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한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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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글산책
작품등록일 :
2023.05.10 10:16
최근연재일 :
2023.09.14 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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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7.28 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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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102화 자전거 같은 여자

DUMMY

지석은 약속했던 시간에 맞춰 내원했다.


하루 진료가 끝난 후라 두 사람 외에는 아무도 없었다.

.

“살얼음판을 걷는 기분입니다. 언제 난청이 올지 불안해서 살 수가 없네요, 원장님.”


그의 얼굴에는 피로가 잔뜩 묻어있었고, 초조감이 짙게 드리워져 있었다.


난청이 아직 재발 안 한 게 오히려 이상할 정도였다.


“알겠습니다. 침구실로 가시죠.”


침 치료를 마친 후 두 사람은 마주 앉았다.


“뭐든 지요. 민경이 병만 고칠 수 있다면 적극 협조하겠습니다. 다 말씀 드리겠습니다.”


지석은 기대에 찬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선민경 씨에 대해 아시는 거 말씀해주세요. 아, 물론 그 분의 사생활이 아니라, 치료에 도움이 될 것 같은 내용만이요.”

“자전거 같은 여자예요. 끝도 없이 페달을 밟아줘야 하는 자전거요. 안 밟아주면 넘어지는 자전거 말입니다.”

“계속 하시죠.”

“원장님도 연애해보셔서 아시겠지만, 처음엔 죽고 못 사는 사이라도 시간이 가면 사랑이라는 감정이 차차 식기 마련 아닙니까?”

“그렇죠.”

“민경이는 그걸 용납하지 않았어요. 처음 두 달은 너무 좋았어요. 세상에 이런 여자도 있나 싶더라고요. 저한테 너무 잘해줬어요.”

“물론 그 때는 한지석 씨도 민경씨에게 잘 해줬을 거고요?”

“그럼요. 바로 그게 문제라는 겁니다. 제가 너 이쁘다, 사랑한다, 너 밖에 없다. 그냥 시도 때도 없이 쪽쪽쪽 거릴 때는 세상에 이런 천사가 없다, 싶었어요. 그런데 조금만 애정표현이 줄어들거나 지신에게서 마음이 멀어진다고 느껴지면 달라지기 시작하는 겁니다.”

“그런데 그건 누구나 그렇지 않나요?”

“하지만 민경이는 그게 심하다는 게 문제에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요.”


지석은 손에 들고 있던 생수를 몇 모금 마신 후 다시 입을 열었다.


“특히 저는 연기자니까 드라마를 하다보면 상대 여자 연기자가 있을 거 아니에요. 이번 <바람의 나라>의 윤지현씨 처럼요. 드라마에서 키스씬이나 포옹씬이 있으면 미쳐버리는 겁니다. 그냥 질투, 짜증, 이런 정도가 아니에요.”

“······.”

“그런 건 말할 것도 없고, 그냥 일상생활에서는 물론 드라마에서도 웃으면서 말만 주고받아도 안돼요. ‘왜 웃느냐? 말하지 말라고 했잖아. 너, 그 여자하고 어떤 사이냐? 한 번만 더 그 여자하고 말 섞으면 가만 안 두겠다. 죽여 버리겠다. 그 여자뿐만 아니라 내 말 안 들으면 너도 죽여 버리겠다’, 우와, 이건! 으으으, 천사가 악마도 돌변하는 건 한 순간이에요.”

“끊임없이 사랑을 확인하고 싶어 한단 말이죠? 그래서 자전거 같은 여자고요.”

“원장님은 이런 여자하고 사랑 안 해보셨죠? 사람 미칩니다. 미쳐버린다고요.”

“음. 그렇군요.”

“저한테 뭐라는 줄 아세요? 연기 그만 두래요. 자기가 먹여 살릴 테니까. 그냥 아무것도 안 해도 좋으니 자기만 사랑해 달래요. 직업도 없는 여자가 날 먹여 살리겠다니 어이가 없잖아요?”


지석은 그녀가 선 회장의 외동딸이라는 사실을 모르고 있단 말인가?


‘그렇다면 그녀는 이 사실을 왜 숨긴 걸까? 지석의 마음을 잡기 위해서는 나쁠 게 하나도 없는 조건인데 말이다.’


그는 확인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선민경씨가 직업이 없다는 사실은 어떻게 아셨어요?”

“낮에도 찾아오고 밤에도 찾아오고, 직장이 있으면 그러기는 힘들지 않나요? 무슨 일을 한다는 말을 한 적이 없어요. 저도 궁금하지 않았고요.”

“왜? 궁금하지 않았나요?”

“아니, 뭐어 어차피······.”

“어차피 진지하게 만나는 것도 아니고, 결혼은 생각도 해 본적이 없으니까요? 적당히 즐기다가 헤어지면 그만이니까요?”

“뭐, 그렇죠.”

“그렇군요. 혹시 민경씨가 흥분 할 때 나타나는 현상이나 습관 같은 건 없었나요?”

“미친 듯이 소리를 지르고, 손에 잡히는 건 닥치는 대로 집어 던지고, 때려 부수고, 뭐 그런 거요!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르고, 그럴 때면 온 얼굴에 땀이 맺히곤 했어요.”

“또요?”

“어떨 때는 머리가 아파 죽겠다, 눈이 빠질 것 같다. 아, 그럴 때는 눈이 벌겋게 충혈 되고요. 코피도 터졌어요. 제가 본 것만 해도 두 번인가 그랬습니다.”

“미간에 주름이 잡히고요? 세로로요?”

“아! 맞아요. 그러면 정말 온 몸에 소름이 쫘악 돋는 게, 으으으. 그럴 때는 사람 미쳐 버립니다. 숨 막혀 죽을 것 같아요. 도저히 안 되겠다싶어 한 번은 헤어지자고 했거든요. 그랬더니 뭐라는 줄 아세요. 날 죽여 버리겠대요. 저를 완전히 못 가질 바에는 다른 여자도 못 갖게 절 죽여 버리겠다고 하더라고요.”

“······.”

“저는 그 때, 민경이 눈빛을 아직도 기억해요. 그냥 협박이 아니었어요. 정말 얘가 날 죽이겠구나, 하는 느낌이 확 들었어요.”


그 말을 할 때 지석의 얼굴에는 두려움이 가득했다.


“제가 왜 난청이 온 줄 아세요? 물론 원장님께서 말씀하신 그런 이유도 있습니다. 저, 여자관계 문란했던 거 맞아요. 인정해요. 하지만 민경이 때문이에요. 걔 꼴 보기 싫어서 차라리 눈이 멀었으면 좋겠다는 생각 수 백 번 했고요. 걔 목소리만 들어도 소름이 끼쳐 차라리 안 들렸으면 좋겠다는 생각 수 천 번도 더 했거든요. 그랬더니, 이 귀가! 이 귀가 이렇게 된 거라고요.”


지석은 갑자기 그 앞에 무릎을 꿇었다.


“원장님. 저 좀 살려 주세요. 제발 부탁드립니다. 미, 민경이 병 좀 고쳐 주세요. 민경이 병만 고쳐 주시면 그 은혜 평생 잊지 않겠습니다. 아, 아니 제 전 재산 다 드리겠습니다. 다 드릴 테니 저 좀 살려주세요. 으흐흐흑!”


지석은 그의 발아래에서 울부짖었다.


그는 지석의 어깨를 가만히 어루만져 주었다.


#


지석의 말은 그에게 큰 도움이 됐다.


그의 머릿속에 그림이 펼쳐졌다.


선민경의 치료 방침에 대한 큰 그림이.


그는 다음날 출근하자마자 선민경에 쓸 처방을 내렸다.


삼황사심탕(三黃瀉心湯).


황금(黃芩), 황련(黃連), 대황(大黃)


심장의 열을 해소하는 처방이다.


처방을 본 차 선생이 물었다.


“약이 세 가지 밖에 안 되네요, 원장님?”


십 여 가지, 많게는 이 십여 가지 약재로 구성되는 처방도 많다.


그런데 약재가 달랑 세 가지뿐이니!


퇴원한 지 며칠 되지 않아 아직 정신이 오락가락해서 처방을 쓰다만 건 아닌가, 걱정해서일지도 모른다는 느낌이 팍 들긴 했지만 느낌만으로 화를 낼 수는 없는 일.


“예. 세 가지 맞습니다.”

“그리고 한 제 (20첩)가 아니라 6첩 밖에 안 되네요?”


제 정신이 아니라고 의심하는 게 조금 더 분명해졌다.


그렇지만 그렇게 단정할 수 있는 단계도 아니다.


“예. 맞습니다. 6첩. 3일 분이요.”


차 선생은 뭔가 석연찮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그의 안색을 슬쩍 살폈다.


‘우와! 이젠 아예 대놓고! 우이 씨이. 참자.’

“그리고 보자. 이건 뭔가 좀 잘못 된 것 같은데! 이 약은 한 시간만 달이는 거 맞나요? 다른 약은 두 시간도 달이고, 세 시간도 달이고, 그러잖아요?”


분명해졌다.


‘이걸로 차 선생은 내가 아직 제 정신이 아니리고 판단한 게 분명하다.’


으으으으!


그렇게 확신하자, 그는 화가 치밀어 올랐다.


‘마지막이다. 참는 건 여기까지다. 또 한 번 더 의심하면 그 때는!’


그는 다시 한 번 숨을 가다듬은 후 조용히 말했다.


“예. 한 시간 맞습니다. 그 약은 오래 달이면 오히려 효과가 떨어지거든요.”

“아 예. 알겠습니다, 원장님.”


차 선생은 쌩긋 웃더니 휙 나가버린다.


#


몇 시간 후. 민경이 왔다.


“평소 변비가 심하시죠?”

“예. 변비는 오래됐어요.”

“오늘은 변비를 해결하는 치료부터 시작하겠습니다. 민경씨에게는 변비 치료가 아주 중요하거든요.”

“예. 그렇게 해 주세요.”

“오늘은 등에 침을 놓을 테니 엎드리시겠어요?”

“??? 변비를 치료하는 데 등에 침을 놓는다고요?”

“예. 그렇습니다.”


그녀는 침대에 엎드렸다.


“윗옷을 벗을까요?”


그녀가 물었다.


“윗옷을 벗으시면 제가 침을 놓기에 편하기는 합니다. 하지만 민경씨가 불편하지 않을까요?”

“어때요? 치료 받는 건데요.”


그녀는 말릴 새도 없이 윗옷을 벗었다.


“블레이저도 벗을까요?”

“아, 아니에요. 벗지 마세요. 제발.”

“예?”

“블레이저까지 벗으시면 후회하실 겁니다.”


그녀는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닙니다. 더 이상은 벗지 마시고요. 그냥 지금 그대로 엎드리시죠.”


그녀는 블레이저만 한 채 엎드렸다.


“자! 침을 놓겠습니다.”


등에는 배수혈(背兪穴)이 있다.


척추의 양 방향 3 센티에 위치한다.


배수혈은 장기의 기능과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다.


그는 배수혈 중 심수혈(心兪穴)에 자침했다.


침법을 어느 정도 공부한 사람이라면 심수에 자침한다는 것은 쉽게 납득할 수 없는 일이다.


굳이 배수혈에 자침을 해서 변비를 치료하고 싶다면 대장수(大腸兪)에 자침할 일이지, 심수라니?


이상하게 생각할 수 있다.


한방치료는 그렇다.


같은 변비라도 원인에 따라 치료방법이 다르다.


그래서 어렵고, 그래서 묘미가 있는 것이다.


민경의 변비는 심화(心火)가 원인이다.


그래서 그는 심화를 꺼주기 위해서 심수에 자침하는 것이다.


그리고 감정조절을 못하는 것도 심화가 결정적인 이유라고 진단을 내린 것이다.


그는 심수에 꽂혀있는 침에 수기(手技)를 시작했다.


그의 손끝에 느껴지는 부드러우면서도 쫄깃쫄깃한 느낌을 기다리고 있었다.


왔다!


그가 원하는 바로 그 느낌이 손끝으로 전해졌다.


“민경씨. 지금 짜릿짜릿한 느낌이 드나요?”

“예. 약간이요.”


그는 수기를 계속했다.


“지금은 허리가 쩌릿쩌릿 하나요?”

“예. 허리로 옮겨 갔어요.”


그는 다시 침향을 대장과 항문방향으로 보냈다.


꾸륵 꾸르륵.


선민경의 장이 울기 시작했다.


“아아! 아아!”


꿀꿀꿀! 쿠르릉.


마침내 장이 통곡하기 시작했다.


“원장님! 아 아! 그만. 그만이요.”


그러나 그는 멈추지 않았다.


그녀의 간절한 소망을 차갑게 외면했다.


약 20초 동안 수기를 더한 후, 그는 발침했다.


그녀는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윗옷을 입기 시작했다.


그러나 마음이 급하니 옷을 제대로 입는 게 쉽지 않았다.


그는 고개를 슬쩍 돌렸다.


“그러게 옷 벗지 말라고 했잖아요. 천천히.”

“안돼요. 아, 안 돼.”


그녀는 옷을 손에 들고 겨우 가슴만 가리고 침대에서 내려오더니 뛰었다.


“민경씨. 신발은 신고 가셔야죠. 신발!”


소용없었다.


그녀는 화장실을 향해 제비처럼 날아갔다.


“그러게 벗지 말라니까. 차∼암 말 안 들어요.”


#


선민경의 치료를 시작한 지 닷새가 됐다,


그녀는 성실하게 치료 받으러왔다.


“제가 지어드린 한약 다 드셨나요?”

“예. 한 번도 빠트리지 않고 꼭 챙겨 먹었습니다.”

“잘 하셨네요. 치료 받고 달라진 게 있나요?”

“그럼요.”

“있으면 말씀해주시겠어요?”

“우선 제일 좋아진 게 변비예요. 전에는 일주일에 한두 번 봤거든요. 한 번 볼 때 너무 힘들고 단단했고요.”

“양은 어떤가요?”

“제가 먹은 양이 있으니까 어느 정도 기대치가 있을 거 아니에요? 그 기대치의 1/4? 1/5 정도요?”

“지금은요?”

“너무 많이 나와요. 어떨 때는 제가 먹은 양보다 더 많이 나오는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에요. 그리고 매일 매일 보고요. 이건 좀 창피한 얘긴데 해도 되나 모르겠네요?”

“여태까지 잘 하시다가 새삼스럽게 부끄러워하세요? 그냥 하시고 싶은 말씀 다 하세요.”


그녀는 마치 아름다운 추억을 회상하는 것 같은 표정으로 말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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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 122화 대화 그룹의 회장 딸 +2 23.08.17 1,083 23 12쪽
121 121화 미니 콘서트 +1 23.08.16 1,083 24 12쪽
120 120화 안달 난 선 회장 +1 23.08.15 1,106 24 12쪽
119 119화 살아야겠다 +1 23.08.14 1,122 24 12쪽
118 118화 우리 쭈우욱 같이 가는 거야! +2 23.08.13 1,116 26 12쪽
117 117화 헛돈 +1 23.08.12 1,117 24 12쪽
116 116화 경영 컨설턴트 허준영 +1 23.08.11 1,122 25 12쪽
115 115화 화장품 대박조짐 +1 23.08.10 1,143 23 12쪽
114 114화 여장하는 준영 +1 23.08.09 1,133 27 12쪽
113 113화 선민경의 관상과 사주 +1 23.08.08 1,153 25 12쪽
112 112화 후계자 +1 23.08.07 1,183 23 12쪽
111 111화 침 꽂고 노래하는 은우 +1 23.08.06 1,168 23 12쪽
110 110화 의사는 환자를 포기해서는 안 된다 +2 23.08.05 1,204 25 12쪽
109 109화 돈보다 주식으로 +2 23.08.04 1,201 27 12쪽
108 108화 연축성 발성장애 +2 23.08.03 1,243 26 12쪽
107 107화 내 집 마련에 성공하다 +1 23.08.02 1,289 28 12쪽
106 106화 X또 1등 당첨 +1 23.08.01 1,290 23 12쪽
105 105화 투자 실패 +1 23.07.31 1,290 24 12쪽
104 104화 선 회장의 사윗감 허준영 +1 23.07.30 1,315 20 12쪽
103 103화 질투의 화신 허준영 +1 23.07.29 1,306 24 12쪽
» 102화 자전거 같은 여자 +1 23.07.28 1,339 25 12쪽
101 101화 선 회장과 담판을 짓다 +1 23.07.27 1,317 21 12쪽
100 100화 자기 몸에 침을 놓다 +1 23.07.26 1,276 25 12쪽
99 99화 선 회장 +1 23.07.25 1,356 24 12쪽
98 98화 피습 +1 23.07.24 1,314 23 12쪽
97 97화 가스라이팅 +1 23.07.23 1,336 22 12쪽
96 96화 마동자 비만 치료 종료 +1 23.07.22 1,315 23 12쪽
95 95화 스토커 +1 23.07.21 1,350 22 12쪽
94 94화 바람둥이 +1 23.07.20 1,340 22 12쪽
93 93화 방구냄새 +1 23.07.19 1,339 2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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