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카데미 조연은 용사를 죽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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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피아사채
작품등록일 :
2022.12.11 16:53
최근연재일 :
2022.12.12 0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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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2.12 0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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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화 세리나 페르난데스

DUMMY

* * *


어두운 밤.


나는 길 한복판에 서서 누군가가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언제 나오려나.”


지루하다.


처음 이안을 기다렸을 때가 떠오른다.


지금 내가 기다리고 있는 이는, 미래의 이안의 동료가 될 마법사다.


카디안이 목숨을 바치고 구할 마법사.


나는 가만히 서서, 기다렸고.


이윽고 누군가가 나왔다.


푸른색의 머리카락.


어둠이 형체를 흐릿하게 만들지만.


여름바다의 색깔처럼, 찰랑이며 물결치는 색깔의 아름다운 푸른색을 띈 머리카락의, 호수 위의 한 방울 떨어뜨린 맑고 투명한 빙하 수 같은 눈동자와 백설처럼 하얀 피부를 지닌 소녀.


나는 그녀를 곧바로 알아볼 수 있었다.


“세리나?”


소녀가 뒤를 돌아본다.


“여긴 어쩐 일이야? 카디안.”


싱긋 웃으며, 답하는 세리나.


얘가 왜 여기 있는 걸까?


“뭐야 너가 왜 여깄어?”


“그러는 너는?”


“난 근처에 볼일이 있어서.”


“나도 마찬가지야.”


뭘까? 진짜 얘가 왜 여기 있는 걸까?


나는 그런 의문이 들었지만, 굳이 더 캐묻지는 않았다.


세리나가 나를 바라본다.


평소의 초롱초롱한 눈빛이 아닌, 누군가를 나와 겹추어 보는 눈빛이다.


요즘 자주 저런다.


나를 자꾸만 누군가와 겹추어 본다.


하지만 별로 상관없다. 나를 어떻게 보든 간에, 내게 해가 되는 것이 아니라면 말이다.


“그럼 나는 이만 돌아갈 게.”


“어, 잘 가.”


세리나와 나는 금방 헤어졌고, 나는 또다시 기다렸다.


내가 원하는 이를 찾기까지 말이다.


페르난데스 가문 사람이 나오기까지 말이다.


하지만.


그날.


나는 내가 원하는 이를 찾을 수 없었다.


* * *


아무 소득 없이, 나는 집으로 돌아왔다.


“오늘이 아닌 건가?”


나는 내 기억이 잘못된 게 아닐까, 의심했다.


하지만, 아니다.


분명 오늘이다.


소설 속에서는 항상 달의 마지막 날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니 오늘 분명 나와 마주쳤어야 한다.


하지만 마주치지 못했다.


나는 우선 다음 달을 기약하며, 생각에 잠겼다.


만약 다음 달에도 나타나지 않는다고 해도 일단 상관은 없다.


애초에, 내가 그 마법사를 찾기 시작한 이유도 그냥 간단하다.


아니 마냥 간단하지는 않다.


팔랑이며, 종이 한 장이 책상 아래로 떨어진다.


붉은 색으로 유독 강조하듯, 적은 문구가 눈에 띈다.


‘원작이 비틀어졌다.’


일주일 전쯤부터 계속하여 생각한 것.


원작의 내용대로 소설이 흘러가지 않는다.


3개월, 아니 이제는 2개월 뒤 있을 시험기간 때 벌어질 에피소드.


카디안이 죽는 에피소드.


그 안에서, 카디안이 죽는 이유는 한 명의 친구를 구하기 위해서였다.


친구. 그래 마법사와 카디안은 친구였다고, 소설 속에서 묘사한다.


카디안이 죽자, 각성하며, 이안의 동료가 되어 마왕을 죽일 파티원이 되는 마법사.


하지마 그 마법사가 보이지 않는다..


원래대로라면, 지금쯤 아니 이미 진작에 카디안, 즉 나와 아는 사이가 되어 친구가 되어있어야만 한다.


그런데 아니다.


안 보인다.


물론 내가 적극적으로 친구를 안 사귄 이유가 있기도 하지만, 그보다 더 큰 문제는 외향 상 일치하는 아카데미 학생이 없다는 것이다.


아니 외향이 일치하는 경우는 가끔 있다.


정확하게는 아니지만, 일단 소설 속 묘사와 되도록 비슷한 학생은 한 둘 있었다.


그러나 그들 전부 다 아니다.


하여, 나는 찾고, 찾고 또 찾고 돌아다녔다.


애초에 내가 카디안이 된 시점부터, 원작이 비틀릴 것은 예상 했었다.


그런데 이런 나비효과는 너무 크다.


나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일단 마법사를 찾지 못해도, 큰 문제는 없을 것이다.


어차피 에피소드는 그대로 진행될 테니깐.


단지, 원작과 내용이 처음부터 너무 뒤틀린 것만 같아서 내가 그리 찾아다닌 거지.


그 이상의 이유는 없다.


나는 그리 생각하며, 오늘도 늑대인간을 제압하기 위해 나서려 했다.


머릿속에서 아까 전에 세리나가 떠오른다.


그러고보니, 세리나는 아까 왜 거기에 있었던 것일까?


그에 의문점이 생기지만.


나는 굳이 깊게 생각하지 않았다.


한 번쯤 세리나가 혹시 내가 찾는 이일까 생각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카디안과 가장 가까이 지내는 마법사니깐 말이다.


하지만 세리나는 애초에 내가 찾는 이와 외향이 너무 다르다.


오늘 밤도 길어지는 것을 느끼며, 나는 늑대인간의 집으로 향하였다.


* * *


밤하늘이 훤히 보이는 시야가 확 트인 곳.


세리나는 하늘을 바라보았다.


달이 굽어지며 지상을 비추고, 별이 반짝이며 달을 도와준다.


세리나는 정처 없이 걸음을 옮겼다.


오늘은 그냥 그런 날이다.


아무 생각 없이 걷고 싶은 날.


아무런 목적도, 의미도 가지지 않고서 쉬고 싶은 날.


집으로는 돌아가지 않는다.


집에는 감시로 붙은 하녀가 있다.


잠시 밖으로 나와 있는 짧은 시간


세리나는 잠깐의 자유를 만끽한다.


걷고, 걷고, 또 걷는다.


그녀의 발걸음은 멈추지 않고 계속하여, 이어진다.


어딘가에 걸리지도 않고서, 돌이 있으면 피하고.


물웅덩이가 고여 있으면 뛰어 넘으며 정처 없이 발길이 닿는 대로 나아간다.


고요한 밤거리.


오로지 그녀만이 존재하는 밤.


그러한 밤은 그녀를 반겨준다.


터벅거리는 소리가 골목길 사이사이로 울려 퍼지고.


사람이 아무도 없는 골목길을 지나간다.


길을 걷다보면, 어느덧 막히고.


새로 돌아 가다보면 새로운 길이 드러나 계속 걸어갈 수 있다 싶을 때, 또다시 길이 막힌다.


벽이 가득하다.


이곳은 마치 새장 같다.


아무리 뛰고 날뛰어도.


벗어날 수 없는 거대한 새장.


세리나는 벽에 막힐 때마다, 새로운 벽을 찾아 이동했다.


벽이 보이고, 벽이 발걸음을 막는다.


그러한 일이 몇 번이나 반복되자.


결국 세리나는 발걸음을 멈추었다.


아니, 그녀는 고작해야 벽 때문에 멈춘 것이 아니다.


어느새 이곳까지 온 것일까?


너무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고 걸었나, 싶을 정도로.


세리나의 발길은 어느새, 많은 길을 걸어나갔다.


세리나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어둡고, 퀴퀴하며, 칙칙한 냄새는 기본에.


주변 곳곳에는 쓰레기가 널브러져 있으며, 온갖 오물들이 악취를 풍긴다.


이곳은 꿈과 희망이 없는 이들이 살아가는 곳.


이곳은 미래가 없는 이들이 생을 연명하는 곳이다.


이곳의 이름은.


빈민촌이라고 불리운다.


세리나는 그 안으로 더욱 걸어 들어갔다.


안으로 들어서자, 보이는 광경은 더더욱 가관이다.


사람들이 보인다.


대부분 메마르고, 뼈대 밖에 안남은 이들이다.


무언가를 태우는 냄새가 풍긴다.


마약 같은 중독성 높은 물질을 태우며, 간신히 헛된 행복을 추구하는 이들이 보인다.


무언가 타는 연기가 난다.


시궁창 속에 사는 쥐들을 잡아서, 구워 먹는 것이다.


평범한 이들이라면, 이곳의 광경에 헛구역질을 하거나, 눈살을 찌푸릴 것이다.


그러나 세리나는 아니다.


그녀는 오히려, 익숙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니, 익숙하다 못해 그리워하는 표정이다.


예전에 그녀는 이러한 환경 속에서 살아갔었다.


세리나는 페르난데스 가문의 자제다.


제국의 몇 없는 공작 가문.


아무리 버림받은 자제라고 하더라도, 가문의 체면 상.


적어도 일반적인 평민과는 다르게, 평생을 놀고먹어도 상관없을 정도의 재력을 쥐고 있을 것이다.


지금 당장 세리나만 해도 그렇다.


아무리 그녀가 미움털이 박힌 자제라고 해도.


지금 세리나가 입고 있는 옷들은 전부 수도에서 가장 유명하며, 명망 높은 디자이너가 한 땀 한 땀 손수 직접 제작해서 만든 옷이다.


하지만, 어린 시절에 세리나는 다르다.


어린 시절에 그녀는 자기 자신이 페르난데스 가문의 피가 흐르는지 몰랐다.


어린 시절에 세리나는.


흔하디 흔한 빈민촌의 아이였었다.


오늘 빈민촌이라는 말을 들어서 일까, 어린 시절 친구와 똑 닮은 카디안을 만나서 일까.


그도 아니라면 이렇게 빈민촌이라는 장소에 와서 일까......


오랜 추억이, 그녀를 뒤덮는다.


추억이라는 이름의 낙옆이 그녀를 파묻는다.


숨조차 쉬지 못하게.


깊게.


더욱 깊게.


그녀를 파묻는다.


숨이 막혀온다.


숨통이 죄여온다.


추억이, 어린 시절에 기억이.


그녀를 천천히 질식사시킨다.


세리나는 한껏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웃음이 지어진다.


초승달 같이 굽어진 입꼬리.


그것은 미소이며, 웃음이었다.


다른 누군가가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 향하는 웃음.


그것은 명백한 비웃음이다.


세리나는 자기 자신을 비웃었다.


지금 자신이 살아가는 삶을 비웃었다.


세리나가 고개를 들어본다.


결코 닿을 수 없는 하늘 위에서, 모든 것을 바라보는 달이 보인다.


“우습지 않아?”


세리나는 예전에 친구에게 말한다.


지금 자신의 상태에 대해.


세리나는 조소한다.


“...나는 우스워.”


닿을 수 없는 말이, 내뱉어진다.


“지금 내 삶이 말이야.”


누군가를 향해 하는 말이지만. 한 번 내뱉어진 말은 도착할 곳을 찾지 못하고, 다시 말을 내뱉은 이에게로 돌아온다.


“이럴 줄 알았다면 말이야......”


만약이라는 가정을 해본다.


과거를 바꿀 수 없기에.


이룰 수 없기에.


붙이는 만약이라는 단어.


만약에, 만약에, 진짜 만약에......


만약은 때로는 헛된 희망을 불어 넣는다.


때문에 세리나는 만약을 입에 담으려다가, 담지 않았다.


“그때 그럴걸 그랬어.”


그저 과거의 자신의 선택을 후회할 뿐.


달을 보던 눈이, 이제는 밤을 본다.


드넓은 밤하늘.


그 끝이 보이지 않는 밤하늘.


어디에도 가로 막히지 않기에, 자유로이 날아다니는 새들이 가득한 밤.


그것을 바라보며, 세리나는 부러워 한다.


자유.


세리나는 자유를 원한다.


예전에 세리나가 빈민촌에서 살아갔을 당시에 그녀는 비록.


민사, 급사, 압사, 참사, 괴사, 기사, 아사, 요사 등등...... 자신을 지킬 만한 유효한 수단이 없었기에, 매일 매일이 목숨을 걸고서 살아가는 하루였지만.


적어도 그때는 그녀에게 자유가 있었다.


지금처럼 통제되며, 살아가지 않아도 되는 자유가.


과거를 떠올리며, 세리나는 마지막으로 힘껏 미소 지었다.


계속되던 발걸음을 멈춘다.


추억이라는 낙엽 속에 파묻히는 짓을 그만둔다.


너무 오랫동안 추억에 빠져있는 것만큼 추한 짓은 없다.


과거는 이미 과거.


더 이상 바꿀 수 없기에, 과거는 과거 그대로 내버려 두어야만 한다.


세리나는 이미 과거를 넘기는 방법을 안다.


발걸음을 돌린다.


멈추었던 발걸음이 다시 시작된다.


이번에는 반대 반향으로 나아간다.


빈민촌에서 벗어나며, 세리나는 현재 자신이 살고 있는 곳으로 향한다.


세리나는 걸었다.


과거의 빠져있지 않는다. 현재를 나아간다.


“아.”


깜빡 있었다는 듯이, 세리나는 다시 달을 보며, 읊조린다.


“그러고 보니, 나 너하고 비슷한 얘 봤다?”


발걸음은 여전히 앞으로 나아간다.


그저, 고개만을 위로 한 채. 과거의 친구를 떠올리며 말한다.


“이름이 카디안이라고 하는 데, 너랑 비슷하면서 달라.”


과거는 과거로 남기고 싶어도.


과거가 있기에, 현재가 있다.


세리나는 과거를 살아가지는 않지만.


과거를 추억하며.


내일을 기대하고.


내일을 위하여, 집에 돌아갔다.


어두운 밤하늘이 세상을 덮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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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24화 뒷세계에 거물이 되어보자(1) 22.12.12 3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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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22화 친하게 지내라(1) 22.12.12 3 0 11쪽
21 21화 제대로 되고 있다 22.12.12 6 0 12쪽
» 20화 세리나 페르난데스 22.12.12 3 0 11쪽
19 19화 어쩐 일이야? 22.12.12 3 0 12쪽
18 18화 안녕? 앞으로 잘 부탁해 22.12.12 4 0 11쪽
17 17화 더없이 달콤한 독 22.12.12 3 0 13쪽
16 16화 내가 살아남기 위해서 22.12.12 3 0 11쪽
15 15화 원하는 것을 말해라 22.12.12 2 0 11쪽
14 14화 다음을 대비하며 22.12.12 4 0 11쪽
13 13화 닭 쫓던 개 지붕 위 쳐다본다 22.12.12 4 0 11쪽
12 12화 깊은 밤 속에 야수(4) 22.12.12 5 0 12쪽
11 11화 깊은 밤 속에 야수(3) 22.12.12 5 0 11쪽
10 10화 깊은 밤 속에 야수(2) 22.12.12 2 0 12쪽
9 9화 깊은 밤 속에 야수(1) 22.12.12 4 0 12쪽
8 8화 아일리온 아카데미(3) 22.12.12 3 0 11쪽
7 7화 아일리온 아카데미(2) 22.12.12 4 0 12쪽
6 6화 아일리온 아카데미(1) 22.12.12 6 0 12쪽
5 5화 입학식 22.12.12 7 0 13쪽
4 4화 개가 사자 흉내를 내기 위해서(2) 22.12.12 4 0 12쪽
3 3화 개가 사자 흉내를 내기 위해서 (1) 22.12.11 12 0 12쪽
2 2화 날개를 달아라 22.12.11 11 0 13쪽
1 1화 빙의되었다 22.12.11 11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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