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공자 출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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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근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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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5.10 2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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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9.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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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7화 천하무림대회 (18)

DUMMY

시운학이 성주와 직대하고 있으니 껴들지도 못하고 듣고만 있어야 했던 구파일방의 수뇌들은 가슴에 불같은 분노가 온몸을 사르고 있었다. 성주의 허락이 떨어지고 시운학이 비무대 위로 올랐다.


무슨 신법을 쓴 것도 아니었고 관료들이 걷듯 느릿하게 걸어 내려와 한 걸음 한 걸음 천천히 비무대를 올랐다. 시운학은 비무대에 올라서자 구파일방의 수뇌들이 자리한 곳을 보며 말했다.


"천하무림대회를 오늘 처음 살폈소이다. 그동안 구파일방의 노력이 대단했다 여겨질 만한 비무였소이다. 십준의 영예를 얻은 소협들은 내려진 영단이면 머지않아 절정, 초절정의 경지에 오르겠지요."


시운학의 말에 영단을 생각해서인지 연신 고개를 끄덕이는 사람들의 모습이 많이 보였다. 하지만 구파일방의 수뇌들에게는 십준의 무위를 절정도 아니라 폄하하는 것으로 들렸다. 각고의 노력 끝에 무수한 제자들 가운데 고르고 골라 선발한 십준이었고, 그런 십준은 구파일방의 의도대로 의미 있는 성과를 거뒀다.


그런 십준을 두고 구파일방의 이대 제자라 말하며 마치 구파일방의 일대 제자들 모두가 십준의 스승이라도 되는 양 말하니, 사실이 그렇지 못했던 구파일방의 수뇌들에게는 모욕으로 받아들여졌다.


"하지만 소생이 보기에 아직 미흡한 점이 많아 보였소이다. 기왕 구파일방의 뜻에 따르고자 나왔으니 노사님들의 명예를 생각해서라도 한 수 가르쳐야겠소이다. 성주님을 비롯한 고관들이 지켜보고 계시니 각 문파의 명예를 위해서도 소생과의 비무에 최선을 다해 주시오."


시운학은 십준을 보며 말하지 않았다. 구파일방의 장문인을 비롯한 수뇌들이 모인 자리를 보며 망신당하지 않으려면 최선을 다하라 한 것이었고, 십준에 든 영걸들은 시운학의 말에 분노하며 치를 떨어 대고 있었다.


이준우의 사부인 화산파 장로가 더는 참지 못하고 노성을 터트렸다.


"듣던 대로 시건방진 놈이로다. 준우야 네가 저놈에게 매화향을 맡게 해 주거라."


이준우는 발작하지 못하고 입술만 깨물다, 사부의 명이 떨어지자 즉시 몸을 비무대로 날렸다.


"호오~!

이 소협,

멋진 부운약표였소이다."


이준우는 부운약표의 신법을 칭찬하는 시운학의 말에도, 들을 것 없다는 듯 시운학을 향해 말했다.


"더는 그 입을 놀리지 못하게 할 것이다."


"하하하

그리 흥분해서야 어디 한 초식이나 견디겠소이까? 진기를 돌릴 시간을 내드릴 것이니 마음을 다스리시오."


이준우는 자신이 흥분한 것은 잘 알고 있었지만, 아무리 봐도 이제 약관이나 돼 보이는 시운학의 말은 말장난처럼 여겨졌다.


"입만 살은 놈이로구나."


이준우는 그래도 절정 수준의 무인이었기에, 순식간에 자하신공으로 진기를 일주천 해 마음을 다스리고, 십사수매화검법을 펼쳐 내 눈에 보이지 않을 만큼 빠르게 공세를 펼쳐 갔다. 일초식 매화통천을 펼쳐 시작된 공세는 노한 탓인지 오초식 한매통개로 바뀌었고, 육초식 설매창연이 펼쳐지자, 비무대를 매화로 가득 채웠다.


이준우의 십사수매화검법은 그 명성만큼이나 화려해 보는 눈을 즐겁게 했다. 검이 스치는 곳마다 매화가 피어나니 종래 비무대 가득 피어난 매화는 상대가 어디 있더라도 검 끝을 피하긴 어려워 보였다.


시운학은 이준우의 검 끝과 딱 한 치 차이를 두고 물러서고 돌아서기를 거듭했다. 그러니 지켜보는 모든 사람들의 눈에는 금방이라도 이준우의 검 끝이 시운학을 꿰뚫고 지나가리라 여겨져, 시운학의 말이 한낱 큰소리에 불과했다 싶었는데, 시간이 흐르고 공세가 이어져도 시운학과 이준우의 검 끝은 한 치에 모자라지도 남지도 않게 유지되고 있었다.


무위가 떨어지는 사람들이나 관료들의 눈에는 금방이라도 승부가 갈릴 것처럼 느껴지고 보여졌다. 하지만 고수들의 눈에는 여유롭게 움직이는 시운학과 온몸의 진기를 짜내는 이준우의 모습에 입도 벌리지 못하고 커질 대로 커진 눈이 비무대를 떠나지 못했다.


매류통천에서 시작한 십사수매화검법은 매영만천, 냉매섬개, 냉매성락, 한매동개, 설매창연으로 다시 이어졌다. 설매세한의 초식이 펼쳐지자 매화는 작아졌지만, 살기가 비무대를 가득 메우고 있었다.


구초식 오매쟁속, 십초수 칠매쟁수로 매화를 늘려 가더니, 십일초 노매미려, 십이초 동매장춘의 초식을 거쳐 십삼초 섬매청교로 깊고 빠르게 찔러 갔다. 이미 십사수를 두 번을 돌아 마지막 십사초식인 매화란구주를 펼쳐 내는데, 그제서야 간격을 유지하던 시운학이 한 치씩 다가섰다.


시운학이 다가서자 그동안 한 치의 차이를 보였던 두 사람의 간격이 일시에 사라졌는데, '챙' '탱'하는 소리와 함께 여전히 두 사람의 간격이 유지되자, 더는 커지지 않을 듯싶었던 사람들의 눈이 절로 벌어졌다.


십사수매화검법을 두 번 보이고 나자 허깨비처럼 물러나 검병만 남은 검을 들고 내려다보는 이준우에게 처음 보였던, 아니 천하무인대회를 치르며 지금까지 보였던 당당함이나 기개는 어디로 사라졌는지 남아 있지 못했다.


누구라도 건드리면 그대로 사라져 버릴 것만 같은 이준우였으니, 비무가 끝나고 시운학이 잘라진 이준우의 검 조각들을 진기로 검 조각을 원으로 이어 돌리며 허공을 바라보는 동안, 이준우의 사부가 비무대로 날아올라 이준우의 경혈을 짚어 가며 이준우를 살피다가, 뭔가에 놀란 듯 이준우를 다시 살피고 시운학을 노려보고는 이준우를 옆에 끼고 자리로 돌아갔다.


모두가 봤다.

이준우의 화려한 매화검법을.

누구도 보지 못했다.

시운학이 어찌 이준우의 검을 조각냈는지.


이준우와 시운학의 비무를 지켜봤으니 더는 시운학의 말을 헛되다 하진 못했다. 그렇다 한들 무인으로 태어나 이런 기회를 언제 다시 얻겠는가? 소림의 진각은 마치 시운학이 내려가면 기회가 사라지기라도 할 것처럼, 이준우가 사부에게 안겨 내려오자 누가 뭐라 할 사이도 없이 비무장이 울릴 정도로 큰 소리로 괴성을 내며 마치 일위도강의 신법이라도 펼친 것처럼 순식간에 날아내렸다.


"빈승은 진각이라하오."


양손을 합장해 시운학에게 인사하며 소개했다. 시운학은 잠시 진각을 살펴보고는 포권하고 마주 인사했다.


"수천문의 시운학이외다."


"문답무용(問答無用)!"


진각은 잠시도 기다리기 싫다는 듯 문답무용을 외치고는 바로 자세를 잡아갔다. 나한당 출신의 나한이라 그런지 십팔나한공의 기수식이 먼저 펼쳐졌다. 그나마 마음은 급해도 예를 잃지 않으려는 것으로 느껴지자 시운학의 입가에 잔잔한 미소가 지어졌다.


한 동작 한 동작마다 비무대가 울리고 흔들렸다. 진각이 내공을 싣고 전력을 다하고 있다는 반증이었다. 선인공수로 시작돼 패왕거정, 좌우답화, 고수반근으로 초식을 풀어가자 시운학이 엄하게 나무랐다.


"누가 스님 아니라 할까 그렇소이까?"


진각은 무슨 말인가 하면서도 이어 오초식 야차탐해를 펼쳐 갔고, 시운학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선천나한십팔수로 십팔나한공을 잡아갔다. 시운학의 선천나한십팔수 역시 소림의 진산절기였으니, 진각은 크게 놀라 물러서며 시운학을 노려봤다.


마치 어찌하여 수천문의 제자가 소림의 진산무공을 훔쳐 배웠느냐? 나무라는 듯했다. 시운학은 그런 진각을 무시하고 달마십팔수 기수식인 좌조청답지를 펼쳐 보였다. 진각의 눈이 더욱 커졌고 분노 또한 더해 갔다.


시운학은 달마십팔수의 기수식을 시작으로 무당파의 매화권법의 기수식, 공동파의 복마장법의 기수식, 곤륜파의 낙안권법의 기수식, 해남파의 연쌍비, 청성파의 금나수인 절수구식, 아미파의 적하신장, 종남파의 오뢰정인, 점창파의 냉염장, 마교의 광마수, 개방의 옥룡팔장, 마지막으로 천축 밀교의 천룡팔식을 내보였다.


"보시니 어떻소이까?"


"···."


"천하 모든 무파는 아니라도 천하를 담지 않았소이까?"


"···."


"천하 무공은 천축의 유가신공을 기반으로 하고 있소이다. 각 문파가 나름의 노력으로 무공은 발전되고 변화해 왔소이다. 소림에 이루 셀 수 없을 만치 많은 절기가 장경각을 채우고 있어도, 누군가 익히지 않으면 머지않아 사라질 것이외다.


소생이 각 파의 절기를 아는 것이 그리 놀라운 일이오? 송나라 시절, 원의 야만족이 지배하던 시절, 천하 무공은 모두 송황실과 원황실에 내주지 않았소이까? 당금 황실에도 당시 각 문파에서 받친 비급의 사본은 그대로 존재하는 것으로 알고 있소이다.


그렇다는 말인즉 누군가는 살피지 않았겠소이까? 황실에 문서를 관리하는 관료들이 얼마나 많은지는 아시오? 그들이 하는 일이 비급이 상하지 않도록 관리하고 남는 시간에 비급에 어떤 내용이 들었는지 살피는 것이니, 각 문파가 스스로 바친 비급을 누군가 얼마간 알고 있다 한들 그 무슨 큰일이란 말이오?"


시운학의 말은 진각을 향해 하는 말이었지만, 이곳에 자리한 모두의 귀에는 마치 바로 앞에서 말하는 것과 같이 또렷하게 들렸다. 비급이 황실에 있다는 사실을 안다 해도 누가 황실의 물건을 탐하겠는가, 황실이 그리 쉬운 곳이라면 아직까지 비급이 황실 안에 남아 있지도 못했을 것이었다.


구파일방의 선조들도 황조의 힘을 어찌하지 못하니, 전 황조들이 원하는 대로 내줄 수밖에 없었던 것이고, 지금까지 황실에 남겨진 비급이 밖으로 나왔다는 말은 듣지 못했으니 잊고 지냈던 것이다.


시운학의 말에서 수천문의 사조들 가운데 누군가가 비급을 접했다는 말이었고, 접했을 뿐 아니라 수천문으로 옮겼다는 말이었다. 더구나 잠시 전 시운학의 시연은 천하 모든 무공을 포함하고 있었으니, 구파일방의 고수들에게는 놀라움과 우려가 넘실거리며 밀려들었다.


진각은 잠시였고 몇 수에 불과했지만, 십팔나한공을 받아치는 시운학의 달마십팔수에 막혀 나가지 못했었다. 마치 수련하며 고목을 치던 것과 같이 시운학은 천 년 고목인 양 받아 줬다. 이대 제자에 불과한 진각이었으니 무공 말고 다른 것에 신경 쓸 여유는 갖지 못했다. 진각은 스스로 모자람을 알고 시운학에게 합장하며 불호를 외고는 비무대를 내려갔다.


진각이 비무대를 내려가고도 여전히 시운학은 비무대를 지키고 있었다. 하지만 더는 십준의 영걸 누구도 비무대로 오르는 사람은 없었다. 구파일방의 주인들은 소문에 전해진 수천문의 무공을 확인하고 침통했다.


아무리 이대 제자와의 비무였다 해도 무위의 차이는 극명했고, 사실 이대 제자였을 뿐이라 자위해도, 그들 스스로 각 문파의 사정에 정통해 있었다. 각 문파에 어른이 남아 있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이미 그들이 간직했던 모든 것은 아래로 전해졌다.


시운학은 고민하는 구파일방의 고수들 자리를 한동안 바라보다 비무대를 내려왔다. 자리로 돌아오기 전 성주에게 다가가 인사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성주와 관리들도 시운학의 무위에 기가 질렸는지 시운학이 성주에게 인사하고 자리로 돌아가도 누구도 말리지 못했다.


수천문 사형제들과 금의위는 조용히 자리를 벗어나 무당산을 내려와 무림맹 숙영지에 들었다. 오는 동안에도 궁금한 것들이 많았을 터인데 누구도 입을 열어 말하지 않았다. 알면서 모른다는 말이 공연한 말은 아니었던 것 같았다.


수천문 사형제들도 시운학의 무위가 어디에 있는지 모르고 있었지만, 모른 채 더 높고 깊고 심오하리라 생각하는 것과 눈으로 보고 그 깊이를 느낀 것에는 차이가 있었다. 시운학이 보인 것이 모두가 아니라 여겨지자 그런 생각은 더욱 사형제들의 마음속 깊이 침잠했다.


천하무림대회가 성공리에 끝났다. 가호에 전해진 소문은 그러했다. 십준이라는 영걸이 탄생했고, 구파일방은 힘을 되찾았다. 오대세가는 여전히 서북원정을 지원하는 일에 전념하느라 천하무림대회 소문에는 크게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무림맹은 새로 입맹 한 무인들 수백이 늘어 보무도 당당하게 하남 정주성 무림맹 총타로 향했고, 금의위를 이끌던 섬도 진걸도 임무를 마쳤으니 금의위로 복귀했다. 모두가 돌아갔어도 구파일방의 장문들은 무당산을 내려오지 못했다.


천하무림대회가 끝나고 보름쯤 지난 뒤 야음을 틈타 한 무리의 무인들이 무당산을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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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 123화 독곡(毒谷) (1) +1 23.09.08 2,797 22 16쪽
122 122화 남만행(南蠻行) (2) 23.09.07 2,806 22 17쪽
121 121화 남만행(南蠻行) (1) 23.09.06 2,821 20 14쪽
120 120화 회천맹(回遷盟) (3) +2 23.09.05 3,014 18 15쪽
119 119화 회천맹(回遷盟) (2) 23.09.04 3,010 19 14쪽
118 118화 회천맹(回遷盟) (1) +1 23.09.03 3,017 21 14쪽
» 117화 천하무림대회 (18) 23.09.02 2,987 23 12쪽
116 116화 천하무림대회 (17) 23.09.01 2,972 23 18쪽
115 115화 천하무림대회 (16) 23.08.31 2,973 20 16쪽
114 114화 천하무림대회 (15) 23.08.30 2,984 22 15쪽
113 113화 천하무림대회 (14) 23.08.29 3,004 24 14쪽
112 112화 천하무림대회 (13) +1 23.08.28 3,016 24 20쪽
111 111화 천하무림대회 (12) +1 23.08.27 3,003 23 15쪽
110 110화 천하무림대회 (11) 23.08.26 3,008 23 17쪽
109 109화 천하무림대회 (10) 23.08.25 3,012 23 14쪽
108 108화 천하무림대회 (9) 23.08.24 3,032 21 14쪽
107 107화 천하무림대회 (8) 23.08.23 3,041 23 16쪽
106 106화 천하무림대회 (7) 23.08.22 3,046 26 18쪽
105 105화 천하무림대회 (6) +1 23.08.21 3,069 24 14쪽
104 104화 천하무림대회 (5) 23.08.20 3,095 24 17쪽
103 103화 천하무림대회 (4) 23.08.19 3,128 21 15쪽
102 102화 천하무림대회 (3) 23.08.18 3,137 24 15쪽
101 101화 천하무림대회 (2) 23.08.16 3,157 23 18쪽
100 100화 천하무림대회 (1) 23.08.16 3,340 23 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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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8 98화 숙왕(3) 23.08.14 3,162 23 16쪽
97 97화 숙왕 (2) 23.08.13 3,160 24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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