튜토리얼 보스가 탈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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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Sn50
작품등록일 :
2023.05.10 17:42
최근연재일 :
2023.11.01 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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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9.27 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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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가일스

DUMMY

“흐아앗!!!”


날카로운 도끼날이 그림자의 가슴을 갈랐다.

아무렇지도 않게 전투를 이어가려던 그림자는 흠칫, 팔을 부들거리더니 무기를 떨어뜨렸고.

곧이어 그림자의 형체가 삽시간에 허물어졌다.


장장 일주일간의 싸움.

그 긴 전투의 막이 내렸다.

리안은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 위태로운 모습을 보였다.


‘...드디어 볼 수 있는 건가.’


태하가 아무렇지 않은 척 꼭꼭 숨긴 내용.

리안은 그것만을 생각하고 싸워왔다.

이후에 있을 일을 기대하며, 자신을 덮쳐오는 시커먼 기운에 몸을 맡겼다.


눈을 가리고 있던 암막이 사라지고. 눈앞에 나타난 풍경.

그곳은 그가 한번 경험해본 장소였다.


‘여긴···. 그때, 마탑에서 꾸었던 장소군.’


거리가 짐작이 안 되는 광활한 공간.

아득히 먼 곳에 빛을 뿌리는 별들이 보인다.

그리고 이전과 다를 바 없이 제멋대로 영상이 재생되었다.


‘숲속인가.’


바닥밖에 보이지 않았지만, 마구잡이로 자란 잡다한 식물들과 얼핏 보이는 희뿌연 안개.

저곳은 안개산, 그것도 조금 전 그가 있었던 장소였다.


그가 눈치챈 순간.

부스럭-.


‘누구지?’


수풀을 헤치는 소리가 들려온다.

이윽고 영상은 마치 누군가의 시점인 것처럼 어지러이 흔들렸다.

여전히 고개를 숙인 듯, 바닥이 보이는데.

잠깐 들어왔다 나간 발을 보아, 다가온 인물이 두 사람임을 알 수 있었다.


- ...뭡니까. 이 만들다 만 인형은.

- 아, 내 분신이야.


‘린다···?’


차갑지만 듣기 좋은 미성.

익숙한 목소리와 낯선 남성의 목소리가 번갈아 이어졌다.


- 그건 보면 압니다. 완전한 분신도 아니고 그런 어정쩡한 걸 만들 까닭이 있습니까?

- 저번에 여기서 인간들이 분신 능력이 필요하다고 해서 원리를 설명해줬거든. 그때 알기 쉽게 원형으로 만들어 보여줬지.


‘분신? 원형?’


리안은 이에 대한 이해는 나중으로 미룬 채, 일단 귀를 열고 듣는 일에 열중했다.


- ...당신은 참 속이 좋군요. 미움받는 처지이면서 그들을 기꺼이 도와준다니.

- 쉽게 풀 수 없는 오해니까.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지. 난 그저 너처럼 알아주는 인간이 있는 거로 만족해.

- ...쓰임새도 사라졌는데, 없애버리시지요.

- 굳이? 두고 갈 테니까 심심하면 보러 오고 그래. 혼자 있으면 외로울 거 아니야.

- 그렇게 신경 쓰인다면 좀 더 제대로 된 분신을 두고 가시고요.

- 미안, 내가 아무리 대단해도 그건 좀 힘들어.

- 알고 있습니다. 그냥 해본 말입니다.


무미건조한 린다의 말을 끝으로 영상이 뚝 끊어졌다.


“...이게 끝?”


불과 1분도 안 되는 짧은 영상.

고작 이걸 보기 위해 일주일이란 시간을 썼던 것인가.

한순간 맥이 풀리는가 싶었지만.

실망하긴 이르다.

그는 영상이 어떤 내용인지 되짚어보았고.

한가지 결론을 도출해냈다.


‘그 많았던 클론들은 이걸로 설명할 수 있겠군.’


처음 보고 충격받았었던 수수께끼의 골리앗들.

이전에 태하가 사용한 분신 또한 그의 판박인 것을 고려해보면 충분히 납득할 수 있었다.


‘전부 내 분신이었던 건가···.’


스스로가 본체일 때의 성립되는 이야기겠지만.

전부 자아가 없는 분신이었다니 리안은 그나마 다행이라고 안도했다.


‘그것보다 어서 다른 것도 보여달라고.’


역시나 그가 예견했던 대로 새로운 영상이 시작되었고.

리안은 그렇게 재생된 영상들을 대충 제목만 훑어보고 넘겨버렸다.


‘하나하나 일일이 살피다간 시간이 모자라.’


마탑에서는 제법 긴 시간 동안 머물렀지만.

이번에는 어떻게 될지 모른다.

이벤트라고 적힌 영상은 제외하고 오직 ‘메인’이라고 적힌 영상을 찾아다녔고.

중요한 사건만을 차곡차곡 머릿속에 넣었다.


‘그 사이 장군들이 더 봉인되었군.’


장군을 봉인한 영상이 열 개가 넘었다.

물론 그중에는 이리아스 대륙의 남부같이 아예 안 잡힌 곳도 있었지만.

현재는 각 대륙마다 적어도 네 개 이상의 유적이 탄생했다는 걸 알았다.


‘나한테 딱히 좋은 소식은 아니겠지.’


입이 열리지 않아 칸에게서 정확한 이유를 듣지 못했지만.

오염종이 차례차례 봉인하는 분위기가 좋게 느껴지지 않았다.


어느덧 마지막 영상.

어느 대륙인지 모르겠지만, 딱 봐도 고위직으로 보이는 신관이 기필코 오염군주의 정화하겠다는 연설로 영상 감상이 끝났다.


‘꿈도 야무지군.’


실제 봉인한 장군은 반절이 되지 않았고.

격려한 전투로 사도가 중상을 입거나 사망하면서 신전 측 또한 막대한 손실이 있었다.

엄청난 시간이 흘러서 유저들의 큰 성장을 이룩한다면 모를까.

단시간 내에 결판이 날 수 없는 전쟁이었다.


‘하지만 조금 불안하군···.’


리안은 상대가 상대이다 보니 다소 걱정이 되었다.

애초에 유저는 정정당당이란 글자와 멀었고.

막대한 권력을 가진 운영자 또한 유저 편이니 말이다.


‘그들이 나서서 죽인다거나 하는 짓은 벌어질 수 없어서 다행이지만, 또 비겁한 수작을 부리겠지.’


오염종은 불리하고 유저에겐 유리하게 조작할 것이 뻔했다.

리안이 이를 악물며 순간.

주위 공간이 흐릿해지는 생소한 감각을 느꼈다.


‘돌아갈 때가 되었나 보군.’


그에겐 전체적인 정보를 파악할 수 있었던 매우 알찬 시간이었다.


* * *


아침 해가 떠오르는 새벽녘.

마을의 입구를 지키던 경비병이 입을 쩍벌리며 하품을 하더니, 지나치는 남자에게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가일스 씨. 새벽부터 산책이신가요? 부지런하시네요!”


“자네도 이 시간에 일하느라 힘들겠군.”


“하하, 지루할 뿐이지 사실 힘들 건 없어요.”


“그런가? 하여튼 수고하게.”


“네.”


대화를 끝내고 가는 길.

마을 사람들이 아침을 시작한다.


소란스럽지 않은 평화로운 마을.

얼마 전에 은퇴한 마법사, 가일스는 정말 이곳이 마음에 들었다.

큰마음 먹고 나선 발걸음을 접고 다시 되돌아올 정도로 말이다.


‘오늘도 날씨가 좋군.’


아침 산책은 그가 빼먹지 않고 하는 일과였다.

하루 내내 건물 안에서 서적과 무구를 관리하며 보내는 유유자적한 생활 속에서.

유일하게 활동적인 시간이었기 때문이었다.


“이크. 또 여기군.”


집에 도착한 가일스는 무심코 집이 아닌 창고로 들어갔다.

마음 가는 대로 걷다 보면 이따금 자신의 무기가 보관된 이곳으로 향하곤 한다.


“은퇴한 지 얼마나 되었다고 여길 찾아오다니···. 그렇게 미련이 남았었나.”


그의 응어리는 옛적에 사라졌는데.

가일스는 어째서 무의식적으로 이렇게 행동하는지 의문을 느꼈다.

다시 찾아온 평화로운 일상에 아직 적응하지 못한 걸까.


“몸이 찌뿌둥한가 보군.”


오늘은 특별히 한 바퀴 더 돌겠다고 다짐했다.

이미 차고 있던 모래 주머니에 더해서, 걸친 옷의 무게를 더욱 무겁게 조절하여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다시 새로운 마음으로 산책하는데.

저 멀리서 건장한 체구의 남성이 눈에 확 띄었다.


‘모험가인가.’


가일스는 아쉽지만, 산책을 급하게 마치고 돌아가기고 결심했다.

마법사가 되길 원하는 모험가일 수도 있으니, 불상사가 발생기지 않도록 자리를 지켜야했다.


‘배틀 메이지의 재목이다.’


마법사를 원할 것을 대비해 추천해줄 목록들을 정리하는데.


타다닥.


뒤에서 누군가 달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신속하고 기세가 대단했기에 가일스는 무시하지 못하고 뒤를 돌아봤고.

굳은 얼굴로 그를 쳐다보는 남성과 마주했다.


“자네, 나한테 볼일이 있나?”


“...네가 왜 여기 있는 거지?”


의미 불명한 소리.

가일스는 모험가 특유의 헛소리로 치부했다.


“마법사가 되고 싶어서 날 붙잡았나?”


모험가는 많은 지식을 지니고 있으니.

그가 마법사 담당자임을 알아봤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도달했지만.

이내 곧바로 그런 목적이 아님을 깨달았다.


“아니, 이제 보니 이미 상당한 수준의 강자군···. 어째서 당신 같은 자가 이곳에 있는 거지?”


가까이서 보니 남자의 강한 기운이 느껴진다.

과연 모험가가 맞는지도 의심이 들었다.

그리고 의문을 표하는 건 상대도 마찬가지였다.


“네가 왜 여기 있냐고-!”


“음···.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어. 대체 하고 싶은 말이 뭔가.”


냅다 소리를 지르는 남성을 향해 가일스는 일목요연한 설명을 요구하는데.

상대는 성큼 다가와서 그의 어깨를 거칠게 붙잡았다.


“이게 무슨 무례인가···!”


남성의 손아귀를 뿌리치려는데.

꿈쩍도 하지 않았다.


“이건, 오염···!”


가일스는 상대에게서 느껴지는 기운에 경악했다.

팔을 타고 전해진 기운에 노출된다.


“크윽!”


이윽고 그의 몸을 잠식한다.

완벽한 외통수.

도저히 빠져나갈 수 없었다.


‘이렇게 죽는 건가-!’


눈을 부릅뜨고 견디지만, 여신의 은총이 사라지고 장비조차 없는 상태에서 당해낼 재간이 없었다.


평화에 찌들어 방심한 대가일까.

느닷없이 죽음이 찾아왔다.

그리고 가슴 깊숙이 숨겨진 진심이 우러나왔다.


‘아무것도 못 한 채로, 다 잊은 채로 죽는 건가···.‘


잊었다니. 뭘 잊은 거지?

머리 깨질 듯이 아프다.

뇌가 난도질당하는 느낌.

정신 공격인가?

환청까지 들려온다.


- 제길, 그건 어디서 주워들은 거래. 그쪽 주제는 자체적으로 필터링 돼서 들릴 텐데.

- 나는 개발자는 아니라···. 으으, 이럴 땐 어떡해야 돼.

- 하아···. 어디까지 알고 있는 거야?

- 아, 난 몰라!

- 궁금한 것도 겁나 많네! 그만 떠들고 잠이나 자!


들은 적 없는 낯선 여성의 목소리.

최근 기억부터 과거의 기억까지.

새로운 정보가 머리에 새겨지고···.


- 운영자, 혹은 감시자라고 불리는 자들을 보았나?


“...봤다.”


가일스가 마지막 질문에 무심코 대답하며.

풀린 동공으로 앞에 서 있는 남성, 리안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내게 무슨 짓을···.”


“너에게 수작을 부린 건 누구지?”


“천사.”


한꺼번에 들이닥친 기억의 파도.

가일스의 머릿속이 정리되지 않았음에도 질문에 대한 답이 자동으로 튀어나왔다.


“천사? 운영자가 아니라.”


“스스로 밝히진 않았지만. 운영자가 맞을 테지.”


그는 어느샌가 굽혀있던 무릎을 피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혼란이 가득했던 눈동자가 더는 떨리지 않았다.


그리고 그는 당연히 먼저 해야 할 말을 전했다.


“그때 믿어주지 못해서 미안하네. 그리고 고맙네.”


오해한 것에 관한 사과와 그의 기억을 되찾아준 것에 대한 감사였다.

하지만 리안은 그것을 기쁘게 받아들이지 못했다.


“...괜찮나?”


감정을 추스른 것과 별개로 가일스의 상태가 나빠 보였기 때문이다.


“글쎄, 모르겠군.”


똑같은 미소를 지었지만.

특유의 여유로움이 사라져 있었다.

리안은 그 까닭을 알았다.


’막막해서 그렇겠지.‘


이제부터 그가 어떤 것부터 해야 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대륙으로 돌아가도 이 일을 성토하더라도 결국 상황은 반복될 뿐이다.


’그리고 그때마다 내가 나타날 수도 없겠지.‘


기억을 되찾는다고 해서 달라지는 건 없었다.


어쩌면 리안은 그를 절망에 구렁텅이에 밀어 넣은 걸지도.

겉으로야 고맙다고 말하지만, 나중에 리안을 원망할지도 몰랐다.


인간관계가 전무한 리안이였기에 그 부당한 진실을 받아들일 수 있었다.

그리고 그조차 린다나 칸의 조언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

그들이 없었다면 필시 좌절했을 것이다.


“안개산을 올라가 봐.”


리안은 일말의 가능성이라도 믿고 한 가지 길을 제시했다.


“하핫, 안개산을 오르라니. 나보고 죽으란 소린가?”


가일스가 힘없이 웃으며 물었다.

안개산은 저승길로 통한다는 소문.

신전이 공표했다는 것만으로 사람들은 진실로 받아들였다.


리안은 안개산을 간략히 말해주며 신목의 무녀에 대해서도 알려주었다.

왠지 그녀라면 가일스를 도와줄 수 있을 것 같았다.


“허, 그런 존재가 있었나?”


대화가 끝나고.

가일스는 곧장 터덜터덜 움직였다.

그는 리안의 말을 따라 당장 산을 오를 생각이었는데.


리안은 제자리에서 그를 기다려주는 게 옳을지 고민했다.


’심신을 수습하는데 꽤 긴 시간이 걸리겠지.‘


안개 속으로 사라지는 가일스의 뒷모습.

리안은 그가 이겨내길 마음속으로 응원하며.

자신의 고향, 팔론데 대륙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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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5 어디 한번 들어나 보자고 23.10.05 100 3 11쪽
104 다윗의 후손 23.10.04 104 3 11쪽
» 가일스 23.09.27 101 3 12쪽
102 너만 오면 시작이다 23.09.26 102 3 11쪽
101 다시 찾아올게 23.09.25 102 2 12쪽
100 해결 23.09.18 103 2 10쪽
99 인정 23.09.15 102 2 10쪽
98 척살령 23.09.14 100 2 11쪽
97 너는 얼마나 알고 있지? 23.09.13 106 3 12쪽
96 시나리오 실패 23.09.12 106 3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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