곤륜환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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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하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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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5.10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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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18 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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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일신(一身)(2)

DUMMY

※※※



찰나의 검로였으나 모두의 눈에 똑똑히 새겨졌다. 무공을 쓸 수 없는 양민들의 눈동자에도.


반투명한 어떤 ‘선’이 아직까지도 허공에 남아있는 까닭이다.


경이(驚異).


쪼개진 빛살이 다시 달라붙지 않는다. 그 상태 그대로 허공을 따라 일렁이는데, 칼질을 조금 볼 줄 아는 이들의 눈에는 더욱 꿈결같은 환상으로 보일 지경이었다.


“아미타불, 아미타불. 저것은 달마 선사의···!”


어느새 성벽 위에 오른채로 황망하게 달마의 이름을 뇌까리는 목불(木佛) 원설도 그러한 존재였다. 소림의 내에서도 고승의 반열에 드는 그는, 숭산에 새겨진 달마의 장흔(掌痕)을 수시로 목도한 사람 중에 하나였으니까.


그의 눈에는 그리 보였다.


완미(完美).


경악할 수 밖에 없었다. 원설은 불과 며칠 전 백연의 무공을 눈앞에서 보았고, 그때의 칼질은 분명 천하를 놀라게 할 검이었으나 고금에 닿을 것은 아니었기에.


“잠든 사이에 무슨 일이···?”


그러했다.


소년의 검은 이제 흘리는 것이 없었다. 밖에서의 이틀은 삼봉과의 보름이었다. 촌각을 수천으로 쪼개어 늘려쓰는 이들에게는 영겁과도 같은 시간이다.


몽중(夢中)이라 여겨질 세계 속에서 무수히 담금질된 백연은, 이제 신검(神劍)이라 불러야 할 것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 내막을 알지 못하는 모두도 동시에 느꼈다. 이 순간, 그들의 눈앞에 뻗어나가는 검로는 무언가 다르다고.


대장로 율법이 가장 명확하게 느꼈다.


“놈!”


노호성과 함께였다. 율법이 발을 쿵-구르는 순간 대지가 융기하고 있었다. 솟아오른 땅 조각 사이로 미친듯이 흩날리는 수염과 장포가 엿보였다. 늙은 대장로의 손아귀 사이로 쩌적 갈라지며 검은 뇌광으로 분열하는 공간도.


백연은 가만히 보고 있지 않았다.


‘성휘북명.’


들숨에 전개, 날숨에 발출이었다. 푸른 별빛을 낚아채 전신에 두르면서 일보 전진. 어느 순간 소년의 발끝에서는 운룡오식의 기파가 구름처럼 번지고 있었다.


쩌엉!


일보 여파에 우렛소리가 따랐다. 들불처럼 번져오던 절세 장법이 보신경 한걸음에 깨지는 소리였다. 솟구치던 땅 조각마저 산산조각나며 가루로 화해 사방으로 번지는 풍광. 그 여파로 자욱한 분진이 시야 사위를 뒤덮었다.


그러나 그것도 찰나였다.


별안간 사방을 따라 붉은 화염이 꽃잎처럼 펼쳐졌다. 나비의 날갯짓마냥 하늘거리는 화염의 꽃자락은 어느 순간 순백에 가까운 빛으로 물들며 작열했다. 그 여파로 분진이 화악 찢어지며 세상이 맑아진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적화검류(赤花劍流) 화간접무(火間蝶舞).


이 순간 표홀한 보신경으로 훌쩍 물러난 율법의 눈이 커졌다. 어느새 날아갔던 우반신의 상처를 반쯤 회복한 모습. 깔끔하게 잘린 팔을 쥐고 뒤로 몸을 날리고 있었는데, 다음 순간 그의 눈동자에 후욱 커진 자색 안광이 새겨졌다.


“대장로.”

“······!”

“목은 놓고 가라.”


콰아아아아아앙!


그러나 율법의 목이 땅을 나뒹구는 일은 없었다. 찰나를 격하고 훌쩍 물러난 그의 모습이 세자루의 창칼 틈새로 엿보였다.


백연의 검로에 끼어든 창칼이었다.


“무슨 검력이···!”

“선극을 상대한다 상정해라!”

“불신자 따위가···.”


그그그그그극.


대지가 진동했다. 찰나간 힘을 겨루는 네 사람. 별안간 백연을 막아선 마교 무인들의 얼굴에 경악스러움과 함께 이를 악무는 표정이 새겨졌다.


융헌대주, 신월대주, 군위전주.


세 대주의 쌍극과 검 두자루가 한자루의 검신을 상대로 점차 힘에서 밀려나는 과정이다. 합을 오랜기간 맞춘듯한 힘 분배가 아니었다면 단칼에 잘렸을 것인데, 잠깐이나마 공방이 성립하는 연유였다.


잠깐에 불과했다.


찰나지간 소년의 무릎이 낮아졌다. 검을 슥 당기며 회전하는 몸짓. 한순간 쌍극이 크게 기울며 앞으로 떨어졌고, 다음 순간 백연은 창대를 지그시 밟으며 횡으로 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서걱.


검이 공간을 쪼개는 소리. 어느새 뇌광으로 휘감긴 검로는 이제 조용했다. 서늘한 선이 횡으로 세상을 갈랐고, 그 궤적 위에 놓인 융헌대주의 목이 미끄러졌다. 호신강기가 존재하지도 않는다는 듯한 칼질이다.


쾅!


그 찰나에 검을 들어올려 막은 신월대주와 군위전주는 멀찍이 튕겨나갔다.


동시였다.


소년의 신형은 어느새 흐릿해져 있었고, 멀찍이 물러났던 율법의 코앞에서 백광이 일었다. 걸음에 이끌린 모든 바람결이 칼바람으로 화하는 것과 함께다.


쩌저저저저저정!


검은 벼락이 틈새에 섞여들며 희끗한 칼바람과 함께 이지러졌다.


어느새 임시로나마 팔을 몸에 다시 붙인 형국인데, 양손에 검은 뇌광을 쥔 대장로의 몸이 온전하지 않다는 것은 쉬이 알아볼 수 있었다.


그럼에도 강대했다. 공간을 쪼개며 사방으로 비산하는 파황묵뢰장(波荒墨雷掌)의 여파가 찰나지만 태청신공의 뇌기와 대등하게 섞여들었으니까.


보신경에 이끌린 칼바람을 모조리 장법으로 낚아채 짓이기는 풍광.


그 사이에 백연의 걸음이 꿈결처럼 일었다. 일직선 전진 보법을 딛으며 검을 느슨하게 쥔 소년이 진각과 함께 그것을 대충 휘둘렀다. 구붓하게 휘어진 검로가 찰나에 빛살을 수천으로 쪼개며 벼락처럼 떨어졌고.


쩌엉!


검은 진기를 두른 팔뚝에 틀어막혔다.


어느새 팔을 교차시켜 검날에 들이댄 대장로 율법. 전신에 튀어오르는 묵뢰를 두르고 있었는데, 그것이 암혼제 천린의 검은 뇌전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백연은 바로 느꼈다.


신교의 잔재.


“개가 주인을 배신하고, 새로운 주인을 섬기는군.”


백연은 담담히 비웃었다.


하지만 늙은 장로의 눈썹은 잠시 꿈틀거렸을 뿐 크게 동요하지 않았다. 외려 그를 가늠하듯 눈에 담았을 뿐이었다.


“방어 불능의 검이라더니. 역시 한계가 있었구나.”


웃음이 번지는 노인의 얼굴. 덧붙이는 음성에 열기가 깃들어 있었다.


“너는 교주님의 옷자락을 뚫지 못하겠다.”

“쓸데없는데 낭비하지 않기로 했을 뿐이다만.”

“낭비?”

“너희들이 초공(超空)의 수법을 함부로 낭비하지 않는 것처럼.”


백연이 무심히 중얼거리자, 노인의 얼굴이 천천히 굳어들었다. 늙은 대장로의 면면에 찰나 경악의 빛이 스쳤다.


이 순간 백연의 무위보다 그의 언행에 당황한 듯이.


백연은 그것을 보자마자 흐리게 웃었다.


“그 표정을 보니 정말이었군.”


반쯤은 확신, 반쯤은 넘겨짚은 것이었다.


초공의 기예. 공간을 넘어서는 수법을 소년은 그리 명명했다. 백연은 장삼봉에게 그런것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들었다. 하지만 그러한 것이 아무런 대가 없이 가능할 수 없다. 명백히 이치와 상리를 역행하는 것이기에.


‘역천(逆天).’


세상을 거스르는 일.


아무나 행할수도, 아무때나 행하기도 어렵다. 낭비할 수도 없다. 회복할 수 없는 대가를 치르기에.


그리고 장삼봉은 덧붙여 말했었다.


-자네의 칼질도 마찬가지네만?

-예?

-아껴쓰게.


때문이었다. 백연의 검이 이 순간 멈춰선 이유도.


이곳에서 낭비할 기예가 아니다.


거꾸로 말하면 단순한 의미다. 그런 기예가 없어도 눈앞의 마교 군세를 상대할 수 있다는 말.


“네놈이 노부를 우롱했구나.”


그때쯤 흉신악살처럼 얼굴을 일그러뜨린 율법이 잇새로 뱉었다.


어느새 내려찍은 검 밑에 깔린 형국이었다. 백연의 무심한 시선이 그를 내려다보았다.


“서로 패를 열어보인 것 뿐이지. 일각.”


찰나 노인의 시선이 흔들렸다. 그의 눈이 화악 커지며 의문 섞인 음성이 흘러나왔다.


“네가 그 이름을 어찌···?”


그 물음이 끝이었다.


말과 동시에 찰나 쿵-하는 소리가 울렸고, 소리보다 빠르게 노인의 무릎이 솟구쳤다. 백연의 검을 두 팔로 막은채로 올려치는 슬격. 찰나지간 노인의 무릎이 공간을 묵빛 뇌기로 쩌적 갈라내며 치솟았고.


터억.


소년의 발밑에 멈춰섰다.


어느새 한발로 율법의 무릎을 밟아낸 백연. 그의 발끝에서 운룡대팔식의 구름같은 기파가 휘돈다. 유리처럼 깨져가던 공간을 단번에 휘감아 흩어버리는 모습인데, 이미 단순히 몸 쓰는 보신경의 범위를 벗어나 있었다.


슬격의 파괴적인 발경력이 한순간 백연의 몸을 타고 흘러들어 회전하다가, 다시금 그의 발끝에 모였다.


콰아아아앙!


율법의 일격에 실린 힘을 그대로 돌려준 격. 그대로 노인의 다리를 땅에 처박아버렸다. 한순간 율법의 무릎이 우득 꺾이면서 대지를 꿰뚫고 틀어박혔고, 그 여파로 단단한 땅이 일순 파도처럼 출렁였다.


“네 목을 보면 교주가 반응할까.”

“놈!”


동시였다. 사방에서 고함이 솟구쳤다. 어느 순간 백연은 그의 등 뒤에 접근하는 기척을 느꼈다. 멀찍이 튕겨나갔다가 재빠르게 돌아와 그를 향해 짓쳐오는 두 사람.


마교 십칠대의 신월대주와 군위전주였다. 그와 함께 시야 너머 사선에서 솟구치는 커다란 새와 그 아래 매달린 칼잡이의 모습이 있었고, 어디선가 키보다 커다란 검은 부월(斧鉞)을 들고 달려오는 거한의 신형이 눈에 들어왔다.


그와 동시에 율법의 등 뒤에서 벼락처럼 솟구치는 백색 장포의 노인들마저 함께다. 제각기 숫자가 새겨진 옷을 펄럭이고 있었는데, 익숙한 풍광이었다.


마교의 장로들.


그렇게 거대한 마도 무맥의 파도가 한 소년을 향해 떨어지고 있었다.


백연은 가만히 시선을 들어올렸다.


그리고 걸음을 내딛었다.


운룡육식.


쩌어어어어어어어엉!


천둥같은 기파가 단숨에 지천에 내리꽂혔다. 찰나지간 세상이 얼어붙었고, 그것은 절세고수들도 예외가 아니었다.


격산타우(隔山打牛)의 수법. 그러나 혹자의 눈에는 그런 범주를 아득히 넘어선 듯 보였다. 이 순간 장로와 대주들을 비롯해 막 일어서던 마교 군세 전체가 잠시나마 멈춰섰으니까.


하지만 잠깐의 시간벌기에 불과하다.


그것이면 충분했다.


뇌광이 충천했다. 허공을 움켜쥔 소년의 손아귀에는 휘몰아치는 번개와 별바람이 흐릿하게 서리고 있었다.


무형검 도혜(徒暳).


한손에는 여휘, 한손에는 도혜였다.


이검(二劍)을 쥔 소년이 미풍을 휘감고 회전했다. 한순간 벼락이 사방으로 비산했다. 동시에 쿠르릉-하는 소리와 함께 공간을 따라 반투명한 발경력 여파가 수십가닥씩 내리꽂혔고, 한줄기 춤추는 듯한 검로가 백연의 몸 주위를 따라 커다란 원을 그렸다.


완벽에 가까운 원이었다.


그 궤적에 닿아있던 신월대주와 군위전주, 그리고 흑천부주의 무기가 단숨에 쪼개졌다. 쇳덩이가 허공에 암기처럼 비산하고, 그를 향해 날아오던 커다란 새가 곧장 균형을 잃고 떨어졌다.


동시였다. 어느 순간 백연의 걸음은 앞으로 솟구치는 중이었고, 그 궤적에는 마교의 장로들이 닿아 있었다.


희뿌연 검로가 허공을 따라 피어올랐다. 구름처럼 번진 뇌광이 한순간에 세 사람의 몸을 갈랐다.


쩌억.


일곱에 달하던 장로들 중 셋의 핏물이 허공을 적셨다. 혈우처럼 쏟아져 내리는 핏물이 땅에 닿기도 전에 백연은 다시금 대지를 딛고 있었다.


대장로 율법을 마주하면서.


“흐읍!”


쩌정!


검은 뇌광이 한계까지 치솟으며 명멸했다. 어느새 온몸을 짙은 마기로 물들인 율법의 장법과 소년의 검이 충돌했다. 대장로의 내공방벽이 찰나에 끝까지 뚫렸다가 회복되었는데, 직전 장로들을 스치며 소실된 검력이 아니었다면 몸을 베었다.


모든것이 한순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백연은 무감한 자색 시선을 흩뿌리며 율법을 응시했다.


일신(一身)의 무위로 이끌어낸 전투의 시작.


압도에 가까웠다.


그와 동시에 사방을 따라 흔들리는 마교의 깃발이 눈에 들어왔다. 그를 향해 진격하는 마교의 군세가 엿보였지만 백연은 태연히 검을 쥐곤 율법을 응시했다.


“군세를 물려준다고 했던가.”

“네놈···!”

“미안하지만, 이제는 물리지는 못하겠군.”


그와 함께였다.


“아미타불!”


웅혼한 불호가 뒤편에서 물결처럼 번져나왔고, 쿠궁-하고 성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와 함께 커다란 함성이 귓전을 물들였다.


“간악한 마교 놈들을 쓸어버려라!”


백연이 나직히 뇌까렸다.


“여기서 너희와는 끝장을 봐야겠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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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4 일신(一身)(3) NEW +3 13시간 전 307 13 13쪽
» 일신(一身)(2) +5 24.09.18 554 27 12쪽
362 일신(一身) +6 24.09.16 752 29 15쪽
361 서녕공방전(8) +5 24.09.14 835 30 14쪽
360 서녕공방전(7) +5 24.09.13 784 29 14쪽
359 서녕공방전(6) +6 24.09.12 842 31 13쪽
358 서녕공방전(5) +5 24.09.11 834 36 15쪽
357 서녕공방전(4) +6 24.09.10 841 38 14쪽
356 서녕공방전(3) +7 24.09.09 874 36 14쪽
355 서녕공방전(2) +5 24.09.07 902 38 13쪽
354 서녕공방전 +5 24.09.06 917 34 13쪽
353 뇌광(雷光)(3) +5 24.09.05 964 34 13쪽
352 뇌광(雷光)(2) +5 24.09.04 951 32 15쪽
351 뇌광(雷光) +5 24.09.03 1,017 33 13쪽
350 묵령(墨靈)(2) +5 24.09.02 991 37 13쪽
349 묵령(墨靈) +6 24.08.31 1,041 37 13쪽
348 대국(對局)(3) +5 24.08.30 999 35 13쪽
347 대국(對局)(2) +5 24.08.27 1,136 40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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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5 정탐(4) +6 24.08.24 1,117 31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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