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빛처럼 부서진 약속에 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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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는피에로
작품등록일 :
2023.05.10 2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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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6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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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07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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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 별빛처럼 부서진 약속에 관하여 (8) (完)

DUMMY

저녁. 서주시 주택단지 A-14.


오늘은 변 박사, 심 기자, 백설, 세아 이렇게 네 사람이 모여 함께 저녁을 먹기로 했다. 시간이 되자 서로 다른 곳에 있던 사람들이 한곳으로 모인다.


백설이 집 안으로 들어온다. 손에는 종이가방이 들려 있다. 식당에서 갈비찜을 포장해 온 것이다.


부엌에서 저녁을 준비하던 변 박사가 인기척을 느끼고 거실로 나온다. 그러자 막 집 안으로 들어온 백설과 만난다. 백설이 변 박사에게 인사한다. 변 박사도 백설에게 인사한다.


“올 때 뭐 타고 왔어?”

변 박사가 묻는다.

“운전해서 왔어요.”

백설이 말한다.

“힘들지는 않았고?”

변 박사가 묻는다.

“네. 괜찮았어요.”

백설이 말한다.


「저녁에는 세아랑 변 박사님, 심 기자님과 만나 저녁을 먹었어. 가는 데까지는 운전해서 갔지. 사고를 당하고 2년 만에 다시 운전을 시작한 거 같아. 운전하면 트라우마 때문에 힘들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생각보다 괜찮더라. 사고에 관해 이야기하다 보니 상처가 옅어져서 그런가 봐.」


백설과 변 박사가 대화를 나누며 부엌으로 향한다. 백설이 싱크대 옆 조리대 위에 들고 있던 종이 가방을 내려놓는다.


“음식은 다들 오면 꺼낼까요?”

백설이 묻는다.

“그래.”

변 박사가 말한다.


백설과 변 박사가 식탁 앞에 앉아 대화를 나눈다.




백설, 세아, 변 박사, 심 기자가 식탁 앞에 앉아 저녁을 먹는다. 만나지 못한 시간 동안 있었던 일과 오늘 하루 동안 있었던 일에 관해 이야기를 나눈다.


「소식 들었지? 변 박사님은 이번에 별빛센터 센터장이 되고, 심 기자님은 해월일보 부사장이 되었다는 거. 그리고 세아는 사회부 기자로 열심히 일하고 있어. 최근에는 신입 기자가 들어왔는데, 세아 직속 후배로 배정되었다고 하더라고.」


“기자로 생활하다가 부사장 자리에 앉으니까 어때요? 해월일보가 달라 보여요?”

백설이 심 기자에게 묻는다.

“기자로 일할 때는 몰랐던 회사 사정을 더 깊이 알게 되어서 그런지, 조금 달라 보이기도 하는 거 같아요.”

심 기자가 말한다.

“네.”

백설이 고개를 끄덕인다.


“센터는 요즘 어때요?”

심 기자가 묻는다.

“제 앞에서는 다들 조심하는 분위기인 거 같아요. 보육원 쪽은 어때?”

변 박사가 말한다.

“별일 없는 거 같아요. 평소처럼 먹고, 자고, 놀면서 지내고, 친구랑 싸웠다고 이야기하러 오거나 힘들다고 투정 부리러 오거나 그러고 지내요.”

백설이 말한다.


“센터에서 내 이야기 나오는 건 없어?”

변 박사가 백설을 바라보며 묻는다.

“센터에 대해 아는 것도 많고, 아이들도 아끼는 분이니까 잘하시겠지, 이런 생각들이신 거 같아요. 센터장이 될 사람이 되었다, 주로 이런 분위기인 거죠.”

백설이 말한다.

“다들 믿어준다니 다행이네.”

변 박사가 말한다.


백설이 살며시 미소를 짓는다. 오랜 시간 동안 변 박사가 쌓아온 신뢰가 쉽게 무너지지 않았다.


“그나저나 너는 센터 기자단 계속할 거야?”

백설이 묻는다.

“글쎄. 고민 중.”

세아가 말한다.


세아는 심 기자가 센터 기자단에서 나가고 난 후, 해월일보에서 혼자 기자단 일을 하느라 바빠졌다. 거기다가 사회부에서 하던 일도 해야 하고, 이번에 직속 후배까지 받으면서 더더욱 바빠졌다. 체력에도 한계에 다다르고 있었다. 그래서 원래 하고 싶었던 사회부 일에 집중하기 위해서 센터 기자단을 그만둘까 고민했다.


“한 가지 일에 집중해야 할 때가 있어. 잘 고민해서 네가 더 원하는 거 하나에만 집중해.”

변 박사가 말한다.

“네.”

세아가 고개를 끄덕인다.


그 후로도 네 사람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다. 백설이 잠시 말을 멈추고 세 사람을 바라본다.


「같이 이야기를 나누는데, 마음이 편해지더라. 진실을 밝히기 위해서 같이 힘을 합쳤던 사람들이라 그런지 같이 있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되는 느낌이 들더라. 또 다들 잘 지내고 있어. 각자의 자리에서 자신에게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면서, 그렇게 하루하루를 잘 보내고 있어.」


백설이 환하게 웃는다. 여기서 시간이 멈추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지금, 이 순간이 너무도 행복했다.



*



한 달 후. 저녁. 별길공원.


오늘은 풍등 축제가 있는 날이다. 백설과 세아가 축제를 즐기기 위해 공원을 찾았다. 두 사람은 한적한 언덕 위에 있는 정자로 향했다. 사람이 없어 조용히 축제를 구경하기 좋은 곳이다. 성하와 함께 풍등 축제를 보았던 곳이기도 하다.


백설과 세아가 나란히 서서 공원을 바라본다. 다양한 색의 풍등이 환한 빛을 내며 강물에 떠다니고 있다. 사람들의 소원이 다양하고 간절한 게 느껴졌다.


「어느덧 5월이야. 벚꽃이 만개했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이제는 여름이 더 가까운 시기가 됐어. 최근에 풍등 축제가 있어서 세아랑 같이 갔다 왔어. 너랑 같이 풍경 축제를 봤던 그 전망대에서 세아랑 나란히 서서 풍경 축제를 구경했어. 은은한 불빛이 호수를 떠다니는데 그 모습이 아름답더라. 호수에 별이 뿌려진 거 같았어.」


백설이 그동안 있었던 일을 되새겨본다. 허 센터장과 한 박사가 제대로 처벌받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그들의 죄를 세상에 알리기 위해 노력했다. 결국 두 사람은 재판에서 유죄 판결을 받았고 형을 이행하기 위해 교도소에 수용되었다.


“허 센터장님 소식 들었어?”

세아가 조심스럽게 묻는다.

“응.”

백설이 말한다.


「며칠 전에 기사를 봤어. 허 센터장님께서 교도소에서 자살했다는 내용이었어. 한 박사님이 자살했다는 기사를 접한 지 한 달 만의 일이야. 두 분의 유서에는 모두 ‘일이 이렇게 되어서 억울하다’라는 내용이 담겨 있었어. 자신들의 잘못으로 피해받은 사람에게 전하는 사과는 없었어.」


후.


백설이 깊은 한숨을 쉰다.


「허무하더라. 나를 이렇게 힘들게 하는 사람들은 그렇게 쉽게 떠나버릴 수 있는 건지, 억울하더라. 화도 많이 나고.」


“자기 잘못에 책임도 지지 않고, 쉽게 떠나면 안 될 사람들인데 너무하다는 생각이 들더라.”

세아가 한숨 섞인 목소리로 말한다.

“그러니까. 자기들이 억울한 게 뭐가 있어. 잘못한 일에 따른 책임을 지는 거였는데.”

백설이 말한다.

“자기가 잘못했다는 건 알았겠지?”

세아가 말한다.


백설이 지난겨울, 한 박사를 만나러 갔던 일이 떠올린다.


‘성하랑 저한테 왜 그랬어요. 우리는 아무것도 몰랐어요.’


백설은 그때 그 말을 시작으로 한 박사에게 억울함을 토로했다. 자신들이 그런 일을 당할 이유도 없었고, ‘제2시민’이라는 이유로 마음대로 이용해도 된다는 그 생각이 이기적이라고 따졌다. 한 박사는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변명도 사과도 없었다.


「그래도 한 박사님한테 찾아가서 화를 내고, 왜 그랬냐고 따지고, 그렇게 내 이야기를 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어. 그것조차 못했으면 악 소리 한 번 내지 못했다는 생각에 더 억울했을 텐데 말이야.」


한 박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그날 가서 이야기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아무리 듣지 않는 상대여도 일단 이야기했다는 것을 위안으로 삼았다.


“두 분 다 하늘에서 성하 만나면, 거기서는 꼭 사과했으면 좋겠다.”

세아가 말한다.

“응. 꼭 그랬으면 좋겠다.”

백설이 말한다.


백설이 강물을 따라 흘러가는 풍등을 바라보며 소원을 빈다. 부디 죽음 이후의 삶이 있어서, 허 센터장과 한 박사가 그곳에서라도 제대로 벌을 받기를 말이다.



*



여름. 저녁. 풍명도 청포해수욕장.


백설이 여름을 맞이하여 풍명도에 왔다. 숙소는 늘 그렇듯, 성화와 마지막으로 묵었던 민박집으로 정했다. 그렇게라도 성하를 기억하고 싶어서다.


「여름을 맞이해서 바다에 왔어. 우리가 같이 지냈던 민박집에 찾아갔지. 사고 후에 한 차례 주인이 바뀌었지만, 그래도 여전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더라고. 사람들은 많이 찾아오지 않지만 그래도 그 자리를 지켜주고 있다는 게 참 고맙더라고. 만약에 없어졌으면 널 기억할 공간이 사라졌을 텐데 말이야.」


백설이 저녁을 먹고 모래사장을 따라 걷는다. 저녁이라 그런지 오가는 사람들이 적다.


한참을 걷던 백설이 벤치에 앉는다. 그리고 바다를 바라본다. 파도가 하얀 거품을 내며 모래사장으로 달려들었다가, 발자국을 남기고 다시 뒤로 빠진다. 안정적인 속도로 반복적으로 움직이는 모습으로 보니 마음이 편안해진다.


백설이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본다. 하늘에는 별이 가득하다.


‘고민이 많은 걸까, 아니면 걱정이 많은 걸까.’

백설이 중얼거린다.


성하는 밤하늘에 별이 많으면 일이 있는 거니까 멀리서라도 잘되라고 응원해달라고 말했다. 더는 볼 수 없는 성하가 어떤 생각을 하며 지내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잘 지내고 있으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저녁에는 바다를 보러 갔어. 하늘에는 별빛이 가득하더라. 네가 나를 생각하고 있는 걸까, 아니면 우리가 많은 고민을 안고 있기 때문인 걸까, 그런 생각을 들었어.」


‘사과는 받았으려나.’

백설이 생각한다.


지난봄에 자신이 빌었던 소원은 어떻게 되었나 문득 궁금해졌다. 성하는 허 센터장과 한 박사를 만났을지, 만나서 사과는 받았을지 궁금했다.


백설이 뚫어지게 하늘을 바라본다. 그러다 별과 별 사이에 떨어지는 별빛 하나를 발견한다. 별똥별이다.


「한참 동안 하늘을 보는데 저 위에서 별똥별이 떨어지더라. 만약 별똥별이 떨어지면 죽었다고 생각하고 마음에 묻지 말고 나의 인생을 살라고 했던 말이 떠오르더라. 이제 일이 다 잘 끝났으니, 너를 잊고 잘 살아가길 바란다고 이야기하고 싶은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어.」


성하는 진심으로 백설이 자신을 잊고 잘 살아가기를 바라는지도 모른다. 성하가 자신이 한 마지막 부탁을 백설이 들어주기를 바라며 별똥별로 찾아왔을지도 모른다.


백설이 씁쓸한 웃음을 짓는다. 이제는 정말로 성하를 놓아주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성하를 삶을 살아가는 원동력으로 삼는 일을 그만두어야겠다. 일상을 살아가며 성하가 생각날 때도 있겠지만, 그래도 성하가 삶의 전부가 되지 않도록 해야겠다.


「성하야, 나는 이제 온전히 내 힘으로 삶을 살아보려고 해. 너를 대신해서 살아간다는 마음을 접고, 이제는 내 삶만의 의미를 찾아 살아보려고 해. 그렇다고 그게 너를 잊는다는 의미는 아니야. 네가 나에게 주었던 소중한 추억들을 잊지 않고 살아갈게. 그러니까 우리가 다시 만나는 날에, 잘 살다 왔다고 꼭 안아줘.」


백설이 오랜 시간 동안 마음속으로 성하에게 썼던 편지를 끝마친다. 성하가 잠시 꿈에 나왔을 때, 미처 하지 못한 말들을 이렇게라도 전할 수 있어서 마음이 편했다.


백설이 자리에서 일어난다. 내일을 준비하기 위해서 이제 그만 숙소로 돌아가야 했다.


저벅. 저벅.


백설이 모래사장을 빠져나간다. 밤하늘에는 여전히 별빛이 내리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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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 101 별빛처럼 부서진 약속에 관하여 (7) 24.09.06 4 0 11쪽
101 100 별빛처럼 부서진 약속에 관하여 (6) 24.09.05 6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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