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혼자 100층 회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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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우리
작품등록일 :
2022.12.12 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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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28 2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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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2.18 1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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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어떤 미친 새끼야!

DUMMY

8.


“으음······.”


한가을은 랜덤 박스를 바라보며 호흡을 가다듬었다.

성공 확률은 낮겠지만 그녀에게 남은 기회는 이뿐이었다.


“제발!”


하지만 현실은 그녀를 배신했다.

랜덤 박스에서 주어지는 건 별 볼일 없는 스킬 카드.

내용도 코인 상점에서 100코인이면 충분히 구할 수 있는 물건이었다.

애초에 [숨 참기] 따위의 스킬이 주어져봤자 쓸모도 없었다. 그저 숨을 오랫동안 참아봐야 무슨 이득이 있겠는가.


“왜 나만······.”


그녀는 한숨을 푹 내쉬며 별 볼일 없는 아이템이 늘어진 주변을 둘러봤다.

[조잡한 투구], [구멍 난 레깅스], [허름한 반팔 티], [썩은 목검]······.

쓰레기를 모아놓은 것처럼 보였지만 이건 전부 랜덤 박스를 돌려 얻은 결과였다.

그 중에서도 그나마 가성비라 생각되는 100코인짜리 랜덤 박스를 돌렸건만.


‘덮어놓고 쓰다보면 거지꼴을 못 면한다더니만······.’


자신의 처지가 딱 그 짝이었다.


‘그래도 네잎클로버를 가졌으니 잘 될 줄 알았는데.’


그녀는 우연히 이 근방에서 ‘행운의 네잎클로버’라는 아이템을 주웠다.

가지고 있는 것만으로도 행운을 올려주는 특수한 아이템.

하지만 네잎클로버의 효력으로도 랜덤 박스의 확률을 높이진 못하는 모양이었다.

한숨을 푹 내쉰 한가을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나마 위안이 되는 건 그녀와 비슷한 처지의 헌터들이 많다는 거다.


‘몇몇은 대박난 모양이지만.’


혀를 차면서 번쩍이는 무기를 움켜 쥔 한 헌터를 일별하고 말았다.

차라리 저렇게 대박 난 사람이라도 없었으면 나았을 것이다.

저런 사람이 눈앞에 있으니 자신도 모르게 눈이 돌아가고 말지.


“이번 생은 괜찮을 줄 알았는데······.”


1회 차에서도 이렇게 쪽박을 차놓고 또 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앉았다.

인간은 어쩌면 반성이라는 걸 할 줄 모르는 걸까?

차라리 네잎클로버를 줍지 않는 게 나았는지도 모른다.

한가을은 땅이 꺼져라 한숨을 푹 내쉬었다.


“하늘에서 코인이라도 쏟아지면 좋겠다.”


그리고 그녀의 시선은 코인 존으로 향했다.

오락실에서도 유일하게 코인을 벌어들일 수 있는 수단.

하지만 그 수준이 너무 높아 감히 도전조차 할 수 없는 곳이었다.


‘사실상 저긴 함정이지.’


코인 존의 룰은 굉장히 단순했다.

퍼펙트 패링에 성공한 횟수에 따라서 코인이 주어진다.

한 번 성공할 때마다 100코인이 주어지니, 단 한 번만 성공시켜도 본전은 딴다.

근데 그게 어디 말처럼 쉽겠는가.


‘한 번도 못하는 헌터가 수두룩한 걸.’


2회 차에 이르러 고였다는 헌터들이 숱하게 도전해봤다.

그리고 다수의 헌터가 한 번을 성공시키지 못하고 돈을 잃었다.

당연했다.

퍼펙트 패링은 0.1초, 혹은 0.01초 단위로도 판정이 갈리는 거지같이 어려운 기술.


‘종합적으로 스텟을 올리고 아이템으로 도배를 해도 될까 말까하니까.’


어쩌면 랜덤 박스보다 더 운이 좋아야만 성공할 수 있는 곳이었다.


‘듣기론 서른 번도 넘게 성공시킨 헌터가 있다고 했던 것도 같은데······.’


1회 차의 어딘가에서 들었던 소문이었지만 한가을은 솔직히 믿기 어려웠다.

오늘날 저기서 성공한 사람을 보질 못했는데 서른 번은 무슨.

누구든 열 번이라도 넘긴다면 손에 장을 지질 것이다.

한가을은 이죽이며 주머니를 매만졌다.


“아직 100코인이 남긴 했는데······.”


하지만 손 안에서 코인을 굴리던 그녀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숱한 고인물도 실패하는 곳에서 그녀가 어찌 성공할 수 있겠는가.

그녀는 운빨로 일확천금을 노리는 헌터였지, 실력으로 활약하는 타입은 아니었다.

후자였으면 애초에 이런 오락실에 오지도 않았다.


“됐다. 아무리 그래도 괜히 땅에 돈 버리는 짓은 하지 말아야지.”


그렇게 한가을이 미련을 털어낸 채 코인 존을 일별하려 할 때였다.


“······어? 저, 저게 뭐야?”


눈앞을 사로잡는 화려한 이펙트에 한가을은 할 말을 잊고야 말았다.


*


코인 존에 입장한 차도윤은 놓여있던 검을 움켜쥐고 차분하게 호흡을 다스렸다.


“어디······.”


별안간 시작된 미션은 정면에서 날아온 웬 야구공에서 시작되었다.


채애앵!


시원한 타격음과 함께 퍼펙트 패링이 성공했다는 이펙트가 눈에 번졌다.

하지만 차도윤은 얼굴 색 하나 바꾸질 않고 집중력을 이어나갔다.

정면에서 두 개의 공이 연달아 다른 속도로 날아오는 게 보였다.


채채애애앵!


이번에도 화려한 이펙트를 일으키며 차도윤은 퍼펙트 패링을 성공시켰다.

그리고 이후로도 열 번에 이를 때까지도 단 한 번의 실수도 없었다.

문득 메시지가 떠올랐다.


[여기서 중단할 시 ‘1,000코인’을 습득할 수 있습니다.]

[중단하시겠습니까?]


난이도는 계속해서 올라가고 실패할 시 여태 쌓았던 횟수는 모조리 초기화된다.

그만두고 떠난다고 해도 이미 이득이었으니 아쉬울 것도 없다.

하지만 차도윤은 말했다.


“계속 해.”


[난이도가 조정됩니다.]


이후부터는 직선으로만 날아오던 이전과는 달리, 공이 휘어지기 시작했다.

곡선을 그리며 서너 개의 공이 동시에 차도윤을 향해 날아오고 있었다.


[시련이 주어집니다.]

[퍼펙트 패링을 성공시키시오.]


그리고 배팅장의 바깥에서 소란이 일은 것도 그쯤이었다.


“미, 미, 미친?”

“2레벨까지 도전한다고?”

“대체 누구야? 뭐하는······.”


흘깃 바깥을 보니 오락실에 있던 사람들이 죄다 여길 쳐다보고 있었다.

넋이라도 나간 듯한 표정.

각자 하던 뽑기나 할 것이지 뭘 하는 거람.

물론 차도윤은 개의치 않았다.


‘왼쪽, 아래, 다시 왼쪽.’


그의 눈은 오롯이 날아오는 표적을 향해 있었다.

그의 손은 연신 공을 튕겨내기에 바빴다.

터무니없게도 그는 모든 공격을 튕겨내었다.

다음에도 차도윤은 고, 스톱 중 고를 외쳤다.


[난이도가 조정됩니다.]


그렇게 3레벨에 이르렀을 때부터는 공의 속도부터 2배가 빨라졌다.

4레벨에 이르러 땅에서도 공이 솟구쳤고, 5레벨에 이르렀을 무렵엔 앞뒤를 가리질 않고 날아왔다.

그러나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다.


채채채챙!


차도윤은 연속해서 퍼펙트 패링을 성공시키는 기염을 토했다.

각 레벨 별로 튕겨내야 하는 횟수는 고작해야 열 번.


‘어려울 것도 없는 일이다.’


적을 쓰러트리기 위해서 특별한 공략을 필요로 하는 것도 아니요.

수백, 수천 마리나 되는 몬스터가 일제히 그를 쫓아서 달려드는 것도 아니었다.

아무리 레벨이 높아져도 다가오는 공격을 튕겨내기만 하면 된다.

차도윤은 자신이 있었다.


‘100층 가까이 탑을 올라보면 이 정도야······.’


불현듯 떠오르는 기억 속의 그는 온갖 재난 속에서 전투를 펼치고 있었다.

그를 쫓아 달려오는 수천 마리의 몬스터의 수해는 기본이었다.

하늘과 땅, 그중 세상의 절반이 몬스터로 가득 차 있던 세계.

층을 오를수록 난이도는 급격하게 올라간다.

차도윤이 경험했던 세계에 비해선 눈앞의 시련은 애들 장난 같았다.


‘심지어 난 혼자였다.’


81층에서 부득이하게 모든 동료를 잃어버렸던 그였다.

앞에서 공격을 버텨줄 탱커도 없었다.

함께 대미지를 넣을 딜러도, 그를 도와줄 서포터도 없었다.

다치면 회복시켜줄 힐러조차 없었으니 뭐든 난이도는 올라갔다.

90층 무렵부터는 가지고 있던 포션마저 모두 쓴 뒤라 더더욱 그랬다.


‘정말 극악의 조건이었지.’


차도윤은 그 지독한 시련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발악하는 수밖에 없었다.

회복이 어려웠으니 아예 맞지 않고자 노력하고 또 노력한 결과가 바로 이것이었다.

퍼펙트 패링을 마스터하는 것.

안 그래도 곧잘 해내던 퍼펙트 패링을, 그는 살아남기 위해서 최선을 다해 갈고 닦았다.

그리고 차도윤이 50회에 이르는 퍼펙트 패링을 성공시켰을 때였을까.


[특이점이 부가됩니다.]


돌연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그가 선 바닥이 거세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제대로 균형 잡고 서기도 힘든 상황에서 퍼펙트 패링마저 성공시켜야 하는 조건.

처음으로 그에게 문제도 생겨났다.


‘슬슬 버겁긴 하네.’


마음 같아서는 수천 번이고 수만 번이고 퍼펙트 패링을 성공시킬 것이다.

하지만 약화 된 신체는 체력부터 모든 스텟이 너무나도 빈약했다.

떨어진 체력만큼이나 집중력도 줄어들었고, 벅찬 숨이 그를 힘겹게 했다.

사실 지금까지 버텨온 것도 여왕의 둥지에서 얻은 히든 피스가 아니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던전을 털어놓길 다행이지.”


‘여왕의 둥지’에서 여왕개미를 공략한 자에게만 주어지는 특별한 특성.

히든 피스인 ‘개미 정복자’는 개미굴처럼 밀폐된 환경에 한하여 마력 회복력을 15%나 올려준다.

또한 녀석을 사냥해 나온 아이템인 ‘로얄 젤리’는 섭취한 것만으로도 마력 스텟을 증폭시켜준다.


‘그리고 어지간한 던전은 죄다 밀폐된 환경에 부합하지. 이곳 코인 존 또한······.’


괜히 버그부터 시작해 온갖 고인물들이 신촌역부터 공략한 게 아니었다.

마력의 효율이 좋아진 덕분에 차도윤은 더욱 유려한 움직임을 해낼 수 있던 것이다.

차도윤은 쓰게 웃었다.


‘얼추 80번은 튕겨냈으니 벌어들인 코인만 8,000코인인가.’


병정개미만 80마리를 사냥해야 겨우 벌어들일 수 있는 양이었다.

당장 이 정도나 되는 코인을 이렇게 단 시간에 벌어들일 수 있는 건 정신 나간 광신도 말고는 없을 터.

하지만 그만두진 않았다.


“······더 해보자고.”


차도윤은 거두절미하고 다가오는 퍼펙트 패링을 계속해서 이어나갔다.


‘횟수를 늘릴수록 보상은 늘어난다.’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은 이 세계의 큰 규칙 중 하나였다.

위기를 감수한 만큼 그만한 보상을 얻는다.

게다가 조금 힘겹지만 못 해낼 정도의 시련은 아니었다.

애초에 여긴 탑에서도 0층에 해당하는 지구였다.

어떤 시련이 주어지더라도 해당 층을 벗어나는 범위는 주어지지 않는다.

그것도 신이 인간에게 약속한 규칙 중 하나.


‘비록 2회 차라서 0층인 지구의 난이도도 조금 올라간 모양이지만······.’


그래 봐야 0층이었고, 또 그래 봐야 오락실 한쪽에 놓인 게임이었다.


“아직 할만 해.”


주변에 안개가 자욱하게 끼고 연신 흔들리는 땅덩어리 위에서 차도윤은 그렇게 중얼거렸다.


[‘악바리 정신’을 발동합니다.]

[각종 상태 이상에 저항합니다.]


그를 괴롭히는 디버프 효과도 강제로 끊어내었다.

거친 숨을 토해내며 퍼펙트 패링만 100회에 이르렀을 때.


[숨겨진 업적을 달성했습니다.]

[특성 ‘완벽주의자’를 습득했습니다.]

[퍼펙트 패링에 성공할 때마다 체력이 회복됩니다.]


1회 차에서도 그가 홀로 오랫동안 싸울 수 있게 해줬던 특성이 생겨났다.

차도윤은 그때부터 더욱 날아다니기 시작했다.

계속되는 퍼펙트 패링과 회복되는 체력은 비등비등했으니.


“어떤 ······친 새······!”


그렇게 차도윤이 연신 퍼펙트 패링을 성공시키고 또 성공시킬 때였다.


“어떤 미친 새끼야!”


갑자기 코인 존 내부 공기가 뒤틀리면서 커다란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동시에 야구 배팅장이었던 풍경이 멀어지고 눈 깜빡할 사이에 주변은 하얗게 물들었다.

차도윤은 메시지를 확인했다.


[‘GM존’에 진입합니다.]


그리고 메시지의 뒤편으로 모습을 드러낸 건 앞으로 툭 튀어나온 이빨이 인상적인 한 마리의 토끼.


[보스 몬스터 ‘GM 래빗’을 마주했습니다.]

[상태 이상 ‘공포’를 느낍니다.]


차도윤은 절로 떨려오는 몸의 반응을 느끼며 토끼와 시선을 마주했다.

동그란 안경을 눌러 쓴 토끼는 귀엽다기보단 피로에 찌든 직장인처럼 보였다.


“너냐? 내 살림 거덜내려던 미친 새끼가!”


갑자기 욕지거리를 내뱉는 토끼를 보면서 차도윤은 호흡을 가다듬었다.

그의 앞에 나열된 메시지는 아직 끝나지 않은 상태였다.


[주의, 상대는 당신의 수준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적입니다.]


그리고 이 메시지가 말하는 바는 단순했다.


[보스 몬스터 ‘GM 래빗’으로부터 도망치십시오.]


신이 판단하기에 차도윤의 상황에선 눈앞의 괴물을 쓰러트릴 방도가 없으니.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 자리에서 탈출하는 것만이 살아남는 방법이라는 것.

하지만 차도윤은 이죽이며 말했다.


“드디어 나왔네, GM 래빗.”


누가 뭐라고 해도 그가 신촌 오락실을 방문한 이유는 사실 이 녀석 때문이니까.


작가의말

내일은 14시 15분에 연재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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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외상값은 이걸로 치르겠다던데요? 22.12.30 2,898 68 12쪽
20 로또 맞은 건가 +2 22.12.29 3,014 74 13쪽
19 이걸 왜 놓치고 있던 건지 +1 22.12.28 3,059 70 12쪽
18 이건... 진짜 미친 짓이야 +3 22.12.27 3,154 64 13쪽
17 1분이면 됩니다 +1 22.12.26 3,190 72 13쪽
16 어차피 못 도망칩니다 +7 22.12.25 3,380 75 13쪽
15 원래 잔챙이는 그냥 무시하는 주의인데 +1 22.12.24 3,596 77 12쪽
14 너희들에게 악 감정은 없어 +1 22.12.24 3,740 79 12쪽
13 난이도가 아주 X같아졌거든 +2 22.12.23 3,889 87 12쪽
12 하여간 성질 급한 2회 차로군 +3 22.12.22 4,330 87 13쪽
11 이러니 내가 담배를 못 끊지 +2 22.12.21 4,401 95 12쪽
10 운이 좋다고 해야 하나 +3 22.12.20 4,684 87 13쪽
9 난 욕심이 많은 편인데 +2 22.12.19 4,776 98 13쪽
» 어떤 미친 새끼야! +4 22.12.18 4,873 98 13쪽
7 일단 코인 재벌부터 되어볼까 +2 22.12.17 5,046 104 12쪽
6 애초에 급이 다른데 +4 22.12.16 5,100 96 13쪽
5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6 22.12.15 5,281 97 13쪽
4 침몰하는 배에 승선하는 취미는 없거든요 +2 22.12.14 5,606 105 13쪽
3 일이 술술 풀릴 리가 없지 +4 22.12.13 6,343 109 12쪽
2 모두 예상했던 일이다 +5 22.12.13 7,925 115 13쪽
1 두 번의 기회 +5 22.12.13 9,783 129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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