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빛처럼 부서진 약속에 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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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우는피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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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5.10 2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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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01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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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6 별빛처럼 부서진 약속에 관하여 (2)

DUMMY

일주일 후. 서주지방법원.


오늘은 5차 공판이 있는 날이다. 이번 공판부터는 ‘진주’를 만드는 과정에서 불법적인 일이 있었는지를 이야기한다.


백설이 서율과 함께 법원에 도착한다. 법정에 들어서기 직전, 백설이 서율을 부른다. 서율이 물음표가 가득한 얼굴로 백설을 바라본다.


“증인으로 서는 거, 정말 괜찮아?”

백설이 묻는다.

“솔직히 무서워요. 허 센터장님이랑 한 박사님은 저한테 큰 어른이신데, 그분들의 잘못을 이야기해야 하니까요.”

서율이 말한다.


백설이 서율을 바라본다. 아직도 두려운 마음을 가지고 있으면, 말려야 하는지 고민한다.


“그래도 해야죠. 제가 피가 초록색이라는 사실이 드러날까 봐 계속 피하기만 하면, 그분들은 제대로 된 처벌을 못 받을 수도 있잖아요. 분명히 잘못했으니 벌을 받아야 하는데 말이에요.”

서율이 단호하게 말한다.

“그래.”

백설이 고개를 끄덕인다.


백설이 턱, 하고 서율의 어깨에 손을 올린다. 그리고 근엄한 얼굴로 서율을 바라본다.


“혹시라도 증언하기 힘들면 이야기해.”

백설이 말한다.

“네.”

서율이 고개를 끄덕인다.


백설이 손을 내린다. 그리고 서율과 함께 법정으로 들어선다. 법정 안에 있는 사람들이 심각한 얼굴로 재판이 시작되기를 기다리고 있다. 서율이 무거운 분위기에 침을 꼴깍 삼킨다.


‘괜찮아. 잘할 수 있어.’

서율이 속으로 자신을 다독인다.


백설이 비어 있는 자리를 발견하고 서율과 함께 앉는다. 재판이 시작되기 직전, 세아가 도착한다. 재판이 시작된다.




고 검사가 서율을 증인으로 신청한다. 서율이 긴장한 얼굴로 증인석에 선다. 무심결에 허 센터장과 한 박사가 있는 쪽을 바라보았다가 흠칫, 놀란다. 고 검사가 그런 서율을 빤히 바라본다. 그러다가 판사석을 바라본다.


“재판장님, 현재 증인이 진술하기 어려워 보이는데 가림막을 설치해도 될까요?”

고 검사가 묻는다.

“네.”

재판장이 말한다.


곧 증인석과 피고인석 사이에 가림막이 세워진다. 서율의 얼굴이 조금 편안해진다. 백설이 뒤에서 안도의 한숨을 쉬는 서율의 모습을 보고, 입술을 깨문다. 힘들어 보이는데 괜히 증인석에 세웠나 후회도 든다.


“한 박사님께서 진행하는 실험에 어떻게 참여하게 되었죠?”

고 검사가 묻는다.


서율이 차분하게 고 검사의 말에 대답한다. 한 박사가 ‘진주’를 만들기 위하여 서율의 피가 필요하다고 했고, 서율은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일이니 한 박사를 도왔다고 말이다. 헌혈한 후 어지럼증을 호소하기도 하였지만, 별다른 이상이 없는 줄 알았다고 말이다. 그 후 자세한 실험 과정을 알게 되었고, 한 박사가 상당한 양의 피를 뽑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말이다.


“그랬군요. 사실을 알고 난 후에 힘들었겠어요.”

고 검사가 말한다.

“네.”

서율이 작게 대답한다.


고 검사가 서율에 대한 신문을 빠르게 마친다. 이 이상을 물었다가는 서율에게 심리적인 고통을 줄 것 같아서다.


서율이 방청석으로 돌아간다. 백설이 서율의 등을 토닥인다. 서율이 작게 심호흡한다. 긴장을 많이 한 모양이다. 증인석과 피고인석 사이에 쳐졌던 가림막은 금세 치워졌다.


이어서 백설이 증인으로 나선다. 그리고 자신이 한 박사가 서율을 대상으로 실험을 진행한 사실을 알게 되었던 과정을 설명한다. 서율의 이야기를 토대로 한 박사의 뒤를 쫓아 알게 되었고, 이러한 사실을 윤리위원회에 이야기했다고도 말한다.


“그 후에 또 다른 실험이 있다고 했는데, 사실인가요?”

고 검사가 묻는다.

“네.”

백설이 말한다.

“또 다른 실험이 진행되고 있다는 건, 어떻게 알게 되었나요?”

고 검사가 묻는다.


후.


백설이 깊은 한숨을 쉰다.


“우리는 이만 나갈까?”

세아가 서율에게 말한다.

“네? 네.”

서율이 얼떨결에 대답한다.


탁.


세아가 서율을 데리고 밖으로 나간다.


백설이 굳은 얼굴로 이야기한다. 별빛보육원에서 지내는 아이들에게서 이상 증세가 나타나기 시작했고, 그러다가 한 아이가 복통을 호소하며 병원에 입원하였다고 말이다. 이 아이를 검사한 결과, 몸에서 마약성 진통제가 나왔다고 말이다. 먹게 된 경로를 확인하다가 한 박사가 아이들을 대상으로 실험을 진행하고 있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고 말이다.


“다른 아이들에게서도 이상 증세가 보였나요?”

고 검사가 묻는다.

“네. 지나치게 피곤해하거나 허공을 보고 웃는 등의 행동을 했었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게 마약성 진통제를 먹은 부작용이라고 하더라고요.”

백설이 말한다.

“그렇군요.”

고 검사가 말한다.


백설에 대한 증인 신문이 끝났다. 다음으로 온 박사와 변 박사가 차례로 나와 증인 신문을 한다.


두 사람의 증언을 정리하면 이랬다. 아이들에게서 이상 증세가 보이기 시작한 후, 이에 대해 윤리위원회에서 조사하기 시작하였다. 그 결과 아이들에게 실험 내용을 알리고 동의를 받는 과정을 거치지 않고 실험이 진행되었고, 아이들에게 마약류 약물을 먹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윤리위원회에서는 이 일에 대해 관련자가 형사적 책임을 져야 한다고 판단하여, 검찰에 고발하였다.


증인 신문이 끝난 후, 피고인 신문이 시작되었다. 한 박사가 먼저 증인석에 선다.


“마약성 진통제가 든 ‘찰리의 장난’을 아이들에게 먹인 이유가 무엇인가요?”

고 검사가 묻는다.

“제가 만든 ‘진주’의 효과를 검증하기 위해서였습니다.”

한 박사가 말한다.

“아이들이 마약성 진통제를 먹고 부작용이 겪게 될 거라고는 생각 안 하셨나요?”

고 검사가 묻는다.

“‘진주’의 효과가 분명 있을 테니 괜찮을 거로 생각했습니다.”

한 박사가 말한다.

“그래서 ‘진주’는 효과가 나타났습니까?”

고 검사가 묻는다.

“······.”

한 박사가 입을 꾹 다문다.

“아이들에게 해를 입힌 이 실험을 진행한 이유가 애초에 무엇인가요?”

고 검사가 싸늘한 목소리로 묻는다.


한 박사가 허 센터장을 슬쩍 바라본다. 허 센터장이 굳은 얼굴로 한 박사를 바라본다. 한 박사가 황급히 시선을 피한다.


“허 센터장님의 암묵적인 지시가 있었습니다.”

한 박사가 말한다.

“암묵적인 지시요?”

고 검사가 되묻는다.

“네. 허 센터장님께서 건강센터 쪽에서 ‘진주 프로젝트’를 완성하기를 바란다고 은근히 의사를 내비쳤고, 이에 따라 급하게 실험을 마무리 지으려다 보니 어쩔 수 없었습니다.”

한 박사가 말한다.

“네.”

고 검사가 어이없다는 듯 말한다.


고 검사와 변호사가 진행한 한 박사에 대한 신문이 끝났다. 이어서 허 센터장의 신문이 시작된다. 허 센터장이 증인석에 선다.


“앞서 한 박사님께서 증인이 ‘건강센터 쪽에서 진주 프로젝트를 완성하기를 바란다’라는 의사를 내비쳤다고 하는데, 사실인가요?”

고 검사가 묻는다.

“글쎄요. 그런 적 없는 것 같은데요.”

허 센터장이 고개를 젓는다.

“그럼 한 박사님께서 아이들을 대상으로 실험을 진행한다는 것도 알고 있었나요?”

고 검사가 묻는다.

“한 박사님이 실험을 진행하고 있다는 건 알고 있었죠. 그래도 이런 끔찍한 일을 벌이고 있는 줄은 몰랐죠.”

허 센터장이 말한다.


하.


한 박사가 헛웃음을 짓는다. 어떻게든 자기 잘못을 회피하기 위해서 하는 행동이 우스웠다.




지난번에 이른바 ‘찰리의 장난’이라고 불리던 실험을 두고, 허 센터장과 한 박사가 충돌하는 바람에 공판이 꽤 길게 이어졌다. 결국 이번 일에 대한 공판은 두 차례에 걸쳐서 이어졌다.


어느새 7차 공판까지 왔다. 이번 공판에서는 ‘한 박사 살인미수’ 사건에 관해서 이야기할 차례였다.


백설이 방청석에 앉아 피고인석을 바라본다. 오늘은 허 센터장 혼자 앉아있다. 한 박사는 잠시 후에 증인으로 출석할 것이라고 들었다. 지난 공판부터 이번 공판까지 진행되면 두 사람 사이는 걷잡을 수 없이 벌어지게 될 것이었다.


천 형사, 변 박사, 김 박사가 차례로 증인석에 선다. 세 사람의 진술을 정리하면 이랬다. 한 박사가 쓰러져서 별빛병원으로 이송된 후, 어떤 이유로 쓰러졌는지 알아내다가 ‘그림자’를 먹고 쓰러졌다. 이후 어떤 경로로 ‘그림자’를 먹게 되었는지 조사한 결과, 허 센터장이 한 박사에게 선물한 호박 빛깔의 술 안에 ‘그림자’가 들어 있었고, 한 박사가 그걸 먹고 쓰러졌다는 걸 알게 되었다고 말한다.


이어서 한 박사가 증인석에 선다. 법정에 들어서서 증인석에 설 때까지, 허 센터장이 한 박사를 계속해서 지켜본다. 한 박사는 뒤에서 시선이 느껴짐에도 그쪽은 쳐다도 안 보고 증인석으로 향한다.


“증인께서는 술을 먹었을 때 이상한 느낌을 받았었나요?”

고 검사가 묻는다.

“네. 순간 몸이 나른해지고 힘이 빠지는 느낌을 받았었습니다.”

한 박사가 말한다.

“그 후에 깼을 때 병원이었고요?”

고 검사가 묻는다.

“네.”

한 박사가 고개를 끄덕인다.

“김 박사님께서 술을 먹고 잘못된 것 같다고 했을 때, 어떤 기분이었나요?”

고 검사가 묻는다.

“그것 때문에, 몸이 갑자기 안 좋아졌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었습니다.”

한 박사가 말한다.


허 센터장이 입술을 꽉 깨문다. 궁지에 몰렸다는 생각에 앞이 깜깜했다.


고 검사의 증인 신문이 끝났다. 이어서 허 센터장의 변호사가 일어선다.


“증인은 당시 과도한 스트레스로 몸에 이상을 느끼고 약을 먹지 않았었나요?”

변호사가 묻는다.

“······.”

한 박사가 당황한 얼굴로 변호사를 바라본다.


허 센터장이 고개를 끄덕인다. 상황이 불리하게만 흘러가지 않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백설이 허 센터장과 한 박사를 번갈아 바라본다. 그러고는 작게 고개를 젓는다. 한때는 끈끈해 보였던 두 사람의 관계가 위기 앞에서는 아무 소용이 없었다. 그저 자신의 죄를 덜기 위해서 상대를 공격하는 데 여념이 없다.




일주일 후, 사람들이 다시 모였다. 오늘은 그동안 진행했던 공판 내용을 바탕으로 판결이 나오는 날이다. 길었던 1심 재판의 마지막 날인 셈이다.


재판장이 이번 사건의 쟁점을 간략하게 이야기하고 각 측의 주장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어느새 판결문의 막바지를 읽어가고 있다.


“피고인 허 씨와 한 씨는 별빛보육원에서 지내는 아이들을 보호해야 하는 소중한 생명체를 본 것이 아닌, 자기들이 이용해도 되는 하나의 실험체로 본 것이 분명하다. 이러한 이들의 행동으로 인하여 그동안 아이들이 죽거나 다치는 등의 심각한 피해를 보았다고 판단된다. 따라서 본심은 다음과 같이 판결한다.”

재판장이 말한다.


모두의 시선이 재판장에게로 향한다. 백설이 긴장되는 마음에 저도 모르게 침을 꼴깍 삼킨다.


“피고인 허 씨와 한 씨 모두 무기징역에 처하고, 임상실험이 진행되는 연구소, 병원, 교육 기관 및 보육 시설 등의 취업을 영구히 제한한다. 또한 한 씨의 의사 면허를 취소한다.”

재판장이 말한다.


재판장이 판결문에서 시선을 떼고 법정 안을 둘러본다.


“끝으로 이번 판결에 따라, 앞으로는 어떠한 방법으로 태어났든 소중한 생명체인 사람이 어느 환경에서든 잘 보호받고 살 수 있게 되기를 재판부는 바란다.”

재판장이 말한다.


옆에 있던 세아가 백설의 손을 가만히 잡는다. 백설이 고개를 돌려 세아를 바라본다. 세아도 미소 짓고 있다. 백설도 따라 미소를 짓는다. 진실을 찾기 위하여 싸웠던 긴 시간이 보상받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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