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빛처럼 부서진 약속에 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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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우는피에로
작품등록일 :
2023.05.10 2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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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6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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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06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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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 별빛처럼 부서진 약속에 관하여 (7)

DUMMY

살짝 떠진 눈 사이로 햇빛이 들어온다. 백설이 기분 좋은 따뜻함에 일어나지 않고 뒤척인다.


“백설아, 일어나.”


누군가가 백설을 다정하게 부른다. 백설이 귀찮다는 듯 몸을 뒤척인다.


“어.”


그러다가 자신을 부르는 사람의 목소리를 알아채고 눈을 번쩍 뜬다.


백설이 자리에서 일어난다. 그리고 소리가 났던 곳을 바라본다. 그곳에는 성하가 서 있다.


“성하야.”

백설이 성하를 부른다.

“잘 잤어?”

성하가 말한다.


백설이 멍한 얼굴로 성하를 바라본다. 성하가 어떻게 자신 앞에 서 있나 싶다.


“오랜만이네. 잘 지냈어?”

성하가 다정하게 말한다.

“어? 어.”

백설이 떨떠름한 얼굴로 말한다.

“그래. 나 없어도 잘 지내는 거 같더라. 다행이야.”

성하가 말한다. 그러고는 환하게 웃는다.


백설이 입을 달싹인다. 성하를 만나면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았는데, 이렇게 만나니 무슨 말부터 해야 할지 정리가 되지 않았다. 쉽사리 입이 열리지 않는다.


“백설아, 우리가 별똥별 아래에서 했던 약속 어겼다고 원망 안 해. 오히려 고맙지. 내가 억울하게 죽었다는 걸 세상에 알려줬으니까.”

성하가 말한다.


성하가 손을 뻗어 백설의 머리 위에 가만히 올린다. 그리고 백설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그동안 고생했어. 이제는 마음 편하게 살아.”

성하가 말한다.


성하의 손을 타고 백설의 머리 위로 따스함이 전해진다. 백설이 입꼬리를 당겨 웃는다. 하지만 눈에서는 계속해서 눈물이 흐른다.


순간 엄청난 빛이 쏟아진다. 그대로 백설이 정신을 잃는다.




새벽. 서주시 주택단지 B-24.


헉.


백설이 눈을 번쩍 뜬다.


탁. 탁.


비가 창살을 계속해서 두들기는 소리가 들린다.


그 소리에 정신을 차린 백설이 자리에서 일어난다. 자신을 쓰다듬던 성하의 손길이 아직도 느껴지고, 성하의 목소리가 아직도 귓가를 생생하게 울린다. 분명 꿈인데 성하를 직접 만난 것처럼 생생한 느낌이 든다.


하.


백설이 실소를 터뜨린다. 자신의 그리움이 꿈에서 성하를 봤나 하는 생각이 드는 게 아니라, 성하가 자신이 보고 싶어서 꿈에 나왔다고 생각하는 자신이 어이없어서다. 말도 안 되는 생각을 뻔뻔하게 하는 자신이 어이없어서다.


툭. 툭.


이불 위로 눈물이 떨어진다. 아니다. 백설은 알고 있었다. 그 어이없는 생각이 진실이기를 말이다. 백설은 꿈을 통해서라도 성하가 다시 와주기를 바라고 있었다.


그런데 이렇게 가버리니 다음을 기약할 수가 없었다. 영영 멀리 가버릴 것만 같은 말을 하고 떠나버려서, 이제는 이렇게 만날 수도 없다는 생각에 눈물이 났다.


백설이 이불을 꽉 쥔다. 눈물이 계속해서 흘러나온다.




백설이 거실 소파에 기대어 앉아있다. 멍하니 허공을 바라본다.


‘그동안 고생했어. 이제는 마음 편하게 살아.’


성하의 그 말이 계속해서 생각났다. 아마 성하는 그 말을 해주려고 꿈에 온 것 같았다. 이제는 마음속 짐을 내려놓고 살라는 말을 하기 위해서 말이다.


백설이 희미하게 미소를 짓는다. 그 말이 어쩌면 성하가 정말 마지막으로 하고 싶었던 말일지도 모른다.


‘그럼 잘 살아야지.’

백설이 중얼거린다.


성하가 고맙다고 했다. 자신의 억울함을 풀어주어서 말이다. 그러니 이제는 자신만 살아남았다는 죄책감에서 조금 벗어나도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해야지 성하가 위에서 자신을 보고 편하게 지낼 수 있을 테니 말이다.


백설이 고개를 돌린다. 창문을 통해 햇빛이 안으로 들어온다. 어느새 아침이 되었다.



*



한 달 후. 별빛센터 C구역 백설 휴게실.


♩♪♬


알람 소리에 백설이 눈을 번쩍 뜬다. 그리고 손을 뻗어 스마트워치를 집는다. 알람을 끄고 시간을 확인한다.


‘늦었다.’

백설이 말한다.


출근 시간까지 30분 남았다. 30분 안에 해야 할 일을 머릿속으로 빠르게 정리한다. 씻고, 밥 먹고, 간단하게 양치를 한 후, 옷을 갈아입으면 될 것 같다. 시간이 빠듯하면 밥 먹는 건 생략해야 할 것 같다.


백설이 재빠르게 자리에서 일어난다. 침대를 정리할 틈도 없이 얼른 화장실로 들어간다.


빠르게 씻고 나온 후 부엌으로 향한다. 햇빛이 커튼 사이로 들어와 거실을 비추고 있다. 저녁에서 아침으로, 겨울에서 봄으로 시간이 차근차근 흐르고 있다.


「성하야, 잘 지내? 난 그럭저럭 지내고 있어. 잔잔하고 단조롭게 시간이 흘러가는 거 같아.」


찬장을 열어 시리얼과 그릇을 꺼내고, 냉장고를 열어 우유를 꺼낸다. 그릇에 시리얼과 우유를 넣는다. 숟가락을 찾아, 숟가락으로 시리얼을 섞는다. 그리고 식탁에 앉는다.


「오늘 아침에는 글쎄, 늦잠을 잔 거야. 밥을 안 먹고 가기에는 중간에 배고플 것 같고, 그렇다고 밥을 챙겨 먹기에는 시간이 부족할 것 같아서 어쩔 수 없이 시리얼을 챙겨 먹었어.」


‘어떻게 둘 다 늦잠을 잘 수가 있지.’


문득 성하와 함께 지낼 때, 둘 다 늦잠을 자서 급하게 시리얼을 먹었던 때가 떠오른다. 백설은 성하가 씻고 있는 사이, 남아있는 시리얼을 찾아 먹을 준비를 했다. 아침을 안 먹고 가면 배고플 것 같아, 이거라도 먹자는 생각이었다.


백설은 평소와 같이 그릇에 시리얼과 우유를 부은 후, 숟가락으로 섞었다. 씻고 나온 성하가 그런 백설을 보고 깜짝 놀랐다.


‘너, 시리얼 먹을 때 우유랑 섞어 먹어?’

성하가 물었다.

‘응.’

백설이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했다.


백설이 무슨 문제 있냐는 듯 어깨를 으쓱였다. 성하는 픽 웃었다.


‘나는 그냥 시리얼 넣고 그 위에 우유 붓고 바로 먹거든. 바삭하게 먹으려고.’

성하가 말했다.


백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방법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묵묵히 시리얼을 먹던 백설이 픽 웃는다. 사소한 일사에도 성하가 자리 잡고 있다는 사실이 다시금 느껴져서다.


「문득 늦잠 자고 일어나던 날, 같이 시리얼 먹고 학교 갔던 게 떠오르더라. 그때 우유랑 시리얼을 섞어서 촉촉하게 먹느냐, 안 섞고 바삭하게 먹느냐를 두고 이야기를 나누었었지. 돌이켜보면 별것 아닌 일도 이야깃거리가 될 수 있다는 게 참 신기해.」


앉은 지 5분도 채 되지 않은 것 같은데, 벌써 그릇을 다 비웠다. 백설이 시간을 확인한다. 가글을 하고 옷만 갈아입고 나가면 될 것 같다.


탁.


싱크대에 그릇을 넣고 다시 방으로 들어간다. 시간이 빠듯한 만큼 자주 입는 옷을 꺼내 꿰입는다. 혹시나 비뚤어진 부분이 있을까, 거울 앞에 서서 옷매무새를 다듬는다. 잊지 않고 스마트워치도 찬다.


‘됐다.’

백설이 말한다.


이제 준비가 다 끝났다. 나가기만 하면 된다. 현관으로 향한다. 신발을 신는다.


달칵.


백설이 문을 연다. 오늘도 하루가 시작되었다.



*



E구역 앞.


백설이 E구역 앞으로 나온다. 아이들의 등교지도를 위해서다. 먼저 온 강 교사와 문 교사에게 인사한 후, 스마트워치로 아이들 명단을 확인한다.


시간이 되자 카풀이 들어오기 시작한다. 탑승 준비가 끝나자 아이들이 하나둘 나오기 시작한다.


“쌤, 안녕하세요.”

서율이 밝게 인사한다.

“응. 안녕.”

백설이 인사한다.


백설이 서율을 보고 살며시 미소를 짓는다. 아침부터 밝은 모습이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하준과 도윤이 차례로 인사한다. 아직 잠이 덜 깼는지 목소리에 피곤함이 묻어난다.


백설이 잠시 카풀 안을 둘러본다. 카풀 안이 시끌벅적하다. 잠깐 떨어져 있었을 뿐인데도 할 이야기가 많은 모양이다.


“오늘 점심 뭐 나온대?”

“그거 오늘까지 제출이야? 학교 가자마자 숙제해야겠네.”

“아. 오늘 체육인데 체육복 안 챙겼네. 지금 갔다 오면 늦겠지? 이따가 빌려줄 사람?”


아이들이 삼삼오오 모여 오늘 있을 일에 관해 이야기한다. 이야기를 나누는 아이들 눈빛이 반짝인다.


「오전에는 등교지도를 했어. 아이들은 아침에 일어나서 학교 가는 걸 힘들어하지만, 그래도 새로운 날이 시작됐다는 것 때문에, 설렘을 느끼는 것 같아.」


정해진 카풀 탑승 시간이 되었다. 백설이 안 온 사람이 있나 출석을 확인한다.


“다 왔네요.”

문 교사가 말한다.

“다들 성실하네요.”

강 교사가 말한다.

“그러게요.”

백설이 말한다.


아이들이 다 왔다는 것을 확인한 후 카풀을 출발시킨다. E구역과 F구역 앞에 서 있던 차들이 하나둘씩 출발한다. 백설이 멀어져 가는 카풀을 바라본다. 아이들이 무사히 센터를 빠져나간 것을 보니 마음이 놓였다.


‘요즘 따라 피곤해하는 아이들이 많네요.’


문득 문 교사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작년 가을, 아이들은 아팠었다. 한 박사가 아이들을 상대로 벌인 ‘찰리의 장난’ 실험 때문이었다. 이유도 모르고 아픈 아이들을 바라보며, 괜찮기를 바랐었다. 원인을 알고 난 후에는 이대로 지켜볼 수 없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 노력 덕분에 다행히 아이들의 상태는 좋아졌다.


「시간이 되어 출석 확인을 하는데, 아이들은 제시간에 맞춰서 모두 도착했더라고. 그 사실을 아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더라. 오늘은 다들 건강하다는 증거처럼 느껴져서 그랬나 봐. ‘찰리의 장난’ 때 아파서 늦는 아이들이 많았으니까.」


백설이 고개를 돌린다. 그리고 E구역을 바라본다. 아이들이 안전하고 행복하게 지내야 할 이곳이, 아이들에게 아픔을 주는 공간이 되었던 시간이 있었다. 그때의 교사들은 자신들이 아이들을 지키지 못했다는 생각에, 아이들은 믿었던 이들에게 이용당했다는 사실에 상처받았다. 그래도 지금은 서로를 향한 노력과 믿음 덕분에 상처는 아물어 가고 있다.


“한 선생님.”

문 교사가 백설을 부른다.

“네?”

백설이 화들짝 놀라며 대답한다.

“이제 들어갈까요?”

문 교사가 묻는다.

“네.”

백설이 고개를 끄덕인다.


백설이 문 교사와 강 교사와 함께 E구역으로 향한다. 안으로 들어가자 중학교 교복을 입은 아이들이 보인다. 이제 중학생들이 학교에 가기 위해 나오는 모양이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아이들이 백설, 문 교사, 강 교사를 보고 인사한다. 세 사람이 아이들에게 인사한다. 아이들의 재잘거림과 웃음소리가 주변에 가득하다. 백설이 살며시 미소를 짓는다.


「다행히 문제는 잘 해결되었지만, 그래도 마냥 안심할 수는 없어. 누가 또 아이들을 아프게 할지 알 수 없으니까. 그래서 항상 두 눈 부릅뜨고 아이들 곁에 서서, 아이들을 지키려고 노력해야지. 아이들이 다치지 않도록,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도록 말이야.」


백설이 다짐한다. 아이들이 서로에게 인사하고 서로의 안부를 물으며 하루를 시작할 수 있도록, 아이들이 건강하고 활기찬 모습으로 하루를 보낼 수 있도록, 아이들이 행복하게 하루를 마무리할 수 있도록, 늘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이다.


“한 선생님, 얼른 가요.”

문 교사가 말한다.

“네.”

백설이 말한다.


백설, 문 교사, 강 교사가 나란히 엘리베이터를 타고 구름공원으로 향한다. 구름공원에 가서 해야 할 일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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