤곽에도, 다가오는 말의 모습에 연수가 놀란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아까 타고 나가던 말 궁둥이가 어째 좀 드세 보이는 것이, 유난스러워 보인다고 생각했더니만..."


천계의 장수들이 타는, 귀신을 두려워하지 않는 신령스러운 말이었다. 오히려 귀신들을 물리칠 수 있을 만큼 영험한 기운을 가지고 있는 탓에,

지옥의 신물인 삼두견과는 상극의 관계이기도 했다.


지붕위에서 지켜보던 당당의 입 언저리가 무시무시하게 당겨 올라가고 있었다.


심상치 않은 분위기에 놓인 이들 사이에서 연수가 지붕의 당당을 향해 약하게 머리를 흔들어 보였고,

봉순은 당당의 눈앞을 왔다 갔다 하면서 앙증맞은 소리로 짖어대며 그의 기분을 풀어주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웬, 말이야...?”


“아까 함께 갔던 공자가 잠시만 맡아 달라고 부탁한 거야. 어디 다녀 오려나봐.”


“아...그래, 아까 그 신선. 아니 신선처럼 멋있던 그 사람. 전신이었나 보네."


"... 응? 뭐라고 말했어 연수언니?"


연수가 기어들어가는 소리로 감탄 섞인 소리를 혼자 중얼거리고 있었다.


삼두견을 발견한 정치마도 지붕 위를 바라보며 거칠게 앞발을 구르기 시작하자, 말위에 앉아있던 초요가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숙이의 갑작스런 반응에 당황해 하고 있었다.


연수도 봉순이도 심란한 마음을 부여잡고, 조심스럽게 지붕 위와 땅 아래를 번갈아 바라보며 눈치를 보고 있었다.


하지만 잠시 후 초요가 눈치 채지 못하게, 지붕 위를 바라보던 연수가 깜짝 놀라고 있었다.

언제나 눈만 돌리면 바라볼 수 있었던 삼두견이 갑자기 보이지 않았다.


‘이런, 어디 간 거야? 정말 삐친 거야? 중천의 공주는 주변이 왜 이렇게 정리가 안 된 거야 ! 마존인 거야. 전신인 거야 ?

마존은 이런 삼각관계를 알고 계시기나 하시나...? 쯧쯧. 검은 옷과 하얀 옷 중에서라... 둘 다 너무 멋있긴 하지...'


삼두견이 사라진 걸 확인 한 연수가, 이젠 대놓고 진심으로 정치마의 위용과 자태에 감탄을 연발하고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하얀 솜뭉치처럼 앉아 있는 봉순이는 우울한 눈빛으로 지붕 위만 연신 쳐다보고 있었다.


“한번 타 봐도 돼?”


연수가 도망가려는 정치마의 고삐를 잡고, 집요하게 따라 다니고 있었다.


조금 떨어진 곳의 지붕위에서는 삼두견과는 또 다른 검은 기운이 그들의 주변을 배회하고 있었다.


“이 쯤 일 텐데? 지옥의 개가 이쯤에서 버티고 있었으니, 이 근방에서부터 찾으면 되지 않겠어?”


이목구비가 온통 흐릿한 귀신들이 주변을 어슬렁거리며 돌아다니고 있었다.




함께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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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2

  • 작성자
    Personacon 이웃별
    작성일
    24.01.15 21:18
    No. 1

    삼두견을 발견한 정치마 → 영치마 ㅎㅎ
    솜뭉치 같은 봉순이 저도 안아보고 싶네요^^ 당당이 신경쓰는 거 넘 귀여워요. :)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14 해품글
    작성일
    24.01.15 22:19
    No. 2

    안녕하세요. 이웃별님~
    별님 댓글보고, 제가 깜짝 놀라서.. 몇편을 검색을 했는데..
    사실은, 전신의 말 종류가 처음에는 ‘영치마’로 했다가..
    나중에 제가 전편을 정리하면서, ‘정치마’로 다시 바꾸었는데,
    이 부분이 덜 바뀌어진 것 같아요.
    흐름이 깨어지시지나 않았을지, 너무 걱정이 되고 조심스러워서...
    얼마나 놀랐는지..
    앞으로는 계속 ‘정치마’로 나올 것인데..
    죄송합니다..ㅠㅠ
    이 부분은 얼른 다시 고쳐두도록 하겠습니다.!!
    항상 깊은 관심으로 보아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별님~~^^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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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 초요의 계획 22.09.10 40 6 12쪽
65 상심석의 응답 22.09.09 38 5 11쪽
64 마존 형님 +2 22.09.08 44 5 11쪽
63 운우에게 부는 바람 22.09.07 44 5 12쪽
62 다시 만남 +2 22.09.06 39 5 10쪽
61 상심석 +2 22.09.05 40 5 12쪽
60 태마경의 위력 +4 22.09.04 39 6 12쪽
» 귀신 잡는 말 +2 22.09.03 39 6 12쪽
58 초요의 손님 22.09.02 35 5 11쪽
57 위기의 운우 +2 22.09.01 44 5 14쪽
56 자운 돌보기 22.08.31 38 5 14쪽
55 마존과 연수의 거래 +2 22.08.30 39 4 12쪽
54 무모한 정 22.08.29 44 4 12쪽
53 보연의 언니 22.08.28 40 4 12쪽
52 운우의 흑화 +2 22.08.27 48 4 13쪽
51 자운의 부활 22.08.26 43 5 12쪽
50 정심검의 또다른 여인 +2 22.08.25 41 5 14쪽
49 귀진검의 공격 22.08.24 42 5 11쪽
48 염라옥의 흐물요괴 +2 22.08.23 45 4 12쪽
47 귀왕에게 잡힌 운우 +2 22.08.22 42 4 11쪽
46 전신과 마존의 악연 +2 22.08.21 48 5 13쪽
45 사라진 운우 22.08.20 42 5 12쪽
44 망천강의 손님 22.08.19 42 6 13쪽
43 그믐밤의 연인들 +2 22.08.18 49 6 16쪽
42 보연의 거래 22.08.17 43 6 12쪽
41 애매한 고백 +2 22.08.16 43 6 12쪽
40 귀왕에게 향한 보연 22.08.15 41 5 12쪽
39 슬픈 마존 +2 22.08.14 46 5 16쪽
38 촉수귀의 습격 22.08.13 45 5 13쪽
37 조용한 위기 +4 22.08.12 55 5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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