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능력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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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해솔
작품등록일 :
2023.05.10 1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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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6.28 2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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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5.18 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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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화 - 타락한 수정

DUMMY

테스트를 신청하기 위해 2층으로 내려왔다.


[경영지원과]


똑똑.


현판을 확인하고 열려있는 문에 노크를 하자 두더지 게임처럼 파티션 위로 고개가 쏙쏙 올라오고 있었다.


“최무강 씨?”


내 이름을 부르는 고운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목소리만큼이나 아리따운 여자가 자리에서 일어나 나를 보고 있었다.


곧바로 시선을 내려 파티션 위에 붙어있는 명패를 확인했다.


[김달애 대리]


“네, 안녕하세요.”

“이쪽으로 오세요.”


책상에서 서류더미를 챙긴 그녀가 새촘한 분위기로 나를 휙 지나쳐 갔다. 그녀를 따라 옆방의 회의실로 들어가 서류더미와 펜이 올려진 자리에 앉았다.


금방 끝날 거라던 준수형의 말과 달리 작성해야 할 서류가 많았다.


기본적인 신상정보와, 아무도 읽을 것 같지 않은 지원 동기···, 능력?

볼펜을 빙빙 굴리다가 ‘부활’이라고 적어 넣었다.


맞은편에서 ‘풉’소리가 들려왔다.

눈동자만 또르르 올려 보니 눈이 반으로 접혀 입술을 살짝 깨물고 웃음을 참고 있는 모습이 예뻤···.


‘아니, 왜 웃지?’


“이렇게 쓰는 거 아니에요?”

“계통으로 쓰면 돼요.”

“부활은 무슨 계통인데요?”

“음···, 에블린 박사님께 못 들었어요?”


‘에블린 누나도 고민하는 것 같았는데···.’


생각해 보니 나를 능력자로 인정하지 않았다고 했는데 능력에 기입을 해도 되는지부터 고민이 됐다.


뒷머리를 긁적이며 어색하게 웃으니 시계를 확인한 김달애 대리님이 먼저 입을 열었다.


“일단 빈칸으로 두시면 나중에 제가 수정할게요.”


친절하기도 하다.


서둘러 마지막 페이지 동의 체크 항목을 꼼꼼히 읽던 중 나도 모르게 실소가 흘러나왔다.


[무모한 행동으로 생기는 모든 불상사는 본인이 책임진다.] □□

[테스트 중 사망할 경우 어떠한 이의도 제기하지 않는다.] □□


‘고용노동부 신고 감인데···?’


[동의하지 않는 경우 테스트에 참가할 수 없습니다.] □□


나 참, 이럴 거면 제일 첫 줄에 써놔야 하는 거 아닌가란 생각과 함께 엄청난 양의 네모 박스에 일직선을 긋 듯 일렬로 체크하기 시작했다.


‘후···. 다 했나?’


작성한 서류를 꼼꼼히 훑어본 그녀가 한 장을 뽑아 다시 내게 보이며 내려놓는다.


희고 고운 쭉 뻗은 손가락이 빈칸을 톡톡 가리켰다.


“지원 동기 안 쓰셨어요.”


꼼꼼하게도 챙겨주는 김달애 대리님.


[복수 등]


짧고 굵직한 지원 동기에 당황해하는 얼굴은 새초롬한 분위기와 대조돼서 더욱 귀여워···.


‘정신 차려, 미친놈아.’


“그럼 언제부터 하는 거예요?”

“결제 받고 시험관님들하고 스케줄 조절되면 바로 시작할 거에요. 문자로 안내드릴게요.”

“아, 그럼 번호가···.”

“여기 쓰셨잖아요?”


재빨리 휴대폰을 들었지만 단칼에 차단되었다.


“그럼, 가보겠습니다.”


그녀는 나와 달리 묵혀둔 일을 끝낸 듯 가벼운 발걸음으로 사무실로 돌아갔다.



***



이마에 송골송골 맺힌 땀.

어금니를 꽉 깨물며 집중하고 있지만 미간이 조여질 때마다 피기를 반복했다.


고작 13살짜리 아이가 힘든 모습을 티 내지 않으려고 애쓰는 모습이었다.


유송주의 짧고 가는 팔은 주환성의 거뭇한 가슴 위에 올려져 있었다.


“흐읏.”


한 번씩 신음하듯 내뱉는 소리에 맞춰 손에서 나오는 빛은 강하게 발화했다. 그에 대꾸하듯 주환성의 몸이 움찔거렸다.


몇 번 반복된 정화작업에 거뭇했던 피부는 점점 옅어지고 있었다.


“읏.”


유송주가 몸을 잠시 휘청였다.

염기태의 팔이 중심을 잃고 쓰러지는 유송주를 잽싸게 안았다.

그 와중에도 유송주는 파르르 떨리는 입술이 벌어지지 않도록 꽉 깨물고 있었다.


염기태가 미간을 구기며 입을 열었다.


“좀 쉬었다 하시죠?”


딱딱하게 굳은 염기태의 얼굴을 흘끔 본 남인철은 고개를 끄덕였지만 아쉬운 표정을 숨기진 못했다.


“흐음···. 그러지.”


그제야 경직돼있던 유송주의 몸이 풀어졌다.

염기태가 그대로 유송주를 안아 올리고 옆방의 회복실로 향했다.


“어떤가?”


그 모습에는 관심이 없는 듯 남인철은 바로 주환성의 상태를 물었다.


“육안으로 확인되는 것 말고 별다른 반응은 없습니다.”


머리에 붙여진 패치로 들어오는 뇌파 신호는 내내 무반응이었다. 심장박동도 동요 없이 일정했다.


남인철이 목을 주무르며 고개를 갸웃했다.


“희한하군. 발현된 수정이 폭주한 거라 했지?”

“네.”


이내 남인철은 껄껄거리며 웃었다.


“아직도 우리가 모르는 게 많아. 분발해야겠어.”


웃음소리가 점점 멀어졌다. 에블린은 주환성을 잠시 살펴본 뒤 유송주가 있을 방으로 서둘러 나갔다.


드르륵.


회복실에 언제 왔는지 반가운 얼굴이 보였다.


“범진이 언제 왔어?”

“이모! 나 아까 아까 왔어!”

“윽! 이모라고 하지 말라니까!”


아양을 떨며 에블린에게 이모라고 부르는 모습은 강준수의 아들다웠다. 침대에 편하게 앉아 쉬고 있는 유송주에게 고개를 돌렸다.


“송주야 좀 어때? 괜찮겠니?”


그새 파리해진 안색이 에블린의 가슴속에 있는 죄책감을 상기시켰다.


“조금 쉬면 괜찮아질 거예요.”


걱정하는 에블린을 위해 활짝 웃으며 대답하는 모습에 더.

낮은 한숨을 몰래 내쉬며 주위를 둘러봤다.


“아빠랑 기태 삼촌은?”

“아빠는 누구 데리러 간다 했고, 삼촌은 바로 나갔어. 화난 거 같어.”


그 말에 에블린은 씁쓸하게 웃으며 문을 바라봤다.


***



옥상정원 흡역 구역.


“후우···.”


염기태가 답답한 듯 깊게 빨아들인 담배 연기를 내뿜었다.


남인철박사의 연구 방법이나 능력자들을 대하는 태도는 언제 봐도 염기태의 심기를 뒤틀리게 만들었다.


특히 어린 유송주의 능력인 정화를 사용할 때 염기태는 한껏 예민해진다.


능력자들은 능력을 사용할수록 심장에 박혀있는 수정조각이 검게 변한다. 투명한 수정이 타락한 것처럼 보인다 해서 ‘타락한 수정’이라 지칭하고 있다.


타락한 수정은 계속해서 타락하려는 성질이 있었다. 마치 자아가 있는 것처럼 인간의 탐욕을 꾀어내 쉽게 흥분하게 만들고 능력을 사용하게 만든다.


타락한 수정은 순정할 때보다 더욱 강한 힘을 발휘했다. 제때 정화하지 못하고 타락한 수정의 능력을 사용하게 된 능력자는 그 힘에 먹혀 스스로를 자제하지 못하고 탐욕에만 미치게 되었다.


그렇기에 파인더들은 능력의 사용을 스스로 제한하거나 심신을 수련하며 수시로 수정을 정화한다.


주환성처럼 스스로 정화할 수 없는 폭주 능력자를 정화시키는 것.

유송주는 타락한 수정을 정화시킬 수 있었다.


타락한 수정을 정화시키고 나면 유송주는 며칠을 앓는다.

염기태가 그 사실을 알게 된 날 남인철과 크게 부딪혔고 한 달에 한 번으로 유송주의 능력 사용을 제한하게 되었다.


그럼에도 염기태는 유송주가 센터에 오는 날이면 예민함을 감추지 못했다. 고작 13살 된 아이를 지켜줄 수 없는 약한 어른이란 사실이 철저하게 까발려지는 느낌이었다.


“하···, 못났네.”


마지막 연기를 길게 내뿜고 도망치듯 나온 회복실로 발을 되돌렸다.


***


“박사님?”


굳은 얼굴로 멍하니 있는 에블린을 유송주가 조심스레 부른다.


“그···.”

“응?”


소심한 성격에 먼저 잘 묻지 않던 유송주가 말을 망설였다.


“왜애? 뭐든 말해도 괜찮아.”


굳어있던 에블린의 표정이 풀어지고 생긋 웃어 보이자 파리한 얼굴에 살짝 화색이 돋았다.


“아까 엘리베이터에서 본···.”

“무강이?”

“네.”

“무강이 왜? 보고 싶어?”

“네?”


화들짝 놀란 얼굴로 손을 젓는 모습에 작게 웃음이 터져 나왔다.


“무강이가 누군데?”


강범준이 호기심이 가득 담긴 눈을 반짝이며 끼어들었다.


드르르륵.


“양반은 못 되겠네.”


양손에 쇼핑백을 들고 들어오는 강준수와 그 뒤로 최무강이 서 있었다. 그새 조르르 달려간 강범진은 쇼핑백을 먼저 살폈다.


“이게 뭐야?”

“우리 아들 주려고 샀지.”

“진짜?”

“여기 형이 골라줬어. 무강이 형이야. 인사해야지?”

“안녕하세요, 무강이 형.”


어디를 봐도 강준수와 쏙 빼다 닮은 모습이 신기한 듯 최무강의 입꼬리는 활짝 올라가 있었다.


“안녕? 난 최무강이야.”

“난 강범진이야.”


최무강이 말을 놓자 강범진도 자연스럽게 말을 논다. 강준수를 흘깃했지만 눈에서 꿀만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딱!


“윽!”


쇼핑백 두 개를 다 채가려는 강범진에게 강준수가 이마에 딱밤을 놓았다.


“아얏!”

“하나는 송주 거야.”


벌게진 이마를 부여잡고 강준수를 노려보던 눈이 유송주의 운동화라는 말에 가늘게 휘어졌다.


“내가 줄래!”


강준수의 손에서 쇼핑백을 빼내 쪼르르 유송주에게 달려가 쇼핑백을 건넨다. 유송주는 살짝 붉어진 얼굴로 강준수를 바라보며 활짝 웃어 보였다.


“감사합니다 아저씨.”


유송주의 웃는 모습에 에블린이 뭔가 떠오른 듯 최무강에게 손짓했다.


“무강아, 송주가 너 보고 싶어 했어.”

“아앗! 박사님···!”


놀란 유송주가 얼굴이 홍당무가 되었다.


“그랬어?”


드드드득.


나는 자연스럽게 곁으로 다가가 침대 가까이 의자를 끌어다 앉았다.


“왜? 형 잘 생겼어?”


만난 지 얼마나 됐다고 점점 붉어지는 유송주가 귀여워 자꾸 놀리고 싶어졌다.


“······.”

“아빠, 이 형 이상해.”


강범진이 귓가에 속삭이듯 말했지만 청력이 오른 내 귀에는 똑똑히 들렸다.


“이해해 줘. 형이 죽다 살아나서 그래.”


강준수의 사뭇 진지한 말투도.


애써 무시하고 유송주에게 시선을 고정하자 어느새 유송주도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연한 갈색의 맑은 눈동자가 마치 내 속을 투영하듯 그 눈동자에 빠질 것 같았다.


“형은···. 왜 수정조각이 없어요?”


맑은 눈으로 무심코 툭 뱉은 말에 모두의 시선이 유송주에게 향했다.


시시덕거리던 강준수도, 입을 꾹 다물고 있던 에블린도, 지금 막 문을 열고 들어온 염기태도.


휘둥그레진 눈으로 에블린이 먼저 입이 열렸다.


“···송주야, 그게 무슨 말이야?”


유송주는 그 말에 아차 싶었는지 작은 양손으로 입을 막았다.


“죄, 죄송해요···.”


손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유송주는 제가 실수했다는 생각에 떨고 있었다.


나는 송주와 눈을 마주치고 활짝 웃었다.


“형은 수정 없어도 강하거든.”


생긴지 얼마 안 된 탄탄한 이두근을 들어 보였다. 그때 어딘가에서 불쑥 튀어나온 작은 손이 최무강의 이두근을 더듬었다.


“우리 아빠가 더 탄탄한데?”

“음···. 지금은 그렇지만, 곧 따라잡을 거야.”


제 근육도 아닌데 강범진은 어림없다는 표정으로 씨익 웃는다.


“크흠···. 송주야.”


조금 떨어져 서있던 염기태가 조심히 송주를 불렀다.


“너 혹시 수정조각이 보이는 거야?”


입술을 안으로 말아 문 유송주가 망설였다.


“괜찮아, 삼촌들 입 무거워.”


그 방면으로는 가장 믿음직스럽지 못한 강준수가 팔에 매달린 강범진을 떼어내며 말했다.


“···보이는 거 아니고, 그냥 알아요.”


순간 정적이 흘렀다. 에블린은 큰일이라도 난 것처럼 제 이마를 문지르며 신음이 터져 나왔다.


“송주야, 그건 우리끼리 비밀로 할까?”


염기태가 어느새 유송주 바로 곁으로 다가와 애써 웃음 지어 보였다.

유송주가 고개를 끄덕이며 마주 웃었다.


그 어느 때보다 어색하게 웃고 있는 이들에게서 최무강은 불안한 감정을 느낄 수 있었다.


마치 유송주에게 있어서는 안 될 능력이라도 있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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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24화 - 몬스터(4) 23.06.06 37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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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22화 - 몬스터(2) 23.06.03 42 2 12쪽
21 21화 - 몬스터(1) 23.06.02 38 3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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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18화 - 행복흥신소(3) +1 23.05.29 43 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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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16화 - 행복흥신소(1) +4 23.05.23 49 3 11쪽
15 15화 - 무조건 한방 +2 23.05.22 53 3 12쪽
14 14화 - 그놈 목소리 +2 23.05.19 53 3 11쪽
» 13화 - 타락한 수정 +2 23.05.18 64 3 12쪽
12 12화 - 우리가 할 일 +2 23.05.17 60 5 12쪽
11 11화 - 수정이식 +2 23.05.16 62 5 12쪽
10 10화 - 주환성(2) +2 23.05.15 68 4 12쪽
9 09화 - 주환성(1) +2 23.05.14 77 7 13쪽
8 08화 - 황금알 +2 23.05.13 81 6 12쪽
7 07화 - 네가 살린 거야 +2 23.05.12 94 5 12쪽
6 06화 - 두 번째 +4 23.05.12 112 6 12쪽
5 05화 - 직접 못 와서 미안 +2 23.05.11 110 6 11쪽
4 04화 - 가면 될 거 아니야 +2 23.05.11 124 6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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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02화 - 부활 +2 23.05.10 224 7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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