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빛처럼 부서진 약속에 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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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우는피에로
작품등록일 :
2023.05.10 23:26
최근연재일 :
2024.09.16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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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27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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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1 진실은 언제나 밝혀지기 마련이다 (3)

DUMMY

며칠 후 새벽. A-1구역 별빛센터 센터장실.


달칵.


변 박사가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간다. 안에는 아무도 없다. 대신 발이 푹푹 빠지는 늪과 같은 어둠과 팔에 소름이 돋게 만드는 침묵이 가득할 뿐이다.


저벅. 저벅.


변 박사가 망설임 없이 손님용 소파 쪽으로 다가간다. 그리고 그 앞에 있는 테이블을 바라본다. 이 밑에서 분명 불빛이 반짝였다. 그래서 오늘 그 불빛이 무엇이지 확인할 참이다.


변 박사가 느리게 고개를 돌려 천장을 바라본다. 이곳 어딘가에 있을 감시 카메라는 무력화되었다. 대신 언제 원래대로 돌아올지 모르니 빨리 일을 처리해야 했다.


드르륵.


변 박사가 테이블을 살짝 민다. 그리고 불빛이 보였던 곳으로 다가가 그 앞에 앉는다. 매서운 눈빛으로 바닥 곳곳을 살펴본다. 그러다가 작은 홈을 발견한다. 변 박사가 그쪽으로 손을 뻗는다.


삐.


경고음이 들린다. 익숙한 소리다. 잠금장치에 설정해둔 암호가 틀렸을 때 나는 소리다.


‘이런 곳에 비밀 공간이 있었다니.’

변 박사가 중얼거린다.


변 박사는 센터장실에 잘 오지 않았다. 그래서 그동안 센터장실에 이런 비밀 공간이 있다는 걸 알지 못했다. 등잔 밑이 어둡다더니, 허 센터장은 자기 발아래에 추악한 진실을 묻고 살았던 모양이다.


변 박사가 주머니에서 5cm 정도 길이의 정사각형 모양의 장치 하나를 꺼낸다. 휴대용 컴퓨터이다. 여기에 미리 잠금장치를 확인하는 프로그램을 설치해서 왔다. 변 박사가 불빛이 보이는 곳에다가 가져다 댄다. 그러자 컴퓨터가 바쁘게 움직이며 그곳에 설치된 잠금장치를 확인한다.


짧은 시간이 지나고 결과가 뜬다. 동작 감지 시스템이 걸려 있다는 결과가 나온다. 변 박사가 속으로 한숨을 삼킨다. 이 보안 시스템은 해당하는 특정 행동을 찾아내야 해서 해킹하기 까다로웠다. 역시 비밀을 밝혀내기에 호락호락하지 않다.


변 박사가 자리에서 일어선다. 그리고 비밀 공간이 있으리라고 추정되는 곳을 빤히 바라본다. 어떤 영상이 암호로 설정되어 있는지 알 수 없다. 그걸 알아야지 저 문을 열 수 있는데, 답답할 따름이다.


변 박사가 주변을 살핀다. 그러자 눈에 손님용 소파 상석이 들어온다. 늘 허 센터장이 앉는 자리일 것이다. 어쩌면 여기에 앉아서 하는 특정한 행동이 암호로 설정되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변 박사가 그 자리에 앉는다. 그리고 팔걸이에 손을 올려놓고 바닥을 계속해서 응시한다.


순간 바닥에 빨간색 불빛이 반짝인다.


이건 잠금장치가 무언가를 인식한 후, 입력한 암호가 틀렸다는 걸 의미했다. 그렇다면 이 의자 어딘가에도 잠금장치가 있다는 것이다. 변 박사가 의자 곳곳에 컴퓨터를 가져다대어 잠금장치를 찾는다.


‘이거다.’

변 박사가 말한다.


의자 팔걸이 쪽에 지문과 정맥을 인식하는 장치가 있다. 아마 이 금고는 1차로 잠금장치에 등록된 지문과 정맥이 맞는지 확인한 후, 2차로 동작 감지 시스템에 등록된 특정한 행동을 해야 열리는 것 같았다. 그렇다면 지금부터 찾아야 할 건, 허 센터장의 지문과 정맥, 동작 감지 시스템에 등록된 행동이다.


‘역시 치밀한 사람이네.’

변 박사가 중얼거린다.


변 박사가 자리에서 일어선다. 그리고 잠금장치가 있는 곳을 바라본다. 어떻게 해서든 이걸 열어서 허 센터장의 추악한 모습을 밝혀야겠다고 다짐한다.



*



가을. 저녁. 서주시 주택단지 B-24.


백설이 성하를 만나러 갔다가, 세아의 차를 타고 집으로 왔다.


달칵.


현관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간다. 현관에 변 박사의 신발이 있다. 안쪽을 슬쩍 바라보니 거실에 불이 켜져 있다. 아무래도 변 박사가 온 모양이다. 백설이 황급히 신을 벗은 후 거실로 들어선다. 그러자 익숙한 얼굴이 보인다. 백설이 살며시 미소를 짓는다.


“오셨어요?”

백설이 반갑게 인사한다.

“응. 왔어?”

변 박사가 백설에게 따뜻하게 인사한다.




변 박사와 백설이 식탁을 가운데 두고 마주 보고 앉아있다. 두 사람 앞에는 찻잔이 놓여있다.


“지문이랑 정맥은 확보했고, 이제 찾아야 하는 게 동작 감지 시스템에 등록된 행동인 거죠?”

백설이 묻는다.

“응. 찾기가 쉽지 않네.”

변 박사가 말한다.

“네. 아무래도 보안을 이유로 영상을 자주 바꾸어서 그런 것 같아요.”

백설이 말한다.

“그래. 그래도 계속 생각해 봐야지.”

변 박사가 말한다.

“네. 저도 계속 알아볼게요.”

백설이 말한다.


백설이 차를 한 모금 마신다. 허 센터장에게서 무언가를 알아내려고 옆에 붙어 있기는 하지만, 워낙 경계심이 많은 사람이다 보니 정보를 알아내는 게 쉽지 않았다.


후.


백설이 작게 한숨을 쉰다. 허 센터장을 이기기에 자신의 능력이 부족하다는 게 절실하게 느껴진다.




두 사람의 대화가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다. 어느새 대화는 최근 한 박사가 서율에게 했던 실험으로 넘어갔다.


“요즘 서율이는 잘 지내고 있어?”

변 박사가 묻는다.

“건강은 문제없는데, 심리적으로 불안해하는 것 같아요. 자기가 좋은 뜻으로 한 일이었는데, 누군가에게 이용당했다는 걸 알게 되니까, 타인에 대한 신뢰가 조금 낮아진 것 같더라고요.”

백설이 말한다.

“그래. 그럴 만하네.”

변 박사가 고개를 끄덕인다.


변 박사가 속으로 한숨을 삼킨다. 한 박사 때문에 괜한 사람이 피해를 보았다는 생각에 입안이 쓰다.


“요즘 보육원에는 별일 없어?”

변 박사가 묻는다.

“음. 글쎄요.”

백설이 말한다.


백설이 입을 꾹 다물고 생각에 잠긴다. 머릿속에 최근 보육원에 있었던 일들이 빠르게 지나간다.


“아이들이 유난히 피곤해하는 것 같기는 해요. 아마 환절기라 그런가 봐요.”

백설이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한다.

“그래.”

변 박사가 고개를 끄덕인다.




한참 대화를 이어가다가 변 박사가 백설을 지그시 바라본다. 지난겨울부터 해서 지금까지 약 1년 반이라는 시간 동안 백설에게 많은 일이 있었다. 자신이 어떻게, 왜 태어났는지도 알게 되었고, 성하가 억울하게 죽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진실을 모두 알게 되어 혼란스러울 법도 한데, 백설은 그런 기색이 없었다. 거기다 변 박사와 심 기자에게 고맙다고까지 했다. 자신을 태어나게 해서, 그리고 잘 지낼 수 있도록 늘 도와주어서 말이다.


변 박사는 백설이 자신들을 이해해준 게 고마웠다. 쉽지 않았을 텐데 의연하게 받아주는 것이 고마웠다. 그래서 앞으로도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늘 최선을 다해서 돕고 싶었다.


“혹시나 무슨 문제 있으면 꼭 이야기해야 해.”

변 박사가 말한다.

“네.”

백설이 고개를 끄덕인다.


변 박사는 다짐했다. 허 센터장과 한 박사의 손아귀에서 백설이 놀아나지 않도록 하겠다고 말이다. 그래서 백설이 다치는 일이 없도록 하겠다고 말이다.



*



두 달 후. 서주시 주택단지 B-24.


세아가 오랜만에 백설의 집에 찾아왔다. 두 사람은 함께 저녁을 먹은 후, 나란히 소파에 앉아 술을 마시고 있다. 오늘 별빛건강센터 센터장과 부센터장의 취임식이 있었던 만큼, 그것과 관련해서 주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하루아침에 건강센터 센터장과 부센터장이 바뀌다니, 앞으로 건강센터가 시끄러워지겠어.”

세아가 말한다.

“그러게.”

백설이 고개를 끄덕인다.

“허 센터장님께서 가만히 있지 않겠지?”

세아가 묻는다.

“당연하지. 이제 센터에 자기편인 사람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어떻게든 자기 자리 지키려고 독이 잔뜩 오르시겠지.”

백설이 말한다.

“폭풍이 불겠구만.”

세아가 한숨 섞인 목소리로 말한다.


세아가 술을 한 모금 마신다. 쓴맛이 입안을 맴돈다.


“그나저나 금고는 어떻게 되었어?”

세아가 묻는다.

“아직 동작 감지 시스템을 못 열고 있어.”

백설이 말한다.

“얼른 찾아야 할 텐데······. 잘못하다가는 그 안에 있는 증거물이 사라질 수도 있잖아.”

세아가 말한다.

“그렇지.”

백설이 고개를 끄덕인다.


“아예 잠금장치를 초기화하는 건 안 되는 거야?”

백설이 묻는다.

“가능은 한데, 그렇게 하려면 보안장치의 주인을 허 센터장님에게서 다른 사람한테로 돌려야 한다고 하더라고.”

세아가 말한다.

“그렇게 하려면 당연히 허 센터장님께 걸릴 수밖에 없네.”

백설이 말한다.

“응. 그래서 동작 감지 시스템에 입력된 정보를 찾으려고 하는 거야.”

세아가 말한다.


흠.


백설이 작게 한숨을 쉰다. 잠금장치를 여는데, 시간이 오래 걸리고 있다. 이러다가 허 센터장에게 들키면 어쩌나 싶다.


“허 센터장님이라면 어떤 행동을 암호로 입력하셨을까?”

세아가 말한다.

“글쎄.”

백설이 한숨 섞인 목소리로 말한다.


백설과 세아가 생각에 잠긴다. 만약 자신이 허 센터장이라면, 어떤 걸 암호로 정했을지 곰곰이 생각해 본다. 어쩌면 아무도 열지 못하도록 복잡한 행동으로 정했을 수도 있다. 그러면서 아무도 생각하지 못한 행동을 저장했을 것이다.


“정말 단순하게, 허 센터장님께서 평소에 자주 하는 행동으로 되어 있는 건, 아닐까?”

백설이 말한다.

“글쎄.”

세아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한다.

“생각해 봐. 애초에 금고를 센터장실에 숨겨놓은 것도, 여기에 있어도 아무도 찾지 못할 거라는 생각 때문일 수 있어. 아무도 금고를 찾지 못한다고 생각하는데, 비밀번호를 굳이 어렵게 설정할 이유가 뭐가 있겠어.”

백설이 말한다.

“그렇긴 하지.”

세아가 말한다.


세아가 생각한다. 백설의 말에 일리가 있었다. 몇십 년 동안 아무도 찾지 못할 금고이니, 굳이 비밀번호를 어렵게 설정해둘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그리고 허 센터장이 자신이 주로 지내는 곳에 금고를 숨겨두었다면, 그만큼 금고를 자주 열어본다는 이야기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비밀번호를 쉽게 설정해두어 자주 열어볼 수 있도록 했을 수도 있다.


“그럼 허 센터장님께서 자주 하는 행동이 뭐일까?”

세아가 묻는다.

“그러게. 그건 지금부터 생각해 봐야 할 것 같네.”

백설이 말한다.


백설과 세아가 둘 다 허 센터장과 가깝게 지낸 시간이 얼마 되지 않다 보니, 허 센터장의 자주 하는 행동이나 사소한 습관을 쉽게 떠올리지 못한다. 아직 조금 더 생각해 보아야 할 것 같다.


“일단 허 센터장님과 가깝게 지낼만한 구실을 찾아야 할 것 같아.”

백설이 말한다.

“응. 옆에서 지켜보면서 암호로 썼을 만한 행동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는 게 좋을 것 같아.”

세아가 말한다.


백설과 세아가 다시 생각에 잠긴다. 허 센터장을 구슬릴 만한 게 무엇이 있는지 고민한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답이 나오지 않는다.


“일단 변 박사님하고 심 기자님이랑 이야기를 해 봐야겠는데.”

백설이 말한다.

“그러게. 뾰족한 답이 안 나오네.”

세아가 말한다.


백설이 작게 고개를 끄덕인다. 그러고는 살짝 고개를 돌린다. 그러자 창문 너머로 보름달이 보인다. 백설이 속으로 한숨을 삼킨다. 보름달을 보니 생각나는 일이 있다.


‘그건 싫은데.’

백설이 속으로 생각한다.


백설도 알고 있었다. 허 센터장에게 복수하겠다고 다짐한 후로, 자기편인 누군가가 다칠 수도 있겠다는 걸 말이다. 하지만 그때가 이렇게 빨리 오리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마음 한쪽에 커다란 돌이 얹힌 듯 답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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