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6 정말 어쩌지
#046 정말 어쩌지
정보상이 마을을 떠난 뒤, 우리는 이 일을 사람들에게 알려야 할지 말아야 할지 한참 고민했다.
정보상도 자기 눈으로 본 것은 아니다.
아직 소문에 불과한 일이기도 하고, 굳이 알려서 사람들을 불안하게 만들 필요가 있을까.
정병일은 상황이 확실할 때까지 덮어두자는 쪽이었다.
"너는 어떻게 생각해?"
서경덕은 자신의 의견은 말하지 않고 내게 물었다.
"글쎄."
언데드에 관해 내가 아는 것은 적다.
직접 겪어본 적은 없고, 단지 돌아다니며 안식의 주문만을 열심히 외웠기 때문이다.
다만 그런 과정에서 몇 가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원래 우리 도적단은 다른 마을과 교류가 없었지만, 뭐, 그건 당연하겠지, 도적이니까, 그래도 드물게 며칠 거리에 있는 마을에서 부여 마법사를 부르러 사람이 오곤 했다.
아무리 마법사가 많은 세계라고 해도, 외진 곳의 작은 마을에 마법사가 있는 경우는 별로 없다.
조금이라도 마법 소질을 가지고 있는 이는 근처 도시로 떠나버리고, 남은 건 아무 능력도 없는 평범한 사람들뿐이었다.
돈을 주면 마법사를 부를 수 있지만, 도시에서 멀리 떨어진 마을일수록 시가보다 많이 줘야 한다.
그 때문에 가난한 마을에서는 안식의 주문 없이 매장하는 일도 있었다.
우리 마을에 부여 마법사를 부르러 오는 곳은 그 정도로 가난한 마을이다.
도적단과 언데드의 두려움을 저울질해 보고, 결국엔 두려움을 누르며 달려오는 것이다.
도적단 마을이라고 팻말 걸고 있는 건 아니기 때문에 그저 지나치는 외지인 눈에 우리 마을은 평범해 보일 거다.
하지만 근처에 있는 마을에서는 대부분 우리가 도적단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아무리 숨기려고 해도 도적떼가 출입하는 모습은 결국 누군가의 눈에 띄게 되는 법이다.
보복이 두려워 대놓고 말하지 못하지만 결국 도적단이 자리 잡고 어느 정도 지나면 근처에서는 소문이 퍼지고 대부분 그렇다고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을에서 사람이 죽으면 부르러 오는 건, 언데드가 얼마나 무서운 건지 누구나 다 알기 때문이다.
도적단에서도 알고 있었다. 근처에 언데드가 생기면 모두 죽게 된다는 사실을.
그래서 시체 때문에 부여 마법사를 요청하면 도적 두목은 두말 않고 나를 그 마을에 보냈다.
내가 아는 건 그런 과정에서 주워들은 것이다.
별다를 것은 없었다.
언데드는 생기지 않는 게 최선이라든가, 일단 발생하면 팔다리를 잘라도 죽지 않는다는 것, 보통의 무기는 소용없다는 등의 이야기였다.
영화에 나오는 이야기와 비슷하다.
조금 다른 점이라면, 언데드를 죽이기 위해서는 성기사의 무기, 혹은 신전의 성수가 필요하다는 정도일까.
그것도 닿으면 그냥 죽는다는 건 아니고, 여러 번 찌르고 자르거나 성수를 곳곳에 뿌려야 한다고 들었다.
도시에서 언데드가 발생했을 때 목격한 사람이 부들부들 떨면서 그렇게 말해주었다.
그 사람 말대로라면, 성스러운 것에 닿으면 먼지가 되어 부서지는 편리함 따위는 없었다.
그리고 한 가지.
언데드는 전염된다.
다만 영화처럼 물린다고 곧바로 언데드가 되는 것은 아니다.
물려도 죽을 상황만 아니면 십 년 이십 년 평범한 인간으로 살다 평범하게 죽는다.
부상을 입은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평범한 사람과 다를 바 없었다.
언데드가 무서운 건 그 뒤였다.
언데드에게 물린 사람은 죽은 뒤에 언데드가 된다.
완전히 숨이 끊어지고 심장이 차가워지면 언젠가 그렇게 된다고 들었다.
언젠가다.
죽자마자 언데드가 될 수도 있지만, 일 년 뒤, 삼 년 뒤가 될 수도 있다.
그런 사람의 경우에는 안식의 주문도 소용없다.
안식의 주문은 인간에게 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들은 살아있을 때 인간과 똑같지만, 이미 인간이 아닌 존재로 변질된 것이다.
나는 잠시 생각한 뒤에 입을 열었다.
"알리는 게 좋다고 생각해. 영화나 소설과 같다면 언데드는 전염될 테니까. 좀비 영화나 소설에 많이 나오잖아. 물린 사람이 그걸 숨기고 들어와서 결국엔 그 단체가 모두 좀비가 되는 거. 그런 일이 생기지 말란 법도 없으니, 사람들에게 미리 주의를 촉구하는 게 좋겠지."
"으...."
서경덕이 짓눌린 개구리처럼 묘한 신음을 흘리고, 몸을 비틀어 정병일을 보았다.
"대장! 알립시다."
"하지만 아직 확실하지도 않은 일인데. 사람들이 동요하면 어쩌려고."
"언데드니 좀비니, 그런 건 무당 관할이에요, 대장. 무당이 그게 좋다고 말하면 그렇게 하는 거죠. 안 그러면 귀신이 노한다구요."
역시 서경덕은 내가 뭔가를 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정병일도 비슷한 마음인지, 길게 한숨 쉰 뒤 나를 쳐다보았다.
"그래. 보통 때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 네가 그렇게 말한다면... 그대로 하는 게 좋겠지. 일단 알리자. 그 뒤에는 뭘 주의하면 좋을까? 단순히 그냥 알리자는 건 아니지?"
"... 외부에서 온 사람 중에 물린 사람이 있는지 주의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우리 마을 사람 중에서도."
이번에는 서경덕이 한숨 쉬었다.
"으아... 역시 좀비의 정석대로인가. 물리면 좀비가 되어 버리는. 그건 좀 싫은데."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어디까지나 그렇지 않을까 생각한 것뿐이야. 내 말이 맞는다는 게 아니라."
"아니, 무당의 말이니까 믿는다. 그 외에는 없어?"
"...."
이번에는 즉시 답할 수 없었다.
말해도 될까.
이 두 사람은 믿을 수 있다.
그렇다고 생각해.
하지만 이번 일이 잘못돼서 내 소문이 이상하게 퍼지면?
나는 머릿속에서 다양하게 생각한 뒤 입을 열었다.
"물린 사람이 죽으면... 좀비가 되지 않더라도 완전히 화장하는 게 좋을 거라고 생각해. 그게 일 년 뒤든, 십 년 뒤든. 그리고 성수라든가 성스러운 창이라든가, 그런 게 필요하다고...."
"...."
"...."
정병일과 서경덕은 서로 시선을 마주친 뒤 나를 보았다.
뭔가 물어보고 싶다는 표정이다.
하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정병일이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다. 네 말은 명심하마. 성스러운 그... 창인지 성수인지는."
"잘 될지는 모르지만, 준비해 보겠습니다... 어... 어쨌든... 저는... 무당이니까요."
얼굴에서 불이 나는 것 같다.
보지 않아도 시뻘게졌다는 걸 알겠다.
하지만 이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사회가 멀쩡할 때도 무당의 말만 믿고 수천만 원 들여 굿을 하는 사람이 있었다.
나는 그런 걸 믿지 않았지만, TV에 나와 신병 때문에 신내림을 받았더니 원인도 없이 계속 골골하던 몸이 싹 나았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빙의니 신내림이니, 과학적으로는 증명되지 않은 여러 가지 일들이 우리 주변에는 다양하게 존재하고, 그걸 믿는 사람도 의외로 있는 것이다.
정보상도 지금 저 바깥세상에서는 미신이 판치고 있다고 하지 않았던가.
신의 아들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니, 내가 무당이라고 한들 그렇게 튀는 것은 아니다.
나보다 더 이상한 사람이 훨씬 많으니까.
게다가 무당이라고 하면 갑자기 생긴 것도 아니다.
오래전부터 있었던 직업이잖아.
나는 은근히 마녀사냥 같은 걸 걱정하고 있었지만, 무당은 그렇게까지 특이한 것도 아니니 괜찮을 거다.
얼마든지 더 이상한 사람들 틈에 묻어갈 수 있다.
서경덕이 손으로 입을 가리며 말했다.
"그래... 무당님... 잘 부탁해."
웃고 있구나.
"...."
나도 웃고 싶다.
그날 게시판에는 안내문이 한 장 붙었다.
안내문에는 좀비에 대한 소문이 있는 것, 물린 자국이 있는 사람을 발견하면 곧바로 자경대에 알릴 것 등이 커다란 글자로 적혀 있었다.
그리고 말미에는 누군가가 붉은 글씨로 이렇게 적었다.
[우리 마을에는 용한 무당이 있으니 걱정할 필요 없습니다. 대책은 세우고 있으니까요.]
그걸 쓴 사람은 아마 서경덕일 것이다.
아, 그 녀석을 정말.
나도 모르게 어깨가 축 늘어졌다.
게시판 앞에 모여 웅성거리던 사람들이 나를 보고 한마디씩 했다.
"무당님, 잘 부탁합니다."
"정말로 좀비가 있나요?"
"혹시 예지꿈 같은 건 없었습니까?"
"그... 신이 말씀하신다고 하잖아요. 귀신이. 전에 만난 무당이 그러던데요, 귀신들이 시끄럽게 떠든다고. 혹시 이 일에 대해서는 신이 아무 말도 안 하시던가요?"
왜 그렇게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거야.
무당이니, 신이니, 그딴 게 있을 리 없잖아.
하지만 그렇게 말할 수도 없고, 나는 어색한 웃음을 지은 채 대답은 하는 둥 마는 둥 하며 그 자리를 떠났다.
집으로 가는 길에 주희를 만났다.
"오빠!"
나를 찾아 집에 갔다 다시 돌아오는 길이었다고 한다.
"왜, 무슨 일 있어?"
내가 묻자, 주희가 가만히 내 얼굴을 올려다보다 사방을 둘러보았다.
가까이 있는 사람이 없는 걸 확인한 뒤 작은 소리로 묻는다.
"오빠, 혹시 진짜로 신기 같은 거 있어?"
"너까지 그런 걸 물어보면 어쩌니."
"... 하지만."
사람들이 모두 그렇게 말하고 게시판에까지 적히니 그녀도 혹시나 싶었던 모양이다.
이세계에 갔던 걸 못 믿는다는 게 아니라, 신기가 있어서 그런 곳에 불려간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그런 거 아니야. 형편에 좋아서 무당 행세를 하기로 한 거지."
"그랬어?"
왠지 좀 아쉬워 보이는 건 내 착각이지?
"일은 다 끝났니?"
"응, 오늘은. 며칠 전에 온 정보상 아저씨 있잖아. 그 사람이 물을 엄청 썼거든. 공짜라고. 그래서 오늘하고 내일은 물 보충한다고 목욕탕을 쉬기로 했어. 덩달아 우리도 쉬는 거야."
그런 식으로 해서 장사가 되나.
내 일도 아닌데 은근히 걱정된다.
뭐, 어차피 먹고사는 것 자체는 정병일이 외부에서 사냥하거나 찾아오는 물건으로 하는 거지만.
목욕탕은 일종의 부업이랄까, 마을을 부흥시키기 위한 노력의 일환인 셈이다.
나란히 집으로 돌아가면서 주희가 팔짱을 끼었다.
보통 이런 걸 하면 남녀 사이로 느껴질 텐데, 그녀의 행동은 왠지 아이가 아빠한테 하는 것 같다.
그녀가 잘 잡을 수 있게 팔을 구부리자, 씨름이라도 하려는 것처럼 그녀가 자신의 팔에 힘을 주었다.
꼭 나무에 매달리는 아이 같다.
뭐 하자는 건지 모르겠어.
일단 무시하자.
"고기 말리는 건 잘 돼가니?"
"하아아아아아."
주희 몸이 내 팔에 매달린 채 축 늘어졌다.
"그게 말이야. 잘못하면 곰팡이가 펴. 조금이라도 접촉하면 안 된다고 아줌마가 그래서 일일이 다 떨어뜨려 놨는데도 그런 부분이 생기는 거야."
보르츠는 원래 몽골의 추운 지방에서 만드는 것이다.
이곳보다 훨씬 추운 곳에서.
그리 쉽지는 않겠지.
"곶감도 만드니까 고기도 불가능하지는 않을 거야. 열심히 해봐."
"응. 아줌마도 똑같은 말을 했거든. 곶감이나 무말랭이랑 같은 걸 거라고. 하지만 고기에 곰팡이가 피면 막 화가 나는 거야. 이 아까운 고기를 버리다니, 하면서."
고기는 굉장히 작게 잘라 실에 꿰어 말리고 있다고 한다.
그 때문에 버리는 조각은 작지만, 그래도 어쩌다 곰팡이를 발견할 때마다 울고 싶어진다며, 주희가 반대쪽 손으로 주먹을 불끈 쥐었다.
"나는 어쩌면 불량 상인이 될지도 몰라. 곰팡이 피어도 그냥 말려서 파는. 그 정도로 아깝거든."
"뭐, 그렇게야 되겠니."
내가 머리를 쓰다듬자, 주희는 길게 한숨 쉬었다.
"오빠는 장사꾼이 되어보지 않아서 몰라. 내 살 같은 고기를 버릴 때마다 정말 피눈물이 나거든요."
하하.
몇십 년 가게 한 사람처럼 말해서 나도 모르게 웃자, 주희가 살짝 눈을 흘겼다.
그날 저녁 첫눈이 내렸다.
단열과 방풍은 제대로 작동하는 모양이다.
집안에 바람은 없고, 바깥보다는 그래도 춥지 않았다.
하지만 콘크리트라는 것이 원래 흙벽과 달리 차갑다.
예년보다 춥지 않은 겨울일 텐데, 실내에서도 하얗게 숨이 오르고 벽에는 손을 대지 못할 만큼 냉기가 넘쳐흘렀다.
"오빠, 엄청나게 추워. 눈이 오면 춥지 않다고 하는데 어째서 더 추운 것처럼 느껴질까?"
하얀 숨을 뱉으며, 주희가 창을 통해 하늘을 본다.
까만 허공에서 작은 눈송이가 하늘하늘 내려오고 있었다.
사람은 얼어 죽겠는데 눈은 예쁘다.
"난방 안 되는 콘크리트라는 게 원래 이래."
세계가 이렇게 변했는데도 눈이 오니 마음이 싱숭생숭하다.
왠지 아이로 되돌아간 것 같아.
두꺼운 담요를 주희와 함께 덮은 뒤, 나는 창밖을 보며 앞으로의 일을 생각했다.
"...."
성수와 성기사의 창은 어디에 가서 구하면 좋을까.
아무거나 붙잡고 글자를 적어 넣는다고 해서 성수나 성기사의 창이 되는 게 아니다.
'어쨌든 뭔가 성스러운 것이어야만 하는데....'
어떻게든 하겠다고 말은 했지만, 앞날이 깜깜하다.
정말 어떻게 하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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