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지의 편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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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라프
작품등록일 :
2023.05.12 23:43
최근연재일 :
2024.09.18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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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7.19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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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멸종 (3)

DUMMY

몇 차례 합이 오갔다.

발라크의 날개가 여러 차례 아윤을 강타하기 위해 휘둘러졌고, 아윤은 그때마다 제 창을 휘둘러 날개를 받아쳤다.


‘육탄전 자체는 그렇게 힘들지 않아. 문제는.’


아윤의 말마따나 발라크는 근접에 특화된 마신이 아니었다. 육탄전 자체는 72 마신 중 극 하위권에 속할 정도. 하지만 발라크는 《관념》에서 고평가를 받는 마신이었다.

지금 아윤의 발밑에 그 이유가 있다.


끼기긱!


무수히 많은 수의 파충류, 그러니까 다시 말해 도마뱀들이 아윤의 발을 묶었다.

기겁한 아윤이 창을 휘둘러 흑염(黑炎)을 생성해 벌레들을 잿더미로 변화시켰지만 그것마저 극히 일부에 불과했다.

잿더미의 두 배 정도 되는 양의 도마뱀이 아윤을 덮쳤다.


“올라가!”


아윤이 흑염을 온몸에 두르고 파충류의 무덤을 빠져나와 하늘을 향했다. 허나 하늘에는 그녀가 날아오르기만을 기다렸던 누군가가 있었으니.


쾅!


카가가각!


땅을 긁으며 불시착한 아윤이 빠르게 정자세를 되찾았다.

그런 아윤의 앞으로 전신에 비늘을 두른 여자가 여유롭게 착지했다.

아윤은 그런 여자를 날카롭게 노려봤다. 이윽고 여자의 옆으로 발라크가, 또 그 양옆으로는 셀 수도 없을 만큼 많은 수의 파충류가 혀를 날름거렸다.


“오늘 여기가 내 묫자린가?”


그때, 여자가 앞으로 나와 아윤에게 말을 걸었다.


“벨리알의 주민이여.”

“왜? 나 죽이기 전에 내 목소리라도 담아 주려고 불렀냐?”


아윤이 날이 잔뜩 선 상태로 답했다.

여자는 아랑곳하지 않고 아윤에게 이어 질문했다.


“나를 기억하는가?”


그 말에 아윤은 기가 차다는 듯 답해 주었다.


“내가 널 어떻게 알아? 네 외형이 특이하다고 남들이 다 널 기억할 거라고 생각하는 건 굉장한 오산—”

“나는.”


여자가 아윤의 말을 끊었다. 그리곤 어딘가 분노한 상태로 말을 이었다.


“마신 암두시아스의 주민이었다.”


암두시아스.

벨리알과 아윤이 첫 번째로 사냥한 마신이자, 그녀의 죽음에 아윤도 적절한 지분을 가지고 있었다.

이쯤 되니 아윤도 무언가를 직감한 듯했다.


“너 혹시··· ···.”

“나는 암두시아시의 주민 유니코니스다. 아니, 유니코니스였지. 지금 나는 다시 태어났다. 오직 너를 죽이기 위해서.”


아윤은 그때를 곰곰이 되짚어보았다. 그녀의 기억 속 희미하게 남은 순간이 있었다.

암두시아스의 호위를 맡던 주민들의 목을 남김없이 딴 후, 벨리알의 도움을 받아 암두시아스까지 처리했었다. 그리고 아윤이 탑의 하층부를 향해 내려가려던 순간.

그녀의 감시망에 어떤 생명체가 잡혔으니, 암두시아스의 주민인 것 같은 기류가 흘렀으나 그 양이 절대적으로 크지 않고 또한 전투의지도 없다시피 했기에 아윤은 그런 기척을 무시하고 아래로 향했다.


“너, 그때 그 녀석이랑 비슷하네.”

“왜냐하면.”


여자가 순식간에 아윤의 뒤를 잡아 그녀의 뒷덜미를 잡았다.


“내가 그 녀석이 맞으니까.”


아윤은 기지를 발휘해 창을 반대로 잡아 여자를 향해 뒤로 내질렀다.


스슷!


목덜미에서 손아귀의 힘이 사라지는 느낌과 함께 여자가 다시 아윤의 정면으로 향했다.

여자의 혓바닥이 여느 파충류의 그것처럼 날름거렸다.


“나는 다시 태어났다. 여기 있는 내 새로운 성주와 함께.”


아무래도 발라크가 아윤과 벨리알이 휩쓸고 지나갔던 암두시아스의 행성에 간 모양이었다.


“새 삶은 너무도 아름답구나. 다시 태어난 내 이름은 레체타다. 똑똑히 기억해 둬. 아니지, 넌 기억 못하겠네. 지금 죽을 테니까.”

“조금 있으면 그냥 거기에 누워 있는 게 나았을 거라고 생각하게 될 거야.”


아윤과 레체타의 신경전이 오가던 도중 격이 다른 누군가가 입을 열었다.


[잠깐 그 전에.]


줄곧 침묵을 고수하던 발라크가 천천히 걸어가기 시작했다.

그것의 종착지는 한 인간의 싸늘한 주검. 아니, 어쩌면 이젠 인간으로 불릴 수 없는 미지의 존재.


[내 하나뿐인 숙주를 여기서 잃을 순 없지.]


손바닥을 펼쳐 김기헌의 머리를 움켜쥔 발라크가 괴상한 주문을 외자 넓은 손가락의 간격으로 김기헌의 부릅뜬 눈이 보였다.

그 동공은 정확히 아윤을 겨냥했다. 금방이라도 눈에서 레이저가 발포되어 아윤을 노릴 것만 같았다.


[후. 상상력을 깨나 소모했군.]


발라크가 짧은 숨을 내쉬며 몸을 일으켰다. 김기헌도 이에 맞춰 발라크와 나란히 섰다.


“대가리급이 셋? 거기다가 한 놈은 마신··· ···.”


아윤이 눈을 감았다.

마치 앞에 아무것도 없는 듯. 혼자만의 방에 있는 듯 눈을 감고 상상했다.


‘이곳은 텅 빈 어둠이고, 어둠은 내가 가장 자신 있어 하는 곳이다.’


이윽고 눈을 뜬 아윤의 눈엔 오로지 검은자뿐이었다.

아윤이 짧게 코셰흐샤비브를 휘둘러 흑염을 주위에 둘렀다. 이어 서서히, 하나 확실하게 불길에 몸을 숨겼다.


“제대로 봐 둬. 순식간에 끝날 테니까.”


사방이 불길로 둘러싸이자 셋은 전부 긴장했다. 딱히 계획은 없었다. 나타나면 죽인다. 그럴 자격이 있는 세 존재였기 때문이었다.

얼핏 따지자면 그들에게 긴장해야 할 이유는 없다.

마신과 마신의 주민, 마신이 자부하는 걸작까지. 이 정도의 구성이라면 마신의 주민은 고사하고 마신 자체도 때려 눕힐 수 있는 정도였다.

하지만 어째서일까. 그들의 손아귀에는 힘이 어느때보다도 강하게 들어갔고, 그 주먹의 사이로 땀과 피가 섞여 나왔다.


뚝.


레체타의 꽉 움켜쥔 오른손에서 피가 한 방울 떨어지자 전투는 시작되었다.

떨어져 둥글게 원 형태를 유지하던 핏방울과 땀방울이 사방으로 튀었다.

가공할 속력이 그들의 신경을 곤두세웠다.


[레체타. 기감을 끌어올려라. 그리고 내게 그 감각을 공유해. 기헌. 너는 이곳을 어떻게든 탈출해 주변에서 네 일족을 모아와라.]


“그럼 발라크 님은 어쩌시려는 겁니까!”


[난 맞선다.]


일사불란하게 셋이 동시에 움직였고, 아윤은 그중 가장 위험도가 높은 존재를 쫓았다.


화르륵!


화염에 어느 정도 내성이 있는 것일까. 김기헌이 솟아오르는 불기둥을 파하여 정면으로 달렸다. 아마 인간이 밀집되어 있는 장소를 찾으려는 것이리라.

그런데 이를 어쩌나.

기헌이 도망치려는 존재는 세상에서 가장 강한 주민 중 하나였음을. 그는 간과한 것이다.


파아앙!


기헌의 시야가 갑자기 낮아졌다. 동시에 왼팔에서 형언할 수 없는 고통이 몰렸다.

기헌은 있는 힘껏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아윤의 불기둥이 기헌의 입을 녹여 입술을 서로 붙게 했기 때문이었다.


“어때? 이런 감각은 처음이지?”


기헌이 가까스로 제 팔에서 창을 뽑아 다시 달렸다.

모르기는 몰라도 기헌은 생각할 것이다.


인간만 찾으면 저 괴물에게서 달아나는 것은 시간문제다.

그들을 인질로 잡으면 괴물도 어찌할 도리가 없을 것이라고 말이다.


실제로 그 예측은 일부 아윤에겐 유효했다.

많은 살생을 저질렀다고는 하나 결국 그녀도 인간. 같은 인간을 죽이는 것에 아무 거리낌이 없다고 말하기는 힘들 것이다.


“일로 와!”


아윤이 창을 던져 이번엔 기헌의 가슴을 꿰뚫었다. 그러자 기헌의 움직임이 그쳤다.

그렇게 아윤이 천천히 다가가 기헌의 가슴에 박힌 창을 빼내려는 순간.


쐐애액!


날카로운 물체가 아윤의 뺨을 스쳤다.

주륵 피가 흘렀다. 붉은 선혈이 아윤의 입가에 다다르자 아윤은 그것을 핥았다.


[찾는데 애를 좀 먹었군. 설마 흑염의 바깥으로 나갔을 줄이야.]


“그거 하나 못 찾으면서 무슨 나를 죽이겠다고.”


아윤이 격을 발현했다.


“고유격 발현. 「무가치한 존재」.”


아윤의 주격이자 벨리알의 기운의 정수.

「무가치한 존재」가 은근하게 발라크의 행동을 억제했다.


“이거나 처먹어!”


아윤이 코셰흐샤비브를 회수하자 기헌의 육체가 따라왔다. 아윤은 그대로 코셰흐샤비브를 피해 발라크에게 향하도록 설계했다.

본래라면 반응하고도 남았을 속도였지만 정말 안타깝게도 그의 행동은 아윤의 격에 의해 억제되어 있었다.


콰아앙!


파괴적인 힘이 둘에게 작렬했고, 아윤은 빈틈을 내어줄 생각이 없어 보였다.


다시 창을 회수한 아윤이 기헌의 머리통을 향해 창을 내질렀다.


스스슷!


눈앞에서 둘이 사라지기 전까지는 아윤의 완벽한 승리였다. 하지만 그들은 순식간에 자취를 감추었고, 황급히 아윤이 불기둥을 향했지만, 레체타까지 도주하고 없었다.

당장이라도 쫓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상상력은 바닥났고, 체력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사실상 이 기회가 마지막인 것이었다.

이제 남은 것은 지원을 기다리는 것뿐. 아윤은 탈진해 쓰러지고 말았다.

그런 그녀의 옆으로 누군가가 나타나 그녀를 어디론가 데려갔다.

그 사이 지구에서는 기현상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아주, 아주아주 이상한 현상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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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1 범 (6) 24.09.01 6 0 10쪽
150 범 (5) 24.08.30 8 0 10쪽
149 범 (4) 24.08.28 9 0 10쪽
148 범 (3) 24.08.25 8 0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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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6 범 (1) 24.08.21 9 0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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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2 대멸종 (10) 24.08.11 9 0 10쪽
141 도룡지기 (3) 24.08.09 8 0 10쪽
140 도룡지기 (2) 24.08.07 8 0 10쪽
139 도룡지기 (1) 24.08.04 8 0 10쪽
138 대멸종 (9) 24.08.02 9 0 10쪽
137 대멸종 (8) 24.07.31 7 0 9쪽
136 대멸종 (7) 24.07.28 10 0 10쪽
135 대멸종 (6) 24.07.26 12 0 11쪽
134 대멸종 (5) 24.07.24 8 0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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